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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방법으로 부흥하라/레오나드 레이븐힐/이용복/규장/[강도헌]
이 땅 위에 ‘부흥’이라는 단어가 메아리치고 있다.
이 메아리는 소리에서 갈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메아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가 작아지고 사라져 가지만 우리 심령 안에서 울리는 이 메아리는 점점 더 크게 울려나며,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깨닫게 해주며, 갈증을 느낀 우리 영혼은 또 다른 이들에게 갈증을 전가 시킨다. 이것이 부흥의 징조일까? 우리는 지금 영적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무언가 찾고 있다. 마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찾으며,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시원한 생수’의 근원을 찾지 못했다.
1. 목마른 자에게 소금을 먹여라.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물이 많다는 의미나 물이 더 깨끗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명줄’이다. 그 이유는 사막이라는 곳은 물이 귀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는 말의 의미는 물은 많지만 모두 해로운 물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의 의미는 오늘날 영적 세계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세계의 한쪽에서는 말씀이 희귀하여 목마름으로 부르짖으며, 또 어느 한쪽에서는 더러운 물이 창일함으로 사람들을 영적인 사망으로 쓸어 넣고 있지 않는가? 한쪽은 우상숭배의 노예로서 허덕이며, 한쪽에서는 세속주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시대는 위로해줄 자를 찾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을 정결케 할 자를 찾고 계신다. 우리의 불신앙과 탐욕으로 인해 이 땅에 기근이 왔고, 그 기근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목말라 하고 계신다.
2. 불길한 마음에서 갈망하는 마음으로
이 땅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확실한 내일로 인해 모두 초조함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다. 시편 127편의 말씀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며, 밤늦게 누우나 그들의 마음은 그 모든 일들이 ‘허사’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성공과 승리의 기쁨은 잠시 일뿐 여전히 삶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살아간다.
사실 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며, 쉼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시대를 향해 본서의 저자 레이븐 힐은 ‘세상의 팔을 베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지런히 살아도 영적으로는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서는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세상이라는 유혹의 침상에서 일어나 하나님 경고의 나팔소리를 들어라고 외친다.
왠 경고인가? 말세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날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심판의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서의 경고 대상은 예수를 모르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를 알고 있지만 세속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안심해도 되는가? 아니다. 본서의 저자가 우려하는 것처럼 본서의 내용을 통해 살펴 볼 때 우리 모두가 그 경고의 대상임을 발견하게 된다. 영성을 추구하고 영적인 체험을 갈망하는 세대를 살고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진정한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하며, 특히 성령의 역사에 대해 곡해가 심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떠나있다. 육적인 목마름을 기도함으로 영적인 갈망으로 오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비전인냥 호도하고 있다. 아니라고 거부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말씀으로 근거를 제시해 보라. 마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율법과 교리는 달달 외우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지하여 세속의 가치관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지 않는가? 정말 하나님, 당신을 갈망하는가? 아니면 나의 목적 성취를 위해 하나님을 찾아가는가? 하나님의 갈망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성경이 해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치관으로 우리의 삶과 세상이 해석되어지며, 성경의 가치관으로 우리 자신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3. 사교장이 아니라 전쟁터이다.
교회의 교회됨은 어디에 있는가? 신령한 것을 육신의 것으로 대체 해버린 교회들에 대하여 우리는 영적 생명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사탄은 더 이상 교회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영적 능력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사탄은 더 이상 교회를 핍박하지도 않는다.
본서의 저자는 교회안에 들어온 오락의 요소들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험주의 신학(사실 이런 말은 없다)의 신봉자들은 예배의 요소에서 하나님과 느낌을 대체하고 있다. 감동과 느낌이 있으면 하나님은 안계셔도 된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를 즐기며, 예배인도자들은 예배를 경험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말씀과 기도의 준비 보다는 여러 가지 기획으로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골치가 아프다.
4. 가짜 부흥은 가라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자들과 엘리야의 갈멜산 전투 장면이 나온다.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지 않자 자기들의 몸을 위해하면서까지 소란을 피운다. 오늘 우리들의 예배가 그렇지는 않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있지만 불도 비도 없는 공허함으로 우리의 영과 육은 메말라 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면 엘리야는 어떠한가? 엘리야의 짧은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다. 어떻게 이토록 쉽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가? 그 답은 하나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조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18장 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을 뿐이다. 엘리야 자신의 기도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고, 말씀하신대로 기도했기 때문이다.
예배 인도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부분이다. 우리는 점쟁이나 무당들이나 우상숭배자들처럼 하나님을 불러내는 존재가 아니다. 악기와 테크닉을 의존해 부흥이나 은혜를 값싼 느낌으로 조작하지 말라.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그 말씀에 순종하라. 순종함으로 기도하라. 그리고 절제하라. 하나님의 부흥을 사모하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라. 부흥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능력이다.
5. 마무리하며
레이븐힐의 영적 스승이 되는 A. W. 토저 목사님은 레이븐힐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셨다. “레이븐힐의 메시지를 들으면 그에 대한 맹렬한 적대자가 되든지 열렬한 지지자가 되든지 하지, 중립적인 태도는 취할 수 없다.”
부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부흥이라는 단어를 값싼 유행어로 만들지 말라. 부흥은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종교 유희가 아니다. 부흥은 본서의 원제처럼 'REVIVAL GOD'S WAY' 부흥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저자 레오나드 레이븐힐 (Leonard Ravenhill)
190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사역을 전개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지닌 최강의 부흥 메신저"라는 평가는 받았다. 1994년 세상을 떠났다.
이 땅 위에 ‘부흥’이라는 단어가 메아리치고 있다.
이 메아리는 소리에서 갈망으로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메아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가 작아지고 사라져 가지만 우리 심령 안에서 울리는 이 메아리는 점점 더 크게 울려나며, 우리의 영적 목마름을 깨닫게 해주며, 갈증을 느낀 우리 영혼은 또 다른 이들에게 갈증을 전가 시킨다. 이것이 부흥의 징조일까? 우리는 지금 영적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무언가 찾고 있다. 마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찾으며,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시원한 생수’의 근원을 찾지 못했다.
1. 목마른 자에게 소금을 먹여라.
사막에서 오아시스는 물이 많다는 의미나 물이 더 깨끗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명줄’이다. 그 이유는 사막이라는 곳은 물이 귀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홍수가 나면 마실 물이 없다.’는 말의 의미는 물은 많지만 모두 해로운 물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의 의미는 오늘날 영적 세계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세계의 한쪽에서는 말씀이 희귀하여 목마름으로 부르짖으며, 또 어느 한쪽에서는 더러운 물이 창일함으로 사람들을 영적인 사망으로 쓸어 넣고 있지 않는가? 한쪽은 우상숭배의 노예로서 허덕이며, 한쪽에서는 세속주의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 시대는 위로해줄 자를 찾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을 정결케 할 자를 찾고 계신다. 우리의 불신앙과 탐욕으로 인해 이 땅에 기근이 왔고, 그 기근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목말라 하고 계신다.
2. 불길한 마음에서 갈망하는 마음으로
이 땅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확실한 내일로 인해 모두 초조함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다. 시편 127편의 말씀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며, 밤늦게 누우나 그들의 마음은 그 모든 일들이 ‘허사’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성공과 승리의 기쁨은 잠시 일뿐 여전히 삶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살아간다.
사실 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며, 쉼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시대를 향해 본서의 저자 레이븐 힐은 ‘세상의 팔을 베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지런히 살아도 영적으로는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서는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세상이라는 유혹의 침상에서 일어나 하나님 경고의 나팔소리를 들어라고 외친다.
왠 경고인가? 말세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날’이 점점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날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는 심판의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본서의 경고 대상은 예수를 모르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를 알고 있지만 세속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안심해도 되는가? 아니다. 본서의 저자가 우려하는 것처럼 본서의 내용을 통해 살펴 볼 때 우리 모두가 그 경고의 대상임을 발견하게 된다. 영성을 추구하고 영적인 체험을 갈망하는 세대를 살고 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진정한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하며, 특히 성령의 역사에 대해 곡해가 심하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떠나있다. 육적인 목마름을 기도함으로 영적인 갈망으로 오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비전인냥 호도하고 있다. 아니라고 거부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말씀으로 근거를 제시해 보라. 마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율법과 교리는 달달 외우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지하여 세속의 가치관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지 않는가? 정말 하나님, 당신을 갈망하는가? 아니면 나의 목적 성취를 위해 하나님을 찾아가는가? 하나님의 갈망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성경이 해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가치관으로 우리의 삶과 세상이 해석되어지며, 성경의 가치관으로 우리 자신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3. 사교장이 아니라 전쟁터이다.
교회의 교회됨은 어디에 있는가? 신령한 것을 육신의 것으로 대체 해버린 교회들에 대하여 우리는 영적 생명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사탄은 더 이상 교회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영적 능력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사탄은 더 이상 교회를 핍박하지도 않는다.
본서의 저자는 교회안에 들어온 오락의 요소들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험주의 신학(사실 이런 말은 없다)의 신봉자들은 예배의 요소에서 하나님과 느낌을 대체하고 있다. 감동과 느낌이 있으면 하나님은 안계셔도 된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를 즐기며, 예배인도자들은 예배를 경험하기 위해 온 사람들에게 말씀과 기도의 준비 보다는 여러 가지 기획으로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골치가 아프다.
4. 가짜 부흥은 가라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자들과 엘리야의 갈멜산 전투 장면이 나온다.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지 않자 자기들의 몸을 위해하면서까지 소란을 피운다. 오늘 우리들의 예배가 그렇지는 않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고 있지만 불도 비도 없는 공허함으로 우리의 영과 육은 메말라 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러면 엘리야는 어떠한가? 엘리야의 짧은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다. 어떻게 이토록 쉽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가? 그 답은 하나이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조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왕기상 18장 1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을 뿐이다. 엘리야 자신의 기도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고, 말씀하신대로 기도했기 때문이다.
예배 인도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부분이다. 우리는 점쟁이나 무당들이나 우상숭배자들처럼 하나님을 불러내는 존재가 아니다. 악기와 테크닉을 의존해 부흥이나 은혜를 값싼 느낌으로 조작하지 말라.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그 말씀에 순종하라. 순종함으로 기도하라. 그리고 절제하라. 하나님의 부흥을 사모하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라. 부흥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능력이다.
5. 마무리하며
레이븐힐의 영적 스승이 되는 A. W. 토저 목사님은 레이븐힐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셨다. “레이븐힐의 메시지를 들으면 그에 대한 맹렬한 적대자가 되든지 열렬한 지지자가 되든지 하지, 중립적인 태도는 취할 수 없다.”
부흥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부흥이라는 단어를 값싼 유행어로 만들지 말라. 부흥은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종교 유희가 아니다. 부흥은 본서의 원제처럼 'REVIVAL GOD'S WAY' 부흥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저자 레오나드 레이븐힐 (Leonard Ravenhill)
1907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미국에서 사역을 전개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지닌 최강의 부흥 메신저"라는 평가는 받았다. 1994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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