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와 씨름하다/토마스 G. 롱/장혜영/새물결플러스/모중현 명예편집위원
고통의 문제에 대한 따뜻하고도 선명한 대답
'고난'의 문제는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대답이 필요함과 동시에 더욱 실제적인 응답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앞에 닥친 고통의 문제로 힘겨워하고 있다. 그들은 육체적 · 정서적 · 사회적으로 매우 구체적인 아픔을 겪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이러한 고통이 자신에게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선명한 대답을 듣지 못하여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상황이 자신의 죄로 인해서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큰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고난 가운데 우리는 여러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가?', '하나님은 선하신가?',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흔히 '신정론(theodicy)'이라 불리는 이 주제로 인해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 목회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들은 고통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변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저자인 토마스 롱(Thomas G. Long, 1946~)은 Witness of Preaching으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설교학의 대가다. 그는 지금까지 논의된 고난의 문제가 목회 현장에서 적실하게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리하여 그는 신학적으로도 명료하면서도 고통의 한가운데서 울부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응답을 모색한다.
그동안 많은 신학자들은 네 가지 주요한 신학적 질문 중 최소한 하나를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식으로 신정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네 가지의 주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2)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3) 하나님은 사랑이 많고 선하시다. (4) 무고한 고통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해롤드 쿠쉬너(Harold S. Kushner)는 이 문제를 하나님의 전능성을 양보함으로 극복하려 했다. 미국의 과정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정의에 수정을 가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 악의 기원을 피조물의 자유의지와 반역에서 찾았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의지론 또한 합리적인 여러 반박들 앞에 타당성이 크지 않음을 저자는 논증한다.
저자는 이러한 각각의 질문들에 대해 합리적이면서도 실제적인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저자는 그동안의 접근방식을 모두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서 배우고 계승해야 할 것들을 세심하게 분별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 사랑하심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특히 '무고한 고통의 경험'에 대한 문제는 조금 더 세심한 용어 사용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무고하다'라는 용어보다는 '비극적'이라는 용어 사용이 훨씬 더 인간 삶의 실재와 일치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용어의 전환만으로도 꼬였던 실타래가 어느 정도 풀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저자는 욥기를 새롭게 바라본다. 이를 통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임을 역설한다. 신정론적 질문을 철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면 우리는 질문에 대한 타당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우리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갖게 되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그동안의 철학자나 신학자들이 갖지 못한 목회적 관점이며,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차근차근 해석함으로 고난의 문제에 대해 신학적이고도 실제적인 대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수님의 이 비유를 통해 저자는 세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에 대한 원인인지,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바로 잡을 수 있는지, 언제까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지에 대한 질문이다. 토마스 롱은 세 가지의 질문들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고 고찰함으로 매우 실제적이고 적실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 선함,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악의 문제에 대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과 환경이 변하고 한 사건에 얽혀 있는 많은 맥락들을 온전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접근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희망과 통찰을 준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방법은 모든 신학자와 목회자가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