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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언약과 축제가 공존하는 장
세례와 성찬/고재수/성약 출판사/[권지성]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절차 중 통과의례로 세례식과 성찬식이 있다.
작은 떡과 포도주 한 모금을 먹는 성례식에서 행해지는 의례들이 우리네 삶에서 하나의 빗줄기로 다가오고 있는가? 저자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짚어보았다.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들어가는 세례와 그것을 기억하며 기념하는 성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세례를 통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엿보게 된다.
오순절 이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시인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모두 성령님이 내재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 안에 자동적으로 거하시지 않은 성신(성령)께서 어떻게 어린 아이들에게 거하며 그들이 만약 죽었을 경우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얻을까? 저자는 세례 예식문과 칼빈, 우르시누스의 견해를 비추어 성신(성령)께서 세례 전에 유아를 중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유아들은 예식문에 나타난 창세기 17장 7절의 언약의 백성에 속한 이들의 자녀이므로 이들 또한 언약에 속하기에 세례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또한 우리와 우리의 자녀에게도 내려 주시는 말씀입니다.(pp.22: 16-19)"
이와 더불어 만일 유아기 때의 어린 자녀가 죽었을 경우 그들의 부모들은 어린 자녀의 구원의 확신도 도르트 신경 제1장 17조에 의해 신자의 자녀들이 은혜 언약에 의해 거룩하다는 지적을 함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어린 아이들만이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지성과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장애우들에게도 주님의 언약된 백성으로 인한 하나님의 신실성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둘째, 우리는 성찬을 통해 슬픔을 기쁨화 시키시는 하나님의 축제에 참여하게 된다.
주님의 만찬이라 부르는 성찬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는 선물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축제의 장인 만찬을 주심을 알게 된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음식과 같이 그분은 자기의 죽음이 거기에 참여하는 자에게 유익할 것임을 의미하고(pp. 71:10-13),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죄사함을 얻는 것을 의미할 때(pp. 72 : 7) 우리는 하나님의 축제에 나만이 먹는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공동의 음식이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축제에 참여하게 되어 서로 기쁨을 나누게 되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궁극적 목적이다.
셋째, 우리는 표와 인으로 인해 우린 더욱 하나님의 백성됨을 확신케 된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우리는 매일 확신하는가? 이런 불확신에 시달리는 우리가 세례와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표로서 본질적인 내용을 신앙의 눈앞에 현시한 것이며 이는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을 보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pp.114:12-13).
그러나 실제적 우리가 성례에 임하는 자세는 어떠한가? 교회 안에서는 의식과 격식만을 따진 채 행하며 신자 된 우리들은 세례와 성찬식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잘 모른채 하나의 의식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두어 주님 주신 성례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성례는 내용이 없는 예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큰 유익을 전달하려고 의도하신 사건입니다.”(pp.5 : 12-13) 저자가 그의 서문에서 쓴 글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사건! 주님은 우리가 그 사건에 진정한 맘과 뜻을 가진 채 참여하길 원하신다.
저자 고재수
1976년에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목사로 임직되어 목회를 하다가 한국에 선교사로 파성되어 1980-89년까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다. 1990년부터는 하밀톤에 있는 캐나다 개혁교회의 신학대학에서 교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절차 중 통과의례로 세례식과 성찬식이 있다.
작은 떡과 포도주 한 모금을 먹는 성례식에서 행해지는 의례들이 우리네 삶에서 하나의 빗줄기로 다가오고 있는가? 저자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짚어보았다. 거룩한 나라의 백성이 들어가는 세례와 그것을 기억하며 기념하는 성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세례를 통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엿보게 된다.
오순절 이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시인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모두 성령님이 내재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 안에 자동적으로 거하시지 않은 성신(성령)께서 어떻게 어린 아이들에게 거하며 그들이 만약 죽었을 경우 어떻게 구원의 확신을 얻을까? 저자는 세례 예식문과 칼빈, 우르시누스의 견해를 비추어 성신(성령)께서 세례 전에 유아를 중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유아들은 예식문에 나타난 창세기 17장 7절의 언약의 백성에 속한 이들의 자녀이므로 이들 또한 언약에 속하기에 세례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또한 우리와 우리의 자녀에게도 내려 주시는 말씀입니다.(pp.22: 16-19)"
이와 더불어 만일 유아기 때의 어린 자녀가 죽었을 경우 그들의 부모들은 어린 자녀의 구원의 확신도 도르트 신경 제1장 17조에 의해 신자의 자녀들이 은혜 언약에 의해 거룩하다는 지적을 함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어린 아이들만이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지성과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장애우들에게도 주님의 언약된 백성으로 인한 하나님의 신실성이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둘째, 우리는 성찬을 통해 슬픔을 기쁨화 시키시는 하나님의 축제에 참여하게 된다.
주님의 만찬이라 부르는 성찬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는 선물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축제의 장인 만찬을 주심을 알게 된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음식과 같이 그분은 자기의 죽음이 거기에 참여하는 자에게 유익할 것임을 의미하고(pp. 71:10-13),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죄사함을 얻는 것을 의미할 때(pp. 72 : 7) 우리는 하나님의 축제에 나만이 먹는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공동의 음식이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축제에 참여하게 되어 서로 기쁨을 나누게 되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궁극적 목적이다.
셋째, 우리는 표와 인으로 인해 우린 더욱 하나님의 백성됨을 확신케 된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우리는 매일 확신하는가? 이런 불확신에 시달리는 우리가 세례와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표로서 본질적인 내용을 신앙의 눈앞에 현시한 것이며 이는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을 보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pp.114:12-13).
그러나 실제적 우리가 성례에 임하는 자세는 어떠한가? 교회 안에서는 의식과 격식만을 따진 채 행하며 신자 된 우리들은 세례와 성찬식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잘 모른채 하나의 의식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두어 주님 주신 성례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성례는 내용이 없는 예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큰 유익을 전달하려고 의도하신 사건입니다.”(pp.5 : 12-13) 저자가 그의 서문에서 쓴 글이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사건! 주님은 우리가 그 사건에 진정한 맘과 뜻을 가진 채 참여하길 원하신다.
저자 고재수
1976년에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목사로 임직되어 목회를 하다가 한국에 선교사로 파성되어 1980-89년까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쳤다. 1990년부터는 하밀톤에 있는 캐나다 개혁교회의 신학대학에서 교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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