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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교리는 살아있는 삶이어야 한다

크리스찬북뉴스 | 2017.10.11 00:54
교리는 살아있는 삶이어야 한다 송영의 삼위일체론/이동영/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거두절미하고 삶과 상관없는 교리는 버려야 한다. 삶에서 교리를 배제하려는 신학자는 신학자가 아니다. 교리는 삶이고, 삶은 곧 교리다. 그러니 교리와 삶은 불가분의 관계며,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의 두 가지 양태다. 삶과 상관없는 신학을 듣고, 신학책을 읽고 사람들은 독백처럼 주절거린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나와 신학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성경은 믿음의 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이고, 공동체의 일원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알려 주기 위한 목적에서 기록되었다. 그런데 신학이 신자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러니 신학이야말로 삶을 위해 필요하고, 신학은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신학이 필요하단 말인가? 도로시 세이어즈는 설교자가 교리를 너무 강조해서 교회가 텅 비게 되었다는 소리를 쉴 새 없이 듣곤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정반대다고 말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교리를 너무나 재미없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재잘거리는 것에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리는 참으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고 부를 만한 것이라고 말한 세이어즈의 말은 참으로 타당하다. 이제 교리가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시대와 역사 속에서 흘러갔는지를 살핀 한 권의 책이 나왔다. 교리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 할만한 삼위일체교리를 가지고 말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왜 흥미진진한 것일까? 저자는 1장에서 명료하게 규정한다. 먼저 신학은 곧 신론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진행되며,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종결되는 것’(17-18)이기 때문이다. 신론은 다시 삼위일체론으로 귀결된다. 하나님은 태초에 고독한 일위의 신이 아니라 사귐과 교제 가운데 하나 됨을 이루고 있는 삼위의 신’(20)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론은 다시 송영으로 정의된다. 신학, 곧 신론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탄하고 찬양하며 경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21)이다. 경배되지 않는 신학은 신학이 아니다. 신학은 하늘 위에 무정(無情)하게 독존(獨存)하는 하나님을 연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창조된 시공 속에 개입하시고 참여하시며, 적극적으로 피조물들과 소통하신다. 하나님은 찬양받기를 원하시며, 피조물을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 세이어즈가 말한 대로 삼위일체 교리는 흥미진진한 드라마인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더한다면 모두 20장으로 구분했다. 필자의 견해로 에필로그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삼위일체의 신비와 그 사랑의 실천에 관하여란 제목을 가진 이곳은 이 책의 핵심이자 저자가 개진한 모든 본문의 결론에 해당된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 책은 1장부터 18장까지 연이어있다. 차라리 3부 정도로 나누어 장을 할당했다면 좀 더 명료한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비슷한 내용들이 여러 곳에서 뒤섞여 있어서 구분하기는 쉽지 않지만 필자의 소견상 3부로 나누면 이렇다. 먼저 1부는 1장부터 6장까지로 서론 부분에 해당되며 삼위일체론의 개론에 해당된다. 2부는 7장부터 17장까지이며, 교회사 속에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두 관점을 다룬다. 마지막 18장에서는 삶에서 어떻게 삼위일체 교리가 적용되어야 하는가를 살핀다. 결론은 다양성, 일치성, 상호관계성, 사귐, 봉사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적용점을 제시하고 마무리한다. 다양성은 삼위에서, 일치성은 본질에서, 상호관계성은 삼위의 관계와 인간과의 사이에서, 사귐은 상호관계성의 사이에서, 봉사는 삼위의 만물에 대한 것에서 찾는다. 좀 더 간략하게 정리하면,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부터 계시된 교리’(277)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개입은 삼위일체로 나타나며, 피조물은 삼위일체적 구원 방식을 따라 삶을 구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저자는 초대교회로부터 중세와 종교개혁, 근현대에 이르는 삼위일체 교리의 변화를 추적한다. 1장에서 실천적 삼위일체론의 의미를 규명한 다음 2장에서 하나님의 신지식은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이 누구시며 또 어떠한 분이 되시고자 하는가에 대한 지식’(34)이라고 정의한다. 즉 신지식은 관계성 속에서 획득되어야 한다. 3장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신론 차이를 명징하게 설명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초월적이며 거룩하다. 신약에서는 내재성이 강조되고 사랑의 하나님으로 드러나신다. 구약과 신약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한 다른 하나님도 아니고, 단절된 것도 아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다른 존재 방식일 뿐이다. 4장부터 이어지는 본격적인 말씀과 경험, 내재와 경륜의 삼위일체론은 교회사 속에서 왜곡되고 오해되었던 두 관점을 분석한다.

 

하나의 관점은 내재적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한 유일신적 신론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경륜적 삼위일체론이다. 저자는 유일신적 신론을 전제군주적 일신론’(70)으로 명명한다. 전제군주적 일신론은 그리스 철학이 영향을 받은 서방교회가 추구한 신론이다. 이러한 신론은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이어지고, 다시 20세기에 칼 바르트 신학에 스며든다. 7장에서 가톨릭 교부 학자인 드 레뇽의 주장을 가지고 들어와 동서양 교회의 삼위일체론적 차이를 비교한다.

 

서방 신학은 먼저 (한 분 하나님의) 본질을 그 자체로 다룬다. 그리고 난 후 구체성들(세 위격들)을 추구한다. 반면 동방 신학은 먼저 구체성들(세 위격들)을 다루고 나서 (한 분 하나님의) 본질을 찾기 위해 이 구체성들을 파고든다. 서방세계는 위격을 본질의 한 양태로 간주하지만 동방세계는 본질을 위격의 한 내용으로 간주한다”(레뇽, 81).

 

면밀하게 이어지는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서방 신학은 본질에서 시작하여 삼위로 나가고, 동방 신학은 삼위에서 출발하여 본질로 나아가는 형태이다. 이러한 사색 방식으로 인해 서방은 삼위를 양태론적으로 오해할 소지가 많아지고, 서방은 삼신론에 빠질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교부들의 이러한 오류를 가장 균형 있게 정리한 교부가 바로 갑바도기아 교부 중 한 명인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이다. 어거스틴은 나지안조스 그레고리의 삼위일체론을 받아 가장 명확하게 삼위일체를 규명하기에 이른다. 바른 삼위일체는 본질의 하나 됨을 위하여 삼위를 희생시키지 않고, 삼위의 구별을 위하여 본질의 하나 됨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178)이다. 비록 이러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교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다양성과 일치성, 내재와 초월 가운데서 약동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영광의 신비를 침묵 가운데서 묵상하며 찬양’(180)하는 것이다.

 

교리는 독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필요는 하나님의 필요이며, 또한 인간의 필요이다. 타락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협력과 합의, 교제와 사귐의 방식으로 구속의 드라마를 역사 속에서 성취해 가신다. 그러므로 교리는 하나님의 흥미진진한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찬양과 경배의 이유인 것이다. 저자는 교회 공동체의 예배야말로 삼위일체 교리를 포함한 모든 교리의 근원이요 모태라’(227)고 단언한다. 삼위일체는 경배의 대상임과 동시에 성화의 모델이다. 성화는 개인적 거룩에 머물지 않고 삼위일체적 모범을 따라야 한다. 앞서 언급한 저자의 결론, 다양성, 일치성, 상호관계성, 사귐, 봉사의 다섯 가지 삶의 형태는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성화는 개인에서 관계로 확장되어야 마땅하고,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 맞다. 진심으로 교리는 살아있는 삶이어야 한다.

 

결론을 내려보자. 삼위일체는 실천적이어야 한다. 교리는 삶과 분리될 수 없으며, 충분히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삼위일체는 모호함과 해독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지만 역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끈다. 저자는 이런 부분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이론적인 부분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성경신학이 약하다는 것이다. 한 장을 할애하여 성경 속에 나타난 삼위일체를 다루었으면 좋겠다. 또 하나의 약점은 교리사의 논쟁을 길게 다룬 반면 사회적 참여와 삶으로서 삼위일체를 다룬 부분이 한 장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부분을 줄이고 사회 참여와 성경 신학적 사색을 더 넣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내용에 있어서가 아니라 책이 전체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강하고, 그것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또한 칼 바르트와 같이 한 인물의 장단점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다 다른 부분에서는 매우 비판적으로 몰아세운다. 차라리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에 관한 개론을 정리한 다음 자신의 논지와 맞는 것과 맞지 않는 부분을 적절하게 수긍하던지 비판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신학자들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반이 넘어가면서 불필요한 반복이 이어져 여러 곳에 기고한 논문을 수정 없이 덧붙여 놓은 것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다. 책의 주제와 논지는 명확하고 참신하다. 다만 중첩되는 부분과 실천적인 부분이 좀 더 추가되어 완성도를 높였으면 하는 바람 적지 않다. 다음에 개정판이 되어 나온다면 꼭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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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교회   목사라면, 교회에 대한 책은 누구나 써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교의학자만 써야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를 섬기고 영혼을 맡은 자라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하여 밤새도록 말할 수 있고 소책자를 완성할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펼쳐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며 그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비밀을 알아 자신의 복음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신학교 강단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혁주의와 정통신학을 가르쳐오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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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 사람은 정련된다어느 교회의 부교역자가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책을 출간하자 그 책을 읽고는 그 책에 담긴 이야기들과 글에서 이야기하는 헌신에 대해 별로 진솔성이 느껴지지 않아 동의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럴 수 있을 듯싶다. 책을 쓴 분이나 부교역자나 두 분 다 나도 잘 아는 분이라 그 부교역자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감이 왔다. 그렇지만 그 책을 쓴 분의 입장에서는 그 책에 담긴 이야기들과 글이 이해가 되었고 그분의 입장에서는 그 글은 진솔성이 있고 참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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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나는 목회와 상담, 그리고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여기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하는 주된 일이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본서를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나의 위로가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마음이 담기지 않은 위로를 하였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그동안 나는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공부와 노력들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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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나온 신학, 사람들과 대화하다 스페인의 한 교회에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로 불리는 100년이 넘은 예수 프레스코 벽화가 있었다. 스페인 화가인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Elías García Martínez)가 그린 것으로 가시관을 쓰고 한쪽으로 얼굴을 약간 기울인 표정의 예수다. 고난받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이 그름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갖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 그림이 훼손되자 벽화를 복원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했고, 아마추어 복원가인 80이 넘은 세실리아 히메네스 (Cecilia Gim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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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정말 제네바의 학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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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제네바에서 이방인 프랑스 사람 목사이다‘칼뱅’, ‘칼빈’은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국에 “칼빈대학교”가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16세기 제네바에서부터 유럽에서 21세기 한국까지 칼뱅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은 연구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2009년 칼뱅 탄생 50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했지만, 혐오에 대한 영향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연구 논문이 발표되어도 그렇다. 정요한이 소개한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주장과 같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반박은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
현대에 증가하는 폭력과 난잡을 파괴할 수 있는 르네 지라르의 지성 현대에 증가하는 폭력과 난잡을 파괴할 수 있는 르네 지라르의 지성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 르네 지라르와 현대사상
정일권/새물결플러스/고경태 편집위원


 현대에 증가하는 폭력과 난잡을 파괴할 수 있는 르네 지라르의 지성 르네 지라르(Rene Girard, 1923-2015)에 탐닉한 기독교 학자가 정일권 박사이다. 정 박사는 지라르를 두 번이나 만나서 직접 학문 교분을 갖기도 했다. 지라르는 철학계에서 주로 연구하며 다양한 번역물이 출판되었다. 정 박사는 지라르 사상으로 현대 신학, 특히 니체의 신학을 전복시키는 일을 진행한다. <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는 니체 사상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지라르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정일권은 <십자...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누구신가?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
김용규/IVP/모중현 명예편집위원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은 이 책과는 상관없이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어떠한 의미이며,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학술적인 책이기도 하지만, 실용서이기도 하다. 신학서적이면서도 신앙서적이다.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는 기독교출판사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
설교 전달을 소홀히 여기는 설교자들에게 설교 전달을 소홀히 여기는 설교자들에게
단순하게 설교하라
J. C. 라일 /장호준/복있는 사람/서중한 편집위원


설교 전달을 소홀히 여기는 설교자들에게   J. C. 라일(1816-1900)은 성공회 사제로서 45년간 맡겨진 교구에서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하였다. 설교에 관한 50여 페이지의 이 짧은 소책자는 자신의 설교 사역을 돌아보며 젊은 사역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책 제목과 같이 “단순하게 설교하라”이다. 쉬운 설교라서 좋은 설교이고, 어려운 설교라서 꼭 나쁜 설교는 아닐 것이다. 쉽게 이해되는 시(詩)를 좋은 시라고 말하고, 난해한 시(詩)라고 해서 좋지 못한 시라고 말하지 않듯 말이다. 하...
그리스도교 잉태의 유대교 600년 그리스도교 잉태의 유대교 600년
고대 유대교의 터-무늬
박정수/새물결플러스/강도헌 편집위원


그리스도교 잉태의 유대교 600년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와 같은 경전(구약)을 공유하지만 유대교와는 차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차이의 근본적 출발점은 구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교는 유대 제사장이나 랍비적 구약 해석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신약성경은 오히려 유대교의 해석을 포괄하면서도 초월하여 그 의미들을 확장시키고 있다. 즉, 신약성경은 구약에 대한 유대교의 해석을 넘어 새롭고 다양한 해석방식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1세기 유대교  그리스도교는 왜 유대교와 결별할 수밖에 없었을...
칼뱅의 누명을 벗기다 칼뱅의 누명을 벗기다
칼뱅은 정말 제네바의 학살자인가?
정요한/세움북스/정현욱 편집위원


칼뱅의 누명을 벗기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다. 한 가지의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논설서인데도 읽는 동안 손에 땀이 나게 한다. 제목도 도발적이지만 내용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어 나가는 흥미진진함과 진실성이 강하다. 부제인 ‘칼뱅이 제네바의 독재자이자 학살자였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 알려주듯 이 책은 그동안 칼뱅을 ‘살인자’로 몰았던 사건에 대한 반박이다. 자,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일단 이 글은 기존의 서평 방식을 벗어나 책의 스포...
우리는 반드시 확실하게 자유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확실하게 자유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김용주/좋은씨앗/고경태 편집위원


 우리는 반드시 확실하게 자유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 루터 전문가 중 한 분은 김용주 박사이다. 김 박사는 한국 보수적 관점으로 진보적 성향인 독일에서 “Crux sola est nostra theologia(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라는 주제로 2008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루터 연구 저작은 <루터, 혼돈의 숲에서 길을 찾다>(익투스, 2012)와 <칭의, 루터에게 묻다>(좋은씨앗, 2017)이 있다.    김 박사는 독일어에 대해서 깊은 이해가...
기적은 누구에게 필요할까? 기적은 누구에게 필요할까?
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
윤석언, 박수민/포이에마/정현욱 편집위원


기적은 누구에게 필요할까?우리는 기적을 좋아합니다. 아니 기적을 바랍니다. 상황이 위급하고,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적이라는 말은 결코 아름다운 말은 아닙니다. 기적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기적(奇蹟)의 정의를 찾아보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알려 줍니다. 상식이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일과 사건들입니다. 기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일상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기적은 좋아해야할 어떤 것이 아닙니다....
참된 애도를 위한 조언과 통찰 참된 애도를 위한 조언과 통찰
애도 수업
캐시 피터슨/샘솟는기쁨/송광택 편집위원


참된 애도를 위한 조언과 통찰이 책은 암 판정을 받은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가 유사한 상황에 처한 이들과 그 주변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쓴 ‘눈물겨운’ 기록이다. 병상에 있는 분을 돌보는 이들과 환자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친절하고 적절한’ 조언이 이 책에 가득하다. 저자에 의하면, “병원 치료를 받기 전에 무엇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 같은 마음이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몰라서 당혹스럽고 두렵기 때문이다”(27쪽). 처음에는 큰 변화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신입생의 ...
삶의 예배로 세워가는 하나님의 나라 삶의 예배로 세워가는 하나님의 나라
히브리서 산책
최승락/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책을 고를 때 두 가지 기준이 있다. 먼저는 ‘나에게 필요한 책인가’ 묻는다. 그 책이 필요하다면 ‘어느 만큼의 깊이가 있는가?’를 다시 묻는다. 첫 번째 질문인 필요성을 말할 때 다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가’이다. 즉 독특성이다. 동일한 관점으로 써 내려간 두 권의 책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 책은 한 권으로 충분하다. 매일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나로서는 성경을 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
고통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감에 대해 말하다 고통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감에 대해 말하다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팀 켈러/최종훈/두란노/문양호 편집위원


고통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감에 대해 말하다 좋아하는 성경공부 교재 중 Jack Kuhatschek의 Suffering이란 교재가 있다. Lifeguide Bible Studies의 하나인 이 교재는 오래전 후배들과 성경공부교재를 찾다가 원서코너에서 발견해 짧은 영어로 번역해서 공부했었다. Lifeguide Bible Studies는 대부분의 부제가 그 교재의 성격과 주제를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곤 했는데 이 교재의 부제인 ‘Receiving God’s Comfort’도 고난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접근하고 대응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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