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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요약본

칼빈의 여성관

김재윤 | 2003.12.15 20:17
J. D. 더글라스 지음, 칼빈의 여성관, 무림

이 책은 칼빈의 여성관을 포괄적이고도 진보적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칼빈의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기독교인의 자유의 근거와 중요성

성육신 하심에 나타난 관대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인하여 압제에 억눌리고 양심의 번민으로 지친 자들이 자유함으로 해방됨-이러한 용어들이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한 칼빈의 기본적 이해의 틀을 보여주고 있다.

개신교 신학자로서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칼빈은 기독교인의 자유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1536년에 출판된 기독교 강요 첫 판에서 칼빈은 논의가 정점에 이르는 제6장 전체와 마지막 장에서 교회 권력 및 정치적 관리와 관련하여 기독교인의 자유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독교 강요의 그 모든 판들에서 칼빈은 기독교인의 자유를 세 측면으로 개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칭의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할 때에 믿는 자들의 양심에 율법적 의는 율법을 뛰어 넘는 것이어야 한다... 칭의를 논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만을 붙잡아야 하며 우리 자신들에 관심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일을 생각할 때에, 중요한 것은 율법의 요구들이 아니라 "율법의 모든 완성을 능가하시는 그리스도 한 분만이 우리의 의로 나타나셔야 한다." 자유의 이러한 측면은 은혜로만 말미암는 구원이라는 전통적 종교 개혁적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첫 번째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양심이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율법의 요구에 속박당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율법의 멍에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칼빈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더 이상 율법의 기준들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후에 하나님께 열심과 즐거움으로 드리는 순종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자비로운 아버지 앞에 서 있는 자녀들 같이, 그들의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불완전함과 결함있는 행위들 조차도 용납해 주실 것을 알고 있다.

기독교인의 자유의 세 번째 측면은 자체로는 "아무래도 좋은" 외형적인 일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는, 때로는 우리가 자유를 행사하도록 허락하며 때로는 행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그와같은 종교적 의무들에 의해 묶여 있지 않다. 이 자유에 대한 지식은 매우 필요한 것인데, 그것은 자유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 우리의 양심에는 평안이 없으며 미신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자신의 환경에 만족하기를 배우는 것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대로 물건들을 감사함으로 사용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유가 이웃을 세우는 일로 나타난다고 할 때에는 그 자유를 사용하되, 이웃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자유를 억제하여야 한다". 자유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사랑의 의무들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칼빈이 기독교인의 자유를 세 가지의 형식(혹은 구조)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독일 인문주의자이며 루터 전통에 속한 종교 개혁자였던 멜랑크톤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것이다.
칼빈은 중세 말기, 특히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및 윌리엄 오캄(William Occam)등의 프란체스코 계열의 사상적 전통에서 강조되던 하나님의 자유 사상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았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뜻만이 율법을 창조하시며 하나님의 뜻 바깥에서는 모든 것이 우연적이다.

칭의의 문제에 있어서 칼빈은 죄인에게는 인간의 자유함이 아니라 은총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에 기독교인의 삶의 차원에서는 회의, 걱정 및 양심의 문제등을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인의 자유함이 선포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스도의 자유케 하신 사역은 고통받는 양심이나 성경에서 발견되지 않는 규정들에 대한 두려운 복종으로부터 기독교인들을 자유롭게 만들며 또한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로 하여금 악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설수 있도록 능력을 주실 것이다.

기독교인의 풍성한 자유함을 누리는 그러한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인의 삶을 주장하기 위한 사상적 근거로써, 칼빈은 자유와 관련한 스콜라 사상 및 르네상스의 신학적 전통들을 어느 정도는 거부하고 어느 정도는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칼빈이 생각하고 있는 기독교인의 자유는 하나님의 자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의 자유는 최초의 인류에게 주어졌던 자유에 반영되었으며,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인류의 재창조라는 하나님의 뜻에 나타나 있다. 해방자 예수는 하나님의 주권을 찬탈한 인간의 제도라는 폭군적 굴레와 죄의 속박으로부터 타락한 인류를 구해내셨다.

기독교인의 자유는 타락한 세상에 이미 임재하여 있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상징으로써 회복된 인간성 안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칼빈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종말의 재창조는 기독교인들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 그 특징인데, 현재의 기독교인의 자유는 그 자유를 누리기 시작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Ⅱ.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의 자유

질서에 관한 칼빈의 견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보아야 하는데, 이것들은 여러 점에서 상호 연관이 있는 것이다. 첫째는, 우주적 질서에 관한 칼빈의 견해이다. 이 질서는 전 우주내에 있는 질서로써 하나님의 선포와 명령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둘째는, 정치적 질서 혹은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질서나 통치이다. 이 두가지 질서 모두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이 있으며, 자연계와 인간의 영역 안에 성령께서 적극적으로 사역하고 계신다.

교회 역시 하나님의 명령, 즉 그가 제정하신 질서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것이다. 우주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고정된 것이 아니며 최종적인 것도 아니다. 교회는 구원 계획의 일부로 아담과 하와때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통치를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째,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속성을 따라 모든 피조물들에게 적용되는 자연의 질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에 부여하신 법칙과 자연의 질서와를 일치시키시고 계신다. 둘째, 특별한 섭리로써,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당신의 선, 정의 및 심판에 봉사하도록" 만드신다. 이 특별 섭리는 특히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인간들의 삶에 개입하시며, 자연 질서로부터 필요한 수단들을 활용하신다. 셋째, 성령의 내재하심을 통한 하나님의 내적 통치이다. 이 내적 통치에 의해 택함을 받은 자들이 새 창조의 상속자가 될 수 있도록 변화를 받는 것이다.

창조에는 목적이 있으며 각각의 종(種)은 "각기 그 나름대로의 속성과 부여된 기능 및 정해진 장소와 환경"을 지정 받았으며 또한 마지막 때까지 하나님에 의해 유지될 것임을 모든 믿는 자들은 알고 있다. 신실한 자들은 인류가 들어가 살도록 특권을 얻은 장소 즉, 가장 풍성한 장식들로 꾸며진 "광활하고 찬란한 집"에 대해 무감각 해서는 안되며, 창조 세계에 펼쳐진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사함으로 묵상할 수 있어야 한다.

칼빈의 성경 주석들과 설교들을 보면 그가 자연의 법과 자연의 질서에 관한 자세한 논의와 적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칼빈은 여기에서 결혼, 여성의 남성에 대한 순종, 모든 사람의 건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의 권위, 공공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는 행정 관리등이 자연의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명을 적절하게 완수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자신들을 부르신 목적을 찾아야한다.

칼빈이 타락으로 인해 초래된 자연의 무질서를 관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칼빈은 게으름 및 성급한 이혼등과 같은 사회적 병폐들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싸우려고 노력했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주제에 대하여 세 가지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율법을 지킴으로써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기독교인들은 율법-의라는 도식을 뛰어 넘어야 한다: 갈라디어서가 가르치고 있는 바와같이, 구원의 확신은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다. 둘째, 그리스도를 통하여 율법의 노예 상태로부터 구원함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주는 하나님의 법을 기꺼이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셋째, "아무래도 좋은 일들" 즉,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일들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의무에 의해 얽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같은 일들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을 위하여 감사함으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거룩한 말씀 안에 참된 의에 관한 모든 것을 신실하게 밝히시고 또한 분명하게 나타내셨다. 또한 그의 위엄에 대한 경배의 다양한 측면들 및 구원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밝혀 주셨다. 따라서 성경 말씀 안ㅇ세서는 주님의 목소리만 들려야 한다.

칼빈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 어떤 저술의 삶의 정황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그 저술이 쓰여지던 특정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칼빈은 성경 자체내에서 명백히 발견되는 문화의 변화들 및 성경의 각 시대들과 칼빈 자신의 시대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너무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칼빈은 사회 질서가 정적이고 고정되었으며 또한 엄격한 체제라고 결코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회 질서란 다른 시대나 다른 문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는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명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칼빈에게 있어서 질서란,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하신 선물이다. 자연 질서는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무대를 형성하며, 좋은 삶을 위한 약간의 안내를 제공한다. 그러나 도덕적 행동을 결정함에 있어서 자연 질서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못된다. 사실상 칼빈은 성경이 자연 질서에 속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어떤 행동들이 실상은 문화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정치 질서나 교회 질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통치 능력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또한 변화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들을 수행하기 위하여 인간들이 전통을 자유롭게 채용하고 변경시킬 수 있는 영역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정치 질서나 교회 질서 모두 성령의 계속적인 활동에 의해 방향을 잡게 되는데,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자유로 인간 질서의 방향을 움직이고 계신다.

이와같이 자유에 대한 비젼에 뿌리를 둔 역동적 질서관은 후기 종교개혁 전통에 의해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된다'는 슬로건이 힘있게 외쳐지는 기초가 되었다.

Ⅲ. 교회 질서 안에서의 여성의 자유: 칼빈의 견해

칼빈은 교회 안에서 여자들은 잠잠하라고 하는 바울의 충고를 교회가 자유롭게 변경시킬 수 있는 삶의 양식들 가운데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은 예전의 칼빈 연구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던 전제, 즉 칼빈은 여성의 복종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을 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여성을 매우 낮게 생각하였다는 전제에 비추어 볼 때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칼빈은 성경이 명하고 있다고 아무도 주장하지 않는 문제들, 즉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의 여부 혹은 시체를 매장하는 법등의 실제적인 문제들과 여자들은 머리를 가리워야 하며 교회안에서 잠잠하라는 바울의 충고들을 대수롭지 않은 방법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칼빈은 교회 안에서 여자들의 침묵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영원한 법은 하나도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그는 한 시대에 교회를 세우는데 유익했던 관습들이 더 이상 교회의 건덕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할 때에는 다른 관습들로 대체되어야 할 것도 주장하였다.

칼빈은 자신이 집사들의 독신 서약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대해 독자들이 일관성 없다고 비난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의 여자 집사들이 독신 서약을 했다고 스스로 주장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성별 및 사회적 신분의 모든 차이는 소멸될 것이며 영적 평들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여성들은 공중 예배, 성례전 및 모든 사람들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온전히 평등하게 참여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 칼빈은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현재 교회안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남성들과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함께 누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모든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하여 모두가 성례에 참여하며 덕스럽게 살기 위하여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는다. 또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지배하지 않는 그러한 모습에서 모든 사람이 한 몸을 이룬다.

칼빈의 저작을 통하여 볼 때, 우리는 교회와 사회안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한 칼빈의 견해와 관련하여 다음의 몇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 기독교 강요의 거듭된 판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던 여성의 복종이라는 주제를 명백하게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은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다.

2. 고린도 전서의 주석이나 설교들을 보면, 기독교 강요에서의 주장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칼빈은 여자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바울의 충고를 인간통치의 맥락에서 위치시키고 있다. 또한 그것이 거룩하며 영원한 법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하여 칼빈은 본문이 요구하는 이상의 설명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3. 칼빈은 고린도전서 11:7과 남자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지음받았다는 바울의 명백한 가르침 때문에 대단히 고심했던 것처럼 보인다. 여자들의 권위를 바울이 그와같이 제한한 것은 단지 인간 통치 영역의 차원에서 뿐이며 실제로는 여자들도 신학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주장할 수도 있는 여러 본문들에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4. 칼빈의 개인적 판단으로는, 바울이 1세기 사회에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교회나 국가에서 여자들이 권위 있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일은 16세기의 제네바에서도 물의가 일어날 수 있는 충분한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칼빈은 중대한 사회적 변혁을 문명에 대한 커다란 위험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것이 아닌 한 그 어떠한 종류의 혁명적 사회 변혁도 주장하기를 주저하였다. 칼빈 자신은 여자들이 권위의 자리를 맡음으로 크게 반발할 형제들을 염두에 두며 또한 그의 편견으로 말미암아 교회와 국가 안에서의 여자들의 사회적 복종이야말로 성경이 인정하고 있는 예의범절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 칼빈은 변화하는 문화와 시대적 요청에 따라 조정될 수 있으며 또한 기독교인의 양심을 속박할 수 없는 시민법 및 교회법의 전 영역과 복음이 요구하는 것과를 신학적으로 구분하려고 대단히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때로 자신의 노력의 결과가 성경 전체의 권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염려했던 것처럼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권위와 바울 사도가 준 충고들의 권위에 차이를 둠으로써 칼빈은 서신서들의 권위를 상대화 시키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칼빈은 "정경속의 정경"을 만들어 내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칼빈은 여자들도 인간 영혼을 동등하게 가지고 있으며 남자들과 똑같이 영적인 은사들을 받을 수 있다는 이전의 전통적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칼빈은 결혼의 신실함을 지키기 위한 부부의 권리 및 성적인 관계에 있어 부부간의 평등을 주장함에 있어서 어거스틴의 입장을 넘어서지 않는다.
칼빈은 당시에 성육신에 있어서의 성모 마리아의 역할의 성격에 관한 논의들이 있었음을 언급하고 그 논쟁의 의학적 및 철학적 측면을 무시하고 신학적 측면들을 부각시켰다.

칼빈은 중세의 신학적 전통의 일부 측면들은 받아들이고 또한 몇 몇 다른 측면들은 새로운 신학적 맥락에 맞추어 수정하였다. 그와같이 하여 그는 여자들을 변호한 르네상스의 전통을 받아들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칼빈은 여자들에 대해 존경과 품위로써 말하고 있다. 물론 칼빈은 남자들의 생활 양식과 함께 여자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르네상스적 "여자들의 비난자"와 함께 칼빈을 분류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칼빈은 여자들의 합당한 복종에 관한 바울의 말과 바울이 교회 삶 속에서 실제로 보였던 것으로 믿고 있는 모습과를 조화시키고 있는데, 바울은 자신이 여자들을 동역자들로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함에 있어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Ⅳ. 순종 안에서의 자유

칼빈은 기독교인의 자유 안에 있는 양심의 해방이 하나님의 뜻으로 율법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자발적 봉사를 하는데 크나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칼빈은 그의 주석에서 공로를 통해 칭의를 받는 것으로 해석되어질 수도 있는 구절들이 실제로는 그와 반대되는 내용임을 설명하기 위해 대단히 애쓰고 있다.

올바른 사회질서를 이루고 이웃에 관한 임무의 올바른 수행에 관한 칼빈의 견해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류에게 속하는 집단적 형상으로서 보는 그의 성경해석이다. 이는 보편 교회에 관한 칼빈의 이상과 교회 정치와 목회적 관심의 집단적 유형들의 발전에도 깊이 깔려있는 개념이다.

칼빈이 이해하는 기독교인의 자유의 핵심은 성령에 의한 변화의 체험이다. 그가 믿는 체험은 철학자들이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체험이다. 로마서 12:1-2은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 순응할 것이 아니라 변화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칼빈은 하나님을 자유의 하나님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자유의 체험은 거룩한 삶에의 참여의 한 측면이다. 악과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의 자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경배드릴 수 있는 자유를 기독교인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혜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상에 임해 있음을 보여주는 한 측면인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을 자유로우실 뿐만 아니라 공의로우신 분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교회와 사회의 불의한 구조를 변화시켜 교회에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그리스도의 왕국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사명으로 보았다.

칼빈은 개혁 에너지를 통제하는 문제로 고심하였다. 그에게 들려오는 많은 개혁에의 요청들은 그가 보기에 지나친 극단의 과격으로 흐르는 것이거나 무모한 것이고 또한 16세기 중반의 상황에서는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었다. 칼빈은 하나님을 자유로우시며 공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분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게서는 모든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우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을 스스로 제한하셨다는 점을 칼빈은 극구 찬양하였다. 칼빈은 자유로우시며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이 인간의 상태로 자신을 제한하신 일례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성육신과 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진 성례를 들었다. 칼빈은 인간의 형태로 낮아지신 하나님의 낮아지심을 인간의 이웃에 대한 자발적인 사랑과 순응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칼빈은 기독교인의 자유에 관한 그의 견해를 지키기 위해서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자유의 이상을 기꺼이 포기하였다. 즉 이 자유는,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나타나도록 자유롭고 정열적으로 헌신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주어진, 죄와 악의 권세 및 모든 근심으로부터의 자유이며 또한 하나님에 의해 능력을 부여 받으며 계획된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시는 성령 안에서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러한 자유인 것이다.

지금까지 이 책의 내용 중 중요한 부분들을 살펴 보았다.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이 책은 우리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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