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평

타인이라는 지옥, 타인이라는 천국

이종수 | 2006.01.09 15:58
타인이라는 지옥, 타인이라는 천국 재즈처럼 하나님은/도널드 밀러/윤종석/복있는 사람/[뉴스앤조이제공]

지겨운, 혹은 지겨울 것 같은 편견

언젠가 수잔 손탁의 글을 읽다가 발견한 발랄한 경구 한 줄. “인간을 선한 인간, 악한 인간으로 나누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세상에는 다만 매력적인 인간과 지겨운 인간이 있을 뿐이다.” 좋게 말하면 다양하고 나쁘게 말하면 잡다한 책읽기를 해오면서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다. 세상에는 착한 글, 못된 글이 있는 게 아니라 매력적인 글과 지겨운 글이 있을 뿐이라고. 평소 기독교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을 거의 읽지 않는데, 그 이유 역시 그 부류의 책들이 대체로 ‘지겨울 것’이라는 다소 교만한 판단 때문이다.

신앙적 글쓰기, 혹은 신앙인들의 글쓰기라는 게 대략 날로 악해져 가는 세상에 대한 장탄식으로 시작해서 결국 진부하고 우울한 자책형 둔사(遁辭)로 빠지거나,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대개 겪기 마련인 상처와 고통을 자신만의 것인 양 온통 울부짖으며 과장한 뒤 지금은 이렇게 저렇게 치유한데다가 남달리 ‘성공’까지 해서 잘 나가고 있다는 지극히 사사로운 결론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이다.

나는 번번이 무슨 지도책이나 전화번호부를 펼쳐든 것처럼 지겹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종교라는 소금물에 침수당한 듯 활력과 생기가 빠져나간 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거세당한 채 텅 빈 활자 혹은 몇 단계의 앙상한 공식만 남은 글, 누구 눈치를 보는지 겸손을 가장한 비굴함이 행간에서 묻어나는 글, 불특정 다수에게 감동을 전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적당히 허리쯤에서 타협하는 글, 이제는 세상에서 물러나 ‘도’를 ‘득’한 자의 우월적 지위에서 다시 세상을 굽어보며 가르치려 드는 글.

나는 그렇게 마냥 무릎 꿇거나 자책하거나 남 걱정이 지나친 글들이 솔직히 좀 지겹다. 싸워야 할 문제들은 고스란히 놔둔 채 너무 빨리 화해(사실은 봉합)와 치유(사실은 망각)의 영성 속으로 투항해 버리는 글도 지겹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 한탄하던 비트겐슈타인에 기대어 말한다면, 신앙인들이 쓰는 언어의 한계가 곧 그 신앙의 한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신앙을 표현하는 도구인 동시에 그 신앙을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그런 글들이 틀렸거나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비슷해서 싫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나는 신앙의 ‘차이’를 만드는 언어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타의에 의한 책읽기

도널드 밀러의 <재즈처럼 하나님은>은 타의에 의해 읽기 시작했다가 자의로 마무리한 책이다. 타의라 함은 다소 거절하기 힘든 서평원고 청탁을 말함이고, 자의로 마무리했다 함은 얼떨결에 끌려나간 맞선 자리에서 뜻밖에도 대화가 잘 풀리는 상대를 만나 자발적으로 끝까지 함께 했다는 뜻이다. 이래저래 끼어드는 일 때문에 단숨에 읽어 내리지는 못했지만, 이 책에는 일에 쫓겨 덮었다가도 곧 다시 펼쳐 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황홀한 매혹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면서도 조곤조곤 대화를 계속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지나치게 비슷하면 지루해지고 지나치게 다르면 화가 나기 마련인데, 도널드 밀러의 고백적 글쓰기에는 그 공감과 차이를 절묘하게 조율하는 균형추가 두루 산포되어 있었다. 화가 나서 등 돌리려는 순간 다시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글의 자력에 휘말릴 때면, 확신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길에 들어선 자들이 건네는 위로를 새삼 느끼곤 했다. 반면 중간 중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생각의 차이, 관점의 차이를 발견할 때도 있었는데 오히려 나는 그 차이야말로 내 스스로 나를 뛰어넘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경계 바깥에 있는 존재와의 마찰이 없으면 내 품이 어디까지인지조차 알 수 없는 바, 낯선 것과 만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진화를 꿈꿀 수 있겠는가.

동일한 출발점

바람직한 창작과 비평이란 두루 끊임없이 차이를 생산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일한 대상에 다른 해석을 가하는 것, 수동적인 텍스트에 능동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 그래서 다시 더 새롭고 더 의미 있는 차이를 토해내는 일인 것이다. ‘예술작품은 무한히 펼쳐지는 해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가다머의 말처럼 시선의 변화, 해석의 변화, 관계의 변화가 없다면 모든 존재는 너무 익숙해서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혹은 비평)이란 해방이기도 하고 훼방이기도 하다. <재즈처럼 하나님은>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무엇보다 저자가 진부한 비유와 일의적인 해석에 갇히기 쉬운 하나님이란 존재를 계속해서 다른 시각, 다른 언어로 해석/해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부자 교회에 다니는 가난한 집이었고 그래서 내 상상 속의 하나님은 돈 많고 큰 차를 모는 남자였다.”(12쪽) “지금도 나는 하나님이 애초에 왜 자기를 ‘아버지’로 칭하셨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아버지상에 비추어, 내게 이것은 마케팅의 실수로 보인다. 자식을 버리는 아버지들이 그렇게 많은데 하나님은 어쩌자고 아버지로 자처하시는 걸까?”(14쪽) “좋은 일이 생기면 나는 하나님의 답이라 생각했고, 좋은 일이 생기지 않으면 다시 슬롯머신으로 돌아가 무릎 꿇고 기도하며 손잡이를 몇 번 더 당겼다. 나는 이런 하나님이 아주 좋았다.” (20쪽)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팔고 있었다. 칼을 파는 사람이나, 로미오를 새사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는 줄리엣과 한 통속이었다.”(42쪽) “하나님을 광고하고 다니지만 정작 그 제품을 쓰지 않는 사람이 접니다.”(116쪽)
        
이는 말이 쉽지 실제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첫째로는 언어가 딸리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배짱이 딸리기 때문이다. 언어의 문제야 부단한 훈련을 통해 감수성을 벼리고 어휘력을 연마하면 되겠지만, 배짱의 문제는 사뭇 다른 차원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현실 기독교의 권력이 금 그어 놓은 하나님에 대한 비유와 해석의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 다시는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널드 밀러는 가끔씩이나마 자유롭고 유쾌한 행보로 그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기독교적이라고 공인받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기독교적인 질문과 회의를 풀어내는데 별로 막힘이 없다. 애당초 그가 기독교 안에서 별로 잃을 게 없는 주변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잃을 게 많을수록, 자리가 확고해질수록 사용하는 언어가 진부해지는 건 새로운 언어가 지닌 도발성과 낡은 기득권의 보수성 사이의 적대관계를 그야말로 ‘은유적으로’ 설명해 주는 증거일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체계, 어떤 언어에 의해서도 완전히 이해되거나 포섭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풍성한 은유의 언어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은유의 언어는 언제나 은유의 대상보다 작지만, 고정된 관념을 무찌르고 새롭게 대상에 접근하는 또 다른 출구이자 입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우리는 저마다 짧고 좁은 언어 안에 하나님을 가두고 있는 셈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내가 알아야 할 하나님보다 언제나 작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책이 지닌 두 번째 매력은 도널드 밀러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숱하게 거쳐왔던 의문과 불만, 혼란과 염증을 다분히 소탈하고 정직하게 쏟아놓고 있다는 데 있다. 그는 모두가 느끼면서도 아무도 말하려들지 않는 것들을 시원하게 털어놓고 솔직하게 답을 구한다. 그래서 정작 교회에 나가면서도 교회라면 질색하거나,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기독교라면 치를 떠는, 아주 이상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말문을 열게 만든다.
        
“나는 기독교를 전체가 아닌 일부만 수용할 수 있다면 좋을 듯 싶었다.”(43쪽) “내가 기독교에 마음을 줄 수 없었던 것은 기독교가 지성이 떨어지는 자들을 위한 종교였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믿으려면 엄청난 신학적 억지들을 아이들 이야기로 전락시키거나 무시해야 했다. 내 지성으로는 수용하기가 몹시 힘들었다.”(44쪽) “그녀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 보수, 위선자, 속 좁은 인간들이었다.”(59쪽) “이렇게 친절하고 너그러운 여자가 십자군을 결성하고 공화당에 돈을 대고 종교 텔레비전을 창시한 바로 그 종교에 동조할 수 있다는 사실이 … 믿어지지 않았다.”(61쪽) “그들은 자기 생각과 다른 부분은 진실이 아니라고 믿는다.”
        
지성의 반추가 없는 맹렬한 믿음은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 답변이 완결된 자기 확신 또한 사람을 협량하게 만든다. 그 확신에 동조하지 않는 인간을 미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칫 괴이해 보이기까지 하는 광신적 행태는 그나마 문지방에 서서 기웃거리던 수많은 초신자들과 비기독교인들을 등 돌리게 만든다. 밀러의 글이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 지점도 바로 그러한 염증과 회의를 진솔하게 표현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질문을 경청하지 않는 종교, 차이를 밀어내는 신앙, 믿음을 갖는 순간 지성을 폐기하는 신앙인들의 모습은 기독교와 비기독교 사이의 언어를 불통시키는 장애요인들이다. 어쩌면 지젝의 주장대로 인간의 원초적 욕구는 ‘앎’에의 욕구가 아니라 ‘무지’에의 욕구인지도 모른다. 무지 상태의 평화가 알면 알수록 더 걷잡을 수 없이 달려드는 혼돈보다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몇 가지 질문만 던져도 금방 깨지기 쉬운 얇고 허약한 믿음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매달려있는 현실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밀러가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 역시 기독교의 그러한 ‘질문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아쉬운 분기점
        
흥미로운 유년기의 기억에서부터 청년기 때 가졌던 온갖 불평불만과 문제제기의 행로까지 마치 동병상련하는 투덜이처럼 유쾌하게 동행하던 나는 아쉽게도 어느 순간 그가 너무 쉽게 해답을 얻는 게 아닐까 우려가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참 사랑은 다른 뺨을 돌려대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며, 상대의 냉담함이나 적의에 아랑곳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임을 나는 배웠다.”(58쪽)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니 인간관계의 모든 면이 황홀하게 다가왔고, 정교하고 복잡한 자연환경은 그 완벽함을 뽐냈다.”(78쪽) “자기 훈련으로는 절대 의나 깨끗함을 느낄 수 없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된다.”(101쪽) “예수님은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신앙과 정치를 섞지 않았습니다.”(147쪽) “예수님이 죽으셨으니 우리는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을 믿으면 크리스천이 되는 거지요.”(149) “이제 나는 그 별난 공화당 근본주의자들을 아주 따뜻하게 생각하며, 그들도 나를 사랑함을 안다.”(163)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의미의 종점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거대하고 복잡한 질문의 출발점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은 만 가지 질문에 한 가지 응답을 선물꾸러미처럼 준비해 놓았다가 우리의 태도변경을 조건으로 냉큼 건네주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그러했듯 끝없이 자기갱신을 거듭하는 삶의 물음 속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다. 고통스러운 궁지 속에서 해결책을 얻기 위해 궁극까지 질문을 밀어붙이지 않는다면, 중간에 주저앉는 행위는 대개 타협이다. 밀러는 그가 제기했던 질문의 다양함과 깊이에 비해 너무 작고 진부한 대답을 제시한다. 여러 층위의 문제들을 던져놓고는 ‘결국 문제는 모두 나에게 있다’라는 식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환원론적인 답변을 내놓고 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 대가로 한 큐에 모든 것을 얻은 듯 다시금 세상과의 밀월관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다(이는 대단한 아이러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앙은 세상에서 얻은 질문의 피로를 풀기 위해 들이키는 박카스가 아니다. 오히려 좀 다른 차원의, 훨씬 더 두렵고 훨씬 더 위험한 질문 앞에 서는 일이다. 그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성세계의 질서를 거스를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억압이 만연한 세계 속에서 저항의 언어 대신 인증된 언어를 택하는 것, 고통의 원인을 추적하여 대면해 보지도 않은 채 재빨리 손닿는 데서 치유책을 찾는 것, 내 뺨은 그렇다 치고 이웃의 뺨을 돌려치는 인간에 대해서까지 다른 뺨을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임에도 ‘사랑’이라는 관념의 이불로 모든 구체적 차이를 덮어버리는 것. 나는 그런 맹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히려 ‘차이를 억압하는 차이’를 사랑하는 방식은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존중할 수 없는 차이로서의 억압적 권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가차 없는 독설을 내뱉던 예수께서 언제 ‘조지 부시를 지지하는 공화당 근본주의자들’을 아주 따뜻하게 생각하라고 가르치셨던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세상에 대한 저항력도 커지는 법.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지혜는 사랑의 이름으로 따뜻하게 품어야 할 상대/때와 사랑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싸워야 할 상대/때를 구분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문제임에도 늘 너희들이 문제라고 우겨대는 것도 문제지만, 상대가 문제임에도 늘 내가 문제라고 오버하는 것도 문제다. 나는 기독교 신앙인들이 늘 그 둘 가운데 하나로 기울어져 있는 게 불만이다. 다소의 반가움으로 시작했던 책읽기가 씁쓸한 아쉬움으로 끝난 데는 이 책의 저자 역시 그 둘 가운데 하나로 기울어지면서 어느덧 질문을 멈추고 있기 때문이다.

남는 이야기

우리는 자신이 아프다는 걸 알기 위해 꼭 의사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었던 이웃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나는 도널드 밀러라는 타인과 만남으로 내가 어디가 아프고 그는 또 어디가 아픈지를 조금 알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어느 한 쪽만 문제를 품고 있는 게 아니라 둘 다 문제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한 문제의 원인과 크기를 알아야 바로 그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생성과 변화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별자리를 별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듯, 의미는 책 안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읽는 이가 불러내는 것이다. 청탁이 아니었으면 아마 평생 펼쳐보지 않았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는 타인과 싸우지 않고 만나는 법에 대해 배웠다. 밀러 스스로 고백하듯 타인은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지녀야 할 신앙은 그렇게 수많은 차이를 지닌 타인에 대한 상상력인지도 모른다. “쇠붙이는 쇠붙이로 쳐야 날이 날카롭게 서듯이, 사람도 이웃과 부딪쳐야 지혜가 예리해진다”(잠 27:17)는 말씀처럼 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많은 타인을 이웃으로 불러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재즈처럼 하나님은>을 읽으면서 건져 올린 가장 큰 지혜다.

* 이 글은 <기독교사상> 12월호 책마당에 실린 글이다.

뉴스앤조이 제공
이신정 기자


저자 도널드 밀러

캠퍼스 사역자이자 강사, 작가다. 지은 책으로 <재즈처럼 하나님은(Blue Like Jazz)>, <Searching for God Knows What>, <Through the Painted Deserts> 등이 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659개(100/133페이지)
성령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최고의 성령론! 성령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최고의 성령론!
성령론
W. H.그리피스 토마스/신재구/크리스챤다이제스트/[나상엽]


학문을 위한 학문서가 아니다. 변증을 위한 교리서가 아니다. 방어를 위한 변명이 아니다. 논쟁을 위한 무기가 아니다. 올바른 신앙과 뜨거운 사랑을 목적한 책이다. 성령께서 거처 삼으신 교회를 위한 책이다. 신자의 거룩한 삶과 예배의 삶, 변화된 삶을 위한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한 책이다. 성경에 계시된 성령 하나님을 밝히 드러냄으로 그분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는 책이다. 세 분 하나님의 완전한 연합의 신비를 조명해주는 책이다. 성령 하나님을 더 알게 하는, 그래서 성령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는 새로운 차원의 책이...
영적 갈망에 대한 따뜻한 변증서 영적 갈망에 대한 따뜻한 변증서
목마른 내 영혼
알리스터 맥그래스/이종태/복있는사람/[조영민]


  기독교 안에 수많은 변증서들의 존재론, 우주론, 목적론 등의 변증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거하려고 했다. 또 많은 경우 기독교에 대해서 ‘체험’을 변증의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수많은 기독교 변증의 경우 전자는 차가운 이성이 신으로 나가게 되고 후자의 경우 지극히 개인적인 신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날에도 이런 새로운 방식과 접근으로서 불신자를 향한 신존재 증명은 요구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시대적 요구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논리와 옷을 입고 나타났다.  &nbs...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유감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유감
야베스의 기도
브루스 윌킨슨/마영례/디모데/[뉴스앤조이 제공]


요즘도 ‘야베스(Jabez)의 축복 기도’가 인기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 (브루스 윌킨스 著)라는 책이 나와서 미국에서부터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고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아직도 여전히 베스트셀러입니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축복을 좋아하나 봅니다. 야베스에 대한 성경말씀은 아래와 같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일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쉬워지는 책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 쉬워지는 책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다
데이비드 베너/이용석/IVP/[이종수]


하나님의 뜻에 항복하고 순종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고, 또 그렇게 볼품없이 살아왔다. 그리곤 습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시기에만 찾는 실수를 범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제시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고 즐기면서, 또한 항복하고 순종하는 것이 쉬워지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내 방식’대로 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자기 중심성과 자기 통제는 인간 영혼의 근본적인 성향이다. 우리가 이러한 성향에 따...
미운 오리 새끼의 백조 되기 미운 오리 새끼의 백조 되기
하나님의 숨겨진 미소
존 파이퍼/좋은씨앗/[권지성]


어린 시절 대부분 한 번씩은 읽어 보았던 덴마크 작가인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를 기억할 것이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미운 오리새끼는 태어나자 마자, 주위의 오리들과 달리 덩치도 크고 보기 싫다는 이유로 쫓겨나 새들로부터 구박을 받고, 어느 농장에 가서도 고양이와 닭들이 못살게 구는 바람에 여러 곳을 배회하며 방황하다 추운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어느 새 훌쩍 성장한 미운 오리 새끼는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한 마리의 백조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이다. ...
나의 사랑 나의 자녀 나의 사랑 나의 자녀
네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라
루 프리올로/김영실/미션월드/[강도헌]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마치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사는 것 처럼 보일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교육 욕심이 많다. “억울하면 출세 하라”는 말처럼 출세를 위해 한국 사람들은 목숨을 거는 것 같다. 출세 하시 못한 사람들의 억울함과 피해의식이 한국인의 정서에 남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1. 부모들의 욕심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은 부모의 큰 기쁨이다. 요즘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아이가 공부만 잘하면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모자라거나 부족해도 학교의 성적표로 면죄부를 받았던 ...
나니아의 세계에 빠지는 기쁨을 돕는 책 나니아의 세계에 빠지는 기쁨을 돕는 책
나니아 연대기 해설집
콜린 듀리에즈/이용복/규장/[이종수]


이 책은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지성 C.S. 루이스가 쓴 기독교 판타지의 결정판인 나니아 연대기의 해설집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시공주니어사에서 출간된 나니아 시리즈를 통해 나니아 연대기의 매니아가 되었고, 최근에 개봉된 영화는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관심의 불꽃을 지폈다. 그리고 이제 나니아의 세계를 더욱 깊이 알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나니아 연대기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때, 독자들은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맞도록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몇가지 구성상의 특징이 있다. 나니아 연대기 7권의 각 이야...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한 그들만의 특별한 공부법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한 그들만의 특별한 공부법
공부습관 3세부터 확실히 잡아라
이영희/몽당연필/[이지영]


저자는 이스라엘, 현지에 가서 이스라엘의 교육법을 연구하고 지금도 연구하는 분으로, 이스라엘의 현지 교육과 이스라엘 교육법으로 교육을 하는 기관들을 소개함으로 유대인들의 교육법을 실제적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1부에서는 언제 무엇을 배워야하는지, 2부는 공부를 잘하는 습관에 대해서, 3부에서는 성경에 의한 학습법을 소개하고있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암송하게하며 주입식으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을 하기보다 어릴 수록 학습을 할 수 있는 토양밭을 일구어내는 교육을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과는 차이가 있는 교...
참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참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사는게 맛있다
푸르메재단엮음/이끌리오/[권지성]


이 땅의 모든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한 나라가 선진국이라 불리울 수 있는 지표에는 해당 나라의 경제력, 군사력, 그리고 문화적인 역량등 다양한 기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여러 가시적인 국가의 데이터들을 볼 때,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 서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유독 장애인들을 향한 복지 시스템에 있어서는 여전히 낙후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사회가 장애인들을 우리와 동일한 한 명의 인간으로 대접해야 하지만, 선천적, 후천적으로 가진 질병과 불의의 사고로 인해, 더 이상 사회에...
부부가 함께 하는 남자들의 내면 세계의 진실 부부가 함께 하는 남자들의 내면 세계의 진실
여자들만 위하여
션티 펠드한/미션월드/[이종수]


여자들은 남자들의 내면 세계가 궁금하다. 왜일까? 살면서 남자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일게다. 여기 그런 궁금증을 가진 여자들을 위한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천여명이 넘는 남자들과 직접 또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여자들이 경험하는 이런 상황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리고 남자들의 내면 세계의 진실을 접한 후, 저자는 진심으로 자신의 남편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도울수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만의 세계, 혹은 자신만의 성세계에 갇혀 있다. 그래서 다른 성을 이해한다고...
생각 ! 매우 중요하다. 생각 ! 매우 중요하다.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공병호/해냄/[강도헌]


  공 박사님의 글은 매우 명쾌하다. 하나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마치 자기의 박식함을 자랑하듯이 복잡하게 이리 저리 끌고 다니지 않는다. 이미 공 박사님의 글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알고 계시듯이 독자의 인내력에 맞춰 자신의 글을 절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요 핵심만 나열하는 요점 정리도 아니다. 그 글 속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공 박사님의 글이 가진 장점은 매우 현실적이라는 데에 있다. 철저하게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검증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쉽...
‘삶에 대한 아름다운 긍정’의 이야기 ‘삶에 대한 아름다운 긍정’의 이야기
삶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편집부/가이드포스트/[조영민]


  어릴 적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던 형이 있었다. 하루는 그 형이 자신의 방 가득히 쌓여 있던 모든 소설책을 헌책방에 팔아버렸다. 왜 그랬냐는 내 질문에 형은, “삶이 소설보다 훨씬 소설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 서른이 넘어가면서 이제야 형이 던진 선문답 같은 선언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도 삶은 소설보다 훨씬 소설 같다.   언덕빼기 집으로 향하던 길에, 어제 밤에 내려 건물들의 지붕 위의 쌓여 있던 눈들이,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바람에 날려 온 천지에 조그만 가루들로...
경계선상에 서있는 '믿음의 역동성' 경계선상에 서있는 '믿음의 역동성'
믿음의 역동성
폴 틸리히/최규택/그루터기/[이종수]


폴 틸리히를 가리켜 ‘경계선상의 신학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틸리히는 자신을 가리켜 철학과 신학 사이, 인간적 문화와 종교 사이, 세속적인 것과 거룩한 것 사이에 존재하는 인물로 묘사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는 기독교 신학과 철학의 사상적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신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느낌이 든다. 틸리히는 철학과 기독교 신앙의 경계선상에 서서, 문화적 격변기에 처한 자기 시대 사람들이 전통적인 가치를 잃어가고 허무주의에 의해 지배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찰스 스펄전 설교노트 훔쳐보기 찰스 스펄전 설교노트 훔쳐보기
스펄전 설교노트 1, 2
찰스 스펄전/김귀탁/크리스챤다이제스트/[권지성]


자신의 일기장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만큼이나, 설교자에게 있어서 자신의 설익은 설교본문을 공개하는 것은 약간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아직 완전히 완성되지도 않은 설교문을 공개한다는 것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쓴 편지를 공개할 때 느끼는 약간의 쑥쓰로움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설교문을 읽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의 설교의 뼈대와 생각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고, 그 상대가 기독교 역사에서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리우는 18세기의 찰스 스펄전이라고 한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당장 사서 읽어 볼 것이다....
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라 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라
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라
박민희/기독교연합신문/[서중한]


크리스챤 북뉴스 사이트에서 한 방문자가 이 책을 서평 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들고 바쁜 년말 년초를 보내느라 마음이 무거웠다. 빨리 서평을 올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먼저 전하고 싶다. 나는 저자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저자 소개를 보고 책의 차례를 살핀 후 내용을 대략적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책을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이 책은 신학을 연구하는 신학도로서 또는 목회 현장에 몸담은 목회자로서 순간순간 부딪쳐온 영혼의 울림을 정리해 놓은 신학 단상(斷想) 혹 목회 단상(斷想)이라고 할 수 있다. ...
리더십에 관한 교과서  같은 책 리더십에 관한 교과서 같은 책
거인들의 발자국
한홍/비전비엔티/[최명훈]


  이 책이 나온 것이 2001년이니까 벌써 4년여 시간이 흘러버린 셈이다. 개정판이 나온것은 2004. 8. 그렇게 많은 부분이 추가되거나 바뀌지는 않았지만, 2000년을 전후하여 한국에 불어닥친 리더십 열풍에 크나큰 일조를 했던 책중의 하나이다. 4년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금 책을 읽어보았다.   저자는 14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20여년간 공부를 하고 다시 돌아온 1.5세 교포 목사로, UC 버클리 대학을 졸업,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박사,&n...
세기를 뛰어넘는 최고의 기술 ‘덕’ 세기를 뛰어넘는 최고의 기술 ‘덕’
덕의 기술
벤저민 프랭클린/정혜정/21세기북스/[이종수]


우리 동네는 요즘 ‘싸움의 기술’과 ‘작업의 기술’을 배우느라 한창이다. 남자들은 싸움의 고수를 선생으로 모시고 열심히 싸움의 기술(the art of fighting)을 연마하고 있다. 지난 세월 그저 맞고만 사는 것이 일이었기 때문에, 이젠 더 이상 맞고 살 수 없다는 자각이 들어서일까? 또 여자들은 작업계의 고수를 모시고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면 작업의 정석(the art of seduction)을 익혀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참으로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인생의 몸짓들이다. 하지만 여기 세기를 뛰어넘는 최고의 기술을 가진...
내 곁에 계신 하나님 내 곁에 계신 하나님
그리스도인을 위한 위로
아더 W. 핑크/UCN/[강도헌]


  모든 사람들은 고난을 싫어한다. 힘든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힘든 일은 수없이 만나게 된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이 개인의 능력과 성품과 환경적인 요소에 따라 약간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삶은 고난의 연속이라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을 역사적으로 아직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신년이 되면 토정비결이나 점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올 한해 어려운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면 집안에 나쁜일이 없어지고 ...
하나님과 대화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하나님과 대화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우리 아이 첫 기도책
로이스 로크/홍종락/홍성사/[조영민]


 일 년에 한번, 5월 어린이 주일이 되는 주간에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어떤 선물을 주어야 할지 고민했었고 그 외에는 어린이 책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아이들에 대한 책은 몇 권의 유명한 책 외에는 알지 못했고, 그 책들에 대해서조차 어른들의 그것에 비해 깊이 정독해 본적이 없었다. 지난해 11월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1년간 기도하면서 성령에 충만한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태어난 아기를 보면서 이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옳은 건지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난 아기를 하나님의 충만한 것으로 키우기 위한 준비가 ...
가난과 맞장 뜬 목사 이야기 가난과 맞장 뜬 목사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
허기복/미디어윌/[뉴스앤조이 제공]


밥상공동체 대표 허기복(50) 목사는 가난과 원수진 사람이다. 아버지는 놀음과 술에 빠지고, 산업 전선에 뛰어든 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도 신발을 수십 번씩 기워 신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신발을 들고 다녔다. 오래 신어야 하니까. 길에 버린 빵도 주워 먹었다. 사이다가 먹고 싶으면 마을을 돌며 사이다병을 모았다. 병에 남은 음료수 맛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허기'가 무슨 '복'이라고, 그는 가난을 이름에 달고다닌다. 어릴 적 별명도 '허기져' 혹은 '허기진'이었다. 어린 시절 그가 버틸 수 있었던 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