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팔복(6):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조정의 | 2020.02.07 12:26



팔복, 그 두 가지 차원의 적용

우리는 만복의 근원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여덟 가지 복에 관하여 살펴보고 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그리고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데,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신 특징을 가진 자들, 두 글자로 ‘의인’만이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은 하나같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이 복에서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자백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복이 있다’고 선언하신 자는 어쩌다 한 번, 적당한 수준의 온유, 긍휼을 베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복이 있다’고 판결하신 자는 지금까지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의로움’, ‘긍휼함’ 등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성품과 인격이 그러한 사람을 가리킨다. 한 마디로 ‘의인’의 특징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이다.

시리즈 첫 칼럼에서 말한 것처럼,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자 곧 의인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롬 3:10).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팔복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무능력함과 부족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반응을 일으켜야 했다. 베드로가 주님께 부르짖었던 것처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서이다”라고 고백하며 엎드려야 했다(눅 5:8). 자기의 처참한 영적 상태를 깨닫고 겸손히 자기를 낮춰 은혜를 구한다면 예수님은 그를 높이실 것이다(약 4:10).

어떻게 주님이 회심한 죄인을 높이시는가? 정답은 이 복을 말씀하고 계신 주님께 있다. 하나님의 본체, 그 영광의 보좌 옆에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그분이 낮은 땅에 죄인과 함께 거하시면서 팔복을 가르치시고 계셨다. 왜 예수님은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낮추셨는가? 성경은 말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예수님께서 자기를 낮춰 죄인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다. 아버지는 왜 그런 일을 아들에게 요구하셨는가? 성경은 또 말한다.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그의 제자가 된 자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있어 그 영을 따라 행할 수 있게 된 자,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기 위해서다. 그들의 죄책을 담당하기 위해서, 그분의 완벽한 의, 율법이 요구하는 온전한 의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한 자는 팔복의 수혜자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천국이 주어졌다(‘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분을 따르는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약속되었다(‘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새 하늘과 새 땅의 유업을 받게 되었고(‘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들이 늘 갈급해 하는 의가 온전히 이루어져 풍족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배부를 것임이요’).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영원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리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는 이제 그들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예수님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성경이 말하는 성령(그리스도의 영)의 열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맺는 열매는 팔복과 많이 닮았다: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 5:22-23). 이것이 팔복의 두 번째 차원의 적용이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이제 그들 안에 있는 성령을 따라 복 있는 사람답게 산다.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당신은 애통해야 한다. 온유해야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한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

그러면 여섯 번째 복, “마음이 청결한 자”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마태는 ‘청결한’이란 단어를 세 번 사용했다. 그리고 여기에선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데 사용했다. 우리는 보통 ‘마음’을 사람의 감정과 연결하여 생각한다.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본문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감정이 청결한 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마음’을 ‘속사람’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마태만 해도 마음(카르디아)을 사용할 때 ‘생각’(‘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9:4), ‘성품’(‘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11:29), ‘죄성’(‘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15:19) 등 속사람의 특성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였는데, 우리는 정신, 생각, 감정, 의지 가운데 하나만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마음’은 육신을 입고 있는 참 사람 곧 ‘속사람’을 가리킨다.

마음이 정결한 사람, 깨끗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나중에 모든 사람의 마음엔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말씀하셨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 15:19-20). 손을 씻지 않았을 때 손에 묻은 병균이나 세균이 음식과 함께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부정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속사람을 더럽힐 수 있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육신은 밖에 있는 더러운 것으로 병들 수 있지만, 속사람은 밖의 것 때문에 더러워지는 게 아니다. 속사람은 마음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더러운 것으로 청결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팔복의 일차적인 적용이 도출된다. 그 누구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복의 수혜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은 더럽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문제는, 누구도 그 마음이 청결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뒤따르는 약속,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이것을 받게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기 때문이다(합 1:13).

하나님을 보지 못할 거란 말의 의미

어떤 사람에게 팔복은 그냥 안 받으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약속에 안타깝지만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해도 그것이 뭐 그리 큰 문제인가?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팔복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지옥에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란 말이 곧 지옥에 가게 될 것이란 말이다.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는 죄인이 영원히 그분을 보지 못하고 떨어져 살게 될 그곳이 바로 지옥이기 때문이다.

자, 여기 두 가지 현실이 있다. 당신은 마음이 청결하지 않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영원한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런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으니, 당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팔복을 선포하신 이에게 은혜를 요청하는 것이다. 부르짖는 것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도저히 주님이 말씀하신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자기 죄를 자백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 하나님이신 말씀, 육신을 입으신 말씀,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신다. ‘너에게 복이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마음이 더러워 하나님을 도저히 볼 수 없던 죄인의 죄책을 죽음으로 대신 갚으셨기 때문이다. 죄가 조금도 없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으로서, 그 입에 거짓이 없으신 예수께서 친히 당신의 의, 청결함이 되어 주신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자, 이제 팔복의 이차 적용으로 넘어가 보자.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입은 자가 되었다면, 이제 성령을 따라 팔복에 해당하는 사람의 삶을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청결한 자’로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삶과 희생적 죽음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당신의 의로움을 인정하신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로 인해 의롭다함을 얻은 자로서,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 성령이 기록하신 말씀 곧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하신 뜻에 따라 사는 삶이 당신이 ‘마음이 청결한 자’로서 살아가야 할 삶이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위해 주어졌다(딤전 1:5).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받을 복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의 완결편이다. 지금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데, 종말에 가면 그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될 것이다. 그분 앞에서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결론

그러므로 죄인들이여, 청결하지 못한 당신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오라. 오직 그분만이 당신의 마음을 거룩하고 정결한 보혈로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 정결하게 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여 발을 씻어라. 목욕을 한 자도 발을 씻을 필요가 있다. 날마다 추악한 죄로 더럽혀지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라.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요일 1:9). 그것이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이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힘써야 할 매일의 삶의 훈련이 되어야 하며, 그 훈련을 마치는 날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분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리게 될 그 날까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자. ‘마음이 청결한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부지런히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자. 그것이 진정으로 복된 삶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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