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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병삼 목사의 너무나 솔직한 이야기
그래야 행복합니다/김병삼/샘솟는기쁨/김정완
br>행복은 누구나 바라는 바로 제레미 벤담의 최대 행복은 그 극한에 자리한 욕망의 최대치다. 최대 행복에 앞서 최대 다수가 전제되지 않았다면 맘몬의 세상은 행복의 최대치를 돈을 쥔 자의 수중에 밀어 넣었을 것이다. 그게 공정하다는 듯 거침없이. 전제된 최대 다수는 맘몬의 액셀러레이터를 제어하는 브레이크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천민 자본의 사회는 브레이크를 사용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공공의 이익을 논하는 건 한담으로 치부되기 십상이고 돈이 된다 싶으면 몸에 맞지 않는 체 게비라를 기꺼이 소비한다. 낯이 두꺼워진 탓이다. 최근 들어 마이클 센델의 공정사회론에까지 거품을 씌우고 단기간 거센 바람을 일으켰음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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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건강을 잃어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배고픔에 직면해야 하루 세끼 식사에 고마움을 느끼듯 행복 또한 그것이 물 건너 가야 물밀듯 갈망이 솟구친다. 그래서 삶은 돌아보면 허허롭고 그래서 더욱 슬픈 거라고 말을 하는 것일 게다. 채울 수 없는 욕망이 주는 천형이다. 그건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끊임없이 흘러내린 바위를 주워올리기를 반복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기대가 어려운 세상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다른 곳을 보는 게 지혜롭다. 어느 곳이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꼭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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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저자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현직 목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세상과는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니까!" 하고 한 다리 건너뛰고 보면 배워야 할 때 배우지 못한다. 그건 손해다. 더욱이 그가 순순히 자신을 내려놓고 치부까지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는 바에 고정관념은 독자가 스스로 폐쇄한 문과 같다. 그 문을 통해 혹독한 정글(현대사회를 정글에 비유한 이의 혜안이 놀랍다. 고맙다.)을 벗어나 너른 대양에 이를 수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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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책의 주재료는 삶이다. 저자가 지금도 세상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싱그러운 아침에 글이 되어 나오기도 하고 바빴던 한나절의 일상을 털고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댈 때 윈도우 위에 쌓이기도 한다. 아침은 솔직하고 저녁은 상념으로 풍성하다. 그의 글이 솔직하기를 넘어 털털하고 그윽하다 못해 눈 안쪽이 연신 그렁그렁한 것도 글자리를 편 때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그의 글밭에 멋부리거나 가르치려는 나무가 자랄 틈이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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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 자신 여전히 배워야 할 것과 깨달을 것이 많다고 누누이 말한 터다. 그걸 겸손으로 읽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그런 말에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역시 여느 목사와 다르다. 목사 같지 않은 목사. 오늘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강단에서도 어릴 적에 잡기에 능했다고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게 무어 책잡힐 일이냐 하겠지만 점잖은 목사가 할 말은 아니라는 무언의 분위기가 생생한 게 목회 현장이다. 그런 분위기를 깨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게다. 그는 수만 명이 출석하는 대형교회의 그야말로 '잘 나가는' 목사다. 이쯤이면 앞서 그에게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 이유에 어느 정도 답이 되지 않을까?
br>"누군가의 가슴에 좋은 추억을 남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만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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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관심은 사람에게 있다. 그럼에도 그는 심방을 가지 않겠다고 한다. 가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의사에게 좀 잊어버리라는 핀잔을 듣는 그다. 의사에게 목사가 할 말을 듣는 목사스럽지 않은 목사. 역시 그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도 그는 그를 찾는 교인을 심방했을 터다. 그리곤 또 의사에게 핀잔을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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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소소한 에피소드가 참 많은 이 책, 《그래야 행복합니다》를 일상이 번잡하다고 말하는 이들과 일상에 치여 가슴 한켠에 답답증이 몰려든 이들에게 권한다. 잊을 만하면 발병하는 결석의 고통과 만나는 사람들의 고민을 시원스럽게 해결해 주지 못하는 한계에서 직면하는 실존적 갈등으로 오늘도 아침을 깨우고 잠들 시간을 뒤로 미루는 그에게 일상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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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야전 사령관이 전장을 잘 알듯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의 편린들을 담백하게 녹여낸 솔직함에 적이 놀라게 된다. 공감이 뒤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그가 하는 '자기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데서 오는 깊은 공감은 파장이 묵직하다. 작은 돌 하나가 파문을 이어가고 또 이어가는 걸 한참 지켜본 유년의 기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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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이 글의 처음에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썼다. 그들의 예로 저자를 들었다. 솔직한 글은 힘이 있다. 글이 독자의 심중을 파고들어야 비로소 독자는 공감을 표한다. 그러려면 솔직함이 글의 바탕에 흘러야 한다. 그럴 때 독자는 글 앞에 기꺼이 자신을 무장해제시킨다. 솔직한 글은 담백하다. 이것저것 끌어다 쓸 필요가 없다. 간이 잘 맞은 음식이 구미를 당길 때 흔히 맛있다는 뜻의 담백하다는 표현을 쓴다. 마찬가지로 담백한 글은 독자를 계속 붙들어둔다. 맛볼 게 더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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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 주변에 있다 보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처럼 돌아보면 행복할 일이 많다. 행복은 더 얻거나 더 빼앗는 데서 비롯하지 않음을 우린 저자의 글에서 충분히 읽고 있다. 저자의 행복은 먼 데서 찾아진 게 아니다. 심방 가서 사람을 보고 눈에 밟힌 사람을 짬을 내 만난 데서 저자의 행복은 시작한다. 행복은 곁에 있다. 그걸 밖에서 찾다 보니 일상이 피곤하고 그런 일상이라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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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행복이 저만치 앞서 달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잠시 고집을 접고 나는 누군지 물어보자. 느닷없이 왜 묻느냐고. 그 질문은 개인의 시원을 찾는 중요한 질문이다. 행복과 관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우린 행복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걸 알거나 꺼내 쓸 줄 모를 뿐이다. 값을 치르려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상대방에게 건네야 한다. 돈이 없다면 모르겠는데, 돈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그 돈은 무용지물이다. 돈을 꺼내 쓸 때까지 당신은 배를 곯는 처지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저자의 행복론은 우리가 시원을 알고 그분의 곁에 머물 때 온다. 바로 그.래.야. 행.복.하.다.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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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저자 김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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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만나교회 담임목사.
(사)월드휴먼브리지 대표이사, 하늘다리호스피스 이사장, 감리교 신학대학 겸임교수, KOSTA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CTS 기독교 텔레비전 이사로 섬기고 있다. 더불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실현하는 SNS 목회인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서 2만여 명과 소통하며,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감리교신학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게렛신학교와 U.T.S. (UNITED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1988년에 목회를 시작한 저자는 탁월한 예배 인도자, 흡인력 있는 설교가, 새로운 목회패러다임 을 창조하는 리더 등 그를 평가하는 여러 수식어들이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워가는 목회자이기를 꿈꾼다.
저서로는,『그래야 행복합니다』,『기대와 달라도 행복합니다』,『행복한 여행』,『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하나님을 눈물나게 하는 이야기』,『믿음의 품질을 높이는 명품 리더십』등 다수가 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youngsam
트위터 https://twitter.com/visionmanna
br>행복은 누구나 바라는 바로 제레미 벤담의 최대 행복은 그 극한에 자리한 욕망의 최대치다. 최대 행복에 앞서 최대 다수가 전제되지 않았다면 맘몬의 세상은 행복의 최대치를 돈을 쥔 자의 수중에 밀어 넣었을 것이다. 그게 공정하다는 듯 거침없이. 전제된 최대 다수는 맘몬의 액셀러레이터를 제어하는 브레이크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천민 자본의 사회는 브레이크를 사용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공공의 이익을 논하는 건 한담으로 치부되기 십상이고 돈이 된다 싶으면 몸에 맞지 않는 체 게비라를 기꺼이 소비한다. 낯이 두꺼워진 탓이다. 최근 들어 마이클 센델의 공정사회론에까지 거품을 씌우고 단기간 거센 바람을 일으켰음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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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건강을 잃어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배고픔에 직면해야 하루 세끼 식사에 고마움을 느끼듯 행복 또한 그것이 물 건너 가야 물밀듯 갈망이 솟구친다. 그래서 삶은 돌아보면 허허롭고 그래서 더욱 슬픈 거라고 말을 하는 것일 게다. 채울 수 없는 욕망이 주는 천형이다. 그건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끊임없이 흘러내린 바위를 주워올리기를 반복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기대가 어려운 세상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다른 곳을 보는 게 지혜롭다. 어느 곳이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꼭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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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저자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현직 목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세상과는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니까!" 하고 한 다리 건너뛰고 보면 배워야 할 때 배우지 못한다. 그건 손해다. 더욱이 그가 순순히 자신을 내려놓고 치부까지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는 바에 고정관념은 독자가 스스로 폐쇄한 문과 같다. 그 문을 통해 혹독한 정글(현대사회를 정글에 비유한 이의 혜안이 놀랍다. 고맙다.)을 벗어나 너른 대양에 이를 수도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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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책의 주재료는 삶이다. 저자가 지금도 세상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싱그러운 아침에 글이 되어 나오기도 하고 바빴던 한나절의 일상을 털고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댈 때 윈도우 위에 쌓이기도 한다. 아침은 솔직하고 저녁은 상념으로 풍성하다. 그의 글이 솔직하기를 넘어 털털하고 그윽하다 못해 눈 안쪽이 연신 그렁그렁한 것도 글자리를 편 때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그의 글밭에 멋부리거나 가르치려는 나무가 자랄 틈이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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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 자신 여전히 배워야 할 것과 깨달을 것이 많다고 누누이 말한 터다. 그걸 겸손으로 읽는 이들이 많지만 그는 그런 말에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역시 여느 목사와 다르다. 목사 같지 않은 목사. 오늘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강단에서도 어릴 적에 잡기에 능했다고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게 무어 책잡힐 일이냐 하겠지만 점잖은 목사가 할 말은 아니라는 무언의 분위기가 생생한 게 목회 현장이다. 그런 분위기를 깨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게다. 그는 수만 명이 출석하는 대형교회의 그야말로 '잘 나가는' 목사다. 이쯤이면 앞서 그에게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 이유에 어느 정도 답이 되지 않을까?
br>"누군가의 가슴에 좋은 추억을 남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늘나라에서 기쁘게 만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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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관심은 사람에게 있다. 그럼에도 그는 심방을 가지 않겠다고 한다. 가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의사에게 좀 잊어버리라는 핀잔을 듣는 그다. 의사에게 목사가 할 말을 듣는 목사스럽지 않은 목사. 역시 그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도 그는 그를 찾는 교인을 심방했을 터다. 그리곤 또 의사에게 핀잔을 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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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소소한 에피소드가 참 많은 이 책, 《그래야 행복합니다》를 일상이 번잡하다고 말하는 이들과 일상에 치여 가슴 한켠에 답답증이 몰려든 이들에게 권한다. 잊을 만하면 발병하는 결석의 고통과 만나는 사람들의 고민을 시원스럽게 해결해 주지 못하는 한계에서 직면하는 실존적 갈등으로 오늘도 아침을 깨우고 잠들 시간을 뒤로 미루는 그에게 일상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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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야전 사령관이 전장을 잘 알듯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의 편린들을 담백하게 녹여낸 솔직함에 적이 놀라게 된다. 공감이 뒤따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그가 하는 '자기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데서 오는 깊은 공감은 파장이 묵직하다. 작은 돌 하나가 파문을 이어가고 또 이어가는 걸 한참 지켜본 유년의 기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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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이 글의 처음에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썼다. 그들의 예로 저자를 들었다. 솔직한 글은 힘이 있다. 글이 독자의 심중을 파고들어야 비로소 독자는 공감을 표한다. 그러려면 솔직함이 글의 바탕에 흘러야 한다. 그럴 때 독자는 글 앞에 기꺼이 자신을 무장해제시킨다. 솔직한 글은 담백하다. 이것저것 끌어다 쓸 필요가 없다. 간이 잘 맞은 음식이 구미를 당길 때 흔히 맛있다는 뜻의 담백하다는 표현을 쓴다. 마찬가지로 담백한 글은 독자를 계속 붙들어둔다. 맛볼 게 더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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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 주변에 있다 보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처럼 돌아보면 행복할 일이 많다. 행복은 더 얻거나 더 빼앗는 데서 비롯하지 않음을 우린 저자의 글에서 충분히 읽고 있다. 저자의 행복은 먼 데서 찾아진 게 아니다. 심방 가서 사람을 보고 눈에 밟힌 사람을 짬을 내 만난 데서 저자의 행복은 시작한다. 행복은 곁에 있다. 그걸 밖에서 찾다 보니 일상이 피곤하고 그런 일상이라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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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행복이 저만치 앞서 달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잠시 고집을 접고 나는 누군지 물어보자. 느닷없이 왜 묻느냐고. 그 질문은 개인의 시원을 찾는 중요한 질문이다. 행복과 관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우린 행복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걸 알거나 꺼내 쓸 줄 모를 뿐이다. 값을 치르려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상대방에게 건네야 한다. 돈이 없다면 모르겠는데, 돈이 있어도 쓰지 않으면 그 돈은 무용지물이다. 돈을 꺼내 쓸 때까지 당신은 배를 곯는 처지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저자의 행복론은 우리가 시원을 알고 그분의 곁에 머물 때 온다. 바로 그.래.야. 행.복.하.다.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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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저자 김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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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만나교회 담임목사.
(사)월드휴먼브리지 대표이사, 하늘다리호스피스 이사장, 감리교 신학대학 겸임교수, KOSTA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CTS 기독교 텔레비전 이사로 섬기고 있다. 더불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실현하는 SNS 목회인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서 2만여 명과 소통하며,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감리교신학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게렛신학교와 U.T.S. (UNITED THE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1988년에 목회를 시작한 저자는 탁월한 예배 인도자, 흡인력 있는 설교가, 새로운 목회패러다임 을 창조하는 리더 등 그를 평가하는 여러 수식어들이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세워가는 목회자이기를 꿈꾼다.
저서로는,『그래야 행복합니다』,『기대와 달라도 행복합니다』,『행복한 여행』,『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하나님을 눈물나게 하는 이야기』,『믿음의 품질을 높이는 명품 리더십』등 다수가 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youngsam
트위터 https://twitter.com/visionm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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