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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 참모습 보여준 하나님의 선물
내 마음의 과일나무/엘리사 모건/김유리/IVP/[뉴스앤조이제공]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나는 책을 선물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주로 헨리 나우웬의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IVP)이나 <긍휼>(IVP)을 선물한다. 대학생 시절(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에는 법정의 <무소유>(샘터)나 로버트 멍어의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IVP)을 선물하곤 했다. 이 책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아차렸겠지만, '두께가 매우 얇다. 책값이 무척 싸다. 내용이 아주 쉽고 재밌다. 결론적으로 한 마디, 선물용으로 딱이다.'
며칠 전 읽은 엘리사 모건의 <내 마음의 과일나무>(IVP)도 선물용 책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 얇은 두께, 싼 값, 쉽고 재밌는 내용. 게다가 하드커버, 두꺼운 본문 종이, 쪽마다 담긴 컬러 그림은 선물로서의 품격을 더해준다. 특히 번역한 것 같지 않고 우리나라 저자가 쓴 것처럼 솔솔 익히는 문장과, 아주 약간 성긴 느낌이 드는 연필 선 위의 묽은 물감 칠은 내가 참 좋아하는 글맛과 색감을 즐기게 해준다. 글이 주는 감동과 그림이 주는 즐거움에 이끌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았다. 애를 써서 단점을 찾아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림에는 과수원지기가 '전지가위'로 가지치기를 하는데 글에는 '전단기'로 가지치기를 한다고 묘사한 정도일까(애먼 전지가위여!). 아무튼 선물용으로 좋은 책이다.
하지만…….
출판사에는 참 미안한 얘기지만, 내 맘에 꼭 드는 책인데도 난 한동안 이 책을 남에게 선물할 것 같지가 않다. 왜? 돈이 없어서? 선물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선물했던 책들은 대개 내용이 쉬우면서도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다. 그것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문제는 이 책들의 내용이 읽는 이에게 상당히 부담을 준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나도 부담 갖고 싶지 않고 남에게도 부담 주지 않기를 원해가고 있다.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해야지 왜 부담을 선물하나.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에는 왜 그런 마음이 생길까 곰곰 생각해본다.
이런 책들을 선물하면서, 적어도 그 순간만은 마치 내가 그 책들의 내용처럼 사는 양 착각의 늪에서 허우적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텅 빈 충만을 누리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긍휼의 손길을 내밀고, 높고 높은 세상의 길을 버리고 낮고 낮은 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렇게 멋지게 살고 있다고 믿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예수님이 내 인생 과수원에 오셔서 내가 그동안 애써 쌓아올린 것들을 다 치워버리신다. "지금은 채울 때가 아니고 비울 때란다." 그리고 그냥 주저앉으실 요량이다. "너랑 같이 여기 머물고 싶다." 장난이 아니다. 전에는 "당연하지요. 전 벌써 주님께서 내 삶을 주장하시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당당했다. 그러니 부담 가질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불혹'의 나이에 다가가다 보니, 그 전에 홀랑홀랑 넘어가던 객기 앞에서 '불혹'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신중해졌다고 할까. 솔직히 말해서 소심해졌다고 하자.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도 그런 책들을 선물하는 동안 내가 마치 온전히 살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속여왔던 바보 같은 모습이 어느 순간 보였다. 이 책이 그런 내 모습을 비춰준 셈이다. 아, 창피해. 부끄러워서 남에게 선물을 못하겠다.
연말이 턱밑에 와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선물 달라고. 지금부터 끙끙 가슴앓이를 할 것 같다. 이 책을 선물해? 하지 마? 할지 말지 며칠 더 고민해야겠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밝히고 가야겠다. 하나님은 올해가 끝나기 직전에 제게 너무나 좋은 선물 하나를 주셨다는 것이다. <내 마음의 과일나무> 말이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기자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나는 책을 선물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주로 헨리 나우웬의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IVP)이나 <긍휼>(IVP)을 선물한다. 대학생 시절(아,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구나)에는 법정의 <무소유>(샘터)나 로버트 멍어의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IVP)을 선물하곤 했다. 이 책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알아차렸겠지만, '두께가 매우 얇다. 책값이 무척 싸다. 내용이 아주 쉽고 재밌다. 결론적으로 한 마디, 선물용으로 딱이다.'
며칠 전 읽은 엘리사 모건의 <내 마음의 과일나무>(IVP)도 선물용 책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 얇은 두께, 싼 값, 쉽고 재밌는 내용. 게다가 하드커버, 두꺼운 본문 종이, 쪽마다 담긴 컬러 그림은 선물로서의 품격을 더해준다. 특히 번역한 것 같지 않고 우리나라 저자가 쓴 것처럼 솔솔 익히는 문장과, 아주 약간 성긴 느낌이 드는 연필 선 위의 묽은 물감 칠은 내가 참 좋아하는 글맛과 색감을 즐기게 해준다. 글이 주는 감동과 그림이 주는 즐거움에 이끌려,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았다. 애를 써서 단점을 찾아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림에는 과수원지기가 '전지가위'로 가지치기를 하는데 글에는 '전단기'로 가지치기를 한다고 묘사한 정도일까(애먼 전지가위여!). 아무튼 선물용으로 좋은 책이다.
하지만…….
출판사에는 참 미안한 얘기지만, 내 맘에 꼭 드는 책인데도 난 한동안 이 책을 남에게 선물할 것 같지가 않다. 왜? 돈이 없어서? 선물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선물했던 책들은 대개 내용이 쉬우면서도 감동도 있고 재미도 있다. 그것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문제는 이 책들의 내용이 읽는 이에게 상당히 부담을 준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나도 부담 갖고 싶지 않고 남에게도 부담 주지 않기를 원해가고 있다. 기쁨과 즐거움을 선물해야지 왜 부담을 선물하나.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에는 왜 그런 마음이 생길까 곰곰 생각해본다.
이런 책들을 선물하면서, 적어도 그 순간만은 마치 내가 그 책들의 내용처럼 사는 양 착각의 늪에서 허우적이고 있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텅 빈 충만을 누리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긍휼의 손길을 내밀고, 높고 높은 세상의 길을 버리고 낮고 낮은 그리스도의 길을 걷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렇게 멋지게 살고 있다고 믿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예수님이 내 인생 과수원에 오셔서 내가 그동안 애써 쌓아올린 것들을 다 치워버리신다. "지금은 채울 때가 아니고 비울 때란다." 그리고 그냥 주저앉으실 요량이다. "너랑 같이 여기 머물고 싶다." 장난이 아니다. 전에는 "당연하지요. 전 벌써 주님께서 내 삶을 주장하시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당당했다. 그러니 부담 가질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불혹'의 나이에 다가가다 보니, 그 전에 홀랑홀랑 넘어가던 객기 앞에서 '불혹'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신중해졌다고 할까. 솔직히 말해서 소심해졌다고 하자.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도 그런 책들을 선물하는 동안 내가 마치 온전히 살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속여왔던 바보 같은 모습이 어느 순간 보였다. 이 책이 그런 내 모습을 비춰준 셈이다. 아, 창피해. 부끄러워서 남에게 선물을 못하겠다.
연말이 턱밑에 와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선물 달라고. 지금부터 끙끙 가슴앓이를 할 것 같다. 이 책을 선물해? 하지 마? 할지 말지 며칠 더 고민해야겠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밝히고 가야겠다. 하나님은 올해가 끝나기 직전에 제게 너무나 좋은 선물 하나를 주셨다는 것이다. <내 마음의 과일나무> 말이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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