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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대적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포스트모더니즘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살고 있다.
이전에 옳고 그름의 기준들이 이제는 틀린 것이 아니고 "다름", 그리고 존중 받아야 할 가치들로 포장되어 제시되고 있다.
선악과를 먹을 때, 사망이 아닌 하나님과 같은 상태에 이른다고 유혹한 거짓의 아비는 이 시대에 거짓 사상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해 세상을 혼돈에 이르게 만드는데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저항했던 신앙의 선진들은 이 시대에선 어리석고 독선적인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진리를 올곧게 선포하는 것은 배려심 없는 사람이고,
포용을 말하고 중립을 선포하는 것이 이 세상의 지혜다.
그래서 조엘 오스틴과 같은 미지근한 사람들이 많은 팔로워들을 거느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세대의 정신이 그에 부합한다는 정확한 반증일 뿐인 것이다.
이제는 진리가 무엇인지에 관심조차 없는 혼돈의 시대가 도래했다.
앞으로 진리를 선포하는 일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죄를 단순히 부족함이나 질병으로 여기는 시대에, 악을 상대화 시켜 교묘히 변형시키는 상황에서, 죄가 악하다고 선포하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싸움이다.
이전에 옳고 그름의 기준들이 이제는 틀린 것이 아니고 "다름", 그리고 존중 받아야 할 가치들로 포장되어 제시되고 있다.
선악과를 먹을 때, 사망이 아닌 하나님과 같은 상태에 이른다고 유혹한 거짓의 아비는 이 시대에 거짓 사상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해 세상을 혼돈에 이르게 만드는데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저항했던 신앙의 선진들은 이 시대에선 어리석고 독선적인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진리를 올곧게 선포하는 것은 배려심 없는 사람이고,
포용을 말하고 중립을 선포하는 것이 이 세상의 지혜다.
그래서 조엘 오스틴과 같은 미지근한 사람들이 많은 팔로워들을 거느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세대의 정신이 그에 부합한다는 정확한 반증일 뿐인 것이다.
이제는 진리가 무엇인지에 관심조차 없는 혼돈의 시대가 도래했다.
앞으로 진리를 선포하는 일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죄를 단순히 부족함이나 질병으로 여기는 시대에, 악을 상대화 시켜 교묘히 변형시키는 상황에서, 죄가 악하다고 선포하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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