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삶의 예배

이성호 | 2016.03.17 17:48

삶의 예배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늘고 긴 하얀 손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손이 비록 작을지라도 희고 고운 손을 선호하고 또 그렇게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부드럽고 매끄러운 손을 더 좋아합니다. 아마 그런 손을 더 만지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이 환갑(還甲)이지 요즘은 환갑잔치를 지내지도, 알리지도 않을 만큼 어르신들이 참 건강하십니다. 알맞은 운동과 평안한 여가를 꿈꾸는 웰빙(well being)과 힐링(healing) 열풍은 그야말로 안정과 보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저는 그런 손을 더 근사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이 만큼 살다보니 그런 손보다 손마디 마디에 세월이 흔적이 배기고 살아온 시간만큼 거칠어진 손, 그런 손을 어쩌다 잡게 되면 가슴이 찌릿합니다. 그 세월의 흔적에 공감이 되고 또 고맙기까지 합니다. 매우 건강한 손입니다.

 

나이가 들어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고 손마디가 마치 소녀와 같이 곱디곱게 남아있는 모습은 자칫 민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도대체 살아온 세월이 어떻길래 어떻게 살아오셨기에 저리 뽀얀 얼굴과 손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교회에서 이런 분들을 만나는 것이 고역일 때도 있었습니다. 지내온 세월은 할머니이신데 주름 하나 없는 얼굴, 새댁 같은 몸매를 위해 몸 관리에 열중하는 분들이었습니다. “너무 고우십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뒤로 돌아 내려가는 허리 굽으신 어르신들을 나는 연신 놓치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그만큼 사셨다면 그 좋은 환경과 남편의 양지에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면 그 만큼의 깊이와 그만큼의 경험과 달려온 만큼의 분별과 통찰을 지녀야지 세상 돌아가는 것은 몰라도 오직 당신 건강이나 몸매에만 매달려 살다 가시면 어떡하시려나는 생각에서입니다.

 

마치 학교에 입학할 때 공부하라는 노트를 혹시라도 더러워질까 아까워서 단 한 장도 한 줄의 글도 채우지 않고, 깨끗하게 보관했다 백지 그대로 졸업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 런지요.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뭘 내미실까요?

“저요, 여기 고대로 가지고 왔어요. 저 참 잘했죠?”

아마 이쯤 되면 백치수준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유행처럼 너무 많습니다. 너도 나도 좀 산다는 분들 가운데 자주 눈에 뜁니다. 물론 악의도 없고 공손하고 예절바른 듯해 보이나 그걸 보고 어찌 곱다 하겠습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고상하고 우아한 삶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건 순진한 게 아닙니다. 정말 순진하고 순수한 건 세상을 살아온 세월만큼 세상의 겉과 속, 사람의 겉과 내면을 꿰뚫어 보는 시각이 살아있고 고통과 한숨을 포용하는 넉넉한 심성과 보이는 것에 치우치지 않는 고요한 심연을 소유한 사람에게 붙이는 표현입니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진짜 곱게 늙으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이 혹여 쪼들리는 상황이거나 다행히 큰 걱정 없는 살림이든 간에, 영혼의 부함을 잃지 않고 주님 주신 은혜를 누리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 진정 곱고 멋진 어르신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셔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제 몫을 한 셈이 됩니다.

 

볕이 고운 3월입니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한껏 기승을 부린 겨울도 물러가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 교회에서 이런 어르신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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