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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묵상] 드리는 삶을 살라
드리는 삶을 살라
Be Prepared for Giving
하나님의 일을 유지하는 비결
D.W. Brealey
재정 문제는 모두가 인정하듯이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주제임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주제에 대해 많이 말씀하고 있고, 또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가들을 발견하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드리는 일에 대한 모세의 가르침은 모두 주 예수님에 의해 다시 확증되었는데,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다만 하나님의 대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
특별히 십일조 문제에 있어서 세세하게 따지기를 좋아하면서도, 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은 균형 감각을 유지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 23:23)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것”이란 “더 중한바”를 가리키고 있으며, 또 “저것”이란 “십일조”를 가리키고 있는데, 주님은 어느 것도 버리지 말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기서 주님의 권위로 십일조를 필수적인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장자와 첫 열매가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특별하게 강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주님은 십자가 구속을 경험한 마음에 일어나는 참된 반응에 대해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또한 주님은 드리는 일에 대해서, 그 사실 자체나 특권을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열납하실 만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할 만한 다음과 같은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만일 예물을 드리고자 한다면 삶이 합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2. 동기가 옳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 6:2-4)
3. 가족 부양에 대한 합당한 인식과 책임을 져야 합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 7:10-13)
4. 주님께 드리는 예물은 사랑에 의한 강권함을 통해서만 드려져야 합니다. 이에 대한 본은 시몬의 집에서 회개한 죄인이 주님께 드린 예물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이에 대해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눅 7:47)고 증거하셨습니다.
5. 예물의 정도는 주님이 받으시는 정도에 비례합니다(The measure of the gift will be the degree of its acceptability). 예물은 그 본래의 값이나 가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드렸을 때에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는가에 의해 측량됩니다.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 12:41-44)
예수님은 연보궤 앞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드린 예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예물을 기뻐 받으시는지에 대한 사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은 완전한 자기 희생을 해서라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 가운데 최고한 본을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사도들의 가르침을 살펴보기 전에 저는 먼저 주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격려와 권고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사도들의 가르침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 전체에서 적어도 한 번, 아니 그 이상에 걸쳐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삶의 문제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 걸쳐서 철저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그 두 장을 조심스럽고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해볼 것을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확실한 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삶에 대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은,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입니다(고전 6:19).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는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 이 구절에 대한 실천은 마게도냐 교회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 8:5). 우리가 처음부터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게 되면,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제로는 주님의 것이며, 또한 우리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사용하는 일에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도 분명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청지기직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심사숙고하게 될 것이며,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 얼마를 쓸 것이며, 또한 남은 것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바르게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삶의 문제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 나타난 원칙들을 살펴봅시다.
이 두 장에 나타난 원칙들을 순서대로 살펴본다면, “풍성한 연보”(고후 8:2)라는 구절을 통해서 “손을 완전히 펴서 주라”는 첫 번째 원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드리는 삶에 대한 교훈을 마치면서 이 원칙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일에 있어서 손을 널리 펴서 드리라는 것으로 교훈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고후 9:11), 그리고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고후 9:13).
인색하지 않은 연보에 대한 최고한 본, 그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확증과 진정한 격려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할 수 없는 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여기서 우리는 “인색하지 않음(liberality)”이 그렇게 낼 수 있는 부자에게만 한정된 호의적인 마음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토록 풍성한 연보를 할 수 있었던 토양은 바로 “극한 가난”이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영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1-2). 우리는 이러한 일을 우리 그리스도인의 경험 속에서 얼마나 자주 보고 있습니까?
두 번째, 자원하는 마음의 원칙입니다.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3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11절),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12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세 번째, 즐겨내는 마음의 원칙인데, 이는 두 번째 원칙에 이어진 것입니다. 후하게 그리고 자원하여 주는 사람은 드리는 일의 기쁨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 20:35)는 말씀의 진실성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릴 때는 기쁘게 드리도록 합시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또 다른 세 가지 원칙을 볼 수 있습니다. 드리는 일은 정기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매주일 첫날에…”. 모든 성도가 다 포괄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너희 각 사람이…”. 또한 비례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고전 16:2).
이제 드리는 삶의 은혜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에 대한 여러 성경구절들을 아우르는 구절을 하나 소개하고 마치고자 합니다.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돈을 말함)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Be Prepared for Giving
하나님의 일을 유지하는 비결
D.W. Brealey
재정 문제는 모두가 인정하듯이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주제임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주제에 대해 많이 말씀하고 있고, 또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가들을 발견하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드리는 일에 대한 모세의 가르침은 모두 주 예수님에 의해 다시 확증되었는데,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다만 하나님의 대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
특별히 십일조 문제에 있어서 세세하게 따지기를 좋아하면서도, 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은 균형 감각을 유지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 23:23)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것”이란 “더 중한바”를 가리키고 있으며, 또 “저것”이란 “십일조”를 가리키고 있는데, 주님은 어느 것도 버리지 말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기서 주님의 권위로 십일조를 필수적인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장자와 첫 열매가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특별하게 강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주님은 십자가 구속을 경험한 마음에 일어나는 참된 반응에 대해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또한 주님은 드리는 일에 대해서, 그 사실 자체나 특권을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열납하실 만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할 만한 다음과 같은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만일 예물을 드리고자 한다면 삶이 합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2. 동기가 옳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 6:2-4)
3. 가족 부양에 대한 합당한 인식과 책임을 져야 합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 7:10-13)
4. 주님께 드리는 예물은 사랑에 의한 강권함을 통해서만 드려져야 합니다. 이에 대한 본은 시몬의 집에서 회개한 죄인이 주님께 드린 예물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이에 대해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눅 7:47)고 증거하셨습니다.
5. 예물의 정도는 주님이 받으시는 정도에 비례합니다(The measure of the gift will be the degree of its acceptability). 예물은 그 본래의 값이나 가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드렸을 때에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는가에 의해 측량됩니다.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 12:41-44)
예수님은 연보궤 앞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드린 예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예물을 기뻐 받으시는지에 대한 사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은 완전한 자기 희생을 해서라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 가운데 최고한 본을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사도들의 가르침을 살펴보기 전에 저는 먼저 주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격려와 권고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사도들의 가르침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 전체에서 적어도 한 번, 아니 그 이상에 걸쳐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삶의 문제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 걸쳐서 철저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그 두 장을 조심스럽고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해볼 것을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확실한 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삶에 대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은,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입니다(고전 6:19).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는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 이 구절에 대한 실천은 마게도냐 교회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 8:5). 우리가 처음부터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게 되면,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제로는 주님의 것이며, 또한 우리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사용하는 일에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도 분명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청지기직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심사숙고하게 될 것이며,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 얼마를 쓸 것이며, 또한 남은 것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바르게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삶의 문제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 나타난 원칙들을 살펴봅시다.
이 두 장에 나타난 원칙들을 순서대로 살펴본다면, “풍성한 연보”(고후 8:2)라는 구절을 통해서 “손을 완전히 펴서 주라”는 첫 번째 원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드리는 삶에 대한 교훈을 마치면서 이 원칙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일에 있어서 손을 널리 펴서 드리라는 것으로 교훈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고후 9:11), 그리고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고후 9:13).
인색하지 않은 연보에 대한 최고한 본, 그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확증과 진정한 격려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할 수 없는 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여기서 우리는 “인색하지 않음(liberality)”이 그렇게 낼 수 있는 부자에게만 한정된 호의적인 마음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토록 풍성한 연보를 할 수 있었던 토양은 바로 “극한 가난”이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영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1-2). 우리는 이러한 일을 우리 그리스도인의 경험 속에서 얼마나 자주 보고 있습니까?
두 번째, 자원하는 마음의 원칙입니다.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3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11절),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12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세 번째, 즐겨내는 마음의 원칙인데, 이는 두 번째 원칙에 이어진 것입니다. 후하게 그리고 자원하여 주는 사람은 드리는 일의 기쁨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 20:35)는 말씀의 진실성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릴 때는 기쁘게 드리도록 합시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또 다른 세 가지 원칙을 볼 수 있습니다. 드리는 일은 정기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매주일 첫날에…”. 모든 성도가 다 포괄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너희 각 사람이…”. 또한 비례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고전 16:2).
이제 드리는 삶의 은혜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에 대한 여러 성경구절들을 아우르는 구절을 하나 소개하고 마치고자 합니다.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돈을 말함)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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