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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적인 모험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모험으로 사는 인생/폴 투르니에/IVP/이종수
폴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우리 속에서 솟아나는 억누를 수 없는 힘이자, 또한 이를 만족시키면 특별한 내적인 기쁨을 주는 모험심을 일컬어 “인간 공통의 위대한 충동”이자 “하나의 본능”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모험의 본능이야말로 인간 행동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추진력이며, 이 모험의 본능이 우리의 가치 체계와 결합할 때, 질적인 모험과 양적인 모험으로 구별된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추진력을 불어넣어주는 궁극적인 것에 대한 내적인 욕구가 있으며, 그러한 궁극적인 것에 대한 욕구는 진정한 가치와 질적인 것을 체험하고자 하는 욕망으로써, 이 열망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늘 질적인 것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양적인 면에서 보충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따라서 모험이 질적인 것에서 양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면, 그 모험은 비극적인 악순환에 빠져 버리게 된다. 이것은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더 높은 지위 상승으로의 모험, 혹은 어떤 일에 미친 듯이 열중하려는 모험, 또는 도박으로의 모험, 그리고 마약으로의 모험 등에 급속히 빠져들게 된다. 이밖에도 문화, 예술, 경제,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의 권력에로의 모험 등이 있으며, 심지어는 혼외 정사에로의 모험 등도 있다.
사실 우리 현실의 삶은 우리의 본능과도 같은 모험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노력을 바칠만한 목표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 때, (혹시 잘못 생각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고 있으며, 또 그로 인해 심오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순간 만큼은 쉽게 정열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감은 실제로는 본능적인 욕구가 만족된 데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이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모험이기만 하면 어떤 모험이건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의 모험이 진리를 위하고, 정의를 위하고, 타당한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확신이 없이는 그 어느 것도 모험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모험으로 뛰어들어야 할까? 이제 인간의 일의 의미를 생각해볼 차례인 것 같다. 폴 투르니에는 “인간의 일의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심어주신 모험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과 삶의 모험이 관심의 대상이 됨을 느낄 때, 또한 자신에게 기계적인 행동이 아닌 일에 대한 이해와 총명함, 창의력, 활발한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것과 자신이 공동의 모험에 속한 단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자기 나름의 모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을 인격적으로 표출하고 싶어 하고, 자신을 새로운 일에 바치고자 하며, 독창적인 무엇을 발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적인 존재인 우리는 일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더욱 영적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물과 세계와 삶의 의미를 알고자 하며, 또한 자신의 노동의 의미를 이해하여 전체 속에서, 곧 세계의 운명 속에서 개인적이고 창조적인 공헌을 통해 자신이 감당하는 역할을 알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영적인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내적으로 모험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아니 우리의 지식이 자라가는 동시에 모험도 더욱 자라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는 것, 그래서 우리 속에 모험의 정신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모험가라는 것이다. 폴 투르니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 그것이야말로 매우 위험한 모험이라고 말한다. 즉 모험의 정신을 부여받은 존재, 모험을 사랑한 나머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창조의 완전한 질서를 뒤엎는데까지 휩쓸려 갈 수 있는 그런 존재를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타락했다. 이 엄청난 충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모험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창조의 모험에 이어 하나님은 구원의 모험을 시작하신다. 이번엔 하나님이 실제로 인간의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낮고 천한 땅에 강림하신 것이다. 이것은 낙심과 고난이라는 가장 큰 위험을 동반한 최고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수난이라고 하는 대하극의 정점에 이르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것으로 끝인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으며, 성령님을 보내셨고, 하나님은 새로운 한 백성을 세우셨다. 곧 교회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흥미진진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모험이 아닌가!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모험을 성경에 비추어 봄으로써, 우리의 모험을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맞추는 새로운 지평으로 옮겨가야 한다. 과연 우리의 모험이 하나님과 더불어 하는 것이냐, 또는 하나님께 맞서는 것이냐로 측정해야 한다. 때로 우리의 모험이 실패한 것 같은 때도 있고, 실패는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겪는 실패는 사실상 실패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최고의 실패인 동시에 최고의 승리인 까닭이다. 십자가는 사실상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우리 크리스찬들의 인생이 행복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되는 이 모험으로 가득한 인생에서 매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묵상을 통해 영적인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를 이음으로써, 부단히 우리의 모험을 그분의 목적에 맞출 때, 우리 인생의 모험은 곧 하나님 그분의 모험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활동과 생각과 감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험에 들어가고자 애쓰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인 것이다.”라고 폴 투르니에가 말한 바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모험은 계속되고 새로워지며 새롭게 솟아나고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적인 모험으로 우리를 손짓해 부르고 있다. 우리는 이에 어찌 화답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저자 폴 투루니에(1899-1986)
1899년 5월 제네바에서 태어난 저자는 스위스의 내과 의사로 제네바및 파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인격의학"이라고 불리우는 의료활동에 온 힘을 기울여 일반 의학에 정신요법을 활용한 대화를 통해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했다. 제1차 세계대전후 국제 적십자사의 대표로 오스트리아에 파견되어 전쟁포로들의 본국 귀환 및 아동복지를 위해 일하였다. 현대 심리학과 기독교를 연결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많은 저서가 18개 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폴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우리 속에서 솟아나는 억누를 수 없는 힘이자, 또한 이를 만족시키면 특별한 내적인 기쁨을 주는 모험심을 일컬어 “인간 공통의 위대한 충동”이자 “하나의 본능”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모험의 본능이야말로 인간 행동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추진력이며, 이 모험의 본능이 우리의 가치 체계와 결합할 때, 질적인 모험과 양적인 모험으로 구별된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추진력을 불어넣어주는 궁극적인 것에 대한 내적인 욕구가 있으며, 그러한 궁극적인 것에 대한 욕구는 진정한 가치와 질적인 것을 체험하고자 하는 욕망으로써, 이 열망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은 늘 질적인 것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양적인 면에서 보충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따라서 모험이 질적인 것에서 양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면, 그 모험은 비극적인 악순환에 빠져 버리게 된다. 이것은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더 높은 지위 상승으로의 모험, 혹은 어떤 일에 미친 듯이 열중하려는 모험, 또는 도박으로의 모험, 그리고 마약으로의 모험 등에 급속히 빠져들게 된다. 이밖에도 문화, 예술, 경제,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의 권력에로의 모험 등이 있으며, 심지어는 혼외 정사에로의 모험 등도 있다.
사실 우리 현실의 삶은 우리의 본능과도 같은 모험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노력을 바칠만한 목표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 때, (혹시 잘못 생각했다 할지라도)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고 있으며, 또 그로 인해 심오한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순간 만큼은 쉽게 정열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감은 실제로는 본능적인 욕구가 만족된 데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이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모험이기만 하면 어떤 모험이건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의 모험이 진리를 위하고, 정의를 위하고, 타당한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확신이 없이는 그 어느 것도 모험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모험으로 뛰어들어야 할까? 이제 인간의 일의 의미를 생각해볼 차례인 것 같다. 폴 투르니에는 “인간의 일의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심어주신 모험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과 삶의 모험이 관심의 대상이 됨을 느낄 때, 또한 자신에게 기계적인 행동이 아닌 일에 대한 이해와 총명함, 창의력, 활발한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것과 자신이 공동의 모험에 속한 단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자기 나름의 모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을 인격적으로 표출하고 싶어 하고, 자신을 새로운 일에 바치고자 하며, 독창적인 무엇을 발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적인 존재인 우리는 일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더욱 영적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물과 세계와 삶의 의미를 알고자 하며, 또한 자신의 노동의 의미를 이해하여 전체 속에서, 곧 세계의 운명 속에서 개인적이고 창조적인 공헌을 통해 자신이 감당하는 역할을 알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영적인 존재가 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내적으로 모험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아니 우리의 지식이 자라가는 동시에 모험도 더욱 자라가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는 것, 그래서 우리 속에 모험의 정신이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모험가라는 것이다. 폴 투르니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 그것이야말로 매우 위험한 모험이라고 말한다. 즉 모험의 정신을 부여받은 존재, 모험을 사랑한 나머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창조의 완전한 질서를 뒤엎는데까지 휩쓸려 갈 수 있는 그런 존재를 만드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타락했다. 이 엄청난 충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모험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창조의 모험에 이어 하나님은 구원의 모험을 시작하신다. 이번엔 하나님이 실제로 인간의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낮고 천한 땅에 강림하신 것이다. 이것은 낙심과 고난이라는 가장 큰 위험을 동반한 최고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그리스도의 수난이라고 하는 대하극의 정점에 이르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것으로 끝인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으며, 성령님을 보내셨고, 하나님은 새로운 한 백성을 세우셨다. 곧 교회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흥미진진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모험이 아닌가!
우리는 이제 우리의 모험을 성경에 비추어 봄으로써, 우리의 모험을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맞추는 새로운 지평으로 옮겨가야 한다. 과연 우리의 모험이 하나님과 더불어 하는 것이냐, 또는 하나님께 맞서는 것이냐로 측정해야 한다. 때로 우리의 모험이 실패한 것 같은 때도 있고, 실패는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겪는 실패는 사실상 실패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최고의 실패인 동시에 최고의 승리인 까닭이다. 십자가는 사실상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우리 크리스찬들의 인생이 행복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되는 이 모험으로 가득한 인생에서 매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묵상을 통해 영적인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를 이음으로써, 부단히 우리의 모험을 그분의 목적에 맞출 때, 우리 인생의 모험은 곧 하나님 그분의 모험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활동과 생각과 감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험에 들어가고자 애쓰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인 것이다.”라고 폴 투르니에가 말한 바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모험은 계속되고 새로워지며 새롭게 솟아나고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적인 모험으로 우리를 손짓해 부르고 있다. 우리는 이에 어찌 화답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저자 폴 투루니에(1899-1986)
1899년 5월 제네바에서 태어난 저자는 스위스의 내과 의사로 제네바및 파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인격의학"이라고 불리우는 의료활동에 온 힘을 기울여 일반 의학에 정신요법을 활용한 대화를 통해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했다. 제1차 세계대전후 국제 적십자사의 대표로 오스트리아에 파견되어 전쟁포로들의 본국 귀환 및 아동복지를 위해 일하였다. 현대 심리학과 기독교를 연결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많은 저서가 18개 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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