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무병신음'을 신음함

서중한 | 2020.05.22 13:14

김형수의 책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에서 더러 시를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먼저 헤아리려고 연구 분석하는 이가 있어요. 좀 과잉된 열정입니다. 우리가 춤 구경을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요? 사람은 뜻을 전달하려고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흥이 표출되어서 추는 겁니다.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명이 솟아서 추는 거라면 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 되죠. 허수경의 시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어요.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서 운다.” 얼마나 근사합니까? 서정적 장르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에요. 돈으로 환산하면 500원 어치나 아픈 사람이 표현은 5만 원어치나 아픈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면 좀 짜증나요. 그래서 시에서는 아프지 않고 앓는 일, 무병신음을 가짜라 합니다”(143-144)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읽는 순간 무병신음이 시에만 쓰일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설교를 하면서 얼마나 무병신음소리를 냈을까요? 다윗을 비롯한 시편 시인들의 절규가 마치 나의 신음인 것처럼 부풀릴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밤새도록 울다가 여기가 어느 초상이냐고 묻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초상집 분위기 때문에 밤새워 거짓 울음을 운 것입니다. 억지로 우는 울음이라 강울음이고 건성으로 우는 울음이라 건울음입니다. 장례식에 참여해 보면 살아생전 부모의 가슴을 지독하게 아프게 했던 자식들이나 고인과 별반 애틋한 관계가 없던 사람들의 강울음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강울음이 거의 실신상태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지난 시간을 회한하는 것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한 마디로 가짜 울음입니다.

 

주님, 내 기도를 들어 주시고, 내 부르짖음이 주님께 이르게 해주십시오.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의 얼굴을 숨기지 마십시오... , 내 날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내 뼈는 화로처럼 달아올랐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내 마음은 풀처럼 시들어서, 말라 버렸습니다. 신음하다 지쳐서, 나는 뼈와 살이 달라붙었습니다.”(시편102:1-4)라고 부르짖는 시인의 지친 신음소리를 강울음이나 건울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고통을 동일하게 경험할 순 없다 해도 가슴깊이 헤아리는 공감의 연대 없이 강단에 올라 감정을 부풀리거나 조작할 때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매우 여리고 민감한 영적인 사람처럼,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홀로 깨닫기나 한 것처럼, 과단한 믿음의 사람이듯 고고한 자태를 지었던 것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듣는 사람도, 듣던 하나님도 참 짜증스러웠겠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문학의 진정성을 위해 무병신음을 금기시한다면 설교에는 더 날선 결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픈 만큼 소리 내고, 깨달은 것만큼 말하고, 오늘 걸어온 것만큼의 사람임을 여실히 보일 수 있는 설교의 진정성, 언어의 진실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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