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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희망의 고갱이는 예수님이다
찰스 스윈돌의 호프/찰스 스윈돌/이장우/요단/[북뉴스]
신약 성경 인물 중에 '더 이상 내게 희망이 없다', 고 자책했을 사람을 한사람을 꼽는다면 내 생각엔 베드로가 될 것 같다.
그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던 날 밤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뒤로하고 예수님은 돌아가셨다. 예수님의 애재자 중 한사람이자 예수님과 함께 물위를 걸은 유일한 사람. 오병이어의 기적 한 가운데 그가 있었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자리에도 그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천한 직종 중 하나였던 어부가 누군가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당시로선 기적이었다. 적어도 제자라면 스승에 필적할 만한 성품과 자질이 있어야 한다는 것쯤 그때나 지금이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만약 베드로에게 제자가 될만한 특성이 조금도 없었다면 그것은 스승의 전적인 은혜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게 베드로는 조건없이 선택을 받았다. 이후 베드로의 행동은 대부분 스승의 근심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를 내치지 않았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돌봐준 스승을 등뒤에서 비수를 꽂았으니 베드로에게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었겠는가.
예전처럼 이번에도 예수님이 먼저 베드로에게 찾아오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 물으심으로써 베드로에게 한이 된 세 번 부인의 고통을 어루만지셨다. 그는 약속대로 양을 먹이는 목자의 삶을 기꺼이 살았다.
『찰스 스윈돌의 호프』는 그 베드로가 쓴 편지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이상 자신에겐 희망이 없다고 장탄식을 쏟아냈을 베드로가 당당히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동일하게 베드로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 이유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베드로의 자기 고백서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전서에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본 저자는 우리가 자주 부딪히는 다양한 사건의 배후에 감춰진 희망이라는 보석을 텍스트로 삼은 베드로전서를 통해 캐내고 다듬어 어떤 보석보다 찬란한 보석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희망은 바란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만약 희망이 그렇게 해서 얻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면 베드로야말로 그 일에 적임자였을 것이다. 베드로는 말보다 행동이 빨랐다. 무슨 일에든 의협심이 강해서 예수님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베드로는 매순간 절망해야 했다. 베드로의 희망은 언제나 희망사항으로 그쳤을 뿐이다. 수습은 언제나 예수님의 몫이었다.
베드로의 과거를 통해 드러난 그의 희망은 절망을 배태하는 반쪽자리 희망이었다. 그에겐 예수님이 필요했다. 예수님을 통해서야 비로소 완전한 의미의 희망을 지닐 수 있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후 베드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좌충우돌하지 않았다. 헌신적으로 복음 전도에 앞장섰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그것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베드로라는 몸은 그대로 있는데 그의 인격이 바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야말로 희망의 본래 이름이다. 무엇이 되려고 노력하기 전에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덧입으려고 애써야 할 일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과정이 선행될 때 희망은 그로부터 나올 것이며 그것이 우리를 더욱 복음에 매달리도록 만들 것이다. 찰스 스윈돌이 말하는 17가지 희망의 고갱이가 바로 그것이다.
글 김정완 명예편집위원
저자 찰스 R. 스윈돌 (Charles R. Swindoll)
캘리포니아 풀러톤에 있는 First Evangelical Free Church에서 오랫동안 사역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댈러스 신학교의 총장을 역임했다. 2007년 현재 댈러스 신학교 명예총장으로 봉직하면서, Stonebriar Community Church를 개척하여 담임 목사로 있다.
신약 성경 인물 중에 '더 이상 내게 희망이 없다', 고 자책했을 사람을 한사람을 꼽는다면 내 생각엔 베드로가 될 것 같다.
그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던 날 밤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뒤로하고 예수님은 돌아가셨다. 예수님의 애재자 중 한사람이자 예수님과 함께 물위를 걸은 유일한 사람. 오병이어의 기적 한 가운데 그가 있었고,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자리에도 그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천한 직종 중 하나였던 어부가 누군가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당시로선 기적이었다. 적어도 제자라면 스승에 필적할 만한 성품과 자질이 있어야 한다는 것쯤 그때나 지금이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만약 베드로에게 제자가 될만한 특성이 조금도 없었다면 그것은 스승의 전적인 은혜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게 베드로는 조건없이 선택을 받았다. 이후 베드로의 행동은 대부분 스승의 근심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를 내치지 않았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돌봐준 스승을 등뒤에서 비수를 꽂았으니 베드로에게 무슨 변명의 여지가 있었겠는가.
예전처럼 이번에도 예수님이 먼저 베드로에게 찾아오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 물으심으로써 베드로에게 한이 된 세 번 부인의 고통을 어루만지셨다. 그는 약속대로 양을 먹이는 목자의 삶을 기꺼이 살았다.
『찰스 스윈돌의 호프』는 그 베드로가 쓴 편지를 주제로 삼고 있다. 더 이상 자신에겐 희망이 없다고 장탄식을 쏟아냈을 베드로가 당당히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동일하게 베드로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 이유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베드로의 자기 고백서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전서에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본 저자는 우리가 자주 부딪히는 다양한 사건의 배후에 감춰진 희망이라는 보석을 텍스트로 삼은 베드로전서를 통해 캐내고 다듬어 어떤 보석보다 찬란한 보석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희망은 바란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만약 희망이 그렇게 해서 얻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면 베드로야말로 그 일에 적임자였을 것이다. 베드로는 말보다 행동이 빨랐다. 무슨 일에든 의협심이 강해서 예수님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베드로는 매순간 절망해야 했다. 베드로의 희망은 언제나 희망사항으로 그쳤을 뿐이다. 수습은 언제나 예수님의 몫이었다.
베드로의 과거를 통해 드러난 그의 희망은 절망을 배태하는 반쪽자리 희망이었다. 그에겐 예수님이 필요했다. 예수님을 통해서야 비로소 완전한 의미의 희망을 지닐 수 있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후 베드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좌충우돌하지 않았다. 헌신적으로 복음 전도에 앞장섰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그것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베드로라는 몸은 그대로 있는데 그의 인격이 바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야말로 희망의 본래 이름이다. 무엇이 되려고 노력하기 전에 우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덧입으려고 애써야 할 일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과정이 선행될 때 희망은 그로부터 나올 것이며 그것이 우리를 더욱 복음에 매달리도록 만들 것이다. 찰스 스윈돌이 말하는 17가지 희망의 고갱이가 바로 그것이다.
글 김정완 명예편집위원
저자 찰스 R. 스윈돌 (Charles R. Swindoll)
캘리포니아 풀러톤에 있는 First Evangelical Free Church에서 오랫동안 사역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댈러스 신학교의 총장을 역임했다. 2007년 현재 댈러스 신학교 명예총장으로 봉직하면서, Stonebriar Community Church를 개척하여 담임 목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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