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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판타지와 영성의 만남
공주와 고블린/조지 맥도널드/정회성/웅진/[나상엽]
[부제:조지 맥도널드 소개]
C. S. 루이스와 조지 맥도널드
C. S. 루이스의 독자들이라면 조지 맥도널드의 이름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가 그의 자서전적인 책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홍성사)에서 그의 회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책으로 맥도널드의 『판타스테스Phantastes』를 언급하고 있기에 , 이미 루이스의 독자들은 조지 맥도널드라는 이름을 새겨두었을 것이며, 그의 책이 국내에 소개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국내에 소개된 맥도널드의 책은 2002년과 2003년 판타지 문학의 유행을 따라 출간된 5권의 동화책이 전부이다. 그것도 그의 대표작 『북풍의 등에서At the Back of North Wind』를 현대지성사와 웅진에서 펴낸 것을 계산에 넣었을 때에나 그렇다.
그에 대해서 영미문학계에서는 판타지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호칭으로 부르고 있으며, C. S. 루이스를 비롯해 『반지의 제왕』의 톨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루이스 캐럴 등은 그를 문학적 스승으로 대접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그의 책들의 출간이 더딘 것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지만, 어떻든 이런 현실 속에서 일반 출판계에서나마 그를 발굴해준 것만 해도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조지 맥도널드를 읽는 데에는 사실 약간의 역후광 효과를 감수해야 한다. 실제의 영향 관계에 있어서는 맥도널드를 통해 루이스를 읽어야 순서이겠지만, 국내에 소개된 순서로는 루이스를 통해서 비로소 맥도널드가 소개되었기에, 루이스의 역후광 가운데 맥도널드를 접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 서평도 아직은 그 후광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루이스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라면 대개 그의 문학적 상상력 속에 녹아든 빛나는 지성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지성과 감성이 통전적으로 결합된 영성을 자신도 모르게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루이스를 더 공부하고 싶은 이들은 영문학(특히 신화와 동화)을 통한 접근을 하거나, 아니면 영성의 맥락에서 접근을 해도 좋은 공부가 될 터인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조지 맥도널드도 다르지 않다. 본 서평은 맥도널드의 『공주와 고블린』을 중심으로 판타지와 영성의 결합의 관점으로 접근한 글이다.
판타지와 영성의 결합
영국 판타지 문학의 선구자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저 유명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를 판타지로 분류하는 데에는 이의가 있겠지만)을 비롯해서 『걸리버 여행기』의 조나단 스위프트, 지금 언급하고 있는 조지 맥도널드, 『브라운 신부』의 G. K. 체스터튼, 톨킨이나 루이스 등이 바로 그들이다.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쉽게 말해서 “다른 세계”에 대한 믿음이기에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 역시 하나의 판타지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엄밀하게 말해서 그들의 것들 중 다수는 판타지이기보다는 그 이상으로서, 초자연적인 요소의 역할로 인해 “경이(The Wonder)”라 할 수도 있다. 바로 이 경이 때문에 판타지에서 더 나아가 영성에까지 맞닿아 있는 문이 열려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 맥도널드의 『공주와 고블린』에서 등장하는 아이린의 “고고고조 할머니”가 그 좋은 예이다.
그 할머니는 여전히 젊음의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연륜에서 오는 지혜가 완벽히 조화된 여인이다. 어떻게 젊으면서 늙을 수 있겠는가? 또한 그녀는 항상 있어왔던 존재로 묘사된다. 아이린이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그녀는 줄곧 거기 있어왔다. 게다가 그녀는 아이린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었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주고도 똑같이 쓸 수 있는 것들”을 아주 많이 갖고 있는 존재. 그녀는 아이린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어머니”라고 자신을 밝힌다. 그녀가 저 멀리서 소녀 아이린을 낳은 것이다: 아이린의 근원자. 아이린이 그녀를 만나려면 그녀가 실재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녀와의 만남을 “꿈이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다. 그녀는 신비한 시간과 공간에서 살고 있는 듯 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신비로운 방법으로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도 하며, 신비한 방법으로 치료하며 돕는다. 이 책을 기독교적 알레고리로 읽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 감상을 해칠 수 있음에도, 이와 같은 그녀에 관한 묘사가 영원자(the Eternal)에 대한 성서의 묘사를(그것도 모성적 이미지의!) 떠올리게 하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는 없다.
이렇게, 판타지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서 고고조 할머니를 빼놓을 수 없지만, 그녀가 전부는 아니다. 『공주와 고블린』에 등장하는 인물(Person)들과 배경은 다 각각 통전적인 영성의 부분들을 이루며 조화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맥도널드를 펠라기우스를 시발점으로 보는 소위 켈트 영성의 흐름아래 편입시킬 수 있다. 펠라기우스가 이미 그의 시대에 이단으로 정죄받았고, 오늘날에도 이단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기에 어쩌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들의 영성은 초대교회 이래 다양한 신학적 조류사이의 대결구도에서 승리한 이들에 의해 도매금으로 평가절하된 부분이 많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펠라기우스주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켈트 영성에서 배울 것들을 배우고자 하는 정도이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원죄론, 따라서 하나님과 창조세계와의 철저한 분리라는 대세를 아무런 평가나 판단 없이 "모든 상황과 모든 경우에 적용하려는" 무리한 시도로 인해, 아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선을 부분적으로 간직한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만유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다시 말해 “삶의 전체성 안에서 하나님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 것”으로 대표되는 켈트 영성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다.
『공주와 고블린』에서, 지하세계의 고블린들도 “한 때는 인간들처럼 땅 위에서” 살았던 존재들이었으며, 나중에 “그들의 머리가 점점 부드러워졌고 발은 더욱더 단단해졌다. 그들은 산에서 사는 사람들, 심지어 광부들과도 사이가 좋아져 나중에 친구처럼 지냈다.” 고블린은 자신들의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더 환하고 높은 곳에서 더 아름답고 조화로운 통합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어두움이 하나님의 빛을 본질적으로 이기지 못한다는 켈트 영성의 대표적 희망의 한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블린으로 대표되는 악에 대해 그저 낭만적이고 긍정적인 시선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본서에서 고블린이 공주의 집에서 가장 기초적인 곳을 위협하는 것으로 그려지듯, 악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깊숙한 곳에서 근본을 뒤흔드는 것임을, 그래서 커디가 그렇게 했듯 그 어두움의 세력에 대적하기 위해 준비하고 싸워야 할 것임을 간과하지 않는다. 물론, 종국에는 심지어 사탄까지도 회개하여 그의 본래적 빛의 천사의 역할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맥도널드의 믿음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빛되신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 그에게는 어둠과 빛이 일반일 정도로 온전한 그 빛,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믿음은 우리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주인공인 아이린 공주와 광부소년 커디도 주목할 만하다. 어리고 수줍은 그들의 입맞춤은 왕족과 광부의 통합의 한 예로서, 잔재한 봉건주의가 자본주의와 맞물리며 경제수준으로 다시 계급이 재편성되며 여전히 배타적인 당시 산업사회(또한 현대)를 향한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교인과 교인이 아닌 자들, 영국인과 이방인들, 택함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을 나누곤 했던, 또한 교회와 성서와 성례전에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고 했던 당시의 기독교계를 떠올려보라. 따라서 아이린 공주와 커디의 입맞춤은, 교회의 벽, 사회 제도의 벽을 넘어서 세상의 삶 깊숙이 들어가고자 했던, 그리하여 창조의 물질적 영역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성을 찾아내고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영성의 표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린 공주의 유모 루티는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하며, 그들의 소유와 사회적 지위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근․현대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결말에 그녀마저 어느 정도 변화된 것을 본다는 것은, 고블린의 변화와 아울러 선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낙관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어린 아이 같은 이들을 위해
조지 맥도널드는 고대 영성의 흐름을 표현하는 새로운 통로로서 짧은 이야기와 소설의 형태를 사용했다. 따라서 그의 이야기들은 자신의 영성을 구체화한 산물들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린이들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을 위해 쓴다고 했다. 어린아이만큼 영원을 지금 경험하는 이들이 있을까? 그들의 눈만큼 모든 천지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밝은 눈이 있을까? 그들처럼 "본래적 창조의 축복"에 가까운 이들이 있을까?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선악과를 따먹은 어른들의 밝아진 눈(창 3:7)은 참으로 밝아진 것이었던가?
참으로 우리의 눈이 밝아지길! 뱀이면서 동시에 용인, "죄 아래 있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존재"인 우리 인간의 모습을 순전하게 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시는(엡 1:10)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purpose of calling, 엡 1:18)을 실현할 수 있기를!
* 아래는 본 서평을 쓰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참고가 되었던 도서들과 웹사이트이다.
1. 조지 맥도널드의 작품
-가벼운 공주, 조지 맥도널드, 우리교육, 2004년 7월
-북풍의 등에서, 현대지성사, 2003년 8월
-북풍의 등에서, 웅진, 2003년 6월
-공주와 난장이․ 공주와 커디, 현대지성사, 2003년 8월
2. 기타 문헌
-판타지(톨킨, 루이스, 롤링의 환상 세계와 기독교), 살림지식총서 47, 송태현, 살림, 2003년
-켈트 영성 이야기, 필립 뉴엘, 정미현, 대한기독교서회, 2001년 9월
3. 웹사이트
-www.ccel.org : 맥도널드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www.johannesen.com : 맥도널드에 대한 소개와 작품들, 도서 목록을 볼 수 있다.
저자 조지 맥도널드 (George Macdonald)
1824년 스코틀랜드 헌틀리에서 태어났다. 애버딘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목사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 어린이를 위한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런던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고, 가족 극단을 조직해 공연을 했다.
지은 책으로 <공주와 고블린>, <북풍의 등에서>, <공주와 커디>, <요정들과의 거래>, <황금 열쇠> 등이 있다.
[부제:조지 맥도널드 소개]
C. S. 루이스와 조지 맥도널드
C. S. 루이스의 독자들이라면 조지 맥도널드의 이름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가 그의 자서전적인 책 『예기치 못한 기쁨Surprised by Joy』(홍성사)에서 그의 회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책으로 맥도널드의 『판타스테스Phantastes』를 언급하고 있기에 , 이미 루이스의 독자들은 조지 맥도널드라는 이름을 새겨두었을 것이며, 그의 책이 국내에 소개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국내에 소개된 맥도널드의 책은 2002년과 2003년 판타지 문학의 유행을 따라 출간된 5권의 동화책이 전부이다. 그것도 그의 대표작 『북풍의 등에서At the Back of North Wind』를 현대지성사와 웅진에서 펴낸 것을 계산에 넣었을 때에나 그렇다.
그에 대해서 영미문학계에서는 판타지의 아버지라는 영예로운 호칭으로 부르고 있으며, C. S. 루이스를 비롯해 『반지의 제왕』의 톨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루이스 캐럴 등은 그를 문학적 스승으로 대접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그의 책들의 출간이 더딘 것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지만, 어떻든 이런 현실 속에서 일반 출판계에서나마 그를 발굴해준 것만 해도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조지 맥도널드를 읽는 데에는 사실 약간의 역후광 효과를 감수해야 한다. 실제의 영향 관계에 있어서는 맥도널드를 통해 루이스를 읽어야 순서이겠지만, 국내에 소개된 순서로는 루이스를 통해서 비로소 맥도널드가 소개되었기에, 루이스의 역후광 가운데 맥도널드를 접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 서평도 아직은 그 후광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루이스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라면 대개 그의 문학적 상상력 속에 녹아든 빛나는 지성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지성과 감성이 통전적으로 결합된 영성을 자신도 모르게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루이스를 더 공부하고 싶은 이들은 영문학(특히 신화와 동화)을 통한 접근을 하거나, 아니면 영성의 맥락에서 접근을 해도 좋은 공부가 될 터인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조지 맥도널드도 다르지 않다. 본 서평은 맥도널드의 『공주와 고블린』을 중심으로 판타지와 영성의 결합의 관점으로 접근한 글이다.
판타지와 영성의 결합
영국 판타지 문학의 선구자들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저 유명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를 판타지로 분류하는 데에는 이의가 있겠지만)을 비롯해서 『걸리버 여행기』의 조나단 스위프트, 지금 언급하고 있는 조지 맥도널드, 『브라운 신부』의 G. K. 체스터튼, 톨킨이나 루이스 등이 바로 그들이다.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쉽게 말해서 “다른 세계”에 대한 믿음이기에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 역시 하나의 판타지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엄밀하게 말해서 그들의 것들 중 다수는 판타지이기보다는 그 이상으로서, 초자연적인 요소의 역할로 인해 “경이(The Wonder)”라 할 수도 있다. 바로 이 경이 때문에 판타지에서 더 나아가 영성에까지 맞닿아 있는 문이 열려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 맥도널드의 『공주와 고블린』에서 등장하는 아이린의 “고고고조 할머니”가 그 좋은 예이다.
그 할머니는 여전히 젊음의 신선함과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연륜에서 오는 지혜가 완벽히 조화된 여인이다. 어떻게 젊으면서 늙을 수 있겠는가? 또한 그녀는 항상 있어왔던 존재로 묘사된다. 아이린이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그녀는 줄곧 거기 있어왔다. 게다가 그녀는 아이린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었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주고도 똑같이 쓸 수 있는 것들”을 아주 많이 갖고 있는 존재. 그녀는 아이린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어머니”라고 자신을 밝힌다. 그녀가 저 멀리서 소녀 아이린을 낳은 것이다: 아이린의 근원자. 아이린이 그녀를 만나려면 그녀가 실재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녀와의 만남을 “꿈이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다. 그녀는 신비한 시간과 공간에서 살고 있는 듯 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신비로운 방법으로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도 하며, 신비한 방법으로 치료하며 돕는다. 이 책을 기독교적 알레고리로 읽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 감상을 해칠 수 있음에도, 이와 같은 그녀에 관한 묘사가 영원자(the Eternal)에 대한 성서의 묘사를(그것도 모성적 이미지의!) 떠올리게 하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는 없다.
이렇게, 판타지에서 영성으로 넘어가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로서 고고조 할머니를 빼놓을 수 없지만, 그녀가 전부는 아니다. 『공주와 고블린』에 등장하는 인물(Person)들과 배경은 다 각각 통전적인 영성의 부분들을 이루며 조화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맥도널드를 펠라기우스를 시발점으로 보는 소위 켈트 영성의 흐름아래 편입시킬 수 있다. 펠라기우스가 이미 그의 시대에 이단으로 정죄받았고, 오늘날에도 이단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기에 어쩌면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들의 영성은 초대교회 이래 다양한 신학적 조류사이의 대결구도에서 승리한 이들에 의해 도매금으로 평가절하된 부분이 많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펠라기우스주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켈트 영성에서 배울 것들을 배우고자 하는 정도이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원죄론, 따라서 하나님과 창조세계와의 철저한 분리라는 대세를 아무런 평가나 판단 없이 "모든 상황과 모든 경우에 적용하려는" 무리한 시도로 인해, 아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선을 부분적으로 간직한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만유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다시 말해 “삶의 전체성 안에서 하나님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는 것”으로 대표되는 켈트 영성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다.
『공주와 고블린』에서, 지하세계의 고블린들도 “한 때는 인간들처럼 땅 위에서” 살았던 존재들이었으며, 나중에 “그들의 머리가 점점 부드러워졌고 발은 더욱더 단단해졌다. 그들은 산에서 사는 사람들, 심지어 광부들과도 사이가 좋아져 나중에 친구처럼 지냈다.” 고블린은 자신들의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이지만, 더 환하고 높은 곳에서 더 아름답고 조화로운 통합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어두움이 하나님의 빛을 본질적으로 이기지 못한다는 켈트 영성의 대표적 희망의 한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블린으로 대표되는 악에 대해 그저 낭만적이고 긍정적인 시선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본서에서 고블린이 공주의 집에서 가장 기초적인 곳을 위협하는 것으로 그려지듯, 악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깊숙한 곳에서 근본을 뒤흔드는 것임을, 그래서 커디가 그렇게 했듯 그 어두움의 세력에 대적하기 위해 준비하고 싸워야 할 것임을 간과하지 않는다. 물론, 종국에는 심지어 사탄까지도 회개하여 그의 본래적 빛의 천사의 역할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맥도널드의 믿음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빛되신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 그에게는 어둠과 빛이 일반일 정도로 온전한 그 빛,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믿음은 우리도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주인공인 아이린 공주와 광부소년 커디도 주목할 만하다. 어리고 수줍은 그들의 입맞춤은 왕족과 광부의 통합의 한 예로서, 잔재한 봉건주의가 자본주의와 맞물리며 경제수준으로 다시 계급이 재편성되며 여전히 배타적인 당시 산업사회(또한 현대)를 향한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교인과 교인이 아닌 자들, 영국인과 이방인들, 택함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을 나누곤 했던, 또한 교회와 성서와 성례전에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고 했던 당시의 기독교계를 떠올려보라. 따라서 아이린 공주와 커디의 입맞춤은, 교회의 벽, 사회 제도의 벽을 넘어서 세상의 삶 깊숙이 들어가고자 했던, 그리하여 창조의 물질적 영역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성을 찾아내고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영성의 표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린 공주의 유모 루티는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 하며, 그들의 소유와 사회적 지위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근․현대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결말에 그녀마저 어느 정도 변화된 것을 본다는 것은, 고블린의 변화와 아울러 선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낙관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어린 아이 같은 이들을 위해
조지 맥도널드는 고대 영성의 흐름을 표현하는 새로운 통로로서 짧은 이야기와 소설의 형태를 사용했다. 따라서 그의 이야기들은 자신의 영성을 구체화한 산물들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린이들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을 위해 쓴다고 했다. 어린아이만큼 영원을 지금 경험하는 이들이 있을까? 그들의 눈만큼 모든 천지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밝은 눈이 있을까? 그들처럼 "본래적 창조의 축복"에 가까운 이들이 있을까?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선악과를 따먹은 어른들의 밝아진 눈(창 3:7)은 참으로 밝아진 것이었던가?
참으로 우리의 눈이 밝아지길! 뱀이면서 동시에 용인, "죄 아래 있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존재"인 우리 인간의 모습을 순전하게 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시는(엡 1:10)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purpose of calling, 엡 1:18)을 실현할 수 있기를!
* 아래는 본 서평을 쓰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참고가 되었던 도서들과 웹사이트이다.
1. 조지 맥도널드의 작품
-가벼운 공주, 조지 맥도널드, 우리교육, 2004년 7월
-북풍의 등에서, 현대지성사, 2003년 8월
-북풍의 등에서, 웅진, 2003년 6월
-공주와 난장이․ 공주와 커디, 현대지성사, 2003년 8월
2. 기타 문헌
-판타지(톨킨, 루이스, 롤링의 환상 세계와 기독교), 살림지식총서 47, 송태현, 살림, 2003년
-켈트 영성 이야기, 필립 뉴엘, 정미현, 대한기독교서회, 2001년 9월
3. 웹사이트
-www.ccel.org : 맥도널드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www.johannesen.com : 맥도널드에 대한 소개와 작품들, 도서 목록을 볼 수 있다.
저자 조지 맥도널드 (George Macdonald)
1824년 스코틀랜드 헌틀리에서 태어났다. 애버딘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목사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 어린이를 위한 문학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런던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고, 가족 극단을 조직해 공연을 했다.
지은 책으로 <공주와 고블린>, <북풍의 등에서>, <공주와 커디>, <요정들과의 거래>, <황금 열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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