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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의 저자 김남준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 2016.06.14 12:18

한국교회에서 손꼽을 수 있는 저자들을 이야기해 보라면 김남준 목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온 세월 동안 책을 통해 한국교계와 독자들과 끊임없이 교통하고 있다. 이런 그가 최근에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생명의말씀사)란 책을 출간했다. 크리스찬북뉴스의 문양호 편집위원이 이 책을 주제로 하여 김남준 목사를 만났다
 

-신학을 하는 동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고 체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관점이 책 전반을 흐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표현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란 책이 일종의 목회자가 신학적으로 쓴 신앙고백 또는 간증집이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신학공부의 필요성을 쓰셨으면서도 그 안에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경외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쓰신 이유를 말씀하여 주십시오.

 

2012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개강수련회에서 이 주제로 설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0년 전에 출간한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가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싶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무엇을 공부해야 되는지에 대해 제시해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전체가 약 2,000페이지 정도로 완성될 것 같은데, 이번에 나온 책은 그 중 일부로, 3권으로 나올 예정인 책의 첫 번째 권입니다. 이 첫 번째 권에서는 목회자로서의 소명과 또 소명을 받은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신학공부와 신앙생활 그리고 사역의 조화를 이루어야 할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질료이고 신학은 형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질료라고 하실 때, 신앙이 바른 토대를 가지지 않았다면 그것을 토대로 세워지는 신학은 주관적 신학이거나 자기 신앙을 합리화 하는 위험성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것이 이단이나 잘못된 신학을 돌출 시킬 수 있구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신앙이 신학의 질료라고 하는 것은 신학이 다루는 내용이 신앙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지성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아무런 토대가 없이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생겨난 신앙과 경험의 내용들을 어떤 건전한 신학으로 어떻게 체계화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뜨거운 신앙과 풍부한 체험이 건전한 신학의 체계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정리된다면 더욱 확고한 신앙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주관적인 신앙과 객관적인 성경진리 혹은 신학의 학문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좋은 설교는 쉽게 요약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대교회와 성도들은 설교시간이 짧아져야 한다고 말하고 명료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좋은 설교와 세상이 요구하는 이런 간극의 문제에 대해 설교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와 헤쳐 나갈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현대는 참을성이 없는 시대입니다. 더욱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주지 않는 시대입니다. 감각을 자극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은 설교를 들어도 지성을 기울여 탐구하고 숙고하며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감각의 폭력은 현대인의 예배 태도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설교 시간이 짧아지도록 요구하고, 설교 내용이 즐겁고 단순하기를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 자체로 어떤 사람들은 배척하고 어떤 사람들은 끌어들입니다. 설교자는 진리를 설교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진리를 떠난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의 가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다만 그 진리에 대한 진술이 자기의 시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적실성을 가져야 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몸이 아프셨던 것으로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지셨는지요? 이전에 목사님은 신학생이나 부교역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헌신을 강조하신 것 같은데, 책에 보면 아프신 이후 신학생이나 부교역자들을 바라보시는 눈길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그 병환을 통해 특히 어떤 부분의 변화가 있으셨는지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 책을 쓰는 동안 네 번 입원하고 두 번 수술하였습니다. 타고난 체력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육체가 마음의 소원을 따라주지 못하는 것을 절실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낙심도 되고 힘들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한 마음도 함께 주시더군요. 덕분에 모든 건강의 문제를 대부분 정신의 힘에 속하는 문제라고 여겼던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깨달으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러한 저의 마음이 이 책에서도 어느 정도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목사님은 많은 책을 저술하신 것으로 유명하신데, 그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하신지....특히 목회하시면서 연구와 집필을 위해 어떻게 시간 배분을 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비슷한 질문을 많은 사람들에게서 듣습니다. 저는 아직 제가 쓴 책이 몇 권인지 헤아려 본 적이 없습니다. 어림잡아 약 70여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책을 쓰는 일은 나의 삶의 일부이지 특별히 노력을 하거나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물이 흐르듯이 마음 가는대로 주제를 찾고 자료를 구하고 책을 씁니다. 설교하고 교회에서 꼭 필요한 목회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 이외에 나머지 시간을 모두 연구하고 집필하고 기도하는 데 사용합니다. 특별한 취미도 없고 시간을 들여 행하는 여가생활도 없기 때문에 마음이 분산되지 않고 집중해서 일할 수 있습니다. 종종 산책을 하며 음악을 듣거나 묵상을 하는 것으로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조절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벌코프의 조직신학이나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교재로 해서 교리공부를 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고학력출신의 성도들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성도들에게는 지식적인 어려움을 느끼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경우는 어떻게 대처하시는 지요?

 

교육은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피교육자들에 의해서도 그 내용과 수준, 방식이 결정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이런 교육들을 좋아하고 또 잘 받아들이고 있는 편입니다. 연세 드신 분들도 의외로 잘 따라오시는데 아마 오래도록 설교를 들으면서 신학적인 개념들이 이해되고 또 사상의 체계가 세워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특별히 지식적인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게 설명의 난이도를 조절하고, 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적지 않은 책이 목회자나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면이 강하고 교회에서 목회자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교계는 목회자의 부도덕성과 갖가지 추문 등으로 인해 목회자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확산되어서 만인제사장설을 근거로 성도들의 역할에 대한 강조 및 대등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와 목회자의 역할과 위치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목회자와 신학생들을 위해서만 책을 쓴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책들을 평신도를 위해 썼습니다. 그렇지만 교회의 문제는 결국 목회자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날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로 인해 교회에 대한, 특히 목회자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가 매우 낮아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목회자들은 분명 반성하고 뉘우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자질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 신학교에 가고, 또 신학교육을 받는 동안에 학교와 교회의 철저한 관리와 따뜻한 격려 속에서 학문뿐 아니라 신앙과 인성에 이르기까지 잘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역할과 위치는 사회의 상황이나 요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정위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 조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조국교회에서 확실히 고쳐져야 할 부분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성경이 성도와 목회자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성경의 가르침들을 배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기도의 바탕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고민하며 답을 찾아나갈 때 보다 더 성경적이고 민주적인 관계 설정이 이루어져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각 시대마다 그 신학이 옳건 그른 건 주목받는 신학이 있고 복음을 선포하는 신학자는 그 신학과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은 정통적 복음주의 신학을 견지하시면서도 다양한 독서와 폭넓은 신학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계신데, 지금 우리 시대의 교회에서 주목받는 신학은 무엇이며 그 신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개혁신학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종교개혁자들 중 자신이 선호하는 한 두 사람의 신학자만을 탐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각자 속한 교파는 크게는 개신교 전체의 맥락 안에 있고 더 크게는 사도시대 이후로 흘러내려오는 보편교회의 맥락 안에 있습니다. 배우고 아는 모든 것에 동의할 필요도 없고, 또 동의한 신앙의 내용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이어서도 곤란합니다. 참으로 자신이 믿는 교파의 신학이 가진 성경적 진정성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끊임없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 어느 기독교 신문에 기고한 바와 같이 칼빈을 좋아하지만 칼빈주의자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고 존 오웬의 신학에 깊이 영향을 받았으나 오웬주의자이기를 거절합니다. 제게 큰 영향을 끼쳤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을 본받기를 원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나 혹은 에드워즈주의자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책을 쓰고 설교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나의 추종자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말합니다. “나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후에는 쓰레기통에 버리십시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가십시오

 

-현대 사회는 윤리의 무너짐과 혼란을 겪고 있고 그 여파는 교회 내에도특히 젊은층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성윤리와 동성애, 경제적 갈등, 정치적 충돌 등의 문제를 갖고 있지만 교회가 그들을 보듬기보다는 그들의 고민의 근원조차 이해하지 못해 떠나가는 가나안 성도들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속에서 목회자는 어떤 신학적 접근을 가져야 할까요?

 

질문하신 바와 같이 현대사회는 윤리적인 혼란을 겪고 있고 이것은 도덕의 토대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이미 포스트모더니즘은 거의 승자처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는 도덕의 기초 같은 것들이 없다는 사상에 설득되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동성애나 성윤리 등이 모두 이런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접근을 도외시하고 종교적으로만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어느 때보다 더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은 복음입니다. 복음을 깨닫고 깊이 회심하여 모든 존재와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수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누리며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한편으로는 사상적으로 깊이 고민하고 투쟁해야 할 것이며 또한 윤리적으로 자신들이 믿는 바가 진리임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넘쳐서 외치는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고 목회자는 이 모든 일의 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

 

-현재 조국교회의 목회자와 신학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것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십시오. 죽도록 공부하십시오. 열렬히 기도하십시오. 삶을 진리에 일치시키십시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용납하는 사랑을 가지십시.”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Vol.1입니다. 두 번째 책은 언제 출간하실 예정입니까?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란 주제를 다루신다고 되어 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 출간예정이거나 집필중인 책이나 주제가 있으시다면 소개해주십시오.

 

1권에서는 세 가지 주제를 다루었는데 소명, 경건과 학문의 조화, 목회자와 지성이었습니다. 2권과 제3권은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책과 세 번째 책은 초고의 작성이 끝났고 매년 한 권씩 출판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책은 내년 2월 경에 출간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슨 공부를 해야할 지를 다루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들입니다. “신학교 때 공부하는 법, 언어공부, 일반학문, 철학공부, 초대교회의 교부들, 아우구스티누스, 중세신학과 이슬람철학 그리고 유대철학, 스콜라주의와 중세말기 철학자들까지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3권은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에서 시작해서 현대신학자들까지 다루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책이 20182월에 출간되기를 바라며, 지금 틈나는 대로 2권과 3권을 초고를 토대로 더 깊이 연구하며 집필하고 있습니다.



대담: 문양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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