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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진정한 성화의 삶의 표본
세기를 불사른 영적 거인 조나단 에드워즈/데이비드 보건/김은홍/기독신문사/[이종수]
로이드 존스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영국의 청교도들을 알프스 산맥으로, 칼빈을 히말라야 산맥으로 표현한다면, 에드워즈를 에베레스트산에 비유하고 싶은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만일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기를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다면, 과연 그 말이 진실하다는데 이의가 없을 줄로 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출생한 그 시대의 배경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처럼 위대한 그리스도인을 만드시는데 사용하시는 합당한 환경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시대는 “(교회의)권징은 느슨해지고, 교리는 희미해지고, 그리고 설교는 맥 빠지고 생명을 잃”어버린 시대였다. 어느 시대건 성도의 성별된 삶이나 경건한 삶, 즉 성화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면, 그 교회는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영적인 불모지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성을 빛낼 종들을 일구어 내시고, 영적으로 가장 암흑한 때를 거룩의 가장 밝은 횃불을 치켜들 시기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노력과 자랑이 무색해졌을 때,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이 일하실 때임을 이러한 방법으로 알리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때에 “에드워즈는 신앙의 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경건하게 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혹의 내적 투쟁과 갈등으로 되풀이해서 고통을 받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그는 진정한 기독교는 규칙에 대한 단순한 외적 순응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음 깊은 곳의 항구적인 변화를 필요로 했다. 새로운 열망을 가지고 그는 구원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마침내 디모데전서 1장 17절을 읽으면서 구원의 기쁨과 평화에 들어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바대로 구원은 지극히 피상적인 것이 되었다. 그저 그리스도의 속죄론에 대한 강좌를 듣고는 지적인 동의만으로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회심했다고는 하나 회심 이후의 삶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은 달랐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감미롭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만물이 달리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이제 “모든 것에서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된 형상을 닮고자 하는, 그리고 모든 것에서 순결하고 감미로우며 복된 복음의 법칙을 따라 살고자 하는 불타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과 거룩함!”, “그리스도와 거룩함!” 이러한 생각들이 에드워즈의 생각과 경험 속에서 불가분 연결되었고, 거룩함은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거룩함은 하나님과 연합한 영혼의 아름다운 상태라고 했다. 따라서 에드워즈의 성화 체험은 결코 이론적인 것이 아니었다. 에드워즈의 마음은 목회를 하는데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마음은 목회에 가장 먼저 가 있었고, 새로이 이뤄보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와 주해였다고 한다. 자신에게 맡기운 그리스도의 양무리들을 위하여 그가 필요로 한 힘은 오로지 하나님의 힘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최고의 갈망으로 삼았다. 이것은 오늘날의 성령 체험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진정한 성화의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에드워즈의 성화의 체험과 성화의 삶이 영국의 대각성 운동과 이어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표면적이고 겉치레뿐인 종교생활로 인해 영적인 쇠퇴 현상이 두드러지고, 종교적 합리주의의 결정체인 이신론(deism)이 세력을 얻을 때, 강력한 체험 종교의 변증가로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복음 진리의 횃불을 가장 환하게 밝힐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강력했던 부흥의 시기에 성령의 역사로 인한 은혜로운 정서와 사단의 모조품인 거짓된 정서의 차이를 구분할 수가 있었다.
결국 이러한 차이를 극명하게 구분하고자 한 그의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진정한 자격에 대한 엄격한 기준 적용으로 나타났다. 성찬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는 공개적인 경건의 고백을 하고, 그 고백에 따른 경건한 삶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교회에는 이러한 성경적인 원리와 원칙이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원칙은 배척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 조나단 에드워즈는 면직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한 교회 사임은 에드워즈와 그의 가족에게 충격과 동시에 큰 어려움이 되었지만,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했다. 이후 에드워즈는 선교사로 신학자로, 마침내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취임 일주일 뒤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은 에드워즈는 이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취임 후 한 달 만에 많은 세월 동안 충성스럽게 섬겼던 영광의 하나님을 마지막으로 증언하면서,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갔다.
에드워즈의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본다. 어쩌면 에드워즈는 겸손한 선교사로서 자신의 시대를 마치며 만족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추방지에서 이끌어 존경의 자리에 앉히심으로써, 자신의 충성된 종에게 영예를 돌리시고자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그렇게 영광의 집으로 맞아들이셨다.
저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에 대해 ‘그의 책들은 설명의 걸작이지만, 그의 삶은 헌신의 걸작’이라고 했다. 회심의 시기부터 삶의 마지막까지,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과 영원의 빛 가운데 살았던 성화의 사람이었다. 오늘날 복음은 편만하게 증거되고 있지만, 그 삶에 복음의 능력은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힘써 조나단 에드워즈를 알아야 한다. 그와 더불어 사귄 시간 만큼, 우리는 더욱 성화의 삶에 가까이 갈 수 있을 줄로 안다. 그리하여 그의 정신에, 그의 육체에, 그리고 그의 영혼에 비친 그리스도를 아는 영광의 빛이 우리의 정신에, 우리의 육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밝히 비치길 소망하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자 데이비드 보건(David Vaughan)
리버티교회(Liberty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사 리버티 리더십 연구소(Liberty Leadership Institute)대표 미주리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St. Louis)를 졸업 휘트필드신학교(Whitefield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 학위취득 작가, 편집인, 강사, 지역사회 지도자로 활동
로이드 존스는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영국의 청교도들을 알프스 산맥으로, 칼빈을 히말라야 산맥으로 표현한다면, 에드워즈를 에베레스트산에 비유하고 싶은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만일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기를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다면, 과연 그 말이 진실하다는데 이의가 없을 줄로 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출생한 그 시대의 배경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처럼 위대한 그리스도인을 만드시는데 사용하시는 합당한 환경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시대는 “(교회의)권징은 느슨해지고, 교리는 희미해지고, 그리고 설교는 맥 빠지고 생명을 잃”어버린 시대였다. 어느 시대건 성도의 성별된 삶이나 경건한 삶, 즉 성화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면, 그 교회는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영적인 불모지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성을 빛낼 종들을 일구어 내시고, 영적으로 가장 암흑한 때를 거룩의 가장 밝은 횃불을 치켜들 시기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노력과 자랑이 무색해졌을 때,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이 일하실 때임을 이러한 방법으로 알리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때에 “에드워즈는 신앙의 위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경건하게 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혹의 내적 투쟁과 갈등으로 되풀이해서 고통을 받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그는 진정한 기독교는 규칙에 대한 단순한 외적 순응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마음 깊은 곳의 항구적인 변화를 필요로 했다. 새로운 열망을 가지고 그는 구원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마침내 디모데전서 1장 17절을 읽으면서 구원의 기쁨과 평화에 들어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바대로 구원은 지극히 피상적인 것이 되었다. 그저 그리스도의 속죄론에 대한 강좌를 듣고는 지적인 동의만으로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회심했다고는 하나 회심 이후의 삶에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나단 에드워즈의 회심은 달랐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감미롭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만물이 달리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이제 “모든 것에서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된 형상을 닮고자 하는, 그리고 모든 것에서 순결하고 감미로우며 복된 복음의 법칙을 따라 살고자 하는 불타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과 거룩함!”, “그리스도와 거룩함!” 이러한 생각들이 에드워즈의 생각과 경험 속에서 불가분 연결되었고, 거룩함은 부담스러운 의무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거룩함은 하나님과 연합한 영혼의 아름다운 상태라고 했다. 따라서 에드워즈의 성화 체험은 결코 이론적인 것이 아니었다. 에드워즈의 마음은 목회를 하는데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마음은 목회에 가장 먼저 가 있었고, 새로이 이뤄보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와 주해였다고 한다. 자신에게 맡기운 그리스도의 양무리들을 위하여 그가 필요로 한 힘은 오로지 하나님의 힘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오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최고의 갈망으로 삼았다. 이것은 오늘날의 성령 체험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진정한 성화의 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에드워즈의 성화의 체험과 성화의 삶이 영국의 대각성 운동과 이어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표면적이고 겉치레뿐인 종교생활로 인해 영적인 쇠퇴 현상이 두드러지고, 종교적 합리주의의 결정체인 이신론(deism)이 세력을 얻을 때, 강력한 체험 종교의 변증가로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복음 진리의 횃불을 가장 환하게 밝힐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강력했던 부흥의 시기에 성령의 역사로 인한 은혜로운 정서와 사단의 모조품인 거짓된 정서의 차이를 구분할 수가 있었다.
결국 이러한 차이를 극명하게 구분하고자 한 그의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진정한 자격에 대한 엄격한 기준 적용으로 나타났다. 성찬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는 공개적인 경건의 고백을 하고, 그 고백에 따른 경건한 삶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교회에는 이러한 성경적인 원리와 원칙이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원칙은 배척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 조나단 에드워즈는 면직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한 교회 사임은 에드워즈와 그의 가족에게 충격과 동시에 큰 어려움이 되었지만,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이 그와 함께 했다. 이후 에드워즈는 선교사로 신학자로, 마침내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취임 일주일 뒤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은 에드워즈는 이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취임 후 한 달 만에 많은 세월 동안 충성스럽게 섬겼던 영광의 하나님을 마지막으로 증언하면서,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어갔다.
에드워즈의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본다. 어쩌면 에드워즈는 겸손한 선교사로서 자신의 시대를 마치며 만족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추방지에서 이끌어 존경의 자리에 앉히심으로써, 자신의 충성된 종에게 영예를 돌리시고자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그렇게 영광의 집으로 맞아들이셨다.
저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생애에 대해 ‘그의 책들은 설명의 걸작이지만, 그의 삶은 헌신의 걸작’이라고 했다. 회심의 시기부터 삶의 마지막까지,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과 영원의 빛 가운데 살았던 성화의 사람이었다. 오늘날 복음은 편만하게 증거되고 있지만, 그 삶에 복음의 능력은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힘써 조나단 에드워즈를 알아야 한다. 그와 더불어 사귄 시간 만큼, 우리는 더욱 성화의 삶에 가까이 갈 수 있을 줄로 안다. 그리하여 그의 정신에, 그의 육체에, 그리고 그의 영혼에 비친 그리스도를 아는 영광의 빛이 우리의 정신에, 우리의 육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밝히 비치길 소망하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저자 데이비드 보건(David Vaughan)
리버티교회(Liberty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사 리버티 리더십 연구소(Liberty Leadership Institute)대표 미주리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St. Louis)를 졸업 휘트필드신학교(Whitefield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 학위취득 작가, 편집인, 강사, 지역사회 지도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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