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헌혈 못해 아이비리그 명문대에 낙방?

신성욱 | 2022.02.24 12:59

오늘 아침 페북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국에 이민해서 살고 있는 한인 2세가 명문 콜롬비아대학 의과대학에 지원을 했단다. 공부를 잘해서 SAT 시험에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집안 형편도 부유해서 당연히 무난하게 합격되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불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한다.

불합격 사유란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귀하의 성적은 아주 우수합니다. 가정형편이나 여러 조건들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서류 어디를 보아도 헌혈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헌혈한 경험도 없는 귀하가 어떻게 환자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귀하는 의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너무도 충격적이다.

이거다. 이게 바로 미국을 움직이는 힘이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저 정도 조건이면 백 프로 합격이다. 성적 우수하겠다 집안 좋겠다 그냥 합격이다. 그런데 헌혈한 적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불합격 시켜버렸으니, 좀 아이러니 해보여도 역시 아이비리그 대학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이 작은 처사 하나로 우리는 미국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다. 다 기독교 정신에서 비롯된 기준이다.

 

미국이 아무리 영적으로 많이 다운되고 타락의 길로 들어섰다 하더라도 아직은 기독교 정신이 곳곳에 남아 있음을 본다.

의사가 되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머리가 좋아야 한다. 환자의 소중한 건강과 생명이 그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탁월한 기술과 판단력이 요구된다. 물론 재산이 많은 것도 유리하다. 병원을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조건이 있다면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 나온다. “.... 내가 어떠한 집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그들에게 갈 것이며...”

환자의 이익을 위해 살아야 할 사람이 의사다. 그런데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헌혈 한 번 하지 않았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과거 유학 시절 즐겨 시청했던 허준이라는 사극이 생각난다. 허준이 내의원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떠난다. 한양 가까이 주막에 보따리를 푼 채 막바지 시험 준비를 한다. 거기엔 허준 뿐 아니라 전국에서 과거를 보려고 올라온 스승 유의태의 아들 유도지 같은 경쟁자들이 하루 앞둔 시험을 대비해서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을 인근에서 사람들이 와서 위중한 환자가 있으니 와서 치료해달라고 간청한다.

 

하지만 시험 준비에 바쁜 나머지 환자를 돌아보러 떠나려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바로 그 순간 허준이 자청해서 가겠다고 한다. 그에 집에 가서 처방전을 알려주자 이번엔 많은 환자들이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 환자들을 일일이 만나 치료하다 보니 어느덧 동이 트고 말았다. 환자들을 다 돌려보낸 허준이 뒤늦게 한양을 향해 급한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이미 과거 시험은 시작되었고 시험장 출입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허준은 허탈한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온다. 허준이 시험을 못 봐 내의원 시험에 낙방한 반면, 그를 시기하던 유의태의 아들 유도지는 과거 시험에 합격한다. 합격 후 금의환향한 유도지에게 부친 유의태가 호통 치던 모습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요청하는 환자들을 외면하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의원이 무슨 의원이더냐?”

비록 시험엔 떨어졌지만 스승 유의태의 마음엔 제자 허준이 참 의원이었던 것이다.

 

당시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교에선 한국 학생들이 만날 때마다 즐겨 인사하던 유행어가 하나 생겨났다. 바로 이것이다.

허준 안 보고는 목회 못해!”

사극 허준은 마치 신학생과 목회자들에게 목회학개론서와도 같이 여겨졌었다.

그때의 감동적인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27:23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나는 목회자로서 내 양 떼와 소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마음을 두고 있는지 조용히 반성해본다.

모두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자로 살다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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