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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또 하나의 '몸으로 드리는 기도'
몸으로 드리는 기도/F.S. 우엘너/서창원/대한기독교서회/[안영혁]
다음 학기에 총신 신대원에서 기도와 관련한 강의가 있는지라, 요즈음 부쩍 기도라는 말만 붙어 있으면 그 책에 관심이 생긴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 기도 주제의 서가를 살피고 있는데, "몸으로 드리는 기도"라는 최근에 익숙한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크리스찬 북뉴스 서평에 이미 실레스트 스노우버의 "몸으로 드리는 기도"를 서평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 서가에 꽂힌 책은 그 책이 아니라 다른 저자의 것이었다. "몸으로 드리는 기도" 그것은 Flora Slosson Wuellner(우엘너)의 것이었다. 출판사도 달랐다. 스노우버의 것은 ivp였고 이 책은 기독교서회에서 나왔다. 똑 같은 이름으로 책이 두 권이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왔다. 그래서 책을 꺼내서 읽게 되었는데, 이미 읽은 그 책 못지 않게 유익한 책이었다. 그래서 같은 이름의 책을 다시 소개하게 되었다.
스노우버의 책은 기독교인 무용가로서 어떻게 하나님께 정말 몸의 움직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까 생각하는 책이었다. 우엘너의 책은 그와는 달랐다. 그녀는 미국 연합 그리스도 교회(U.C.C.)의 목사이며 영성 지도자로서 사람들의 내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몸으로 드리는 기도"도 그런 책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스노우버는 몸이 가지고 있는 상처에 대해서는 그리 큰 부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단 스노우버도 몸에 대해서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하기는 했었다. 몸으로 기도드리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나를 막아서는 일은 내 몸이 별 잘난 몸이 아니고 그냥 보통의 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운 춤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생각하면 시초부터 틀려진다고 말한 바가 있다. 바로 이런 면에 우엘너는 훨씬 진지하다. 우엘너는 이 책의 맨 처음에 몸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정말 정신보다 하등한 것으로, 혹은 내가 중요한 일을 할 때 그 뒤를 받쳐주는 종과 같은 것으로 오랜 동안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뿌리깊은 영육이원론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엘너가 묻는 물음 하나가 참 시사적이다, "내 몸은 누구인가?" 그녀는 "내 몸은 무엇인가?"하고 물어보다가 마음을 고쳐서 이렇게 묻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의 몸은 '누구'가 아니라 '무엇'의 반열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진정한 중요성을 따라 이제 무엇에서 '누구'에로 끌어올리자고 하는 것이다.
몸과의 화해를 말하면서, 그녀는 골방에서 자기 몸을 다 더듬어 보고 살펴볼 것을 권한다. 그래서 내가 정말 거북스럽거나 못났다고 여겨서 생각하기도 싫어해 온 내 몸의 부분이 어딘지 상기하도록 한다. 오늘처럼 외모에 혹하는 세상에서 꼭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라 여겨서 나는 우리 교회 주일 오후 예배시간에 한 번 이 이야기를 해 보았다. 각자의 사람들이 자기 몸에서 못났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다 이야기해 보도록 했다. 요즈음 들어서 아주 사변적이던 목사가 몸에 관한 이야기를 자꾸 하니까 성도들이 적응이 안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참 설렁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만큼의 접근이 될까 내심 두려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그런 우려는 멀리 물러갔다. 사람들은 마치 언젠가는 한 번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듯이 자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말솜씨가 어디로 가겠는가? 사람에 따라서는 더듬거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야기 자체를 맛깔스럽게 했다. 그러나 그 맛이 어떻든지간에 성도들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 한참동안 이 몸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대화에 올렸다.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면모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우엘너는 이렇게 내가 내 몸을 팽개쳐버리지 않고 돌아보는 것만 해도 그 자체로서 하나님께는 기도라고 한다. 고린도 전서 6장 19-20절에서는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아끼시는 것이며, 그 아끼심에 응답하는 우리의 태도는 바로 기도라는 것이다.
어찌 단지 그것만이 기도로서 의미가 있겠는가? 몸과의 화해를 이끌어 냄으로써 우리의 기도는 구체성을 띠게 되고, 구체성을 띠게 되는 그만큼 또 진실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영성지도자 답게 이야기를 하나 하나 끄집어 내면서 그 후반부에다가 영성 수련의 방법을 실어 두었다. 그 수련법들은 아주 그럴싸하게 꾸며진 훈련법은 아니지만, 정말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기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엘너는 이 책 속에서 몸은 육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몸은 마침내 우리의 총체를 드러내는 그 무엇이다. 그런만큼 단지 몸의 이런 저런 부위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작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내면 속으로 어느 사이 이끌려 들어간다. 바로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훌륭한 영성 수련서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어느 수도원에서 반드시 했음직한 수련의 방법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널리 행한 것은 아닐, 아주 실제적이면서도 아주 신앙적인 수련의 과정이 야금 야금 펼쳐진다.
내 몸과의 화해는 단지 몸도 중하게 여기는 수준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실마리를 얻게 되고, 아울러 우리 자신을 통전적으로 보되, 사변적인 시야가 아니라 구체성의 시야로 바라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화해는 이웃과의 화해도 이끌어 내고, 연이어 하나님 앞에 더욱 아이답고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가게 한다. 우리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 형상의 아름다운 것을 잃어버리고 나 자신과도 이웃과도 하나님과도 그리고 자연과도 화합하지 못하는 존재로 살고 있는데, 그리스도로 통하여 이런 부조화를 극복하는 것이 복음의 실상 아닌가? 그런 면에서 우엘너의 몸으로 드리는 기도는 이런 복음의 구체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각 논의가 진행된 뒤에 수련법을 하나씩 붙여 놓았기 때문에 영성 훈련이 필요한 공동체에 매우 유익한 책으로 생각된다. 물론 사람이 얕은 꾀로 이것을 가지고 그저 그럴 듯하게 시간을 때워 보려고 생각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설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화려하고 재미난 일들은 눈을 부라리고 찾으면 어디에나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한 번 나의 영은 무엇인지, 하나님을 정말 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마음이 생길 때 한 번 읽어봄직한 책이다. 제목 자체는 가장 외적인 그 무엇을 찾아보려고 하는 시도 같지만, 오히려 극히 내면성을 잘 받아내는 책으로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말하자면 균형적인 영성을 위하여 도움이 될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훈련 프로그램 자체를 좀더 풀어서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들어갈 여백이라고도 생각된다.
신앙과 영성에 크게 도움이 될 책이다.
저자 프로라 스로손 우엘너
영성 지도자로 널리 알려진 미국 연합 그리스도교회 목사이다.
다음 학기에 총신 신대원에서 기도와 관련한 강의가 있는지라, 요즈음 부쩍 기도라는 말만 붙어 있으면 그 책에 관심이 생긴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 기도 주제의 서가를 살피고 있는데, "몸으로 드리는 기도"라는 최근에 익숙한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크리스찬 북뉴스 서평에 이미 실레스트 스노우버의 "몸으로 드리는 기도"를 서평한 바가 있다. 그런데 이 서가에 꽂힌 책은 그 책이 아니라 다른 저자의 것이었다. "몸으로 드리는 기도" 그것은 Flora Slosson Wuellner(우엘너)의 것이었다. 출판사도 달랐다. 스노우버의 것은 ivp였고 이 책은 기독교서회에서 나왔다. 똑 같은 이름으로 책이 두 권이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왔다. 그래서 책을 꺼내서 읽게 되었는데, 이미 읽은 그 책 못지 않게 유익한 책이었다. 그래서 같은 이름의 책을 다시 소개하게 되었다.
스노우버의 책은 기독교인 무용가로서 어떻게 하나님께 정말 몸의 움직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까 생각하는 책이었다. 우엘너의 책은 그와는 달랐다. 그녀는 미국 연합 그리스도 교회(U.C.C.)의 목사이며 영성 지도자로서 사람들의 내적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몸으로 드리는 기도"도 그런 책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스노우버는 몸이 가지고 있는 상처에 대해서는 그리 큰 부분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단 스노우버도 몸에 대해서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하기는 했었다. 몸으로 기도드리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나를 막아서는 일은 내 몸이 별 잘난 몸이 아니고 그냥 보통의 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운 춤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생각하면 시초부터 틀려진다고 말한 바가 있다. 바로 이런 면에 우엘너는 훨씬 진지하다. 우엘너는 이 책의 맨 처음에 몸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정말 정신보다 하등한 것으로, 혹은 내가 중요한 일을 할 때 그 뒤를 받쳐주는 종과 같은 것으로 오랜 동안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뿌리깊은 영육이원론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엘너가 묻는 물음 하나가 참 시사적이다, "내 몸은 누구인가?" 그녀는 "내 몸은 무엇인가?"하고 물어보다가 마음을 고쳐서 이렇게 묻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의 몸은 '누구'가 아니라 '무엇'의 반열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진정한 중요성을 따라 이제 무엇에서 '누구'에로 끌어올리자고 하는 것이다.
몸과의 화해를 말하면서, 그녀는 골방에서 자기 몸을 다 더듬어 보고 살펴볼 것을 권한다. 그래서 내가 정말 거북스럽거나 못났다고 여겨서 생각하기도 싫어해 온 내 몸의 부분이 어딘지 상기하도록 한다. 오늘처럼 외모에 혹하는 세상에서 꼭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라 여겨서 나는 우리 교회 주일 오후 예배시간에 한 번 이 이야기를 해 보았다. 각자의 사람들이 자기 몸에서 못났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다 이야기해 보도록 했다. 요즈음 들어서 아주 사변적이던 목사가 몸에 관한 이야기를 자꾸 하니까 성도들이 적응이 안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참 설렁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만큼의 접근이 될까 내심 두려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그런 우려는 멀리 물러갔다. 사람들은 마치 언젠가는 한 번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듯이 자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말솜씨가 어디로 가겠는가? 사람에 따라서는 더듬거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야기 자체를 맛깔스럽게 했다. 그러나 그 맛이 어떻든지간에 성도들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 한참동안 이 몸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대화에 올렸다.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면모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우엘너는 이렇게 내가 내 몸을 팽개쳐버리지 않고 돌아보는 것만 해도 그 자체로서 하나님께는 기도라고 한다. 고린도 전서 6장 19-20절에서는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아끼시는 것이며, 그 아끼심에 응답하는 우리의 태도는 바로 기도라는 것이다.
어찌 단지 그것만이 기도로서 의미가 있겠는가? 몸과의 화해를 이끌어 냄으로써 우리의 기도는 구체성을 띠게 되고, 구체성을 띠게 되는 그만큼 또 진실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영성지도자 답게 이야기를 하나 하나 끄집어 내면서 그 후반부에다가 영성 수련의 방법을 실어 두었다. 그 수련법들은 아주 그럴싸하게 꾸며진 훈련법은 아니지만, 정말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기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엘너는 이 책 속에서 몸은 육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몸은 마침내 우리의 총체를 드러내는 그 무엇이다. 그런만큼 단지 몸의 이런 저런 부위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시작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내면 속으로 어느 사이 이끌려 들어간다. 바로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훌륭한 영성 수련서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어느 수도원에서 반드시 했음직한 수련의 방법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널리 행한 것은 아닐, 아주 실제적이면서도 아주 신앙적인 수련의 과정이 야금 야금 펼쳐진다.
내 몸과의 화해는 단지 몸도 중하게 여기는 수준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실마리를 얻게 되고, 아울러 우리 자신을 통전적으로 보되, 사변적인 시야가 아니라 구체성의 시야로 바라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화해는 이웃과의 화해도 이끌어 내고, 연이어 하나님 앞에 더욱 아이답고 솔직한 모습으로 다가가게 한다. 우리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 형상의 아름다운 것을 잃어버리고 나 자신과도 이웃과도 하나님과도 그리고 자연과도 화합하지 못하는 존재로 살고 있는데, 그리스도로 통하여 이런 부조화를 극복하는 것이 복음의 실상 아닌가? 그런 면에서 우엘너의 몸으로 드리는 기도는 이런 복음의 구체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각 논의가 진행된 뒤에 수련법을 하나씩 붙여 놓았기 때문에 영성 훈련이 필요한 공동체에 매우 유익한 책으로 생각된다. 물론 사람이 얕은 꾀로 이것을 가지고 그저 그럴 듯하게 시간을 때워 보려고 생각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설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화려하고 재미난 일들은 눈을 부라리고 찾으면 어디에나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한 번 나의 영은 무엇인지, 하나님을 정말 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마음이 생길 때 한 번 읽어봄직한 책이다. 제목 자체는 가장 외적인 그 무엇을 찾아보려고 하는 시도 같지만, 오히려 극히 내면성을 잘 받아내는 책으로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말하자면 균형적인 영성을 위하여 도움이 될 좋은 책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훈련 프로그램 자체를 좀더 풀어서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들어갈 여백이라고도 생각된다.
신앙과 영성에 크게 도움이 될 책이다.
저자 프로라 스로손 우엘너
영성 지도자로 널리 알려진 미국 연합 그리스도교회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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