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간장게장
간장게장
난 개인적으로 게로 만든 음식을 참 좋아한다. 꽃게탕이 얼마나 맛있는지 생각만해도 군침이 돈다. 결혼식장에 주례자나, 하객으로 참석하게 될 때에도, 식사 때 빨간 양념게장 맛은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만큼 맛있다. 간장게장도 맛있기는 마찬가지다. 간장게장은 간장속에 게를 담아 일정기간 삭여서 만든 것인데,그것은 또 그것대로 별미같은 게맛을 즐기게 해준다. ..
그렇게 게맛을 좋아하지만 자주 못먹는 이유라면? 그렇게 내 생활 형편에 비해서 값이 비싸다는 이유 뿐이다. ..상당기간 게맛을 잊고 살았는데,하루는 아내가 수원 딸한테 다녀온다 해서 인터넷으로 간장게장을 구매했다. 도착해 뜯어보니 두 통으로 돼있다. 그래서 한통은 후배목사한테 그가 김장김치를 좀 챙겨준 보답으로 가져다 주고,나머지 한 통은 한번 먹고 그 다음에 배란다에 남겨두었었다.
아내는 수원 딸한테 가고 나는 집에 혼자 있기에 그 간장게장을 중식으로 먹으려 찾으니 안보인다. 아내한테 전화해서 어디다 뒀느냐고 물어서 찾아봐도 글쎄 눈에 안보인다...할 수없이 못먹고 아틀만에 집에온 아내한테 간장게장을 찾아서 겨우 먹을 수가 있었다. 아내는 여기에 이렇게 찾기 쉽게 놔두고 갔는데 글쎄 그걸 못찾느냐고 웃으며 핀잔하며 서로 웃는다......
1.가장게장...구원선물(ref, 마4:4,말씀-양식비유) ...맛있는 간장게장은 식자재 전문가가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난 그런거 못만든다. 만들어도 그 맛을 낼 수가 없다.
구원은 너무 큰 은혜 사건이데 인간 누구도 그 구원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단 한 분 영적 장인 예수께서만 가능하다. 십자가로 피흘려 구원선물을 만들어 영적시장 교회에서 무료 판매하게 했다.
①댓가 간장게장은 돈이 들었다.2만2천원? ,,그게 세상 가치에서는 적정 가격이다.
그러나 구원선물은 너무나 큰 가치다. 죄값과 영벌에 따른 지옥멸망에서 건져냄 받는 것이 구원이기에 그 구원값을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결코 그 값을 매길 수가 없다. 구원을 치루신 값은 예수의 피값이다. 하나님아들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이유가 거기 있다. 오직 의로우신 그의 피값이 죄를 해결하고 구원을 해결하는 유일한 값이기에 그가 십자가에서 달려 피흘려 죽으셨다. 그 예수의 생명의 피값이 우리 죄를 사하고 영원한 지옥멸망에서 영생을 얻게 한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서 100% 이뤄진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마지막 숨거두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구지 말씀하신 의미가 거기 있다. 우리를 위한 구원의 일을 위해서 구원자로서 100% 완벽하게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애써서 보태야할 행위나 종교 수고나 의무가 전혀없다. 그래서 예수가 오신 이유이고 그 예수가 100% 십자가로 다 이루셨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예수께만 있다. 그렇게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을 흥정하는 딱 하나 하나님께서 발행하사고 거래하시는 수표가 믿음이다. 그 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딱 한가지 수단과 조건은 오직 믿음인 것이다.
②맛...게장맛은 누군가에게는 별로다. 그러나 내게는 꿀맛이다. 똑같은 솜씨로 만들어진 게장 맛이지만,선호도에 따라서 그맛 정도를 다르게 한다.. 구원에 대한 반응도 그런 것이다. 누구는 똑같이 예수님께서 이뤄놓으신 구원선물인데 반응이 별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그 은혜가 통곡과 눈물나게 기쁨과 환희를 일으킨다. 받아 들이는 맛이 다르다. 똑같은 구원선물 맛이지만 기왕이면,죄사함의 은총, 의롭다함 받은 은총, 구원받아 하늘영광 소유한, 그 은혜의 맛을 명백하게 감사 감격 기쁨 환희 소망 중에 맛보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있다. 후지가 바람직한 모습니다.
2.구입...구원받음
①시장에는 무한대 강자게장이 팔린다. 다만 돈주면 그것이 내 것이 된다. 예수님께서 이뤄놓으신 구원의 은혜는 무한대하다. 세계 영적시장 어느 곳에나 그 은혜가 증거된다. 그러나 그 은혜를 내 것을 만들기에는 내 믿음고백이 요구된다. 나를 위한 구원사건으로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내 것이 된다.(엡2:8)
②쉬운 것 같지만,불신자에게는 그 믿음을 얻는다는게 기적같이 어렵다. 왜 그 좋은 구원을 안믿는가? 안믿어지기 때문이다. 죄성을 가진 우리 두뇌에서 판단되는 이성적 작용으로는 그 믿음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계시(啓示)가 필요하다는 이치다. 계시란? 감추어진 비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예)커텐 안에 보물이 있는데,가리워져 봇보았다면 커텐을 걷어내서 보게한다는게 계시로서 낱말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무지목매한 우리 인간들에게 믿어지는 신앙고백이 가능하기에는, 그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계시적 은혜가 필요하다. 믿음은 말씀 통해서 성령의 작용으로 이뤄져 나타나는 계시적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어진다는 것은 어찌보면 믿어지도록,그 감추워졌던 비밀스런 믿음의 보배가 내게 말씀과 성령께서 일하셔서 그 가리워진 불신 커튼이 거둬지고 보이도록 계시됐다는 것이다. 그결과 말씀이 깨달아지고 복음이 이해가 되고 그래서 기쁨으로 영접하는 믿음작용이 가능해진다는 이치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선물로 표현된다. 믿어진다는게 그 믿음 그릇 안에 담겨진 진리의 비밀들 ①하나님이 나를 선택한 증거 ②죄사함 받고 ③의롭다 여김 ④하나님 자녀 권세자 ⑤영생천국 소망자 ...이런 놀라운 하늘의 보화의 진리를 소유한다는게 얼마나 신비스러운 복인가 말이다. 바리기는 우리 성도들이 말씀과 성령의 역사 안에서 이 믿음의 계시가 보다 뚜렷해져 확신이 넘치는 믿음생활 누리기를 축원한다.
3.잊음...구원상실?
①가장게장 분명히 돈주고 사왔음을 난 안다. 그리고 아내가 그것을 하나 집안에 어딘가 놓아둔 것도 확신한다. 그런데 있는 장소를 명확하게 모르기에 그 장맛을 재 때에 못먹게 됐다. 만약에 계속해서 못 찾았다고 가장하면 간장게장은 있으나 마나 한게 되고 만다. 없는거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②구원은 예수믿으면 구입된다. 내 안에 예수가 계신 것이다. 성령과 말씀으로 그분이 나와 함께 임재해 계신다. 그런데 살다보면 그 믿음을 까먹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 아내가 명확하게 그 위치를 아는 자가 가르쳐 주듯이,그래서 잊어버린 게장을 찾게 만들어 먹게해 주듯이, 구원받은 은혜를 까먹고 헤매는 불신상태나 다름없이 방황하는 자들,미확신 자들에게는 복음을 명확하게 알고 확신하는 믿는 자가 그 복음을 다시금 재발견하도록 가르치고 깨우쳐 도와줘야 한다.
③성도들은 나처럼 간장게장을 놓는 자리를 잊어 버리듯이,복음도 잘 까먹는 영적 건망증들이 있다. 예)특히나 나이드신 성도님들 .. 가르쳐줘도 “잘 몰라” 그렇게 대답하는게 뭐 겸손같이 여기나보다. 그런 분들에게 잃어버린?(잊어버린)구원을 되찾게 해주기가 때로는 애가 탄다. 세상에서 바삐 살다보면,또는 세상맛에 빠져들다보면 믿음의 맛을 상실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니 갈라디아교회처럼 이단사상(반율법주의)한테 오염돼서 복음의 순수한 기쁨 맛을 잃기도 한다. 그래도 그가 구원받았다는 믿음은 아직 남아 있어서 교회에 찾아오는 것이다. 말씀 강단 앞에 찾어나오는 그들에게 목회자는 명확하게 말씀으로 성령은혜로 임재하심속에서 구원의 복음을 재확인시켜주며 구원기쁨을 신명나게 깨닫고,그깊은 맛을 먹고 누리게 만들어주는게 목회자의 설교기능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양들은 구원의 은혜의 맛을 기쁘고 감격스럽게 누리며 살도록, 복음말씀의 꼴을 배부르게 먹여주면 영적인 만족감,포만감을 얻는 양들은 목회자에게 감사하며 존경하며 순종하고 순복한다. 양들에게 꼴을 잘 먹여주는 참 목자임을 알아보는 것이다....
올 한해 새 해에는 강단에서 말씀과 구원의 큰 은혜가 생수같이 쏟아져 흘려내려 그물을 먹고 마시는 양떼들이 새 힘얻어 이 험난하고 문제많은 세파속에서 꺾이지않고 하늘높게 영쩍 비상하는 믿음생활 할수 있도록, 그래서 한국교회가,우리동기님들,독자님들 교회가 이 코로나 이후와 지금 정치적 혼돈 속에서도 새로운 영적각성과 함께 도약할 수 있도록 그저 기도할 때마다 두손 모아보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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