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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진리’에 완전히 매료되어
완전한 진리/낸시 피어시/홍병룡/복있는 사람/[조영민]
1997년 5월, 필자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는 본인의 신상기록부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었었다. 하지만 실재로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그 날에야 비로소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 날 이전에 수많은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납득할만한 대답을 들려주는 기독교인을 만나지 못했다. 물론 답변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언어는 나를 설득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언어였다. 대학 2년 선교단체의 불신자 수련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물론 지적인 부분에서의 만남은 아니었다. 그런 것을 말할 때, ‘강권적’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알아진 것’이 아니라 ‘만나진 것’으로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첫 번째 한 일은 ‘기독교가 어떤 사실 위에 있느냐?’ 하는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그 아버지에 대한 글들을 찾아 방 가득히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다. 놀라움은 그 이전 날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이들을 향해 질문해 왔던, 그리고 그들을 당혹시켰던 그 수많은 질문들의 답이 채 10권도 안 되는 기독교 서적들 안에 거의 100% 다 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지했던 나에 대해서, 그리고 동일하게 무지했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화가 났다. 진리가 아주 가까이 있었는데, 아주 저렴한데, 그것과 너무 멀리서 그리스도를 찾는 것 .... 신앙에 관한 책을 더 읽었고, 기독교 세계관에 관련된 책들을 정리하면서 나의 신앙관은 확고한 기반 위에 서게 되었다.
이 책은 그 시대 읽었던 내 삶 전체를 명쾌하게 풀어내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큰 축을 제시해 주었던 그 책들과 일맥상통한다. 아니 그 때 읽었던 세계관에 대한 책들의 종합판과 같고 그 책들을 한 권의 책으로 재정립한 것 같기도 한 책이었다. 그리고 신들린 듯, 가슴 설레가며, 잠을 줄여가며 1000 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다. 이 책이 정말이지 꼭 읽혀지기 바랄만큼 ‘정말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시험기간 밀려드는 시험의 부담 속에서도 읽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이렇게 이 책의 서평이라는 장르의 글을 또 쓸 수밖에 없는 그런 책이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책이 아님에도 우리의 이성을 향해서 지성을 향해 하는 목소리인데도 이 책은 나를 사로잡았고, 감탄하게 했으며, 지금 이렇게 이 책이 한명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읽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서평을 쓰게 만들었다.
이 책은 그런 내가 읽은 ‘세계관’에 관한 책 중에 가장 탁월한 책이다. 뭐 아직 번역되지 않는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필자가 접해 볼 수 있었던 책 가운데는 가장 훌륭했다. 이 책의 맨 앞의 다섯 페이지는 추천사들로 채워져 있다. 제임스 사이어, 제임스 패커, 폴 마샬, 랄프 윈터, 성인경, 신국원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기독교 지성들의 이름들로 되어 있는 추천사들은 전부 같은 목소리다 ‘최고’라고,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평가에 하나도 과장이 없다는 거..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했다. 의미 없는 명사들의 추천으로 가득한 책과는 다른 책이었다. 이 책의 한 독자로서 책 앞에서 책의 한 챕터씩을 읽어 갈 때마다 그 석학들의 추천에 동의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 책은 진짜 단권으로 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책,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고 있고 탁월한 최신정보를 담고 있으되 최고로 읽기 쉬운 문체로 저술된 최고의 책이다.
“ 그리스도인은 각 시대마다 성경의 영원한 진리를 참신한 방식으로 전파할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한 세대가 제기하는 질문은 앞선 세대의 것과 다를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복음은 참으로 다차원적이고 풍성하기 때문에 어떤 도전에도 대처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한다. ” p29
이 책의 구성은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세계관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과 정의 그리고 현대 사회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이분법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현실의 문제까지 어느 정도 다루고 있다. 그는 ‘창조 - 타락 - 구속’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기독교 세계관을 설명해 줌으로 처음 이 문제에 접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전제들을 제공해준다. 앞으로 전개될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들을 바라 볼 안경을 첫 번째 장을 통해 준비시켜 주는 것이다.
2부에서는 이제 기독교 세계관과 정면에서 부딪히고 있는 ‘자연주의’ 즉 진화론과 맞서고 있다. 방대한 정보와 엄청난 고증의 자료를 가지고 진화의 문제와 창조의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저자의 옆에서 진화의 탑이 얼마나 허망한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인지 보게 된다. 결국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자연주의자들이 만든 믿음의 체계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과학의 영역이라는 ‘진화론’이었음을 밝혀가며 통쾌한 역전극을 볼 수 있었다. 읽는 독자로서 기독교인이 우리의 지성이 얼마나 즐거워 할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3부는 미국적 상황 속에서 ‘복음주의가 어떻게 지성을 포기했는지’에 대해서 밝혀가는 내용이다. 저자는 미국 역사 속에서 신앙과 지성이 분리되어져 간 과정을 또 하나의 역사를 기술하듯 치밀하게 천착해 들어가며 그 역사의 교훈들을 찾아가고 있다. 역사의 흐름 안에서 결국에 지금의 모습으로 신앙과 지성 사이에 벽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미국 기독교를 보게 되었고 서구 기독교라는 같은 이름 안에서 나오는 전혀 다른 두 극단의 기독교 문화의 원류에 대해서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단순한 미국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한국 기독교 안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들과 대응들로 인 유사한 ‘지성’과 결별한 기독교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도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4부는 결론으로 이전 각 부에서 다뤄졌던 개별적이면서도 연결된 주제들이 엮여서 하나의 실천으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책의 결론이다. 지식은 판단을 요구하고, 결단을 요구하며, 삶으로의 실천을 요구한다. 앞에서 밝혔던 기독교 세계관과 그 적들과 변천의 과정들에 대한 수많은 지적인 도전들과 정보가 단순히 지식으로 끝나지 말아야 할 정보들이었음을 밝히며 삶으로의 실천을 요구한다. 부끄러운 우리네 초상들을 보여주며, 회개할 것을, 다르게 살 것을 요구하는 그녀의 목소리의 떨림이 전해진다. 4부는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한,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인의 삶의 ‘일치에’의 요구였다.
이 책은 100% 추천할만한 책이다. 먼저 읽은 자로서 추천할 수 있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하려 한다. 하나는 ‘지적인 부분에 있어 탁월함’이고 두 번째로 ‘전달에 있어 문체의 탁월함’이며, 세 번째로 ‘독자를 향한 배려와 성실함’이다.
첫 번째 ‘지적인 탁월함’의 부분에서, 저자는 전혀 ‘새로운 것’을 이 책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필자는 이전에 읽었던 수많은 세계관에 관련된 책들에서 언듯 이 책이 말하는 내용들을 접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새로운 것을 쓴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오늘 날까지 세계관 분야에서 쏟아져 나왔던 모든 연구 성과들의 거대한 흐름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식견에 그것은 성공했다. 그녀가 그린 한 줄기 커다란 흐름 안에, 이전 날 필자가 접했던 기독교 세계관의 거의 전부가 녹아있었다.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재창조, 그는 이전 날의 모든 흐름을 하나의 흐름으로 종합했고, 재창조 했다.
두 번째, “세계관 책은 어렵다.”는 말, 대부분의 경우에는 옳은 말인 것 같다. 전문적인 책읽기 훈련이 되지 않는 이에게 기독교 세계관이건 무엇이건, ‘철학적’이라는 용어가 붙은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은 철학적인 기반을 요구하고 있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쉽게 읽혀지기 어려운 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것을 쉽게 쓰는 은사를 가진 것이 분명한 저자의 글쓰기로 인해 이 책은 쉽게 읽혀져 넘겨질 수 있다. 그녀는 여성의 섬세함으로 한편의 이야기를 전개하듯 주요한 철학적 문제를 풀어내는데 성공했다.(물론 한번 읽고 말 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책의 추천사를 적은 강영안 교수가 왜 대학생이나 고민하는 고등학생에게 읽혀야 한다고 간절히 소망했는지 알 것 같다. 고등학생 수준이라면 이 책의 모든 논의를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체로 쓰여졌다.
세 번째, 이 책은 독자를 향해 성실하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 출판계의 현실상 책값이 비싸지면 팔리지 않는다. 또 책의 장 수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절충을 해야 한다. 이 책은 그 모든 페이지가 930여 페이지에 달한다. 그리고 이 많은 페이지에서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부록과 추천도서, 주와 찾아보기, 스터디 가이드를 담고 있다. 저자가 기독교 세계관으로 사는 법에 대해 말하며, 기독교 출판물에 있어서의 성실함을 요구했던 것의 실제를 보는듯했다. 그 엄청난 주를 원문과 번역으로 함께 올려놓았고, 각장을 읽은 이가 스스로 또는 그룹으로 심화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스터디 가이드 역시 꼼꼼하게 번역의 장과 맞추어 다시 편집해서 올려져 있다. 정말 잘 만들어진 책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더 깊이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다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자료까지 전부 담겨 있다.
‘다빈치 코드’ 따위의 책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것이 영화가 되며, 그 정도의 논리에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흔들린다고 사방에서 난리다. 필자는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무지의 결과이고, 이런 무지에 대해 이제껏 가르치지 않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목회자의 문제임과 동시에 많은 기독교인 들을 감성주의로 몰아간 기독교 출판물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독교인이 지적으로 무능해진 척박한 세대에, 지적으로 무장해제 되어 버린 듯한 조국 교회와 이 땅에 그 그늘에서 자란 수많은 기독 젊은이들에게, 이 한권의 책이 주어지고 읽혀졌으면 좋겠다. 수없이 많은 세상의 풍조와 조류 속에서, 영광과 부활의 높아짐만의 신학을 외치는 기독교인들 속에서, 그 어떤 것에도 대처할 수 있는 다차원적이고 풍성한 ‘완전한 복음’의 능력을 이 책을 통해 다 함께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모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한다.
저자 낸시 피어시 (Nancy Randolph Pearcey)
아이오와 주립대학과 기독교 세계관 연구의 산실인 기독교 학문연구소(ICS)에서 공부했으며, 카비넌트 신학교에서 성서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경-과학 뉴스레터'와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의 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현재 세계 저널리즘 연구소에서 프란시스 쉐퍼 연구원으로 세계관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How Now Shall We Live?, 찰스 콜슨 공저)를 비롯해 The Soul of Science, The Right Question 등이 있다.
1997년 5월, 필자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나는 본인의 신상기록부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었었다. 하지만 실재로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그 날에야 비로소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 날 이전에 수많은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고 납득할만한 대답을 들려주는 기독교인을 만나지 못했다. 물론 답변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언어는 나를 설득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언어였다. 대학 2년 선교단체의 불신자 수련회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물론 지적인 부분에서의 만남은 아니었다. 그런 것을 말할 때, ‘강권적’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알아진 것’이 아니라 ‘만나진 것’으로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 첫 번째 한 일은 ‘기독교가 어떤 사실 위에 있느냐?’ 하는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그 아버지에 대한 글들을 찾아 방 가득히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다. 놀라움은 그 이전 날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이들을 향해 질문해 왔던, 그리고 그들을 당혹시켰던 그 수많은 질문들의 답이 채 10권도 안 되는 기독교 서적들 안에 거의 100% 다 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무지했던 나에 대해서, 그리고 동일하게 무지했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화가 났다. 진리가 아주 가까이 있었는데, 아주 저렴한데, 그것과 너무 멀리서 그리스도를 찾는 것 .... 신앙에 관한 책을 더 읽었고, 기독교 세계관에 관련된 책들을 정리하면서 나의 신앙관은 확고한 기반 위에 서게 되었다.
이 책은 그 시대 읽었던 내 삶 전체를 명쾌하게 풀어내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큰 축을 제시해 주었던 그 책들과 일맥상통한다. 아니 그 때 읽었던 세계관에 대한 책들의 종합판과 같고 그 책들을 한 권의 책으로 재정립한 것 같기도 한 책이었다. 그리고 신들린 듯, 가슴 설레가며, 잠을 줄여가며 1000 페이지 분량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렇게 서평을 쓰고 있다. 이 책이 정말이지 꼭 읽혀지기 바랄만큼 ‘정말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시험기간 밀려드는 시험의 부담 속에서도 읽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이렇게 이 책의 서평이라는 장르의 글을 또 쓸 수밖에 없는 그런 책이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책이 아님에도 우리의 이성을 향해서 지성을 향해 하는 목소리인데도 이 책은 나를 사로잡았고, 감탄하게 했으며, 지금 이렇게 이 책이 한명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읽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서평을 쓰게 만들었다.
이 책은 그런 내가 읽은 ‘세계관’에 관한 책 중에 가장 탁월한 책이다. 뭐 아직 번역되지 않는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필자가 접해 볼 수 있었던 책 가운데는 가장 훌륭했다. 이 책의 맨 앞의 다섯 페이지는 추천사들로 채워져 있다. 제임스 사이어, 제임스 패커, 폴 마샬, 랄프 윈터, 성인경, 신국원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기독교 지성들의 이름들로 되어 있는 추천사들은 전부 같은 목소리다 ‘최고’라고,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평가에 하나도 과장이 없다는 거.. 읽으면 읽을수록 공감했다. 의미 없는 명사들의 추천으로 가득한 책과는 다른 책이었다. 이 책의 한 독자로서 책 앞에서 책의 한 챕터씩을 읽어 갈 때마다 그 석학들의 추천에 동의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 책은 진짜 단권으로 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책, 이론과 실제를 겸비하고 있고 탁월한 최신정보를 담고 있으되 최고로 읽기 쉬운 문체로 저술된 최고의 책이다.
“ 그리스도인은 각 시대마다 성경의 영원한 진리를 참신한 방식으로 전파할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한 세대가 제기하는 질문은 앞선 세대의 것과 다를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복음은 참으로 다차원적이고 풍성하기 때문에 어떤 도전에도 대처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한다. ” p29
이 책의 구성은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세계관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과 정의 그리고 현대 사회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이분법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현실의 문제까지 어느 정도 다루고 있다. 그는 ‘창조 - 타락 - 구속’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기독교 세계관을 설명해 줌으로 처음 이 문제에 접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전제들을 제공해준다. 앞으로 전개될 ‘기독교 세계관’의 문제들을 바라 볼 안경을 첫 번째 장을 통해 준비시켜 주는 것이다.
2부에서는 이제 기독교 세계관과 정면에서 부딪히고 있는 ‘자연주의’ 즉 진화론과 맞서고 있다. 방대한 정보와 엄청난 고증의 자료를 가지고 진화의 문제와 창조의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저자의 옆에서 진화의 탑이 얼마나 허망한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인지 보게 된다. 결국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자연주의자들이 만든 믿음의 체계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과학의 영역이라는 ‘진화론’이었음을 밝혀가며 통쾌한 역전극을 볼 수 있었다. 읽는 독자로서 기독교인이 우리의 지성이 얼마나 즐거워 할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3부는 미국적 상황 속에서 ‘복음주의가 어떻게 지성을 포기했는지’에 대해서 밝혀가는 내용이다. 저자는 미국 역사 속에서 신앙과 지성이 분리되어져 간 과정을 또 하나의 역사를 기술하듯 치밀하게 천착해 들어가며 그 역사의 교훈들을 찾아가고 있다. 역사의 흐름 안에서 결국에 지금의 모습으로 신앙과 지성 사이에 벽을 쌓을 수밖에 없었던 미국 기독교를 보게 되었고 서구 기독교라는 같은 이름 안에서 나오는 전혀 다른 두 극단의 기독교 문화의 원류에 대해서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단순한 미국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한국 기독교 안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들과 대응들로 인 유사한 ‘지성’과 결별한 기독교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도 절실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4부는 결론으로 이전 각 부에서 다뤄졌던 개별적이면서도 연결된 주제들이 엮여서 하나의 실천으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책의 결론이다. 지식은 판단을 요구하고, 결단을 요구하며, 삶으로의 실천을 요구한다. 앞에서 밝혔던 기독교 세계관과 그 적들과 변천의 과정들에 대한 수많은 지적인 도전들과 정보가 단순히 지식으로 끝나지 말아야 할 정보들이었음을 밝히며 삶으로의 실천을 요구한다. 부끄러운 우리네 초상들을 보여주며, 회개할 것을, 다르게 살 것을 요구하는 그녀의 목소리의 떨림이 전해진다. 4부는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한, 기독교 세계관과 기독교인의 삶의 ‘일치에’의 요구였다.
이 책은 100% 추천할만한 책이다. 먼저 읽은 자로서 추천할 수 있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하려 한다. 하나는 ‘지적인 부분에 있어 탁월함’이고 두 번째로 ‘전달에 있어 문체의 탁월함’이며, 세 번째로 ‘독자를 향한 배려와 성실함’이다.
첫 번째 ‘지적인 탁월함’의 부분에서, 저자는 전혀 ‘새로운 것’을 이 책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필자는 이전에 읽었던 수많은 세계관에 관련된 책들에서 언듯 이 책이 말하는 내용들을 접했던 것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새로운 것을 쓴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오늘 날까지 세계관 분야에서 쏟아져 나왔던 모든 연구 성과들의 거대한 흐름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식견에 그것은 성공했다. 그녀가 그린 한 줄기 커다란 흐름 안에, 이전 날 필자가 접했던 기독교 세계관의 거의 전부가 녹아있었다.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재창조, 그는 이전 날의 모든 흐름을 하나의 흐름으로 종합했고, 재창조 했다.
두 번째, “세계관 책은 어렵다.”는 말, 대부분의 경우에는 옳은 말인 것 같다. 전문적인 책읽기 훈련이 되지 않는 이에게 기독교 세계관이건 무엇이건, ‘철학적’이라는 용어가 붙은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은 철학적인 기반을 요구하고 있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쉽게 읽혀지기 어려운 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려운 것을 쉽게 쓰는 은사를 가진 것이 분명한 저자의 글쓰기로 인해 이 책은 쉽게 읽혀져 넘겨질 수 있다. 그녀는 여성의 섬세함으로 한편의 이야기를 전개하듯 주요한 철학적 문제를 풀어내는데 성공했다.(물론 한번 읽고 말 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책의 추천사를 적은 강영안 교수가 왜 대학생이나 고민하는 고등학생에게 읽혀야 한다고 간절히 소망했는지 알 것 같다. 고등학생 수준이라면 이 책의 모든 논의를 따라갈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체로 쓰여졌다.
세 번째, 이 책은 독자를 향해 성실하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 출판계의 현실상 책값이 비싸지면 팔리지 않는다. 또 책의 장 수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절충을 해야 한다. 이 책은 그 모든 페이지가 930여 페이지에 달한다. 그리고 이 많은 페이지에서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부록과 추천도서, 주와 찾아보기, 스터디 가이드를 담고 있다. 저자가 기독교 세계관으로 사는 법에 대해 말하며, 기독교 출판물에 있어서의 성실함을 요구했던 것의 실제를 보는듯했다. 그 엄청난 주를 원문과 번역으로 함께 올려놓았고, 각장을 읽은 이가 스스로 또는 그룹으로 심화 연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스터디 가이드 역시 꼼꼼하게 번역의 장과 맞추어 다시 편집해서 올려져 있다. 정말 잘 만들어진 책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더 깊이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다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자료까지 전부 담겨 있다.
‘다빈치 코드’ 따위의 책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것이 영화가 되며, 그 정도의 논리에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흔들린다고 사방에서 난리다. 필자는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무지의 결과이고, 이런 무지에 대해 이제껏 가르치지 않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목회자의 문제임과 동시에 많은 기독교인 들을 감성주의로 몰아간 기독교 출판물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독교인이 지적으로 무능해진 척박한 세대에, 지적으로 무장해제 되어 버린 듯한 조국 교회와 이 땅에 그 그늘에서 자란 수많은 기독 젊은이들에게, 이 한권의 책이 주어지고 읽혀졌으면 좋겠다. 수없이 많은 세상의 풍조와 조류 속에서, 영광과 부활의 높아짐만의 신학을 외치는 기독교인들 속에서, 그 어떤 것에도 대처할 수 있는 다차원적이고 풍성한 ‘완전한 복음’의 능력을 이 책을 통해 다 함께 체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모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한다.
저자 낸시 피어시 (Nancy Randolph Pearcey)
아이오와 주립대학과 기독교 세계관 연구의 산실인 기독교 학문연구소(ICS)에서 공부했으며, 카비넌트 신학교에서 성서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경-과학 뉴스레터'와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의 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6년 현재 세계 저널리즘 연구소에서 프란시스 쉐퍼 연구원으로 세계관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How Now Shall We Live?, 찰스 콜슨 공저)를 비롯해 The Soul of Science, The Right Questio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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