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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서평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그들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뜨거운 사랑

br>스펙트럼을 투과한 빛은 지면에 다채로운 색상을 쏟아낸다. 맨눈에 도통 잡히지 않던 빛의 속살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놀라 입을 벌리거나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으로 반응한다. 겉보기에 볼품없던 사람이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또한 마찬가지다. 느닷없이 마주한 사물과 사람의 본모습을 경험하는 일이 잦게 되면 우린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가정을 보다 무게 있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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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70대의 은퇴한 선교사. 그가 에세이를 냈다. 지난 삶을 회고하며 담담히 써내려간 그의 글밭엔 봄볕에 피어난 아지랑이들이 하늘하늘 바쁜 손짓을 거두지 못하고 일렁이듯 무수히 많은 보석들로 이미 지천이다. 그가 묵묵히 걸어온 인생에서 마라와 엘림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여러 아포리즘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 가는 내용들로 가득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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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아포리즘은 한 두 해의 경험으로 쌓이지 않는다. 경험이 녹록치 않게 내려앉은 경륜은 줄곧 타인을 다독이고 자신을 채근하며 삶을 살아간 이의 아름다운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륜에서 비롯한 아포리즘이라야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그럴 때 아포리즘은 삶과 따로 놀지 않는다. 삶에서 삶으로 전해진 이야기가 할머니 입을 통해 술술 흘러나오듯 저자의 아포리즘이 자연스럽게 심중을 파고드는 이유라 할 수 있다. 활자화된 글과 별개로 무수히 많은 행간에서 아포리즘을 만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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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삶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슬픔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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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내 눈에 도착한 창백한 별빛은 아득한 옛날의 빛일 것이다. 그보다 더 무한히 크신 분의 흔적이 별빛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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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존재하는 이치와 다른 것과 구별이 되는 것을 모르고는 이름을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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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가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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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저자의 글은 잔잔히 물 흐르는 냇가를 거닐 때 발목께로 튀어 오르곤 하던 조약돌을 닮았을 것이다. 그때 그 조약돌은 여느 돌부리와 다르다. 어느 때보다 깊게 패인 당신의 허리춤에 반쯤 주먹 쥔 손이 걸릴 게 틀림없다. 손 안엔 어김없이 그 조약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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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저자는 자신의 첫 번째 에세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에서 자신을 포함한 수없이 많은 수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한편 그들과 함께 비전을 나누고 지식과 경험을 가르친 일련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쉽거나 가볍지 않았을 그 삶을 총체적으로 관통한 '선한 청지기'의 면류관을 그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많은 부분을 희생한 사람들'에게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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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굳이 말하자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 11년 동안 신학을 강의하고 이후 10년의 선교사 생활을 한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하지만 책 어디에도 그런 자신감이 묻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서문에 밝힌 대로 “수백 개의 교회를 세웠다든지 수만 명을 개종시켰다는 이야기는 다른 선교사들의 이야기"라는 겸손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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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인생의 끝자락에서 평생 쌓아온 명성을 송두리째 쏟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대체 그가 인생 막바지에 무엇을 더 얻으려고 그런 선택을 했을까 의아해한다. 인정욕구는 마약과도 같다고 했다. 영남대 심리학과 이승욱 교수는 "자기애적 성격성향이 빚은 내적 결핍이 끊임없이 인정욕구를 불러온다"고 일갈했다. 쌓아온 명성을 받아들이기보다 더 큰 명성에 대한 갈증을 풀지 못한 탓에 어이없는 패착을 놓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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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쌓아가고 있거나 장차 쌓을 명성에 기대어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기를 바랐던 크리스천이자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말씀이 필요한 곳으로 삶을 재촉한 선교사다. 어느 시기든 뚜렷한 정체성이 관건이다. 황혼 들녘에 울려퍼진 그의 고백이 누구보다 담백하고 솔직할 수 있었던 배경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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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황혼은 야곱이 절뚝거리는 몸으로 노을진 석양을 걷는 시기만이 아니다. 석양에 비낀 야곱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고 희망에 차 있었다. 황혼이 빛나는 것은 무한히 크신 분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 단단한 겸손과 그분과 함께 걸어간 삶에 대한 대단한 감사가 양축으로 버티고 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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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렇다고 에세이의 전편에 걸쳐 그가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려는 열망을 가지고 일했”으며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 소망의 결과물들이 돋을 새김되는 것을 돌려 세우지는 못했다. 필리핀 선교가 그 백미다. 제4부에 실린 〈필리핀 선교〉 역시 소소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수백 개의 교회 개척과 같은 수의 현지인 개종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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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는 그 장에서 현지인 임포탄테와 안지를 특별히 기억하고 있다. 작지만 힘찬 걸음, 그들의 걸음을 통해 연약한 자를 들어 하나님나라의 편만한 확장에 쓰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그린 저자는 요한복음 2장 10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으로 그 장의 문을 닫는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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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가 여전히 꿈을 꾸는 요셉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요즘 그의 꿈은 한국 교회의 개혁과 아프리카의 회복이라는 화두로 모아진다. 오늘날 그가 살아있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교계의 지도자들을 보는 심정이 예사로울 리 없다. 그는 그가 품은 한국 교회의 개혁을 위해 십자가가 지닌 거룩의 의미를 자신의 등에 얹고 전처럼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그럼으로써 실천이 담보하는 참 가르침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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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한걸음이라도 주 앞에 더 나아가는 것이 아프리카의 회복을 앞당기는 길이라는 고백에서 우린 아프리카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을 또렷이 대하게 된다. 제7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그 길에 뿌린 생생한 씨앗이라 할 만하다. 삶으로 가르친 그의 이번 선교 에세이가 "목회 서신이자 신앙 수필이며 좋은 선교 지침서"라는 추천사에 공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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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God speaks). 이 뜻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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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말은 '사람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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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듣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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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저자 김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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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저자는 교수 선교사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났다. 늘 기도하는 외할머니의 믿음 안에서 자랐다. 건국대학교,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풀러신학교에서 선교학을,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에서 바울 신학을 연구하였으며, 스탤른보쉬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br>저자는 고신대학교에서 11년을 강의하고, 필리핀 선교사로 장로교신학교에서 10년을 강의했다. 그 후 남아공화국에서 남아공 표준어 중의 하나인 코사어를 배워 코사 종족을 중심으로 선교하고 있으며 그의 주된 사역은 바이블 인스티튜터 이스턴케이프, 백 투더 바이블 칼리지에서 강의하는 일이다. 서른넷에 고신대학교 교수로 시작하여 나이 일흔인 지금까지 세 나라에서 가르치는 삶을 살고 있다.
br>이 책을 저술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거룩을 보고 떨고 있는 한 영혼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이 책의 7부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사람들-로잔 언약과 한국 교회의 아프리카 선교’에서 한국 교회의 선교에 강한 도전을 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잉태한 아이를 낳을 힘이 있는가?
이러한 삶이 한국 교회의 개혁과 아프리카의 회복을 위한 그의 기도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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