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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초대 언더우드선교사의 생애, 연세출판부,1991

강석천 | 2004.04.16 17:53
                 이광린, 초대 언더우드 선교사의 생애                신학부 4년  姜錫天

Horace G. Underwood 선교사는 한국교회에 공적 선교사로 파송된 첫 선교사였다. 그가 한국에 처음 발을 내디딘 때는 신학을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젊은 선교사였다.  그는 아직 충분한 신학적 준비와 목회 적 경험이 없었음에도 새로 문이 열린 선교 현장에 뛰어든 열혈(熱血) 선교 헌신 자였다.  처음에 자기가 속해 있는 화란 계 개혁교회의 선교부에 한국선교를 지원했으나 아직 한국이 위험지역리란 이유로 거절당하자 북 장로교 선교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래서 그는 장로교 선교사로서 31년간 한국 선교에 헌신하였다. 그의 선교사로서 헌신은 초인적이었으며, 선교 적 결실은 경이적이었고 그가 끼친 공헌은 특기 할만하다.  그는 전도를 통하여 교회를 설립했고, 감리교 선교사와 함께 연세 대학교를 세웠으며, 장로교 총회의 초대 총회장이 되었다.
언더우드는 비록 한국 장로교회의 선교사 및 지도자로 활동하였으나, 그의  영향과 공적은 교파를 초월한 교회사적인 것이었다. 그의 업적을 평가하기 위해 먼저 그의 생애와 신학을 살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언더우드의 생애
1.가정과 교육
   한 사람의 생애와 인격을 결정하는 데에는 자라난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언더우드 또한 자신이 속한 가계의 경험과 특성 그리고 신앙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명으로 원두우(元杜尤)로 불린 호래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는 1859년 7월 19일 영국의 런던에서 태어났다. 언더우드에게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질이 그의 외할아버지인 알렉산더 와우 박사에게서 엿보인다. 와우박사는 성공회, 장로교, 침례교, 조합교회, 감리교의 교인들의 연합에 적극적인 관심을 지녔다. 이 연합의 목적은 성경의 진리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대영 성서공회에 직접 참여했으며, 런던 선교회, 스코틀랜드 병원협회, 노예제 반대협회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외할아버지가 관대한 마음, 박애심, 연합에의 사랑, 지도 및 조직의 자질 등을 물려주었다고 한다면, 그의 아버지 존 언더우드는 그의 자녀들에게 실제적인 기독교적 성품을 길러주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바쁜 사업의 와중에서도 주일 오후의 대부분을 자녀들과 보내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주일날 교회로 가는 일이 재미있고 편안한 것으로 여겨지게끔 특별히 배려했던 것이다. 언더우드의 재림에 대한 강한 확신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얻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아버지가 행한 교육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성경을 가르치면서, 성경의 일부분을 암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히브리서는 전체를 암기하게끔 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언더우드가 프랑스에서 수학할 때, 이후 1872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1877년 뉴욕대학에서 공부할 때까지 언더우드가 열정적인 신앙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한 힘이었다. 이러한 힘은 그를 뉴저지주 뉴 부른스윅에 있는 화란 개혁주의 신학교(the Dutch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하게 이끈다. 뉴 부른스윅의 3년 동안에도 그는 적극적이고 강렬하게 각종의 복음사역으로 바삐 움직였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그의 생활이었다.
   언더우드의 가정과 그가 받은 교육은 그의 연합적인 활동,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에 대한 열정 등의 특질로 이어져 그가 선교사로 나설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2.선교사 언더우드  
애당초 인도 선교사를 자원하고 있던 언더우드는 미지의 땅 조선으로 이끌어지게 되었다.  1884년 11월에 뉴 브른스윅 노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882년과 1883년에 걸치는 겨울, 동경의 메이지 학원의 앨트먼 목사가 마침내 문호를 개방한 은자의 나라(the Hermit Kingdom)에 관한 보고를 들었을 때, 한국에 갈 사람을 찾는 일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단 한사람도 단 한교회도 한국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 그때 그의 마음속에 “왜 너 자신이 가지 않느냐?”는 생각이 일어났다고 선교본부의 25주년 기념식에서 고백하고 있다.
   일본의 요코하마에 도착하게 된 언더우드는 일본성경을 번역하고, 메이지 학원의 일본 최초의 선교사 부부인 헵번 선교사 집에 머물면서 조선 선교를 준비하게 된다. 이때 하나님의 준비하심은 일본 내 최초의 조선인 신자인 이수정을 만나게 이끄신다. 언더우드가 처음 조선에 들어가면서 가져가게 된 『신약마가젼복음서언해』 등의 한글성경은 이 만남의 산물이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언더우드는 아펜젤러와 함께 제물포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에서의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분명한 모습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언더우드를 비롯한 초기 선교사들의 업적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반대로 그들의 피땀을 바친 복음의 역사를 민족성의 이름으로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언더우드는 광혜원에서 물리와 화학을 가르치는 교사임과 동시에, 자신 또한 학생으로써 한국어를 배우는 일에 열심을 기울였으며 동시에 마가복음과 사전편찬에 심혈을 기울였다.  1년 동안 의학을 배운 경험을 살려 알렌의사를 도와 내과에서 일하였으며, 동시에 경신학교의 전신인 존 디 웰즈 학교를 설립해 인재양성에 정열을 기울였다. 1887년 성서번역을 추진하기 위해 상임성서실행위원회를 결성했고, 1890년에는 문서선교를 위해 기독교서회의 전신인 『조선성교서회』를 조직했다. 성경번역은 언더우드의 필생의 사업이었다. 한국에 파송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성경번역에 온 정성을 기울였지만 특히 언더우드, 게일, 레이놀즈,
아펜젤러, 스크랜톤의 노력은 상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언더우드의 초기의 활동상들이 그의 한국 선교 전체를 특징지우면서, 이 바탕 위에 그의 사역들이 진행된다. 오늘날 그의 유산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사랑의 선물들이 무엇인지 굳이 되풀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3.언더우드의 신학
   언더우드는 신학적인 영향을 끼친 것 보다, 선교 확장에 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흔히 평가된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업적도 재고되어야 한다.
언더우드가 편찬한 사전은 1915년 개정될 당시, 몇 가지의 실수만이 발견된 25년간 사용된 우수한 것이었다. 또한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잘 수렴한 그의 한국적 문화상황에 대한 파악력 등은 그가 선교사적 자질과 소양을 우수하게 갖춘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된 배경은 이들이 충분한 소양과 신학적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데 기인한다.  개화기의 조선에서 보여준 언더우드의 모든 행동과  그의 성공적 역할은 그의 신학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이다. 그의 전도에 대한 열정, 말씀 중심의 선교정책, 다양한 사회사업을 통한 구령사업, 심혈을 기울인 성경번역 및 문서 사역, 인재를 양성한 교육 사업 등 그의 모든 선교활동 속에는 신학이전의 신학이 숨겨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언더우드의 신학사상은 성경중심의 사상이었다. 그가 선교의 초기에서부터 성경번역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은 말씀을 통한 선교가 조선 선교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성경강조와 사경회를 중시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수용에도 이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이를 통해 한국교회는 장로교, 감리교 할 것 없이 성경 위에 세우진, 성경을 사랑하는, 성경을 모든 교회의 활동의 바탕으로 두는 전통을 가지게된것이다.
   두 번째로, 언더우드는 교회중심의 신학을 보여준다. 전도활동이 법적으로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그가 정열적으로 조선 전국을 전도하면서 이룩한 것은 교회였다. 언더우드가 황해도에서 책임지고 있던 지역에서 아홉 교회가 조직되어 자립하고, 교회 건물 열 넷, 42개의 집회장소, 92개의 정기 모임 등이 행해지고 있었는데, 이 장소들의 모든 활동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그가 다양한 선교활동과 사회, 교육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교회설립에 열정적이었던 것은 그리스도로 인한 영생을 강조하는 구원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 진다는 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그의 신학사상은 그리스도 중심의 뚜렷한 종말론적 모습을 보여준다. 언더우드의 영향을 논할 때, 때때로 그의 강한 종말론적인 신앙은 비판을 받고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종말론적인 성향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 신앙을 지킨 힘으로 작용한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에 바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더우드는 설교를 통하여 인간의 죄는 오직 예수의 힘으로만 이길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구원이 오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구원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관점에서 내세와 천국에 관한 소망을 전파한 것이다.  
   결국, 언더우드는 성경적 신학을 중심으로, 강한 종말론적인 소망으로 생활하면서, 그 모든 활동들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사역을 펼쳐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언더우드의 공헌은 오늘날 선교사로 헌신하는 한국의 수많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까워하는 새벽이슬과 같은  주의 청년들이 꿈꾸고 있는 모습 속에 분명 언더우드는 한 자리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한 나라의 개화기의 개척자로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써 자신을 온전히 선교지에 바쳤다는데 있을 것이다. 한국 교회의 모습에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영한사전과 한글 성경과 찬송가의 역사에서, 연세대학교를 포함한 여러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의 활동에서 우리는 그의 자취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언더우드는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선교사로서, 오늘의 한국 선교의 모델이 되었다. 언더우드의 모든 활동들과 원리들이 이후에 한국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의 교본처럼 작용하였고, 이러한 전통 하에 오늘날 한국의 선교사들이 여러 나라에 진출하여 놀라운 부흥을 이루고 있다.
   언더우드는 선교사일 뿐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에 많은 이바지를 하였다. 일제시대가 한국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일본 측의 주장이 억지일 뿐더러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면, 언더우드의 기여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으며, 아울러 긍정적인 것이다. 그가 남긴 의료, 교육, 사회사업의 업적과 그가 영향을 끼친 수많은 인재들은 이 기여의 산증인이다.
    성경전파와 성경번역에 열정을 기울임으로, 한국 교회의 성장과 신앙심 및 신학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 교회가 뜨거운 전도열과 놀라운 기도의 열기를 지니면서도 지나친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은 것은, 모든 규범의 척도로써 성경을 강하게 신뢰하는 초창기로부터의 전통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언더우드는 다양한 사회활동의 결과가 그리스도를 믿는 구령사업으로 연결되게끔 토대를 이루었다. 기독교 전파의 초창기와 일제시대에 기독교가 사회를 이끄는 힘으로 작용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연결고리를 잘 포착한데 기인한다. “소자에게 물을 주는 행위”만이 강조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은 사라지게 되고,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강조할 때, 소자에게 물을 주는 행위가 움추러 드는 오늘의 현실에서, 언더우드의 노력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자에게 물을 주는” 성경적 신행(信行)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나는 언더우드를 하나님의 보시기에도 아까운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며, 그가 이미 결심하고 만발의 준비를 했던 곳은 인도라는 곳 이였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 곳이 아니었다.
바로   고시간마다 알지 못하는 나라에 대한 저항을 하면 할수록 더욱 마음을 돌이킬 수  수밖에 없도록 그의 마음에 찾아온 선교 지 바로 은자의 나라 바로 한국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비전이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비전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 하나님의 학문을 통해서 언더우드선교사의 뒤를 따르려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빛을 발하고 또한 하나님이 물어 보실 때 부끄러움 당하지 않는 자로 남고 싶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헌신을 통해서 아름다운 이 땅에 열매를 맺었듯이 나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까운 사람으로,  자녀로써 하나님 앞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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