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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나님을 아는 지혜
행복한 차세대 크리스천을 위한 7가지 습관/칼만 카플란, 매튜 슈워츠 공저/세계사/[북뉴스]
현상만 보지 말고 이면에 담겨진 진실에 주목하라든지, 행간을 읽으라는 등의 말을 자주 듣는다.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말일 것이다. 또한 그 말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문으로도 들린다. 필요에 의한 정보의 왜곡 문제가 자주 신문지상을 메우고 있는 현실을 주목하면 누구든 자기가 믿는 바를 타인에게 무조건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여서 대부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하기 일쑤다. 그것도 의심의 여지없이. 그런데 과연 내가 옳다고 믿은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성경에 드러난 7가지 죄악을 근거로 크리스천이 그 7가지 죄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빠지기 쉬운 심리학적인 오류를 진단하고, 그 이유를 밝힌다. 아울러 성경은 그것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을 이해하고, 종국적으로 크리스천들이 그것들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메스를 가하듯 때론 천천히 때론 깊숙이 찔러댄다. 그렇다고 저자가 환자의 증상을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수술 부위를 집도한다고 생각하면 오해. 저자는 각 장의 시작을 먼저 의문형으로 바꿔놓고 있다. 자만하지 않기 위해 한없이 겸손해야 하는가?, 질투하지 않기 위해 분별없이 순종해야 하는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만은 서구사상에서 죄악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자만은 첫 번째 대죄이다. 이 말은 그 자체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대체 자만이 뭐 어떻단 말인가? 인간은 자신이 성취한 것에 기쁨을 느끼면 안 된단 말인가?” 다소 도전적인 말로 첫 장을 시작한 저자는 ‘그렇다면 자만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자신에게 채찍을 휘둘러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는 본정신이 자기 비하라는 해결책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냐’고 꼬집는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자만을 극복하느라 결과적으로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성경에서 제시하는 순수한 ‘자존감’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저자가 분류한 각 장의 주제어가 양극단을 해결하는 처방이 되는 셈. 그런지 보자. 제1장의 주제는 자존감이다. 제2장은 지혜, 제3장은 정의다. 사랑, 건강한 식습관, 신중함, 목적의식이 다음 장을 이룬다. 제2장은 질투와 순종을 다룬다. 제3장은 분노와 인내를 다루고, 이어서 정욕과 정결, 폭식과 금식, 탐욕과 관대, 나태와 성실이 각 장의 중심 소재가 된다. 저자의 질문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에 눈을 뜨도록 촉구하는 경계의 뜻이기도 하고 바야흐로 바른 지식과 지혜의 길로 들어서도록 견인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의 도발적인 질문들로 인해 기존에 가졌던 지식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기 부정 뒤에는 공간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렇게 드러난 빈 공간을 불안감이 엄습해 들어오기 때문에 대체로 자기 부정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런 과정 없이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는다. 바른 지식을 얻는 데 따르는 고통의 예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제2장(지혜)에 기록된 델포이 신전의 경구와 오이디푸스, 소크라테스의 예는 당시 사람들이 바른 지식, 곧 지혜를 얻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에 해당할 것이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는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상대를 이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분수를 알도록 끊임없이 추동하며 그 말에 순종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을 때, 이오카스테가 “불쌍한 자여! 너는 네가 누군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말은 델포이 신전의 경구와 일맥 상통한다. 그 둘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지식을 보유하는 순간 파멸에 이를 것을 예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오이디푸스에게 지식은 저주와 파멸이었다.
소크라테스가 태양의 신 아폴론에 의해 모든 인간 가운데 가장 현명하다는 신탁을 받은 것이 소크라테스 자신이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현명하지 못하고 오직 신만이 진정으로 지혜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 있고 보면 어떤 이유에서건 지혜에 대한 경계심이 상당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지식을 보유하는 것을 크게 반기고, 지혜로 말미암아 지식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폴론은 소크라테스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솔로몬의 예를 보면 하나님은 솔로몬의 요청(요약하면,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에 답하고 그와 소통한다. 하나님은 지혜를 얻은 사람이 당신과 함께 일하기를 바라신다.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면 자기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닌지 하는 두려움과 가치 혼돈으로 지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히려 지혜를 얻지 못해 파멸에 이른 오이디푸스의 예는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양극단의 논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균형감각을 갖추도록 안내하는 설명서이자 처방전이다. 그렇지 않아도 좌와 우가 양극단으로 치우쳐 자기 주장만 일삼는 세태에 이 책이 ‘또 다른 길(중심)’을 제시하고, 그 길의 유익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주고 있어 반갑다. 저자가 행간에 숨겨둔 말처럼 견고한 중심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그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지혜에 주목하고 그것에 따라 살 때 비로소 좌우를 향해 기웃거리는 불안한 행복이 아니라 성채와 같이 강풍과 폭우에 흔들리지 않는 궁극적인 행복이 찾아들 것이다.
* 저자의 신화와 성경, 임상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과 전문적 관점은 별난 맛
글 김정완 명예편집위원
저자 매튜 슈워츠 (Matthew B. Schwartz) - 웨인 주립대학교에서 역사와 근동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미국 미시간주 사우스필드Southfield에 살고 있다.
칼만 카플란 (Kalman J. Kaplan) - 2007년 현재 웨인 주립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이자 일리노이 대학교의 시카고 의대에서 정신의학과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현상만 보지 말고 이면에 담겨진 진실에 주목하라든지, 행간을 읽으라는 등의 말을 자주 듣는다.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말일 것이다. 또한 그 말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문으로도 들린다. 필요에 의한 정보의 왜곡 문제가 자주 신문지상을 메우고 있는 현실을 주목하면 누구든 자기가 믿는 바를 타인에게 무조건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여서 대부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타인에게 강제하기 일쑤다. 그것도 의심의 여지없이. 그런데 과연 내가 옳다고 믿은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성경에 드러난 7가지 죄악을 근거로 크리스천이 그 7가지 죄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빠지기 쉬운 심리학적인 오류를 진단하고, 그 이유를 밝힌다. 아울러 성경은 그것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을 이해하고, 종국적으로 크리스천들이 그것들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메스를 가하듯 때론 천천히 때론 깊숙이 찔러댄다. 그렇다고 저자가 환자의 증상을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수술 부위를 집도한다고 생각하면 오해. 저자는 각 장의 시작을 먼저 의문형으로 바꿔놓고 있다. 자만하지 않기 위해 한없이 겸손해야 하는가?, 질투하지 않기 위해 분별없이 순종해야 하는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만은 서구사상에서 죄악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자만은 첫 번째 대죄이다. 이 말은 그 자체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대체 자만이 뭐 어떻단 말인가? 인간은 자신이 성취한 것에 기쁨을 느끼면 안 된단 말인가?” 다소 도전적인 말로 첫 장을 시작한 저자는 ‘그렇다면 자만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자신에게 채찍을 휘둘러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다는 본정신이 자기 비하라는 해결책이 가려지는 것이 아니냐’고 꼬집는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자만을 극복하느라 결과적으로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성경에서 제시하는 순수한 ‘자존감’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저자가 분류한 각 장의 주제어가 양극단을 해결하는 처방이 되는 셈. 그런지 보자. 제1장의 주제는 자존감이다. 제2장은 지혜, 제3장은 정의다. 사랑, 건강한 식습관, 신중함, 목적의식이 다음 장을 이룬다. 제2장은 질투와 순종을 다룬다. 제3장은 분노와 인내를 다루고, 이어서 정욕과 정결, 폭식과 금식, 탐욕과 관대, 나태와 성실이 각 장의 중심 소재가 된다. 저자의 질문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에 눈을 뜨도록 촉구하는 경계의 뜻이기도 하고 바야흐로 바른 지식과 지혜의 길로 들어서도록 견인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의 도발적인 질문들로 인해 기존에 가졌던 지식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기 부정 뒤에는 공간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렇게 드러난 빈 공간을 불안감이 엄습해 들어오기 때문에 대체로 자기 부정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런 과정 없이 새로운 세상은 열리지 않는다. 바른 지식을 얻는 데 따르는 고통의 예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제2장(지혜)에 기록된 델포이 신전의 경구와 오이디푸스, 소크라테스의 예는 당시 사람들이 바른 지식, 곧 지혜를 얻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에 해당할 것이다.
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는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상대를 이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분수를 알도록 끊임없이 추동하며 그 말에 순종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을 때, 이오카스테가 “불쌍한 자여! 너는 네가 누군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말은 델포이 신전의 경구와 일맥 상통한다. 그 둘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지식을 보유하는 순간 파멸에 이를 것을 예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오이디푸스에게 지식은 저주와 파멸이었다.
소크라테스가 태양의 신 아폴론에 의해 모든 인간 가운데 가장 현명하다는 신탁을 받은 것이 소크라테스 자신이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현명하지 못하고 오직 신만이 진정으로 지혜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 있고 보면 어떤 이유에서건 지혜에 대한 경계심이 상당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이 지식을 보유하는 것을 크게 반기고, 지혜로 말미암아 지식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아폴론은 소크라테스에게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솔로몬의 예를 보면 하나님은 솔로몬의 요청(요약하면,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에 답하고 그와 소통한다. 하나님은 지혜를 얻은 사람이 당신과 함께 일하기를 바라신다.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면 자기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건 아닌지 하는 두려움과 가치 혼돈으로 지혜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히려 지혜를 얻지 못해 파멸에 이른 오이디푸스의 예는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양극단의 논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균형감각을 갖추도록 안내하는 설명서이자 처방전이다. 그렇지 않아도 좌와 우가 양극단으로 치우쳐 자기 주장만 일삼는 세태에 이 책이 ‘또 다른 길(중심)’을 제시하고, 그 길의 유익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주고 있어 반갑다. 저자가 행간에 숨겨둔 말처럼 견고한 중심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그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지혜에 주목하고 그것에 따라 살 때 비로소 좌우를 향해 기웃거리는 불안한 행복이 아니라 성채와 같이 강풍과 폭우에 흔들리지 않는 궁극적인 행복이 찾아들 것이다.
* 저자의 신화와 성경, 임상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과 전문적 관점은 별난 맛
글 김정완 명예편집위원
저자 매튜 슈워츠 (Matthew B. Schwartz) - 웨인 주립대학교에서 역사와 근동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미국 미시간주 사우스필드Southfield에 살고 있다.
칼만 카플란 (Kalman J. Kaplan) - 2007년 현재 웨인 주립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이자 일리노이 대학교의 시카고 의대에서 정신의학과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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