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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교리는 살아있는 삶이어야 한다

크리스찬북뉴스 | 2017.10.11 00:54
교리는 살아있는 삶이어야 한다 송영의 삼위일체론/이동영/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거두절미하고 삶과 상관없는 교리는 버려야 한다. 삶에서 교리를 배제하려는 신학자는 신학자가 아니다. 교리는 삶이고, 삶은 곧 교리다. 그러니 교리와 삶은 불가분의 관계며,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의 두 가지 양태다. 삶과 상관없는 신학을 듣고, 신학책을 읽고 사람들은 독백처럼 주절거린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나와 신학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성경은 믿음의 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이고, 공동체의 일원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알려 주기 위한 목적에서 기록되었다. 그런데 신학이 신자와 아무 상관이 없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러니 신학이야말로 삶을 위해 필요하고, 신학은 삶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슨 신학이 필요하단 말인가? 도로시 세이어즈는 설교자가 교리를 너무 강조해서 교회가 텅 비게 되었다는 소리를 쉴 새 없이 듣곤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정반대다고 말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교리를 너무나 재미없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재잘거리는 것에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리는 참으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고 부를 만한 것이라고 말한 세이어즈의 말은 참으로 타당하다. 이제 교리가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시대와 역사 속에서 흘러갔는지를 살핀 한 권의 책이 나왔다. 교리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 할만한 삼위일체교리를 가지고 말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왜 흥미진진한 것일까? 저자는 1장에서 명료하게 규정한다. 먼저 신학은 곧 신론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진행되며,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종결되는 것’(17-18)이기 때문이다. 신론은 다시 삼위일체론으로 귀결된다. 하나님은 태초에 고독한 일위의 신이 아니라 사귐과 교제 가운데 하나 됨을 이루고 있는 삼위의 신’(20)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론은 다시 송영으로 정의된다. 신학, 곧 신론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탄하고 찬양하며 경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21)이다. 경배되지 않는 신학은 신학이 아니다. 신학은 하늘 위에 무정(無情)하게 독존(獨存)하는 하나님을 연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창조된 시공 속에 개입하시고 참여하시며, 적극적으로 피조물들과 소통하신다. 하나님은 찬양받기를 원하시며, 피조물을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 세이어즈가 말한 대로 삼위일체 교리는 흥미진진한 드라마인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더한다면 모두 20장으로 구분했다. 필자의 견해로 에필로그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삼위일체의 신비와 그 사랑의 실천에 관하여란 제목을 가진 이곳은 이 책의 핵심이자 저자가 개진한 모든 본문의 결론에 해당된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 책은 1장부터 18장까지 연이어있다. 차라리 3부 정도로 나누어 장을 할당했다면 좀 더 명료한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비슷한 내용들이 여러 곳에서 뒤섞여 있어서 구분하기는 쉽지 않지만 필자의 소견상 3부로 나누면 이렇다. 먼저 1부는 1장부터 6장까지로 서론 부분에 해당되며 삼위일체론의 개론에 해당된다. 2부는 7장부터 17장까지이며, 교회사 속에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두 관점을 다룬다. 마지막 18장에서는 삶에서 어떻게 삼위일체 교리가 적용되어야 하는가를 살핀다. 결론은 다양성, 일치성, 상호관계성, 사귐, 봉사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적용점을 제시하고 마무리한다. 다양성은 삼위에서, 일치성은 본질에서, 상호관계성은 삼위의 관계와 인간과의 사이에서, 사귐은 상호관계성의 사이에서, 봉사는 삼위의 만물에 대한 것에서 찾는다. 좀 더 간략하게 정리하면,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와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부터 계시된 교리’(277)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개입은 삼위일체로 나타나며, 피조물은 삼위일체적 구원 방식을 따라 삶을 구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저자는 초대교회로부터 중세와 종교개혁, 근현대에 이르는 삼위일체 교리의 변화를 추적한다. 1장에서 실천적 삼위일체론의 의미를 규명한 다음 2장에서 하나님의 신지식은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이 누구시며 또 어떠한 분이 되시고자 하는가에 대한 지식’(34)이라고 정의한다. 즉 신지식은 관계성 속에서 획득되어야 한다. 3장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신론 차이를 명징하게 설명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초월적이며 거룩하다. 신약에서는 내재성이 강조되고 사랑의 하나님으로 드러나신다. 구약과 신약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한 다른 하나님도 아니고, 단절된 것도 아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다른 존재 방식일 뿐이다. 4장부터 이어지는 본격적인 말씀과 경험, 내재와 경륜의 삼위일체론은 교회사 속에서 왜곡되고 오해되었던 두 관점을 분석한다.

 

하나의 관점은 내재적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한 유일신적 신론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경륜적 삼위일체론이다. 저자는 유일신적 신론을 전제군주적 일신론’(70)으로 명명한다. 전제군주적 일신론은 그리스 철학이 영향을 받은 서방교회가 추구한 신론이다. 이러한 신론은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이어지고, 다시 20세기에 칼 바르트 신학에 스며든다. 7장에서 가톨릭 교부 학자인 드 레뇽의 주장을 가지고 들어와 동서양 교회의 삼위일체론적 차이를 비교한다.

 

서방 신학은 먼저 (한 분 하나님의) 본질을 그 자체로 다룬다. 그리고 난 후 구체성들(세 위격들)을 추구한다. 반면 동방 신학은 먼저 구체성들(세 위격들)을 다루고 나서 (한 분 하나님의) 본질을 찾기 위해 이 구체성들을 파고든다. 서방세계는 위격을 본질의 한 양태로 간주하지만 동방세계는 본질을 위격의 한 내용으로 간주한다”(레뇽, 81).

 

면밀하게 이어지는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서방 신학은 본질에서 시작하여 삼위로 나가고, 동방 신학은 삼위에서 출발하여 본질로 나아가는 형태이다. 이러한 사색 방식으로 인해 서방은 삼위를 양태론적으로 오해할 소지가 많아지고, 서방은 삼신론에 빠질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교부들의 이러한 오류를 가장 균형 있게 정리한 교부가 바로 갑바도기아 교부 중 한 명인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이다. 어거스틴은 나지안조스 그레고리의 삼위일체론을 받아 가장 명확하게 삼위일체를 규명하기에 이른다. 바른 삼위일체는 본질의 하나 됨을 위하여 삼위를 희생시키지 않고, 삼위의 구별을 위하여 본질의 하나 됨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178)이다. 비록 이러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교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다양성과 일치성, 내재와 초월 가운데서 약동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영광의 신비를 침묵 가운데서 묵상하며 찬양’(180)하는 것이다.

 

교리는 독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필요는 하나님의 필요이며, 또한 인간의 필요이다. 타락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협력과 합의, 교제와 사귐의 방식으로 구속의 드라마를 역사 속에서 성취해 가신다. 그러므로 교리는 하나님의 흥미진진한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찬양과 경배의 이유인 것이다. 저자는 교회 공동체의 예배야말로 삼위일체 교리를 포함한 모든 교리의 근원이요 모태라’(227)고 단언한다. 삼위일체는 경배의 대상임과 동시에 성화의 모델이다. 성화는 개인적 거룩에 머물지 않고 삼위일체적 모범을 따라야 한다. 앞서 언급한 저자의 결론, 다양성, 일치성, 상호관계성, 사귐, 봉사의 다섯 가지 삶의 형태는 삼위일체 교리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성화는 개인에서 관계로 확장되어야 마땅하고,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 맞다. 진심으로 교리는 살아있는 삶이어야 한다.

 

결론을 내려보자. 삼위일체는 실천적이어야 한다. 교리는 삶과 분리될 수 없으며, 충분히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삼위일체는 모호함과 해독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지만 역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끈다. 저자는 이런 부분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이론적인 부분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성경신학이 약하다는 것이다. 한 장을 할애하여 성경 속에 나타난 삼위일체를 다루었으면 좋겠다. 또 하나의 약점은 교리사의 논쟁을 길게 다룬 반면 사회적 참여와 삶으로서 삼위일체를 다룬 부분이 한 장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부분을 줄이고 사회 참여와 성경 신학적 사색을 더 넣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내용에 있어서가 아니라 책이 전체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 강하고, 그것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또한 칼 바르트와 같이 한 인물의 장단점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다 다른 부분에서는 매우 비판적으로 몰아세운다. 차라리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에 관한 개론을 정리한 다음 자신의 논지와 맞는 것과 맞지 않는 부분을 적절하게 수긍하던지 비판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신학자들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반이 넘어가면서 불필요한 반복이 이어져 여러 곳에 기고한 논문을 수정 없이 덧붙여 놓은 것 같아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다. 책의 주제와 논지는 명확하고 참신하다. 다만 중첩되는 부분과 실천적인 부분이 좀 더 추가되어 완성도를 높였으면 하는 바람 적지 않다. 다음에 개정판이 되어 나온다면 꼭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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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오독(誤讀)했다. ‘고대 근동 신들과의 논쟁’에서 ‘논쟁’을 ‘전쟁’으로 읽었다. 필자의 뇌리 속에 남은 신화의 세계는 ‘논쟁’이 아닌 ‘전쟁’이기 때문이다. 표지 가장 윗부분에 적힌 ‘Against the Gods’도 논쟁보다는 ‘전쟁’의 의미가 강하게 읽힌다. 고대 전쟁은 나라와 민족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과의 전쟁이기 때문에다. 2011년 알렙에서 출간된 김원익의 <신들의 전쟁>을 보더라도, 고대 신화는 대부분 전쟁이야기들이 아니던가. 수년 전에 화제가 된 <신들의 전쟁>이나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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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비평에서 새롭게 읽기로 전환하기성경 논쟁 시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명제는 근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이제 사람들은 성경을 한 권의 책으로, 한 권의 문학 작품으로 대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 관점이 ‘틀렸다’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것으로 한정시키려는 저의(底意)다. 성경 논쟁은 칭만큼 뜨겁고, 교회론 만큼 예민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되기도 전 성경은 고등 비평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성경의 무오성과 더불어 제기된 성경의 영감론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이성의 메스로 성경은 철저하게 해부되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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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세계관의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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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 읽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역사는 읽는 것이고, 타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타자의 삶을 공유함은 곧 그 ‘사람의 삶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직접 사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은 타자의 것이기에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비근(卑近)한 예로 친구를 생각해 봅시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친구는 타자입니다. 목소리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삶을 해석하는 것도 다릅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라 할지라도 다른 점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물며 낯선 타자의...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
유배된 교회
리 비치/김광남/새물결플러스/정현욱 편집위원


일단 제목부터 강하게 끌린다. 2001년에 마이클 호톤의 <세상에 포로 된 교회>(부흥과개혁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회가 된다면 호튼의 책과 비치의 책을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가나안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라는 표지 문구가 ‘유배된 교회’만큼이나 강열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낯설다. 먼저 저자인 리 비치(Lee Beach)도 낯설고, ‘유배된 교회’라는 의미도 아직 낯설다. 서평을 위해 먼저 저자를 찾아보았다. 한글로 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영문으로 검색했다. 책의 원제는...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예수는 반신화다
정일권/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성경에서는 말한다.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더 이상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이 땅에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진실된 인격과 풍성한 삶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기독교에도 그러한 자연스런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기독교는 이제 무능한 진리가 되어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가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가르침이 인류 보편...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정체성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10Publishing/김상일 편집위원


자기 망각의 자유  팀 켈러의 자기 망각의 자유(The Freedom of Self-Forgetfulness)는 아주 얇은 책입니다. 고린도전서 3:21-4:7에서 바울이 일갈하는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을 통해서 주어지는 자유에 대해서 아주 짧지만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설교 원고를 옮겨놓은 것 같은 책이어서 읽기도 쉽고 짧은데다가, 그 내용은 굉장히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담고 있어서 효율로만 보면 짧은 시간에 최대의 독서 효과를 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
왜 신학이 필요한가? 왜 신학이 필요한가?
신학공부: 하나님과 세계
김진혁/예책/강도헌 편집위원


신학이 왜 필요할까?  가끔 목사님들 중에서도 ‘신학’과 ‘목회’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을 만나게 된다. 나 또한 과거에 그러한 생각을 잠시 가지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과거에 신학의 불용(不用)을 주장(무용(無用)이 아니다)하던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바른’ 목회 보다는 ‘빠른’ 목회에 집중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솔직히 나의 부목사 시절은 철저하게 ‘목회성공’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목회의 성공이 곧 하나님의 성공이라는 당위적 믿음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목회에 큰 도움이...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말씀 앞에 서는 용기
한주원/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성화를 위한 거룩한 성경 읽기 오래전, 교회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주례동의 ㅈ교회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하숙집에 이년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 권사님은 언제나 성경을 읽으셨고, 전도에 열심인 분이었습니다. 매주 이틀 정도는 집 주변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전도하셨습니다. 기존의 전도지 전도가 아닌 방문 전도에 가까웠습니다. 어느 날 권사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정 선생도 같이 안 갈래?’ 호기심에 ‘네 그러죠’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전도지도 챙기고, 몇 가지 물건도 큰 가방에 넣고 출발하셨습니...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해로운 신앙: 종교 중독과 영적 학대의 치유
스티븐 아터번, 잭 펠톤/문희경/그리심/강도헌 편집위원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중독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적인 의미인지 조차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한 ‘중독’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단어이기도 하다.   ‘DSM’ 시리즈를 보면, 한국적 상황과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이 어쩌면 ‘중독’이다. 다섯 번의 개정판을 내었지만, 여전히 ‘중...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
데이빗 B. 가너/신호섭/세움북스/고경태 편집위원


비평학이 아닌 계시 문서로 성경관을 확립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복음을 전하라세움북스에서 데이빗 가너가 7명이 발제한 에세이를 편집한 Did God Really Say?(2012년)를 신호섭 교수께서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해서 출판했다.  세움북스는 최근에 설립된 출판사로서 산뜻한 표지 디자인과 접근하기 쉬운 주제 등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고 있다. <성경,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가?>라는 책도 디자인이 산뜻하고, 사이즈도 14×20Cm 규격으로 가볍게 느껴졌다. 그런데 처음...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삶으로 재현하는 하나님의 신비
신비를 엿보다: 다니엘
바바라 륭 라이/송동민/이레서원/정현욱 편집위원


이 책은 탄탄하고 명징하다. 모호한 다니엘서를 백 쪽 남짓의 작은 분량임에도 다니엘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명료하게 풀어낸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부분은 1-6장이며 그 안에는 6개의 "궁정 이야기"(court tale)로 이루어져 있다. 두 번째 부분은 7-12장까지다. 이곳은 일인칭 환상들로 채워져 있다. 전반부가 개관적 서술이라면 후반부는 다니엘에 체험한 개인적 환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에 담긴 신비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과 씨름하는 데 놓여 있다는 것’(112쪽)이...
결말에 대한 예감 결말에 대한 예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최세희/다산책방/옥은숙


영어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이고, 한국어 제목과는 정반대의 뜻이다. ‘끝이나 결말에 대한 예감’이라는 뜻인데, 책 내용상 보면 주인공이 가졌던 예감과 그 종국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 제목에서는 마치 첫 예감이 결과와 다르지 않고 딱 맞았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은 이 제목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예감이고 그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지, 예감에 딱 들어맞는 결과라? 어떤 이야기일까?’  이 책은 사람 기억의 온전치 않음과 그 왜곡에 ...
갈수록 비인간화, 비민주화 되어 가는 기술 발전에 대한 경고 갈수록 비인간화, 비민주화 되어 가는 기술 발전에 대한 경고
대량 살상 수학 무기
캐시 오닐/김정혜/흐름 출판/김상일 편집위원


갈수록 비인간화/비민주화 되어 가는 기술 발전에 대한 경고 제목부터가 신선하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캐시 오닐의 대량 살상 수학 무기는, 수학으로 학.석.박사를 모두 마치고 학계에서 평생을 보냈을 수도 있었던 전형적인 학자 타입인 저자가, 어느 순간 학자의 길을 버리고 비즈니스와 금융 세계에 뛰어들게 되면서 수학이 어떻게 유용하게, 인류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예상치 않게 맞닥뜨리게 된 가공할 만한 현실을 아주 적나라하게 고발하면서도, 그렇다면 과연 대안이란 무엇일까를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고자 쓴...
교회의 회심이 필요하다 교회의 회심이 필요하다
유배된 교회
리 비치/김광남/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교회가 그리스로 가서는 철학이 되고 로마로 가서는 제도가 되고 유럽에 가서는 문화가 되고 미국에 가서는 기업이 되고 한국에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이 글을 보았을 때 현대교회를 정확히 진단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마음과 삶에 주인으로 모시는 작은 공동체로 시작했던 교회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교회가 과연 성경적인 교회이고 예수님이 피를 흘리며 세우셨던 교회일까?   더구나 우리는 얼마 전 명성교회의 세습 앞에 한국교회의 결과물을 보았다. 한국의 근대화와 ...
언어,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주해한 마가복음의 탁월한 주석 언어,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주해한 마가복음의 탁월한 주석
마가복음
박윤만/킹덤북스/정현욱 편집위원


언어,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주해한 마가복음의 탁월한 주석  거두절미하고 이 책은 지금까지 그 어떤 마가복음 주석보다 가장 종합적이고 탁월하다. 학자마다 주석하는 방법도 다르고 쓰는 의미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주석의 목적은 목회자들을 위한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주석을 써야 할 이유는 상당히 빈약해진다. 필자의 견해가 타당성이 있다면 주석을 쓸 때 염두에 두어야 할 대상은 성경을 밝히 알고자 하는 설교자와 성경 독자들이 될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하나는 실용적이어야 한다. 실용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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