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베스트서평
믿음의 여정

이 책 ‘내 평생에 가는 길’은 서두를 통해서 기독교인의 인생을 ‘믿음의 여정’이라는 말로 정의하며 시작하고 있다.
그 여정 걷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의 귀한 발자취와 그들의 발견한 그 길에서 쓰러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비결들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통찰력을 가지고 현재 나의 상황을 걸어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저자 알리스터 맥그라스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여 22세 때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같은 대학에서 2년 후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이다.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의 뒤를 이어 21세기 복음주의를 이끌고 갈 대표적인 차세대 복음주의 사상가요 신학자이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 신학 석좌 교수를 맡고 있으며, 옥스퍼드 대학의 위클리프 홀(Wycliffe Hall)의 학장을 역임하면서 조직 신학과 역사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전트 칼리지의 조직 신학 연구 교수이기도 하다. 4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고 100여 편의 연구 논문 및 서평을 국제 학술지에 기고한 바 있으며 세계적인 신학 강연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
● 서평
대학시절 어줍잖은 신앙의 회의자였던 나는, 여러 가지 기독교인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만들고는 했다. 그러한 질문들 앞에서 대답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을 보며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허튼소리인지를 증명하는 것에 기뻐하고는 했다. 기독교는 비논리의 세계 같았고 ‘오직 믿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신화의 세계라고 생각했었다. 그러한 ‘교만한 질문자’였던 나에게 한 선배가 한권의 책을 주었다. “그 책을 읽고, 네가 한 질문들에 대해서 이미 수많은 이들이 연구했었고, 답을 얻었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바란다.” 그 책은 기독교에 대한 변증의 책이었는데, 그전까지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던 기독교에 대한 나의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답변들이 가득했다. ‘내가 한 고민들은 내가 처음 한게 아니었고 내가 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교만했던 나의 모습에 대해 부끄러워졌고, 나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을 막았던 고민들에 대해서도 그 고민을 먼저 했던 이들의 글을 통해서 해결 받을 수 있었다. 믿음의 길은 혼자 걷는 개척자의 길이 아니라, 먼저 간 이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오솔길을 따라 걸어야 할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었던 시간이었다.
이 책 ‘내 평생에 가는 길’은 서두를 통해서 기독교인의 인생을 ‘믿음의 여정’이라는 말로 정의하며 시작하고 있다. 그 여정 걷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의 귀한 발자취와 그들의 발견한 그 길에서 쓰러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비결들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통찰력을 가지고 현재 나의 상황을 걸어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믿음의 여정’이 대분의 경우 ‘광야’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광야가 ‘믿음의 여정’을 걷는 이에게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음을 성경의 역사를 통해 말해준다. 저자는 이 ‘광야’를 지나는 방법으로, 광야에 들어서기 전 이정표와 그 종착지인 오아시스를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함을 말한다. 오직 바른 이정표(지도)와 그것을 가지고 그 광야를 바르게 걸어갔을 때 도착할 오아시스를 기대하는 것만이 그 광야를 온전히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정표, 광야, 오아시스라는 세 가지 과정으로 된 구조를 통해서 ‘광야’를 걷는 예를 보여주고자 했다. 저자는 선별한 네 번의 여정에 관한 기록을 이 책을 통해 소개하며, 그 후에도 수많은 여정이 있으며 그 여정을 위한 ‘당신만의 방법’들을 만들 것에 대해서 기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서두에 밝힌 인용의 ‘기억’과 ‘기대’는 바로 성경과 선진들의 고백을 통한 이정표에 대한 기억과 그들의 밝히는 오아시스에 대한 기대를 말한다. 그리고 기억과 기대 사이에 있는 과정 속을 걷는 것이 우리의 광야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조나단 에드워드, 마르틴 루터, J.I. 패커, 안셀름, 존 번연, 디트리히 본회퍼 등 기독교사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광야를 걸어간 신앙 선배들의 발자취를 그려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 안에 있었던 이 여정에 대한 인식, 그것을 견디어 낼 수 있게 만들어진 신앙의 힘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그려 보여주고 있다. ‘그려 보여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저자 역시 이 책의 장들을 통해서 이들의 발자취를 설명함으로 이해되어지기 원하기 보다는 ‘묵상의 주제’로 삼기 원한다는 의도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묵상’을 통해서 이들 신앙의 선배들과 자신을 동일화 하고, 그들의 봤던 상황의 인식으로 자신의 현재를 인식하고, 그들의 세웠던 대안들을 가지고 현실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여정을 걸어갈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 책을 빠른 시간에 독파하려고 했던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처음 책을 펼친지 일주일인 지금, 책의 절반 정도에 머물러 있다. 한 여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그 여정 안에 있었던 믿음의 선배들이 선택하고 걸었던 상황들을 그려보지 않고는 이 책을 읽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해를 요구하는 책이 아닌 ‘묵상’을 요청하는 책이었고, ‘앎’을 위한 책이 아니라 ‘공감’과 ‘통찰’을 요구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분량의 글들을 읽고, 깊이 묵상하며, 그 상황 속에서 그들의 선택에 대해서 공감하려 할 때, 나와 동일한 길을 걸었던 이들의 숨결 앞에 서게 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들이 믿음의 후배들에게 내어미는 친절한 손을 경험하게 되었다. 히브리서 12장의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했었다고 말하는 성경의 말씀이 이해되었다. 먼저 달려서 이미 결승점에 도착한 믿음의 선수들이 이제는 응원하고 코치하는 이들이 되어 우리 옆에 서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쉽게 이 여정에서 주저앉고 싶어지는 나에게 이들의 응원의 소리는 힘이 되어 오아시스를 향해 다시금 발을 내 딛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몇 일전, 아내가 유산하는 고통을 경험했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 아파하고 있는 나에게 주신 한 가지 환상이 있었는데, 주님께서 아파하시는 모습이었다. 체휼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내 안에, 십자가에 달리시어 인간의 고통에 대해서 이미 온전히 경험하신 분의 위로하는 손길이었다. 그분은 이미 그 고통의 길, 광야를 걸어가셨기 때문에, 그 길을 이제 걷는 이에게 하실 말씀과 위로와 조언이 계셨던 것이다. 그분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 수 있었고 그곳에서 추스르고 일어나 , 그 슬픔 안에서 발견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
나의 걸음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내 앞에 광야는 또 얼마나 남아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껏 경험과 성경의 기록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볼 때, 내 이후의 삶에 ‘광야’의 존재는 분명하며, 하나님과 더 깊이 더 친밀해 지기를 갈망할수록 더 넓고 더 힘든 광야의 삶이 있을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그 광야에 난 좁은 오솔길은 이미 알려져 있건 알려져 있지 않건 많은 이들이 걸어간 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친절하게도 길가에 후배들을 위한 작은 표지판과 작은 주의문과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서 묶어놓은 리본 등으로 우리 후배들이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오아시스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들이 남긴 위대한 표지판의 조언을 받아 그 광야에 난 좁은 길을 걷기 원한다. 그리고 그 길을 지나며 나 역시 나의 후배들, 내가 걸은 그 길을 다시 걷게 될 이들을 위한 작은 흔적들을 넘겨 놓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한다.
(조영민)
- alister.gif (0B) (7)




198개(8/10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