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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법적 설교에 대한 좋은 길잡이
권위없는 자처럼/프래드 크래독/예배와 설교 아카데미/김광훈
이 책은 1-2장을 통해 간단하게 현재의 강단에서의 설교 상황에 대해서 언급한다. 물론 현재라 함은 2000년이 넘어선 지금의 시기가 아니라 수십년전의 그 때일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듣는 대부분의 설교는 권위를 가진 자처럼 선포하는 연역적 설교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파트는 설교의 방법론으로서 귀납적 설교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3장에서부터 7장까지 다루며 귀납적 설교의 장단점과 형식 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과 그 예로 설교문을 첨부하고 있다.
● 저자 프래드 크래독
미국 에모리대학의 캔들러신학대학 은퇴 명예교수(설교와 신약)
● 서평
71년쯤에 나온 초판 책이 다시 수십년이 지나서 4판 형태로 다시 출판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기대감을 주는 책이었다.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고전으로 불리는 책이 있건만 이 책도 그런 책이리라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다. 먼저 귀납법적 설교의 이론과 실재를 말하고자 하는 이 책의 제목 <권위없는 자처럼>을 보면서 무슨 의미일까라는 궁금증이 가득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의문이 해결되었다. 참 적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를 적어보기 전에 책의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1-2장을 통해 간단하게 현재의 강단에서의 설교 상황에 대해서 언급한다. 물론 현재라 함은 2000년이 넘어선 지금의 시기가 아니라 수십년전의 그 때일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듣는 대부분의 설교는 권위를 가진 자처럼 선포하는 연역적 설교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파트는 설교의 방법론으로서 귀납적 설교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3장에서부터 7장까지 다루며 귀납적 설교의 장단점과 형식 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과 그 예로 설교문을 첨부하고 있다.
1. 설교의 현재상황
설교의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설교 준비과정에서는 귀납적 과정을 거치지만 설교가 선포될 때에 연역적인 과정으로 행해지는 것에는 문제가 많은 것이 분명하다. 또한 새로운 문화 속에 있는 청중들을 이해하지 못한 체 과거의 언어와 형태를 고집하며 주입식 설교를 행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나도 설교를 하면서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이런 것이었다. 설교자는 처음부터 결론을 말하고나서 청중들을 향해 주입식 설교를 시작한다. 청중들은 이미 결론이 난 얘기를 계속 들으면서 지루해 한다. 그리고 청중 스스로는 어떤 결단도 할 것이 없게 된다. 때로는 설교하는 자로서 그런 모습을 느끼며 힘들어 했다. 문제는 청중들에게도 있고 설교자에게도 있는 것이었다. 이 책은 설교자만 권위를 가진 체 청중들을 무시해가며 설교하는 전형적인 설교의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며 그런 현실에 대해서 환기시켜주는 책이다. 청중들의 반응을 무시한 체 메세지를 선포하기 보다는 청중이 선택하고 결단하며 전체 스토리를 함께 따라가도록 해 주는 것이 설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결론적으로 설교의 방법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자는 자신이 설교 본문을 이해한 과정과 동일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청중들도 그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2. 새로운 설교 방법론에 대한 제안
새로운 방법론에 있어서 제일 먼저 고려되는 점은 설교의 움직임에 대한 것이다. 설교에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며 방향이 있어야 한다. 어디로 향하는가? 연역적 방법은 결론을 먼저 얘기한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먼저 결론을 얘기하고나서 그 내용을 말하는 경우는 적다. 그런 얘기는 흥미를 주지 못한다. 이런 방법의 설교는 설교자가 이미 결론을 내렸기에 권위를 가지게 되며 청중들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입장이 되고 그렇기에 지루하며 삶에 적용할 기회를 잃게 된다. 또한 연역적 방법의 특징상 각각의 내용별로 구분해서 소제목으로 내려가는 구조를 가지게 되는데 이럴 경우 새로운 내용이 시작될 경우 급격하게 내용이 점프하는 경향이 있어서 전체 흐름이 깨지기 쉽다. 그러나 성경공부에 있어서 귀납적 성경공부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것처럼 설교의 내용을 파악했던 귀납적 방법을 청중들도 동일하게 따라가는 것이 왜 안되느냐라는 질문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결론은 그것이 가능하며 유익하다는 것이다.
이런 귀납법적 설교를 하게 되면 설교자는 청중들에게 삶의 적용을 뒤에 강조할 필요가 없게된다. 이미 청중들은 설교자가 깨달은 것처럼 같은 길을 다시 걸어가면서 결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설교자의 결론이 청중의 결론이 될 것이다. 결론은 설교자의 명령이 아니라 청중 스스로가 결정한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귀납적인 설교는 청중들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자는 청중을 존중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청중들은 설교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귀납적 설교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설교자가 길을 제시할 뿐 명확한 결론을 제시해주지 않는다면 메세지는 약해보이며 책임감도 없게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귀납법적 설교는 청중들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떠 넘기는 느낌을 준다는 점도 있다. 그렇다. 이것은 맞는 지적이며 이것이 또한 귀납법적 설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결론을 미리 내려주지 않는 것이 그 하나이며 청중을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신뢰하며 결론을 청중에게 넘기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명 결정은 허용된다.물론 거기에는 위험도 포함된다. 아무튼 이렇게 행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과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감행하는 것이 모든 것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p.141)"
3. 결론 및 책에 대한 평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귀납법적 성경공부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이 있다. 성경해석학 책을 사보며 다양한 사전들과 주석서를 이용하며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며 배경을 분석하고 해석하며 연관시켜보고 적용시켜보는 과정 속에서 메세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설교에도 그렇게 적용하는 것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접하는 모든 설교자들이 그렇게 설교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권위를 가진 체 모든 결론을 내리며 재미없게 결론을 말해버리는 설교자들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청중을 무시하는 것이다. 성경을 공부할 때처럼 청중들에게 선포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는 여행을 도와줄 수 있다면 귀납법적 설교의 시도는 매우 의미있는 방법이리라 믿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방법의 중요성을 이미 수십년전부터 얘기해 왔다. 다만 적용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한 시대의 관습을 변화시키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 책의 번역은 무난하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매우 흥미있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 흐름은 흥미롭다. 다만 세부적인 본문은 다소 지루하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책 내용이 흥미 없음 보다는 책의 주제상 그 내용이 소설과도 같은 흥미를 주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전체적인 구성도 좋은 편이며 내용도 좋은 편이다. 신학적 지식을 가진 이들이 본다면 저자가 말하는 바를 좀더 세부적으로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인 지식이 별로 없다면 일부 본문에서 말하는 용어와 배경들을 파악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조금만 인내한다면 좋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1-2장을 통해 간단하게 현재의 강단에서의 설교 상황에 대해서 언급한다. 물론 현재라 함은 2000년이 넘어선 지금의 시기가 아니라 수십년전의 그 때일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듣는 대부분의 설교는 권위를 가진 자처럼 선포하는 연역적 설교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파트는 설교의 방법론으로서 귀납적 설교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3장에서부터 7장까지 다루며 귀납적 설교의 장단점과 형식 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과 그 예로 설교문을 첨부하고 있다.
● 저자 프래드 크래독
미국 에모리대학의 캔들러신학대학 은퇴 명예교수(설교와 신약)
● 서평
71년쯤에 나온 초판 책이 다시 수십년이 지나서 4판 형태로 다시 출판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기대감을 주는 책이었다.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고전으로 불리는 책이 있건만 이 책도 그런 책이리라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다. 먼저 귀납법적 설교의 이론과 실재를 말하고자 하는 이 책의 제목 <권위없는 자처럼>을 보면서 무슨 의미일까라는 궁금증이 가득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의문이 해결되었다. 참 적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를 적어보기 전에 책의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1-2장을 통해 간단하게 현재의 강단에서의 설교 상황에 대해서 언급한다. 물론 현재라 함은 2000년이 넘어선 지금의 시기가 아니라 수십년전의 그 때일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듣는 대부분의 설교는 권위를 가진 자처럼 선포하는 연역적 설교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파트는 설교의 방법론으로서 귀납적 설교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3장에서부터 7장까지 다루며 귀납적 설교의 장단점과 형식 등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과 그 예로 설교문을 첨부하고 있다.
1. 설교의 현재상황
설교의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설교 준비과정에서는 귀납적 과정을 거치지만 설교가 선포될 때에 연역적인 과정으로 행해지는 것에는 문제가 많은 것이 분명하다. 또한 새로운 문화 속에 있는 청중들을 이해하지 못한 체 과거의 언어와 형태를 고집하며 주입식 설교를 행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나도 설교를 하면서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이런 것이었다. 설교자는 처음부터 결론을 말하고나서 청중들을 향해 주입식 설교를 시작한다. 청중들은 이미 결론이 난 얘기를 계속 들으면서 지루해 한다. 그리고 청중 스스로는 어떤 결단도 할 것이 없게 된다. 때로는 설교하는 자로서 그런 모습을 느끼며 힘들어 했다. 문제는 청중들에게도 있고 설교자에게도 있는 것이었다. 이 책은 설교자만 권위를 가진 체 청중들을 무시해가며 설교하는 전형적인 설교의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며 그런 현실에 대해서 환기시켜주는 책이다. 청중들의 반응을 무시한 체 메세지를 선포하기 보다는 청중이 선택하고 결단하며 전체 스토리를 함께 따라가도록 해 주는 것이 설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결론적으로 설교의 방법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자는 자신이 설교 본문을 이해한 과정과 동일하게 겸손한 마음으로 청중들도 그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2. 새로운 설교 방법론에 대한 제안
새로운 방법론에 있어서 제일 먼저 고려되는 점은 설교의 움직임에 대한 것이다. 설교에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며 방향이 있어야 한다. 어디로 향하는가? 연역적 방법은 결론을 먼저 얘기한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때 먼저 결론을 얘기하고나서 그 내용을 말하는 경우는 적다. 그런 얘기는 흥미를 주지 못한다. 이런 방법의 설교는 설교자가 이미 결론을 내렸기에 권위를 가지게 되며 청중들은 그냥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입장이 되고 그렇기에 지루하며 삶에 적용할 기회를 잃게 된다. 또한 연역적 방법의 특징상 각각의 내용별로 구분해서 소제목으로 내려가는 구조를 가지게 되는데 이럴 경우 새로운 내용이 시작될 경우 급격하게 내용이 점프하는 경향이 있어서 전체 흐름이 깨지기 쉽다. 그러나 성경공부에 있어서 귀납적 성경공부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것처럼 설교의 내용을 파악했던 귀납적 방법을 청중들도 동일하게 따라가는 것이 왜 안되느냐라는 질문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결론은 그것이 가능하며 유익하다는 것이다.
이런 귀납법적 설교를 하게 되면 설교자는 청중들에게 삶의 적용을 뒤에 강조할 필요가 없게된다. 이미 청중들은 설교자가 깨달은 것처럼 같은 길을 다시 걸어가면서 결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설교자의 결론이 청중의 결론이 될 것이다. 결론은 설교자의 명령이 아니라 청중 스스로가 결정한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귀납적인 설교는 청중들을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자는 청중을 존중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청중들은 설교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귀납적 설교에 대한 비판도 있다. 설교자가 길을 제시할 뿐 명확한 결론을 제시해주지 않는다면 메세지는 약해보이며 책임감도 없게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귀납법적 설교는 청중들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떠 넘기는 느낌을 준다는 점도 있다. 그렇다. 이것은 맞는 지적이며 이것이 또한 귀납법적 설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결론을 미리 내려주지 않는 것이 그 하나이며 청중을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신뢰하며 결론을 청중에게 넘기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명 결정은 허용된다.물론 거기에는 위험도 포함된다. 아무튼 이렇게 행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과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감행하는 것이 모든 것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p.141)"
3. 결론 및 책에 대한 평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귀납법적 성경공부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이 있다. 성경해석학 책을 사보며 다양한 사전들과 주석서를 이용하며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며 배경을 분석하고 해석하며 연관시켜보고 적용시켜보는 과정 속에서 메세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설교에도 그렇게 적용하는 것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접하는 모든 설교자들이 그렇게 설교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권위를 가진 체 모든 결론을 내리며 재미없게 결론을 말해버리는 설교자들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청중을 무시하는 것이다. 성경을 공부할 때처럼 청중들에게 선포하며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는 여행을 도와줄 수 있다면 귀납법적 설교의 시도는 매우 의미있는 방법이리라 믿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방법의 중요성을 이미 수십년전부터 얘기해 왔다. 다만 적용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한 시대의 관습을 변화시키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 책의 번역은 무난하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매우 흥미있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 흐름은 흥미롭다. 다만 세부적인 본문은 다소 지루하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책 내용이 흥미 없음 보다는 책의 주제상 그 내용이 소설과도 같은 흥미를 주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전체적인 구성도 좋은 편이며 내용도 좋은 편이다. 신학적 지식을 가진 이들이 본다면 저자가 말하는 바를 좀더 세부적으로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인 지식이 별로 없다면 일부 본문에서 말하는 용어와 배경들을 파악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조금만 인내한다면 좋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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