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열기(熱氣)

서중한 | 2018.07.20 20:11

바울은 바나바와 마가 요한과 함께 1차 전도여행을 떠나 첫 번째 사역지인 구브로 섬에 도착합니다. 지금의 키프러스 섬을 동쪽 살라미에서 서쪽 바보까지 횡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살라미에서 시작된 복음사역은 175km 떨어진 바보에 이르러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구브로 섬의 총독이었던 서기오 바울이 바울 일행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13:7). 하지만 이 일에 헤살부리는 방해꾼을 만납니다. 거짓 선지자요 마법사(엘루사)인 바예수입니다. 바예수는 그 이름의 뜻이 구원의 아들임에도 총독이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그 때 바울이 이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바예수를 주목합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13:9). 여기서 주목이라는 말은 열중해서 보는 것’, 즉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사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그 마음에 열기(熱氣)가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로부터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것이지요. 성령 충만으로 가슴에 열기가 생기면 이 열기가 눈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말 열기(熱氣)뜨거운 기운을 말하지만 눈동자에 드러나는 정신의 담찬 기운을 뜻하기도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눈에서 레이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지요. 내연(內燃)은 외연(外燃)되기 마련이니까요.

 

어릴 적 학교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이 자주 하신 말씀 중에 사람이 눈이 살아 있어야지 그런 썩은 동태 눈알 같아서 무얼하겠냐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 말은 눈이 마음의 창임을 잘 드러내기도 하고 결기 없는 흐리멍덩한 눈으로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음을 질책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국어학자 양동주 박사는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하다 했답니다. 책을 읽을 때 눈빛(眼光)이 종이의 뒷면(紙背)을 꿰뚫는다()는 뜻으로, 책의 깊은 속뜻까지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종이를 뚫고 나갈 정도이니 그 눈에 얼마나 빛이 날까요. 초등학교 시절, 창문 곁에서 돋보기로 책표지를 태우던 일이 생각납니다. 에너지가 집중되면 무엇이라도 태우고, 무엇이라도 불사르게 됩니다. 성령 충만으로 바울의 마음에 영적 기운이 가득 찼으니 종이를 뚫고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열길 보다 깊은 사람의 마음을 훤히 보게 되었겠지요. 허울뿐인 거짓 선지자 바예수를 향해 바울은 열기 있는 눈으로 외칩니다. 온갖 기만과 온갖 사악으로 가득 찬 놈아,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주님의 길을 계속 방해할 셈이냐?”(13:10). 그 순간 시선과 마음이 제압된 바예수는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13:11). 바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성령의 열기가 거짓 선지자의 눈빛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의 열기가, 그의 충만함이 진심 부럽습니다.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겠습니다. 나에게도 그 무엇이라도 불사르고, 그 누구라도 살릴 수 있는 열기가 생기도록. 어떤 권력 앞에서도 어둠을 주저 없이 나무라는 올찬 마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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