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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게바라 평전/장 코르미에/실천문학사/[신동수]
체 게바라에 대한 어줍잖은 선입견이 있다. 그 중 얼마는 사실에 기초한 것일 것이고, 얼마는 곡해된 것이다. 대개는 그가 쿠바혁명을 주도한 열렬한 '공산주의자' 라는 것이 그에 대한 선입견의 근거이다. 냉전의 논리로 사리를 판단하던 시절, 미국은 끔직이도 체게바라를 싫어했다. 이는 체게바라의 혁명사상이 미국을 남미와 세계를 향한 제국주의적 침탈로 규정했기 때문이었고, 한 번도 이 사상이 변하지 않고 미국을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 보다 훨씬 다루기 힘든 강경한 '좌익' 으로 체게바라를 평가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련까지도 체게바라를 부담스러워 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이러한 정치적 외견만으로는 체 게바라의 진면목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언론인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 은 이런 면에서 체의 일상적인 진면목을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체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가 주를 이루는 작가의 편향됨은 이제까지 그에 대한 편향된 선입견을 상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얼마든지 체의 인간성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등에 직접 접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체 게바라는 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그가 혁명의 과정에서 '전사' 로서 보다는 '의사' 로서 더 잘 알려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1955년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 피델 카스트로와 사귀어 쿠바혁명에 참가하였다.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자 쿠바 시민이 되어 라카바니아요새 사령관,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역임하며 '쿠바의 두뇌’라 불렸다. 그는 쿠바의 외무장관이 되어 UN 에서 연설하였으며, 전 세계를 순방했다. 그러다 1965년 3월부터 소식이 끊겨 사망설이 파다하였으나, 카스트로에게 작별의 편지를 남기고 새로운 전쟁터로 달려갔다는 사실이 그 해 10월 밝혀졌다. 그는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부대를 조직, 1967년 10월 볼리비아 산중에서 정부군에게 포위되어 부상을 당하고 사로잡힌 후에 총살당하였다. 종종 체 게바라는 예수와 비견되는 혁명적인 인물로 평가되곤 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처음 접한 것은 필립얀시의 책에서였다. 분명 체는 소위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남미국가들에 대한 불평등한 수탈과 모순의 상황을 인식했다. 그는 가난하고 상하고 지친 민중을 해방시키는 혁명이야말로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는 쿠바를 해방시켰고, 볼리비아를 해방시키려 하다가 죽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을 부패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해방시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던 예수님의 혁명과도 비슷한 일면이 있다. 그러나 평전의 한 대목에서 제시되듯이, 체는 철저히 예수님의 방법을 거부하고 총과 칼을 든다고 외친다. 그가 쿠바를 점령했을 때, 혁명의 세대는 열광했다. 예수의 방법보다 체 게바라의 방법이 진리라고 환호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했는가? 체는 고민에 빠졌다. 그가 추구했던 순수한 혁명은 '사람의 변화' 를 이끌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끊임없이 혁명정신을 일깨우고 사람들을 독려했지만, 그가 원하는 혁명적 인간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볼리비아에서 사망했을 때, 그의 혁명 사상은 예수님의 사상처럼 뻗어나가지 못했다. 아니, 그가 죽은지 30년이 되는 97년, 아이러니칼하게도 그가 그렇게도 거부하던 제국주의적 문화 상품의 모습으로 그는 다시 태어났다. 시계와 티 셔츠등에 새겨진 그의 베레모 쓴 사진과 함께 말이다. 볼리비아는 그가 최후로 전투를 벌이며 총살당했던 곳을 '관광특구' 로 지정하여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 싸르트르의 지적처럼 체 게바라는 그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 이었는지 모른다. 평전을 읽는 내내 나 또한 그의 불굴의 의지와 절제, 반면에 따뜻한 인간성과 일관됨에 반했다. 게릴라의 선봉장으로서 민중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늘 인간의 절대적인 평등을 외치며 한 알의 곡식을 나누어 먹던 이상적 행동, 늘 책을 읽으며 공부하여 진보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던 모습등등은 39살의 나이에 짧은 인생을 마감한 그이지만 참으로 위대한 인물의 전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총을 든 예수' 라고 불리웠던 그가 결코 예수의 혁명에 이르지 못한 공산혁명의 추종자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속단만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추구하던 공산주의는 이미 허물어졌고, 이제 남은 그의 동료들 또한 그의 사상과는 이미 큰 간격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크리스챤으로서 체의 생애는 예수의 혁명을 계승하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예수를 알았음에도, 총과 칼을 들어 공산혁명으로만이 인간 해방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는 것에서 우리는 남미의 기독교를 폄하할 수 없다. 쟈크 엘룰의 지적대로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혁명적 기독교의 모습을 상실한 채 뒤틀려진 기독교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크리스챤들이 이루는 하나님 나라 사회를 보여주어야 할 우리임에도, 여전히 사회의 모순과 불의와 불평등이 바로 우리 크리스챤들을 통해서 자행되고 있음은, 또 다른 체 게바라의 출현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체의 방법이 진리일 수 없음은 그의 생애 자체가 드러내어 주고 있기에, 우리는 담담히 복음의 진리로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체를 통해 믿음의 눈을 들어 예수를 바라보아야 함을 확인한다. 참으로 변화된 인간의 재창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밖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체' 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우리 기독교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이 시대의 체들이 더이상 총칼을 들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혁명' 을 보기를 기대해 본다. 저자 장 코르미에 일간 '파리지앵'의 전문기자로서 체 게바라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전문가이다. 1981년부터 게바라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체의 아버지, 에르네스토 린치를 만난 것을 계기로 체의 일생을 더듬는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1987년에 피에르 리샤르와 함께 <체에 대해 말해다오>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이후 수년동안 체에 관한 연구에 힘을 쏟았다. 저서에 <체 게바라> 등이 있다.
체 게바라에 대한 어줍잖은 선입견이 있다. 그 중 얼마는 사실에 기초한 것일 것이고, 얼마는 곡해된 것이다. 대개는 그가 쿠바혁명을 주도한 열렬한 '공산주의자' 라는 것이 그에 대한 선입견의 근거이다. 냉전의 논리로 사리를 판단하던 시절, 미국은 끔직이도 체게바라를 싫어했다. 이는 체게바라의 혁명사상이 미국을 남미와 세계를 향한 제국주의적 침탈로 규정했기 때문이었고, 한 번도 이 사상이 변하지 않고 미국을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 보다 훨씬 다루기 힘든 강경한 '좌익' 으로 체게바라를 평가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련까지도 체게바라를 부담스러워 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이러한 정치적 외견만으로는 체 게바라의 진면목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언론인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 은 이런 면에서 체의 일상적인 진면목을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체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가 주를 이루는 작가의 편향됨은 이제까지 그에 대한 편향된 선입견을 상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얼마든지 체의 인간성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등에 직접 접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체 게바라는 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그가 혁명의 과정에서 '전사' 로서 보다는 '의사' 로서 더 잘 알려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1955년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 피델 카스트로와 사귀어 쿠바혁명에 참가하였다.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자 쿠바 시민이 되어 라카바니아요새 사령관,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역임하며 '쿠바의 두뇌’라 불렸다. 그는 쿠바의 외무장관이 되어 UN 에서 연설하였으며, 전 세계를 순방했다. 그러다 1965년 3월부터 소식이 끊겨 사망설이 파다하였으나, 카스트로에게 작별의 편지를 남기고 새로운 전쟁터로 달려갔다는 사실이 그 해 10월 밝혀졌다. 그는 볼리비아의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부대를 조직, 1967년 10월 볼리비아 산중에서 정부군에게 포위되어 부상을 당하고 사로잡힌 후에 총살당하였다. 종종 체 게바라는 예수와 비견되는 혁명적인 인물로 평가되곤 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처음 접한 것은 필립얀시의 책에서였다. 분명 체는 소위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남미국가들에 대한 불평등한 수탈과 모순의 상황을 인식했다. 그는 가난하고 상하고 지친 민중을 해방시키는 혁명이야말로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는 쿠바를 해방시켰고, 볼리비아를 해방시키려 하다가 죽었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을 부패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해방시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던 예수님의 혁명과도 비슷한 일면이 있다. 그러나 평전의 한 대목에서 제시되듯이, 체는 철저히 예수님의 방법을 거부하고 총과 칼을 든다고 외친다. 그가 쿠바를 점령했을 때, 혁명의 세대는 열광했다. 예수의 방법보다 체 게바라의 방법이 진리라고 환호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했는가? 체는 고민에 빠졌다. 그가 추구했던 순수한 혁명은 '사람의 변화' 를 이끌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끊임없이 혁명정신을 일깨우고 사람들을 독려했지만, 그가 원하는 혁명적 인간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볼리비아에서 사망했을 때, 그의 혁명 사상은 예수님의 사상처럼 뻗어나가지 못했다. 아니, 그가 죽은지 30년이 되는 97년, 아이러니칼하게도 그가 그렇게도 거부하던 제국주의적 문화 상품의 모습으로 그는 다시 태어났다. 시계와 티 셔츠등에 새겨진 그의 베레모 쓴 사진과 함께 말이다. 볼리비아는 그가 최후로 전투를 벌이며 총살당했던 곳을 '관광특구' 로 지정하여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 싸르트르의 지적처럼 체 게바라는 그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 이었는지 모른다. 평전을 읽는 내내 나 또한 그의 불굴의 의지와 절제, 반면에 따뜻한 인간성과 일관됨에 반했다. 게릴라의 선봉장으로서 민중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고, 늘 인간의 절대적인 평등을 외치며 한 알의 곡식을 나누어 먹던 이상적 행동, 늘 책을 읽으며 공부하여 진보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던 모습등등은 39살의 나이에 짧은 인생을 마감한 그이지만 참으로 위대한 인물의 전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총을 든 예수' 라고 불리웠던 그가 결코 예수의 혁명에 이르지 못한 공산혁명의 추종자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속단만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추구하던 공산주의는 이미 허물어졌고, 이제 남은 그의 동료들 또한 그의 사상과는 이미 큰 간격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크리스챤으로서 체의 생애는 예수의 혁명을 계승하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예수를 알았음에도, 총과 칼을 들어 공산혁명으로만이 인간 해방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했다는 것에서 우리는 남미의 기독교를 폄하할 수 없다. 쟈크 엘룰의 지적대로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혁명적 기독교의 모습을 상실한 채 뒤틀려진 기독교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크리스챤들이 이루는 하나님 나라 사회를 보여주어야 할 우리임에도, 여전히 사회의 모순과 불의와 불평등이 바로 우리 크리스챤들을 통해서 자행되고 있음은, 또 다른 체 게바라의 출현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체의 방법이 진리일 수 없음은 그의 생애 자체가 드러내어 주고 있기에, 우리는 담담히 복음의 진리로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체를 통해 믿음의 눈을 들어 예수를 바라보아야 함을 확인한다. 참으로 변화된 인간의 재창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밖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체' 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우리 기독교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이 시대의 체들이 더이상 총칼을 들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혁명' 을 보기를 기대해 본다. 저자 장 코르미에 일간 '파리지앵'의 전문기자로서 체 게바라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전문가이다. 1981년부터 게바라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체의 아버지, 에르네스토 린치를 만난 것을 계기로 체의 일생을 더듬는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1987년에 피에르 리샤르와 함께 <체에 대해 말해다오>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이후 수년동안 체에 관한 연구에 힘을 쏟았다. 저서에 <체 게바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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