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정신줄
평신도였을 때 성경공부를 가르치거나, 목회자였을 때 성도들이 질문을 꽤 많이 하는 것 중에 하나를 들자면 자살한 사람이 지옥가느냐였다―좀 순화시켜서 자살하면 천국에 가지 못하느냐라고 묻는 이도 있었다. 솔직히 중고등학교 때 나도 그런 고민을 했다. 자살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냥 궁금했다. 그런데 대학시절 모 선교단체에서 구원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배우고 나서부터는 내 대답은 아니다였다. 자살한다고 해서 꼭 천국에 못가거나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라고 답하곤 했다.
물론 진정 믿는 이라면 과연 자살까지 가겠냐란 질문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사실 그렇다. 거듭난 이라면 자살할 가능성은 다른 이보다는 적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을 전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어떤 목사님들이나 성도님들은 나같이 답하면 안된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살을 천국 문제로 결부 짓기에는 우리들의 삶은 너무 복잡하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음을 꿈꾸며 한탄한 것이나 요나가 죽음을 불사하면서 토로하며 하나님께 대든 것도 결국 자살 직전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무리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진정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이라면 자살까지 갈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삶은 우리에게 그리 녹녹치 않다.
중고등학교 때에 다니던 교회가 남산 기슭에 있었는데 집으로 가기 위해 남산자락을 끼고 갈 때가 있었다. 남산 도로를 가다보면 최소 10미터 이상의 가파른 절벽을 끼고 인도를 걸어가곤 했다. 그럴 때 허리에도 오지 않는 담벼락을 내려다보면서, 여기서 한걸음 옆은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었다. 결코 죽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삶과 죽음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자살하는 사람은 그 종이 한장의 차이를 견디지 못해 한 걸음의 감정을 이길 수 없어 죽음에 자신을 내던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 같다. 그런 한걸음의 고민과 좌절, 낙심이 믿는 이에게도 순간적으로 밀려 올 수 있다.
오래전 교회가 세 들어 있는 옥상꼭대기에서 현수막을 거는데 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에 밀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난다. 힘껏 버틸 수 있어서 산 것이지, 조금만 바람이 더 셌다면 아무리 내가 버티려 해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순간의 돌개바람이라도 불었다면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만약 그렇게 죽었다면 순교였을까? ㅎㅎ.
감정과 환경도 그럴 수 있다. 어떤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마음과 감정이 일순 무너져서 견디기 힘들 때가 있을지 모른다. 오랜 고난과 힘듦으로 욥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차라리 지금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지만 그 말씀을 붙들고 세상을 싸워가야 할 숙제가 우리에게 있다. 앞서 빌딩 옥상에서 순간적으로 줄이라도 놓쳤다면 나는 뒤로 넘어져서 건물 아래로 추락했을 것이다. 굳이 센 바람이 아니었어도 말이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바라며 정신줄(?)을 붙들어야 할 노력과 분별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우연히 읽게 된 이 작은 책은 정신줄을 놓지 않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마치 얼어 죽어가는 이에게 자꾸 옆에 있는 이가 뺨을 때리며 깨우듯 말이다. 저자 자신이 자살의 극단적인 내몰림까지 갔던 경험으로 자살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8가지 측면을 통해 정신줄을 놓지 않도록 돕고 있다. 이 책을 작지만 극한 낙심에 처한 이에게 권하고 싶다.
추신: 앞서 자살하는 이는 천국에 가지 못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와 저자는 다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만일 내가 서평을 쓰면 그 질문과 답으로 시작하겠다고 맘먹었는데 몇 페이지를 읽고는 좀 김이 빠지긴 했다. 하지만 결국 그 차이는 크지 않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