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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앞에 선 목회자의 목소리

대학 초년생 때, 최루탄의 냄새를 맡으며 시위대 앞에 서 본 적이 있다.
무슨 영문인지 왜 그곳에 있었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이 사회의 불의와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배들과 함께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나는 정말로 바른 자리에 서 있다는 자부심으로 당당했었다. 세상이 내가 던지는 이 작은 구호에 의해 바뀔턱이 없다고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외치는 것이 ‘지식인의 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 2학년 때,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리고 한번도 그렇게 느껴본적 없었던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이전날 가지고 있던 가치관들이 하나둘 붕괴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다시금 정립되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다. 세상을 향해, 남들을 향해 품었던 의분이라 여겼던 것들이 어쩌면 그들의 자리에 가보지 못했기에 갖는 부러움일 수 있다는 생각과 ‘남의 티를 보며 자신의 들보를 깨닫지 못한’ 성경의 인문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그 자리가 주어졌다면 저들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배신이라는 말을 들으며, 이전에 몸담고 있던 곳에서 벗어나 기독교인 안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했고, 근 4년의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작은 교회의 전도사가 되었다. 흘러간 수년간의 시간은 더 이상 내가 시대와 민족을 보며 통탄하고 나가서 소리쳤던 어린시절의 뜨거움을 식혀버렸고, 그리스도안에서 나의 죄성으로 인해 치를 떨며 다른 이를 향한 비판을 멈추게 했던, 철저한 자기인식도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놨다. 사회와 그리스도에 대해서 차지도 덥지도 않은 상태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상태가 바로 나의 상태가 아니였었나 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에게 있어 마틴 루터 킹은 흑은 인권 운동가 중 한 사람으로 미국의 흑인 차별 정책에 대해서 반대했던 운동가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TV 공익광고에서 들었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문장 몇 줄을 들었던 것의 그에 대한 나의 인식의 전부였다. 너무도 익숙해서 어쩌면 더 깊은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이 한 흑인 운동가이자 목사인, 아니 목사이기에 운동가가 된 인물에 대한 설교집이 어느 날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이 책은 루터 킹 목사가 39세로 저격당하기까지 했던 설교 중 11편의 설교를 간추린 설교집이다. 이 책은 최근에 많이 읽혀지는 다른 목사님들의 글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갖는데, 이 원고들이 예배당에서 선포된 설교이기도 하지만 또한 거리에서 외쳐진 연설이기도 한 까닭일 것 같다. 시대와 민족을 향해서 그리고 교회에 교회 밖 사람들을 향해서 분명하게 외쳐진 메시지들을 한편 한편 실려 있었다. 그 원고들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사로잡힌 한 설교가이자 운동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루터 킹 목사가 설교를 하는 장면이 흑백 사진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 설교자의 뒤에는 4열의 성가대가 위치하고 있고 전면의 성도들을 향해서 설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손을 높이 들고, 다른 손으로 그의 가슴 켠에 두고 있다. 그의 눈은 아래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하늘, 즉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향해 있다. 그리고 그의 강단에는 흔한 마이크도 없다. 나는 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해서 그가 설교하고 있는 그 교회에 청중으로 앉을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그 곳은 한 젊은 목사가 미국과 전 세계를 향한 그리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선포하는 곳이었다. 그는 말씀의 깊이와 무게 때문에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의 목소리는 마치 사자의 울음소리와 같은 크기와 무게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들려졌을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그의 설교를 보면,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가 굶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으며 필요한 것을 가지고 문화를 즐기며 교육을 받고 자유를 누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흑인 아들딸들이 그분의 백인 아들딸들처럼 존중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p131)
공익광고에 쓰여졌던 이 문장은 그 문장만으로는 최초에 이 문장을 들었던 이들이 느꼈던 강한 충격과 감동 전부를 나눌 수가 없다. 이 문장이 그의 한편의 설교의 대미를 장식하는 호소이며, 격정의 목소리라는 틀 안에서 이해될 때, 그나마 이 문장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장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의 정신을 살펴보고, 그 안에 모든 인간의 기본권의 의미에 대해 살펴본 다음, 그 모든 인간에게 선언된 위대한 인간의 기본권이 무너진 미국의 현실을 고발하고, 그 현실적으로 무너진 미국의 현실을 하나 하나 언급한 후, 그 사건 속에서 “나의 꿈은 부서져 버렸습니다”라는 문장의 반복한 후 나온 결말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설교인 “한밤의 노크소리”의 경우에는 사회가 아닌 교회의 역할에 대해 목사의 입장에서 강하게 선포되었다. 설교는 누가복음 11:5-6절의 내용 즉, 벗이 여행 중에 한밤중에 찾아와 떡을 달라고 하는 내용과 이 찾아온 벗에게 떡을 주지 않으려는 집 주인의 모습에 대한 글이었다. 저자는 이 ‘노크소리’에 대해서 ‘교회를 향한 떡이 필요한 자들의 노크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전부터 교회는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흑인 노예들에, 전 세계의 전쟁, 수없이 많은 약자들에 의해서, 수많은 밤 동안, 수 없이 많은, 다급한 노크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교회는 약자들의 노크소리를 무시했고 심지어 그 약자들을 억압하는 이들의 손을 들어주며 그들에게 아첨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교회만이 이 불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떡’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또다시 교회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새벽은 온다”라는 희망을 외치는 것치는 것이라고 말하며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주장했다.
1963년에 선포된 이 메시지는 오늘날 한국이라는 다른 배경의 교회에게도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아직도 이 세상은 한 밤이며,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은 여전히 ‘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 약자들에 대해 우리는 답하고 있는가? 사회적 강자들의 폭력과 억압 앞에서 교회는 진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교회의 선지자적인 역할을 찾으라고 외치는 킹 목사의 설교 앞에 한국교회도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거리고 있는건 아닌가 ?
가끔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있는, 빈민을 위해, 또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수고하시는 귀한 분들을 볼 기회가 있다. 그들 가운데 기독교계의 유명한 목사님들을 접할 기회도 있다. 하지만 그분들의 귀한 사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선에서 분노를 읽는다. 혹시 그분들이 하고 있는 선한 일들이 ‘있는 자 가진 자에 대한 분노’라는 어그러진 동기 때문이라면 그들의 사역이 하나님께 온전히 열납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움이 사랑의 동기가 될 수 없다면,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온 그 사랑의 동기로 수고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수고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인권 운동가이기 전에 목사인 루터 킹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사회 정의를 위한 목소리 깊은 곳에 있는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 그는 차별 받는 흑인을 사랑할 뿐 아니라 흑인을 차별함으로 존엄성을 잃어버린 백인을 가여워하며 사랑한다. 그가 백인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그는 그 시대에 그 상황 가운데서 그 일을 위해 자신의 짧은 삶을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동기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나의 ‘사회정의’에 대한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시대에 대한 의분을 하나님 안에서 표현할 수 있도록 지침을 주고, 사랑의 동기로 정의에 대해 외치는 법을 가르쳐준 책이었다. 설교-들려지고 읽혀진 내용으로-뿐 아니라, 그렇게 삶을 살았던 본을 눈으로 보게 된 시간이었다. 39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통해, 결국 저격으로 인해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한 순교자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면서까지 외쳤던 메시지를 듣는 시간이었다. 그 메시지는 오래전 잃어버렸던 것들, 차갑게 식어져 있던 내 마음에 불이 되었다.
오늘날 여전히 시대는 ‘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교회의 문은 그들을 향해 닫혀 있다. 어느 날엔가 나는 그 교회의 문 안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다시금 하나님께서 주신 교회의 사명을 수행할 것이다. 여전히 울려퍼지는 한밤 중에 교회당을 울리게 하는 그 문 두드리는 소리에 앞에서 그 교회의 문을 열어젖히고 큰소리로 ‘새벽이 온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되기 원한다. 그 약자들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스크럼을 짜고, 거대해 보이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거대한 희망의 무리 가운데 함께 걷는 한 사람의 목회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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