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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리는 보는 것을 얻게 되고 보는 것을 성취한다
비전과 존재혁명/강준민/두란노/[송광택]
비전은 보는 것이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다. 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전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기 전에 먼저 보게 하신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길은 비전을 품은 것이다.
우리는 보는 것을 얻게 되고 보는 것을 성취하게 된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비전을 소유하게 되는가?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있어야 비전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비전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조용한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곳은 고난의 광야다.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는 빈들이다.
그리고 큐티는 조용한 시간이다. 단순히 조용한 시간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조용한 시간이다. 그러하기에 경건한 시간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의 비전을 봐야 한다.
비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다. 비전은 평범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이다.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의 차이는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비전을 소유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비전과 기도는 함께 간다. 기도하는 사람은 보게되고 보는 사람은 기도하게 된다. 기도는 우리가 하늘로 비상하게 도와주는 영혼의 날개다. 비전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일 뿐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이 보는 능력이다. 기도는 많은 것을 보게 해 준다. 우리는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비전 있는 사람은 모험한다.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보화를 보는 능력이다. 본 사람은 모험한다. 모험하는 사람은 비전이 있는 사람이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위해 모험한다. 비전과 믿음과 모험은 함께 간다.
모험을 하려면 혼동과 공허함과 두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가진 것을 버려야 하고 안전한 삶의 터전에서 떠나야 한다. 전 생애를 결단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험하는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나라다.
믿음으로 들어가려면 정말 전 존재를 거는 모험이 필요하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큰 모험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비전을 품고 모험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모험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고 개발하고 성장하라.
비전은 앞을 보는 능력이다. 앞을 보기 위해 우린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즉 비전은 전체를 보는 비전인 동시에 한 방향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방향을 선택해서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비전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전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열망하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거룩이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소중하게 쓰신다. 깨끗한 그릇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그렇게 쓰시려는 인물을 고난을 통해 깨끗케 하신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임 받는 비전이 있다면 거룩함을 열망하라. 거룩함보다 나은 것은 없다.
20세기 최고의 크리스천 작가 중 한 사람인 C. S. 루이스는 "거룩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룩을 정말 모르는 사람이다. 일단 거룩을 만나면 결코 거스를 수 없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기를 열망하라 거룩함을 추구하라.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전은 거룩과 동반자다.
비전과 사랑은 함께 간다. 비전의 능력과 사랑의 능력은 함께 간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사랑의 눈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 속에서 비전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예수님의 눈은 사랑의 눈이다. 사랑의 눈으로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비전을 보셨다. 쓸모없는 인물이 복음을 위해 쓸모 있는 인물이 되는 비전을 보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관심에서 출발했다. 관심은 민감함이다. 영적 인도자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민감함이다. 민감함이 있을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아름다움을 함께 발견하고 보살필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사랑은 헌신이다. 상대방 안에 감춰진 보화가 드러날 때까지 헌신하는 것이다. 사랑은 기다림이요 인내다.
사랑은 전체를 보는 안목이 있을 때 생기는 여유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비전과 사랑으로 대하셨다.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자. 사랑하면 비전을 보게 된다. 사람들에게 비전을 보라. 비전을 보면 사랑하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능력이 우리를 성공하도록 도와준다면 인격을 성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능력과 인격이 같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가꾼다. 인격을 아름답게 가꾼다. 인격을 갖기 위해선 절제해야 한다. 앞으로 해야 하고 이루어야 할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비전을 품은 사람은 외적으로 성장하기 전에 내적으로 성장하고 위로 성장하기 전에 아래로 성장한다.
또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다. 꿈을 성취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인격이 고상한 사람은 적다. 참된 성취한 무엇을 이루었느냐 하는 것 보단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평가하게 된다. 우리의 인격은 자신을 존경의 대상으로 세우기보다는 오직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분이심을 기억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때 형성됨을 기억하자.
비전이란 하나님의 안목으로 사람을 보는 능력이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긍정저긴 자아상은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자부심이다. 자부심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인생을 활기차게 살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모습대로 변하려면 자신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작은 생각들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미지의 세계를 행해 자신을 던진다면 당신도 깜짝 놀랄만한 미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비전의 사람은 언어의 능력을 안다. 비전의 사름은 비전을 언어로 표현한다. "비전의 사람이던 요셉은 자신의 꿈을 형제들에게 말했다. 꿈을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말로 표현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비전이었고, 하나님 백성의 비전이었다. 요셉이 말한 비전이 결국은 역사 현실로 나타났다. 하나님은 그의 비전과 언어를 따라 역사하였다."
비전이 언어로 표현될 때 구체적인 역사가 나타난다. "비전과 언어는 함께 간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그 비전을 언어로 표현한다. 또한 표현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비전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생각과 인격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눅 6:45).
비전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사람의 언어를 보면 알 수 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비전을 소유한 창조적 소수였다.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비전을 상실한 정탐꾼 열 명과 이 둘은 언어가 달랐다. 열 명은 가나안 땅을 악평하고 모세를 원망했다(민 13:32, 14:1).
그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비전을 상실했고, 가나안 땅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자신에 대한 비전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들은 가나안 사람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다"(민 13:33)고 했다. "가나안 땅을 능히 정복할 수 없다"(민 13:31)고 했다."
언어가 긍정적인 사람은 미래 지향적이다. 비전과 언어는 동행한다. "비전을 소유한 여호수아와 갈렙의 언어는 달랐다. 언어가 긍정적이었다. 적극적이었다. 미래 지향적이었다. 믿음과 확신이 가득했다. 가능성이 가득했다(민 13:30). 그들은 말속에 아름다운 미래를 담았다. 자신들의 긍정적인 자아상을 담았다.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담았다."
비전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비전을 성취해야 하고 성취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비전이 성취하는 것은 아니다. 비전을 구체적읜 행동으로 연결하고, 조직적인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생각해야 한다.
비전을 소유하고 그 비전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은 비전이라는 옷을 입고 살게 되며 비전의 옷을 입은 사람은 입은 옷에 어울리게 살아야 한다. 행동해야 하다는 것이다. 첫발을 내딛지 못하면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는 사람이 되려면 작은 것부터 집중하여 실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지체하지 말라 변명할 시간이 있으면 행동하라. 어느 날 그 작은 첫 걸음 덕분에 비전이 성취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비전은 행동을 통해서만 성취된다.
저자에 의하면 비전을 열정을 창출하고 열정은 비전을 성취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곧 비전의 하나님이며 열정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비전과 열정을 보기 위해서는 십자가 아래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날마다 열정을 품기 위해서는 게으름을 정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목표를 세우고 행동해야 하며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열정은 불이요 사랑이다. 열정은 고난 중에도 전진하게 한다. 열정은 자신을 움직일 분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열정은 닫힌 문을 열어 준다. 열정을 소유한 사람은 인생을 사랑한다.
무관심을 정복하라 무관심은 열정이 있어야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열정을 불 붙일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상상된 것을 재빨리 포착하는 이상이며 둘째는 그 이상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필요한 확고하고 지적인 계획력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슴에 품어라. 비전 성취를 위해 매일 계획을 세우라 무엇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품고 행동하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성취하고 싶다면 목표설정이 중요하다. 목표를 정한다는 것은 방향을 정한다는 뜻이다. 목표는 목적지다. 목표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행동을 수반한 꿈이다. 그 목표를 위해 삶을 투자하는 사람에게는 활기가 있고 미래 지향적으로 살게 된다.
목표를 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안다는 의미이다. 목표를 설정하려면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당신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길 원하시는 계획을 발견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려면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비전은 하나님의 원리와 방법으로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비전을 성취하려면 자기를 정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해야 한다. 능력이 있다 해도 개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능력이 있다 해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비전이 있다면 실패를 잘 관리해야 한다. 비전 성취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전이 클 수록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비전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실패하는 손님을 여러 번 맞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패를 피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실패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첫째 실패가 찾아오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둘째 실패를 경험할 때 자신을 너무 심하게 대하지 않는다. 셋째 실패를 배우지 않고 실패에서 배운다. 넷째 실패를 유익한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다섯째 실패 너머에 성공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한다. 여섯째 실패는 정지 표시가 아니라 방향 전환표시임을 기억한다. 일곱째 반복적인 실패를 경계한다. 여덟째 과거의 실패를 딛고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 인생에서 실패를 두려워 말라 오히려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라. 하나님 안에는 가능성이 충만하다. 실패를 통해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라. "최후에 웃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다."
본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 중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위대한 과업을 성취하는 것도 귀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영광의 면류관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다.
저자 강준민
서울신학대학과 아주사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미국 LA 로고스 교회를 개척했다. 2005년 현재 LA 동양선교회 담임 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지은책으로 <묵상과 영적 성숙>, <뿌리 깊은 영성>, <뿌리 깊은 영성으로 세워지는 교회>,<자아 발견과 영적 성숙> 등이 있고, 옮긴책으로 존 맥스웰의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가 있다.
비전은 보는 것이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다. 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전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기 전에 먼저 보게 하신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길은 비전을 품은 것이다.
우리는 보는 것을 얻게 되고 보는 것을 성취하게 된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비전을 소유하게 되는가?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있어야 비전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비전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조용한 곳으로 인도하신다. 그곳은 고난의 광야다.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는 빈들이다.
그리고 큐티는 조용한 시간이다. 단순히 조용한 시간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조용한 시간이다. 그러하기에 경건한 시간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의 비전을 봐야 한다.
비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다. 비전은 평범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이다.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의 차이는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비전을 소유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비전과 기도는 함께 간다. 기도하는 사람은 보게되고 보는 사람은 기도하게 된다. 기도는 우리가 하늘로 비상하게 도와주는 영혼의 날개다. 비전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일 뿐 아니라 남보다 더 많이 보는 능력이다. 기도는 많은 것을 보게 해 준다. 우리는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비전 있는 사람은 모험한다.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보화를 보는 능력이다. 본 사람은 모험한다. 모험하는 사람은 비전이 있는 사람이요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위해 모험한다. 비전과 믿음과 모험은 함께 간다.
모험을 하려면 혼동과 공허함과 두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가진 것을 버려야 하고 안전한 삶의 터전에서 떠나야 한다. 전 생애를 결단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험하는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돌아가는 나라다.
믿음으로 들어가려면 정말 전 존재를 거는 모험이 필요하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큰 모험이다.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비전을 품고 모험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모험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고 개발하고 성장하라.
비전은 앞을 보는 능력이다. 앞을 보기 위해 우린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즉 비전은 전체를 보는 비전인 동시에 한 방향을 선택하는 능력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방향을 선택해서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비전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전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열망하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거룩이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소중하게 쓰신다. 깨끗한 그릇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그렇게 쓰시려는 인물을 고난을 통해 깨끗케 하신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임 받는 비전이 있다면 거룩함을 열망하라. 거룩함보다 나은 것은 없다.
20세기 최고의 크리스천 작가 중 한 사람인 C. S. 루이스는 "거룩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룩을 정말 모르는 사람이다. 일단 거룩을 만나면 결코 거스를 수 없다."라고 했다.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기를 열망하라 거룩함을 추구하라. 하나님께 쓰임 받는 비전은 거룩과 동반자다.
비전과 사랑은 함께 간다. 비전의 능력과 사랑의 능력은 함께 간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사랑의 눈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 속에서 비전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예수님의 눈은 사랑의 눈이다. 사랑의 눈으로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비전을 보셨다. 쓸모없는 인물이 복음을 위해 쓸모 있는 인물이 되는 비전을 보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관심에서 출발했다. 관심은 민감함이다. 영적 인도자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민감함이다. 민감함이 있을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아름다움을 함께 발견하고 보살필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가치를 부여한다. 또한 사랑은 헌신이다. 상대방 안에 감춰진 보화가 드러날 때까지 헌신하는 것이다. 사랑은 기다림이요 인내다.
사랑은 전체를 보는 안목이 있을 때 생기는 여유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비전과 사랑으로 대하셨다.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자. 사랑하면 비전을 보게 된다. 사람들에게 비전을 보라. 비전을 보면 사랑하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능력이 우리를 성공하도록 도와준다면 인격을 성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능력과 인격이 같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가꾼다. 인격을 아름답게 가꾼다. 인격을 갖기 위해선 절제해야 한다. 앞으로 해야 하고 이루어야 할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비전을 품은 사람은 외적으로 성장하기 전에 내적으로 성장하고 위로 성장하기 전에 아래로 성장한다.
또한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다. 꿈을 성취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인격이 고상한 사람은 적다. 참된 성취한 무엇을 이루었느냐 하는 것 보단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평가하게 된다. 우리의 인격은 자신을 존경의 대상으로 세우기보다는 오직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분이심을 기억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때 형성됨을 기억하자.
비전이란 하나님의 안목으로 사람을 보는 능력이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긍정저긴 자아상은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자부심이다. 자부심이 있으면 자신감이 생기고 인생을 활기차게 살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모습대로 변하려면 자신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작은 생각들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미지의 세계를 행해 자신을 던진다면 당신도 깜짝 놀랄만한 미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비전의 사람은 언어의 능력을 안다. 비전의 사름은 비전을 언어로 표현한다. "비전의 사람이던 요셉은 자신의 꿈을 형제들에게 말했다. 꿈을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말로 표현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비전이었고, 하나님 백성의 비전이었다. 요셉이 말한 비전이 결국은 역사 현실로 나타났다. 하나님은 그의 비전과 언어를 따라 역사하였다."
비전이 언어로 표현될 때 구체적인 역사가 나타난다. "비전과 언어는 함께 간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그 비전을 언어로 표현한다. 또한 표현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비전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생각과 인격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눅 6:45).
비전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 사람의 언어를 보면 알 수 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비전을 소유한 창조적 소수였다.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비전을 상실한 정탐꾼 열 명과 이 둘은 언어가 달랐다. 열 명은 가나안 땅을 악평하고 모세를 원망했다(민 13:32, 14:1).
그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비전을 상실했고, 가나안 땅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자신에 대한 비전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들은 가나안 사람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다"(민 13:33)고 했다. "가나안 땅을 능히 정복할 수 없다"(민 13:31)고 했다."
언어가 긍정적인 사람은 미래 지향적이다. 비전과 언어는 동행한다. "비전을 소유한 여호수아와 갈렙의 언어는 달랐다. 언어가 긍정적이었다. 적극적이었다. 미래 지향적이었다. 믿음과 확신이 가득했다. 가능성이 가득했다(민 13:30). 그들은 말속에 아름다운 미래를 담았다. 자신들의 긍정적인 자아상을 담았다.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담았다."
비전을 가슴에 품은 사람은 비전을 성취해야 하고 성취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비전이 성취하는 것은 아니다. 비전을 구체적읜 행동으로 연결하고, 조직적인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생각해야 한다.
비전을 소유하고 그 비전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은 비전이라는 옷을 입고 살게 되며 비전의 옷을 입은 사람은 입은 옷에 어울리게 살아야 한다. 행동해야 하다는 것이다. 첫발을 내딛지 못하면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는 사람이 되려면 작은 것부터 집중하여 실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지체하지 말라 변명할 시간이 있으면 행동하라. 어느 날 그 작은 첫 걸음 덕분에 비전이 성취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비전은 행동을 통해서만 성취된다.
저자에 의하면 비전을 열정을 창출하고 열정은 비전을 성취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곧 비전의 하나님이며 열정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비전과 열정을 보기 위해서는 십자가 아래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날마다 열정을 품기 위해서는 게으름을 정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목표를 세우고 행동해야 하며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열정은 불이요 사랑이다. 열정은 고난 중에도 전진하게 한다. 열정은 자신을 움직일 분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열정은 닫힌 문을 열어 준다. 열정을 소유한 사람은 인생을 사랑한다.
무관심을 정복하라 무관심은 열정이 있어야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열정을 불 붙일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상상된 것을 재빨리 포착하는 이상이며 둘째는 그 이상을 실천으로 옮기는데 필요한 확고하고 지적인 계획력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슴에 품어라. 비전 성취를 위해 매일 계획을 세우라 무엇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품고 행동하라.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성취하고 싶다면 목표설정이 중요하다. 목표를 정한다는 것은 방향을 정한다는 뜻이다. 목표는 목적지다. 목표는 단순한 꿈이 아니다. 행동을 수반한 꿈이다. 그 목표를 위해 삶을 투자하는 사람에게는 활기가 있고 미래 지향적으로 살게 된다.
목표를 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안다는 의미이다. 목표를 설정하려면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당신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길 원하시는 계획을 발견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려면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비전은 하나님의 원리와 방법으로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비전을 성취하려면 자기를 정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해야 한다. 능력이 있다 해도 개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능력이 있다 해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비전이 있다면 실패를 잘 관리해야 한다. 비전 성취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전이 클 수록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비전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실패하는 손님을 여러 번 맞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실패를 피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실패를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첫째 실패가 찾아오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둘째 실패를 경험할 때 자신을 너무 심하게 대하지 않는다. 셋째 실패를 배우지 않고 실패에서 배운다. 넷째 실패를 유익한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다섯째 실패 너머에 성공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한다. 여섯째 실패는 정지 표시가 아니라 방향 전환표시임을 기억한다. 일곱째 반복적인 실패를 경계한다. 여덟째 과거의 실패를 딛고 미래를 향해 전진한다. 인생에서 실패를 두려워 말라 오히려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라. 하나님 안에는 가능성이 충만하다. 실패를 통해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라. "최후에 웃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다."
본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 중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위대한 과업을 성취하는 것도 귀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영광의 면류관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다.
저자 강준민
서울신학대학과 아주사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미국 LA 로고스 교회를 개척했다. 2005년 현재 LA 동양선교회 담임 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지은책으로 <묵상과 영적 성숙>, <뿌리 깊은 영성>, <뿌리 깊은 영성으로 세워지는 교회>,<자아 발견과 영적 성숙> 등이 있고, 옮긴책으로 존 맥스웰의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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