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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필립 얀시/IVP/조영민
어린시절, 작은 시골교회에서 ‘목사의 아들’로 자랐다. 모든 목사의 아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이 이름이 주는 특별함이 항상 따라다녔다. 우리 부모님께서 그것을 강요 한적은 없지만 은연중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나에게 ‘완전’을 강요했다. 나는 그 시골에서 특별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나는 친구들과 놀면서 옷을 버려본적이 없다. 또래 집단과 어울리며 싸움을 해본적도 없다. 그 당시 한참 유행이었던 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간다거나 봄철 죽순을 훔치러 대밭에 들어간 적도 없다. 나는 그 시골 마을에서 특별한 존재였다. 나는 그 시골 초등학교에서 유일하게 도서실에 앉아서 책을 읽는 소년이었고, 그 작은 도서실의 모든 책을 다 읽었던 소년이었다. 나는 완벽함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길만큼 열심히 살았던 모범생이었다.
한살 한살 나이가 먹어가면서 나는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요구들을 받아들였고, 최대한 모든 이가 만족할만한 것을 추구했다. 항상 그렇듯 최대공약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합리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명확한 원칙과 그 원칙을 성취할 수 있는 의지로 가능해졌다. 큰 교회에서 중고등부 회장, 고등학교 때부터 하기 시작한 교사, 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의 여러 활동들을 그렇게 해 나갔다. 나는 결과들을 만들어 냈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지고 나와 공동체와 각 리더들을 평가하는 자리에까지 서게 되었다. 내 주변에는 항상 소수의 승리자와 상처받은 다수가 남게 되었지만 나는 나의 성취에 눈이 멀어 상처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살펴볼 여력이 없었다. 그들은 ‘자연도태’라는 말로 설명되어질 수 있었고, 그들의 알아서 변해서 나처럼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는 책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캠퍼스 간사님이셨던 그분에게서는 항상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느낌(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이 있었고, 그래서 그분을 좋아하면서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던 분이셨다. 그분은 “너에게 필요한 책인 것 같아 샀다”라며 내게 이 책을 선물로 주셨다.
책을 읽다가 5번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애써 참았다. 5번째 마지막 부분에서 울려퍼지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고마워 ~ ”라는 찬송가 가사 앞에서 .. 애써 참고 참았던 울음이 나왔다. 그리고 울었다. 한참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 이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내가 감당하기 너무 힘든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라는 이성과 감성과 영성의 동일한 소리 앞에서 완강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두에 은혜라는 단어를 ‘이 땅에서 오염되지 않은 최고의 단어’라고 격찬하며 글을 시작한다.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이 단어에 대한 부연이었다. 모든 이가 꿈꾸고 갈망하고 있는 단어인 이 ‘은혜’라는 단어와 그 것과 상반된 우리 삶의 형태인 ‘은혜 없는 세상’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은혜의 세계를 만든 이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현대판 율법주의자들, 죄와 죄인을 동일시하며, 세상을 향해서 “자기 몫을 해야만 살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는 일명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게 지금껏 나의 삶이었다.
그런 비은혜의 세상에서 비은혜를 조장하는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고 저자는 말하며 우리 모두가 이미 ‘불량품’이라고 말한다. 우리 서로가 바라보는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이미 한 사람도 ‘정상’일 수 없는 상태이며,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구원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그가 판단을 받을 것에 대해 말했다. 결국 죄에 대해서 죄의 심판에 대해서 50보 100보인 사람들 안에서 지독한 비은혜가 판치는 것을 말하며 잊어버린 그리스도의 마음을 찾으라 한다. 선물로 주신 그분의 십자가상의 죽으심 앞에서 언제까지 ‘내 의’라는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우리를 모두 불량품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본질상 불량품이다. 나는 그 불량품 중, 남을 판단하는 불량품이었다.
눈이 바뀌어야 하고,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껏 내가 가지고 있던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으로 세상과 이웃을 볼만큼 깨끗한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그렇게 판단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분께서 은혜로 거듭난 눈을 가지고 교회와 이웃과 세상을 보기 원하셨고, 문제와 논쟁의 꺼리와 잘 잘못을 가리기 위한 눈이 아니라 사랑하고 용서하기 위한 따뜻한 마음의 눈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바뀌었는지에 대해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나의 눈이 그렇게 바뀌기를 소망한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의 폭주’는 나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책망하시기보다 나를 끌어안으시기 위해 나로 울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지금껏 나의 성장의 과정을 생각하게 하셨다. 둘 중에 무엇이 내 인생의 중요한 위기의 순간에 나로 하나님의 법 아래 있도록 해 주었는가 ? ‘원칙과 지식’의 준수였는가 ? 아님 내가 이제야 표현할 수 있게 된 ‘따스함’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서 있도록 했는가 ? 답은 후자였다. 그러고 그 ‘따스함’이 저자가 말하는 ‘은혜’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옳은 선택, 바른 결정과 온전한 그래서 합리적인 것에 대한 정확한 신앙적 지침들을 제공해 주었던 선배들의 도움은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합리와 정확한 지침들을 지키며 그 안에서 자라날 수 있었던 힘은 나의 모든 실수와 내 모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육체와 마음으로 그것을 품어 안고 상처받으며 울었을 이들의 ‘은혜의 날개’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 ”
찬양의 가사 앞에서 내가 흘리는 눈물은, 감사와 회개, 그리고 결단이다. 차가운 법의 세계에서 따뜻한 은혜의 세계로 끌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나로 울게 한다. 이 작은 책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통해 차가운 세상이 따뜻해지고, 계산하던 계산기를 놓아버리고 상한 마음으로 상한 자를 품어 안는 이의 수가 늘어가기를 기도한다.
[조영민]
어린시절, 작은 시골교회에서 ‘목사의 아들’로 자랐다. 모든 목사의 아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이 이름이 주는 특별함이 항상 따라다녔다. 우리 부모님께서 그것을 강요 한적은 없지만 은연중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나에게 ‘완전’을 강요했다. 나는 그 시골에서 특별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나는 친구들과 놀면서 옷을 버려본적이 없다. 또래 집단과 어울리며 싸움을 해본적도 없다. 그 당시 한참 유행이었던 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간다거나 봄철 죽순을 훔치러 대밭에 들어간 적도 없다. 나는 그 시골 마을에서 특별한 존재였다. 나는 그 시골 초등학교에서 유일하게 도서실에 앉아서 책을 읽는 소년이었고, 그 작은 도서실의 모든 책을 다 읽었던 소년이었다. 나는 완벽함이라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길만큼 열심히 살았던 모범생이었다.
한살 한살 나이가 먹어가면서 나는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요구들을 받아들였고, 최대한 모든 이가 만족할만한 것을 추구했다. 항상 그렇듯 최대공약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합리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명확한 원칙과 그 원칙을 성취할 수 있는 의지로 가능해졌다. 큰 교회에서 중고등부 회장, 고등학교 때부터 하기 시작한 교사, 대학시절 선교단체에서의 여러 활동들을 그렇게 해 나갔다. 나는 결과들을 만들어 냈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지고 나와 공동체와 각 리더들을 평가하는 자리에까지 서게 되었다. 내 주변에는 항상 소수의 승리자와 상처받은 다수가 남게 되었지만 나는 나의 성취에 눈이 멀어 상처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살펴볼 여력이 없었다. 그들은 ‘자연도태’라는 말로 설명되어질 수 있었고, 그들의 알아서 변해서 나처럼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는 책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캠퍼스 간사님이셨던 그분에게서는 항상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떠한 느낌(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이 있었고, 그래서 그분을 좋아하면서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던 분이셨다. 그분은 “너에게 필요한 책인 것 같아 샀다”라며 내게 이 책을 선물로 주셨다.
책을 읽다가 5번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애써 참았다. 5번째 마지막 부분에서 울려퍼지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고마워 ~ ”라는 찬송가 가사 앞에서 .. 애써 참고 참았던 울음이 나왔다. 그리고 울었다. 한참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 이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내가 감당하기 너무 힘든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라는 이성과 감성과 영성의 동일한 소리 앞에서 완강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두에 은혜라는 단어를 ‘이 땅에서 오염되지 않은 최고의 단어’라고 격찬하며 글을 시작한다.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이 단어에 대한 부연이었다. 모든 이가 꿈꾸고 갈망하고 있는 단어인 이 ‘은혜’라는 단어와 그 것과 상반된 우리 삶의 형태인 ‘은혜 없는 세상’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은혜의 세계를 만든 이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현대판 율법주의자들, 죄와 죄인을 동일시하며, 세상을 향해서 “자기 몫을 해야만 살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는 일명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게 지금껏 나의 삶이었다.
그런 비은혜의 세상에서 비은혜를 조장하는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고 저자는 말하며 우리 모두가 이미 ‘불량품’이라고 말한다. 우리 서로가 바라보는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이미 한 사람도 ‘정상’일 수 없는 상태이며, 하나님께서는 누구도 구원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그가 판단을 받을 것에 대해 말했다. 결국 죄에 대해서 죄의 심판에 대해서 50보 100보인 사람들 안에서 지독한 비은혜가 판치는 것을 말하며 잊어버린 그리스도의 마음을 찾으라 한다. 선물로 주신 그분의 십자가상의 죽으심 앞에서 언제까지 ‘내 의’라는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우리를 모두 불량품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본질상 불량품이다. 나는 그 불량품 중, 남을 판단하는 불량품이었다.
눈이 바뀌어야 하고,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껏 내가 가지고 있던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으로 세상과 이웃을 볼만큼 깨끗한 이는,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그렇게 판단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분께서 은혜로 거듭난 눈을 가지고 교회와 이웃과 세상을 보기 원하셨고, 문제와 논쟁의 꺼리와 잘 잘못을 가리기 위한 눈이 아니라 사랑하고 용서하기 위한 따뜻한 마음의 눈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바뀌었는지에 대해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나의 눈이 그렇게 바뀌기를 소망한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의 폭주’는 나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책망하시기보다 나를 끌어안으시기 위해 나로 울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지금껏 나의 성장의 과정을 생각하게 하셨다. 둘 중에 무엇이 내 인생의 중요한 위기의 순간에 나로 하나님의 법 아래 있도록 해 주었는가 ? ‘원칙과 지식’의 준수였는가 ? 아님 내가 이제야 표현할 수 있게 된 ‘따스함’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에 서 있도록 했는가 ? 답은 후자였다. 그러고 그 ‘따스함’이 저자가 말하는 ‘은혜’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옳은 선택, 바른 결정과 온전한 그래서 합리적인 것에 대한 정확한 신앙적 지침들을 제공해 주었던 선배들의 도움은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합리와 정확한 지침들을 지키며 그 안에서 자라날 수 있었던 힘은 나의 모든 실수와 내 모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육체와 마음으로 그것을 품어 안고 상처받으며 울었을 이들의 ‘은혜의 날개’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 ”
찬양의 가사 앞에서 내가 흘리는 눈물은, 감사와 회개, 그리고 결단이다. 차가운 법의 세계에서 따뜻한 은혜의 세계로 끌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나로 울게 한다. 이 작은 책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통해 차가운 세상이 따뜻해지고, 계산하던 계산기를 놓아버리고 상한 마음으로 상한 자를 품어 안는 이의 수가 늘어가기를 기도한다.
[조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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