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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리스도를 뜨겁게 사랑한 무명의 전도자 영원한 청년, 김준곤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김준곤/순출판사/[권지성]
책 소개의 이유
20세기 후반 한국 대학생 복음화, 민족 복음화, 그리고 세계 선교의 리더인 김준곤 목사님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 김준곤 목사님에 대해서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던 차에 나온 책이다. 나에게 있어서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데에 있다. 이 때, 나는 그 책을 읽는 대상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는 특별히 이 책들이 오늘 21세기의 청년 프런티어 정신을 지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참된 청년 정신의 표상이며, 무명의 전도자의 표상이며, 20세가 한국 청년 대학생들의 지성의 대변자이며, 가장 탁월한 선교 동원가이자, 부흥사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80,90년대의 대학가는 강력한 군사 정권 하에서 엄청난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을 겪어야만 했다. 화염병과 채루탄 속에서 학업보다는 민주화 항쟁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청년 대학 크리스챤들은 운동권 학생들이 민주화라는 는 깃발아래 자신의 목숨을 걸고 뛰어들 때, 그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부흥과 선교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쨰 드렸던 우리들의 선배들이 있었다. 소나무를 뽑아 가면서 자신의 회심과 민족과 세계의 운명을 놓고 기도하는 사자의 야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 죽어 가는 제자의 수술실 앞에서 저 영혼을 살리시고 나의 영혼을 거두어 가 달라는 애절한 기도가 있었다. 제자도라는 말을 몰라도 영혼을 위해서 울고 자기의 삶을 완전히 드리는 것을 기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사람들은 월드컵, K1, 그리고 연예인들에게 열광하고 있으며, DMB폰과 이성교제만이 학생들의 관심사이다.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 열풍과 취업 학원화 되어 가는 대학가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아무런 목마름도 찾아볼 수 없다. 영적 침체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부흥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그 분의 방법으로 주시는 것이지만, 우리 편에서 늘 이 부흥에 목말라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이다. 하지만,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책의 특징
“C.C.C.와 민족 복음화 운동”은 이 시대의 민족의 많은 지도자에게 영감을 던져 주었던 영적 거장의 설교들과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의 전략들이 담겨 있다. 그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복음에 대한 헌신, 그리고 민족 복음화라는 골수에 사무치는 구령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는 30만 명의 그의 제자들 중 100명 이상의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의 증언들이 담겨있으며, 평양 대부흥에 대한 책으로 유명한 역사 신학자인 박용규 교수의 “한국 복음주의 운동과 김준곤 목사”는 한국 사회에 끼친 그의 영향력들을 간략히 서술해 놓았다.
나와 김준곤 목사님
내가 처음 김준곤 목사님을 만난 것은 1996년 부암동에 있는 CCC회관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때였다. 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요한복음을 강해해 주셨다. 부산에서 억양강한 사투리를 쓰고 인상 험악하게 생긴 나로서는 모든 것이 경계의 대상이었고, 나를 그 곳으로 인도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의 권유로 주일 채플에 나가게 되었다. 부산에서 교회를 다녔던 나는 고등학교 때에 신앙의 부흥을 경험하였으나, 대학교에 온 이후, 여러 가지 삶의 염려와 좌절들로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던 시절이었다. 3달 동안의 CCC 주일 채플은 그야말로 졸음의 연속이었다. 할아버지의 설교는 버스를 2번 타고 언덕을 숨가쁘게 올라온 나에게 끝없는 졸음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설교의 막바지 늘 그렇던 다소 힘없이 설교하던 이 할아버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하시다가 예수님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울기 시작하시는 것이었다. 부산에 있을 때, 한 선배로부터 서울에 가면 어느 선교 단체에 모 목사님께서 계신데, 예수님이라는 말만 해도 운다고 해준 애기가 떠올랐다. 그 이후로 김목사님의 말씀은 꿀과 같이 달게 나에게 다가왔다. 5년 동안의 부암동에서의 설교는 내 생애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뇌성과 벼락 같은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을 자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의 설교
칠흑 같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김목사님의 예수의 유일성을 들었던 것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의 “민족사의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는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위탁하고 복음을 이 민족에게 가장 먼저 증거해야 한다는 피를 토하는 설교였다.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증거하고 말하지 않으면, 이제 이 성은 이 나라는 망할 것 같다는 의식이 그의 민족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면 늘 생기곤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설교를 들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전율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계 학생 운동의 역사와 18세기 홀리 클럽과 미국 제 1,2차 대각성 운동과 D.L. 무디의 부흥운동의 맥을 이어 이 부흥의 역사가 대한민국의 CCC라는 단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부으시고 계셨음에 분명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이상적인 설교가는 바로 김준곤 목사님이다. 조지 휘트필드와 조나단 에드워즈와 스펄전의 설교를 직접 듣지 못했지만, 그의 설교보다 낫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가끔 해 보곤 한다.
100문 일답 예수 그리스도
인도의 어느 고등학교, 힌두교를 믿는 이 곳 정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오직 한 가지의 대답만을 하기로 약속하고, 각가지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인생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이 민족의 주인께서는 누구이십니까? 이 나라의 가난과 고통은 누가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진리는 누구이십니까?”이러한 질문들에 유일한 대답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역사와 민족과 세계의 유일한 Solution이다. 대학의 5년간의 기간은 이 백문일답이 완전히 나의 신앙이 되었던 기간들이었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피 묻은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어떤 신학도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시화 운동이나 민족 복음화는 비성서적인 것이라고, 개인의 야망으로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개신교의 역사를 시작한 칼빈은 성시화의 원조이다. 그는 제네바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으로 변화되기를 원했고, 그렇게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하였다. 신앙이 늘 신학보다 먼저이다. 사람들은 죽은 정통 속에서 주님의 참 뜻을 잘 분별할 수 없다. 자신의 이성의 창으로 찌르기만 할 뿐이다. 모든 민족이 다 복음을 믿고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은 성경에 없지만, 만약 한 민족만이라도 송두리째 변화될 수만 있다고 한다면 이 민족이 그렇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미래의 지도자가 될 이 민족의 재원들을 변화시키고 이들이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게 하는 것이 CCC의 사명이다. 더 나아가 이 지도자들이 북한과 세계로 나아가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나아가도록 모든 에너지를 모으고 동력화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오늘의 학원 복음화, 내일의 세계 복음화”는 영원한 CCC의 구호가 되었다. 바로 이것은 모든 교회에 적용이 가능하다. 기도, 부흥, 선교이라는 황금공식은 바로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대학교를 변화시켜야 내일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끝으로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논쟁하기 좋아하는 신학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이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10년간 그의 설교를 듣고 자란 나로서, 그의 신학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황송한 일이겠지만, 그는 철저한 칼빈주의자였으며, 고지식한 학자같이 죽은 정통에 매여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열정적인 메소디스트적인 칼빈주의자였으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영혼들을 눈물 나게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 보다 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가장 큰 죄인으로 살았던 예수님을 사랑하는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서라도 읽히고 싶을 열망을 느낄 정도의 책들이다. 집을 팔아서라도 사서 읽으시라.
책 소개의 이유
20세기 후반 한국 대학생 복음화, 민족 복음화, 그리고 세계 선교의 리더인 김준곤 목사님에 대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 김준곤 목사님에 대해서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이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던 차에 나온 책이다. 나에게 있어서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 그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데에 있다. 이 때, 나는 그 책을 읽는 대상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는 특별히 이 책들이 오늘 21세기의 청년 프런티어 정신을 지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참된 청년 정신의 표상이며, 무명의 전도자의 표상이며, 20세가 한국 청년 대학생들의 지성의 대변자이며, 가장 탁월한 선교 동원가이자, 부흥사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80,90년대의 대학가는 강력한 군사 정권 하에서 엄청난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을 겪어야만 했다. 화염병과 채루탄 속에서 학업보다는 민주화 항쟁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청년 대학 크리스챤들은 운동권 학생들이 민주화라는 는 깃발아래 자신의 목숨을 걸고 뛰어들 때, 그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부흥과 선교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쨰 드렸던 우리들의 선배들이 있었다. 소나무를 뽑아 가면서 자신의 회심과 민족과 세계의 운명을 놓고 기도하는 사자의 야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었다. 죽어 가는 제자의 수술실 앞에서 저 영혼을 살리시고 나의 영혼을 거두어 가 달라는 애절한 기도가 있었다. 제자도라는 말을 몰라도 영혼을 위해서 울고 자기의 삶을 완전히 드리는 것을 기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사람들은 월드컵, K1, 그리고 연예인들에게 열광하고 있으며, DMB폰과 이성교제만이 학생들의 관심사이다.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 열풍과 취업 학원화 되어 가는 대학가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아무런 목마름도 찾아볼 수 없다. 영적 침체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부흥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그 분의 방법으로 주시는 것이지만, 우리 편에서 늘 이 부흥에 목말라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인 것이다. 하지만,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책의 특징
“C.C.C.와 민족 복음화 운동”은 이 시대의 민족의 많은 지도자에게 영감을 던져 주었던 영적 거장의 설교들과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의 전략들이 담겨 있다. 그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복음에 대한 헌신, 그리고 민족 복음화라는 골수에 사무치는 구령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나와 김준곤 목사 그리고 C.C.C.”는 30만 명의 그의 제자들 중 100명 이상의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의 증언들이 담겨있으며, 평양 대부흥에 대한 책으로 유명한 역사 신학자인 박용규 교수의 “한국 복음주의 운동과 김준곤 목사”는 한국 사회에 끼친 그의 영향력들을 간략히 서술해 놓았다.
나와 김준곤 목사님
내가 처음 김준곤 목사님을 만난 것은 1996년 부암동에 있는 CCC회관에서 주일 예배를 드릴 때였다. 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요한복음을 강해해 주셨다. 부산에서 억양강한 사투리를 쓰고 인상 험악하게 생긴 나로서는 모든 것이 경계의 대상이었고, 나를 그 곳으로 인도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의 권유로 주일 채플에 나가게 되었다. 부산에서 교회를 다녔던 나는 고등학교 때에 신앙의 부흥을 경험하였으나, 대학교에 온 이후, 여러 가지 삶의 염려와 좌절들로 쉽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던 시절이었다. 3달 동안의 CCC 주일 채플은 그야말로 졸음의 연속이었다. 할아버지의 설교는 버스를 2번 타고 언덕을 숨가쁘게 올라온 나에게 끝없는 졸음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설교의 막바지 늘 그렇던 다소 힘없이 설교하던 이 할아버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하시다가 예수님이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울기 시작하시는 것이었다. 부산에 있을 때, 한 선배로부터 서울에 가면 어느 선교 단체에 모 목사님께서 계신데, 예수님이라는 말만 해도 운다고 해준 애기가 떠올랐다. 그 이후로 김목사님의 말씀은 꿀과 같이 달게 나에게 다가왔다. 5년 동안의 부암동에서의 설교는 내 생애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뇌성과 벼락 같은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을 자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의 설교
칠흑 같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김목사님의 예수의 유일성을 들었던 것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의 “민족사의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는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위탁하고 복음을 이 민족에게 가장 먼저 증거해야 한다는 피를 토하는 설교였다. 바로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증거하고 말하지 않으면, 이제 이 성은 이 나라는 망할 것 같다는 의식이 그의 민족에 대한 설교를 들을 때면 늘 생기곤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설교를 들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전율과도 같은 것이었다. 세계 학생 운동의 역사와 18세기 홀리 클럽과 미국 제 1,2차 대각성 운동과 D.L. 무디의 부흥운동의 맥을 이어 이 부흥의 역사가 대한민국의 CCC라는 단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부으시고 계셨음에 분명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이상적인 설교가는 바로 김준곤 목사님이다. 조지 휘트필드와 조나단 에드워즈와 스펄전의 설교를 직접 듣지 못했지만, 그의 설교보다 낫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가끔 해 보곤 한다.
100문 일답 예수 그리스도
인도의 어느 고등학교, 힌두교를 믿는 이 곳 정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오직 한 가지의 대답만을 하기로 약속하고, 각가지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인생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이 민족의 주인께서는 누구이십니까? 이 나라의 가난과 고통은 누가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진리는 누구이십니까?”이러한 질문들에 유일한 대답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역사와 민족과 세계의 유일한 Solution이다. 대학의 5년간의 기간은 이 백문일답이 완전히 나의 신앙이 되었던 기간들이었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피 묻은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어떤 신학도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성시화 운동이나 민족 복음화는 비성서적인 것이라고, 개인의 야망으로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개신교의 역사를 시작한 칼빈은 성시화의 원조이다. 그는 제네바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으로 변화되기를 원했고, 그렇게 기도하고 복음을 증거하였다. 신앙이 늘 신학보다 먼저이다. 사람들은 죽은 정통 속에서 주님의 참 뜻을 잘 분별할 수 없다. 자신의 이성의 창으로 찌르기만 할 뿐이다. 모든 민족이 다 복음을 믿고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은 성경에 없지만, 만약 한 민족만이라도 송두리째 변화될 수만 있다고 한다면 이 민족이 그렇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다. 미래의 지도자가 될 이 민족의 재원들을 변화시키고 이들이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게 하는 것이 CCC의 사명이다. 더 나아가 이 지도자들이 북한과 세계로 나아가 한 손에는 복음을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나아가도록 모든 에너지를 모으고 동력화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오늘의 학원 복음화, 내일의 세계 복음화”는 영원한 CCC의 구호가 되었다. 바로 이것은 모든 교회에 적용이 가능하다. 기도, 부흥, 선교이라는 황금공식은 바로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대학교를 변화시켜야 내일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끝으로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논쟁하기 좋아하는 신학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이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10년간 그의 설교를 듣고 자란 나로서, 그의 신학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황송한 일이겠지만, 그는 철저한 칼빈주의자였으며, 고지식한 학자같이 죽은 정통에 매여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열정적인 메소디스트적인 칼빈주의자였으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영혼들을 눈물 나게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 보다 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가장 큰 죄인으로 살았던 예수님을 사랑하는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서라도 읽히고 싶을 열망을 느낄 정도의 책들이다. 집을 팔아서라도 사서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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