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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가의 책임
문장론/아르투르 쇼펜하우어/김욱/지훈/[강도헌]
쏟아져 나오는 책을 이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보다 손 쉽게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쓸모없는 책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책과 나쁜 책은 반드시 구분이 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책은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1. 언어를 사랑하는가? : 작가의 의무
작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많이 안다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은 ‘말’과는 다른 커뮤니케이션이다. 우선 글을 알지 못한다면 작가가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글에는 말과는 다른 문법이 존재한다.
본서는 이 부분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단어의 사용과 문법, 합성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독일어의 고유한 가치들이 작가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음에 상당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소위 돈 벌이를 위한 작가들의 언어유희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본래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나 표현 문법들이 유행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작가들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작가들에게 먼저 모국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사랑을 가지라고 호소하고 있다.
2. 독서와 생각 : 사유-사상
쇼펜하우어가 강조하는 두 번째 주제는 독서와 사유의 상관성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견해가 없는 편집된 지식의 소유자들이 자신의 사상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사상들을 짜깁기한 책에 대한 우려이다.
본서의 저자는 새 책을 읽는 것보다 고전을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 이유 중에 중요한 이유는 새로 나온 책들의 상당수가 깊이 있는 사색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실용서들이 베스트 셀러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런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생각과 가치의 근간을 이루는 책들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매우 무게 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바보들이나 좋아할 법한 책들이 더 많이 팔린다는 사실에 주의하며 위대한 고전 작품만 선택해 읽는 습관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그들 작품의 특징에 대해 굳이 논할 필요는 없다. 고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만이 우리를 계발시킬 수 있다. 악서는 정신의 독약이며, 정신을 파멸로 몰아간다. 양서를 읽기 위한 조건은 악서를 읽지 않는데 있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p.202)
다소 지나친 표현일 수 있지만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정신적 공허를 불러오며, 정신적 공허는 사회 가치 기준의 혼란을 가져 올 수 있기에 편파주의 적인 입장이라고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고 본다.
3. 정치사와 정신사(예술)
저자는 이 세계에 두 개의 역사가 공존한다고 주장하며, 정치사와 문학 및 예술의 역사로 나누고 있다. 정치사는 의지가 만들어 내며, 문학 및 예술사는 지성이 만들어 내는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는 인간에게 불안과 공포를 체험하게 하며, 문학사는 인류를 지배하는 진정한 힘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세계 정치의 문제는 철학적인 지성 부족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 신념은 없고 오직 정략과 당략만이 있는 정치현실에서 기득권층의 자기 옹립적인 사회 체제에 대해 대중은 정보와 지식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아나는 모습은 비참하다고 말할 수 있다.
4. 옮긴이의 철학
여기서 본서를 옮긴이는 우리 시대의 많은 글들에 대해 비교 판단을 뛰어넘어 자기 안에 모든 것을 글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내어 놓을 수 있는 철학자를 쇼펜하우어로 꼽는다. “쇼펜하우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문장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사상의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p. 223)
5. 피해야 할 글
본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글쓰는 이가 피해야 하는 글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내용이 없는 글, 즉 자신의 사색과 창작이 없는 글, 둘째는 스스로의 세계에 빠져 타인의 이해를 염두에 두지 않는 글. 다시 말해 판독이 안 되는 문장. 마지막으로 돈을 위해 상혼으로 쓰여진 글이다.
6. 작가의 삼박자
1) 사색
2) 독서
3) 문장
위의 세 가지는 어느 것 하나도 글쓰기에서 빠져서는 안될 요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충고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반드시 책임질 글만 쓰라는 것이다.
저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년 독일의 단찌히에서 태어난 쇼펜하우어는 1811~1813년 베를린대학교를 다녔고, 1813년 여름 동안에 루돌슈타트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완성하여 예나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베를린에 체류하던 시절, 젊은 강사로서 헤겔에 맞서 강좌를 개설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한 쇼펜하우어는 1825년 5월 베를린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의를 시도해보았으나 실패하고 주로 번역을 하면서 소논문 집필에 몰두했다. 결국 그는 대학교수직을 포기하고, 연구(특히 자연과학)와 집필에 몰두한 채 28년 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생애 말년에는 저작 대부분에 마무리 손질을 하며 지냈으며 1860년 9월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생을 마감했다.
칸트의 인식론과 플라톤의 이데아론, 인도철학의 범신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그의 사상은 독창적이었으며, 니체를 거쳐 생의 철학, 실존철학, 인간학 등에 영향을 미쳤다. 지은 책으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시각과 색채에 대해서>,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 <독일 철학에 있어서의 우상 파괴> 등이 있다.
쏟아져 나오는 책을 이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보다 손 쉽게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쓸모없는 책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책과 나쁜 책은 반드시 구분이 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책은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1. 언어를 사랑하는가? : 작가의 의무
작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많이 안다고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은 ‘말’과는 다른 커뮤니케이션이다. 우선 글을 알지 못한다면 작가가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글에는 말과는 다른 문법이 존재한다.
본서는 이 부분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단어의 사용과 문법, 합성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독일어의 고유한 가치들이 작가들에 의해 훼손되고 있음에 상당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소위 돈 벌이를 위한 작가들의 언어유희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본래의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나 표현 문법들이 유행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작가들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작가들에게 먼저 모국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사랑을 가지라고 호소하고 있다.
2. 독서와 생각 : 사유-사상
쇼펜하우어가 강조하는 두 번째 주제는 독서와 사유의 상관성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견해가 없는 편집된 지식의 소유자들이 자신의 사상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사상들을 짜깁기한 책에 대한 우려이다.
본서의 저자는 새 책을 읽는 것보다 고전을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 이유 중에 중요한 이유는 새로 나온 책들의 상당수가 깊이 있는 사색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실용서들이 베스트 셀러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런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생각과 가치의 근간을 이루는 책들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매우 무게 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바보들이나 좋아할 법한 책들이 더 많이 팔린다는 사실에 주의하며 위대한 고전 작품만 선택해 읽는 습관을 반복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그들 작품의 특징에 대해 굳이 논할 필요는 없다. 고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만이 우리를 계발시킬 수 있다. 악서는 정신의 독약이며, 정신을 파멸로 몰아간다. 양서를 읽기 위한 조건은 악서를 읽지 않는데 있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p.202)
다소 지나친 표현일 수 있지만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정신적 공허를 불러오며, 정신적 공허는 사회 가치 기준의 혼란을 가져 올 수 있기에 편파주의 적인 입장이라고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부분이라고 본다.
3. 정치사와 정신사(예술)
저자는 이 세계에 두 개의 역사가 공존한다고 주장하며, 정치사와 문학 및 예술의 역사로 나누고 있다. 정치사는 의지가 만들어 내며, 문학 및 예술사는 지성이 만들어 내는 역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치는 인간에게 불안과 공포를 체험하게 하며, 문학사는 인류를 지배하는 진정한 힘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세계 정치의 문제는 철학적인 지성 부족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 신념은 없고 오직 정략과 당략만이 있는 정치현실에서 기득권층의 자기 옹립적인 사회 체제에 대해 대중은 정보와 지식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아나는 모습은 비참하다고 말할 수 있다.
4. 옮긴이의 철학
여기서 본서를 옮긴이는 우리 시대의 많은 글들에 대해 비교 판단을 뛰어넘어 자기 안에 모든 것을 글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내어 놓을 수 있는 철학자를 쇼펜하우어로 꼽는다. “쇼펜하우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문장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사상의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p. 223)
5. 피해야 할 글
본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글쓰는 이가 피해야 하는 글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내용이 없는 글, 즉 자신의 사색과 창작이 없는 글, 둘째는 스스로의 세계에 빠져 타인의 이해를 염두에 두지 않는 글. 다시 말해 판독이 안 되는 문장. 마지막으로 돈을 위해 상혼으로 쓰여진 글이다.
6. 작가의 삼박자
1) 사색
2) 독서
3) 문장
위의 세 가지는 어느 것 하나도 글쓰기에서 빠져서는 안될 요소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충고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 반드시 책임질 글만 쓰라는 것이다.
저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년 독일의 단찌히에서 태어난 쇼펜하우어는 1811~1813년 베를린대학교를 다녔고, 1813년 여름 동안에 루돌슈타트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완성하여 예나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베를린에 체류하던 시절, 젊은 강사로서 헤겔에 맞서 강좌를 개설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한 쇼펜하우어는 1825년 5월 베를린에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의를 시도해보았으나 실패하고 주로 번역을 하면서 소논문 집필에 몰두했다. 결국 그는 대학교수직을 포기하고, 연구(특히 자연과학)와 집필에 몰두한 채 28년 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생애 말년에는 저작 대부분에 마무리 손질을 하며 지냈으며 1860년 9월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생을 마감했다.
칸트의 인식론과 플라톤의 이데아론, 인도철학의 범신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그의 사상은 독창적이었으며, 니체를 거쳐 생의 철학, 실존철학, 인간학 등에 영향을 미쳤다. 지은 책으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시각과 색채에 대해서>,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 <독일 철학에 있어서의 우상 파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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