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요약본

청교도 사상

김재윤 | 2003.10.30 16:12
제임스 패커 지음, 청교도 사상, 기독교문서선교회

이 책은 청교도 연구가인 제임스 패커에 의해 쓰여진 훌륭한 청교도 개론서이다. 이 책에서 제임스 패커는 청교도들은 성공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청교도들을 영적 거인들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청교도의 사상에 근접하게 된다. 몇몇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우리에게 청교도가 필요한 이유
청교도의 목표는 영국의 개혁이 시작한 바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곧 영국 국교회 예배의 형태 수정을 완성하고, 영국 국교회 교구에 효과적인 교회 기율을 도입하고, 정치와 가정과 사회 경제 체계에 정의를 수립하고, 모든 영국인들을 살아있는 복음적 신앙으로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복음을 전도하고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모든 예술, 과학, 기술들의 성경화를 통해 영국은 성도들의 땅, 집합적 경건의 귀감과 모범이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세계의 축복 수단이 되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은 사고와 관점에 있어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심원하였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다룰 때 그들의 경의는 깊고 불변적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살펴볼 때 인내를 갖고 하였고 철저했고 조직적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신 모든 것을 실행과 '일치시키고자'(그들 자신의 어구) 애썼다. 그들은 자신들의 양심에 하나님의 말씀의 멍에를 지게 하여 모든 활동들을 성경의 정밀 조사 아래 두고,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일을 단순한 독단적인 정당화와는 성질이 다른 신학적 정당화를 요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훈련시켰다.
청교도 저자들이 한결같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첫째로, 하나님의 '비말'이다. 그들은 우리의 하나님이 너무 작다고 말한다. 실재의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관념 상자에 집어넣을 수 없고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루심에 있어 과거에나 현재에나 미래에나 항상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분이다.
다음으로 청교도 저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들은 죄인들을 구속하고, 회심시키고, 성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전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통과하여 영광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영광에 대한 열망과 이 영광을 즐기기 위한 능력을 조금씩 배움으로 이 영광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예배와 변함없는 사랑의 순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이 땅의 거룩은 내세의 행복으로 가는 고속도로인 것이다. 이 말을 한 다음 청교도들은 네 번째로, 세상과 육체와 악마와 우리를 타락시키고자 하는 수많은 방법의 '영적 전투'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준다. 다섯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큰 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악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을 허용하기도 하시며 영적 전투를 지배하시고 성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보호'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리고 여섯 번째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혼란과 압박 아래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증명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에 우리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언제나 하나님을 우리의 기쁨과 희락으로 삼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촉진시키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2. 영국 청교도의 실천적 저서들
교회는 아무도 완전히 건강한 사람이 없고 누구나 항상 병이 도질 수 있는 병원이다. 목회자들은 세상과 육체와 마귀의 압박에 의해, 그리고 그들의 이익과 쾌락과 자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보다 자세히 알게 되는 바와 같이 치유자인 자신들이 여전히 병들고 상처입은 상태이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돌보는 양들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도 성경의 약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단계에 있는 자신들의 영혼을 위한 약으로서의 성경 진리를 필요로 한다.
해석의 열쇠는 믿음에 의한 칭의이며 들어가는 문은 (우리가 예상하는 바와 같이) 로마서이다. 틴데일은 로마서를 '성경 전체를 밝히는 빛이며 전체로 통하는 길'이라고 칭하고 로마서에 대한 루터의 판단을 "밝은 빛, 모든 성경을 밝히기에 충분한 빛"이라고 번역한다.
불꽃이 없는 열기, 교육학적 정밀성을 갖추지 않은 설교의 열정은 아무에게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교회 출석자들의 쪽으로 볼 때 설교에서 믿음을 배우고 교훈을 받아들이기 싫어 하는 것은 불성실의 표적이다. "만일 당신들이 회개를 했다면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해 수고하라"고 박스터는 노동자 신도들에게 말했다. 그들이 현대의 신도들처럼 행하며 "우리는 박식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지식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의를 제기했을 때 박스터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1) 사리를 아는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박식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를 만드셨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가 사는 목적을 알아야 하며, 그의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알아야 한다. 그대들은 박식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않으면 멸망하는 영혼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가?
(2)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에서 자신의 뜻을 그대들에게 명백하게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무지함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대들이 학자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비록 그대들이 히브리어나 헬라어 능력이 없더라도 영어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무지의 암흑 속에서 그대들은 절대로 그 길을 찾을 수 없다. (3)...그러므로 그대들이 만일 시직에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랑과 모든 순종에서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이 없다면 이것 중 어느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들이 직업에서 일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하늘의 일들의 지식을 얻고 싶어한다면 오늘이 가기 전에 이를 시작할 것이며 그것을 얻기까지 어떠한 희생이나 고통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자신의 직업을 익히는 데는 7년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구원에 대한 문제들을 부지런히 배우는 데는 칠 년 중 하루도 바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청교도들은 지식없는 종교적 감정이나 경건한 정서는 무익하기보다 악한 것으로 생각했다. 오직 진리를 느끼고 있을 때의 정서라야만 바람직한 정서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리를 느끼고 순종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고 지식없는 감정에 의해 지배될 때 그것은 마귀가 역사하고 있는 확실한 표적이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순종없는 지식이 영혼에 파멸을 초래하는 것과 같이 지식과 분리된 감정과 어두운 정신의 충동들도 영혼에 파멸적인 것이다. 진리를 가르침이 목회자의 제일 과제인 것처럼 진리를 배움은 평신도의 제일 과제이다.
퍼킨스는 적용을 계획함에 있어 일곱 가지의 목회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로 '무지하고 가르치기 어려운 불신자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전략은 그들 중에 있는 분명한 죄를 꾸짖어 마음을 찌르고 무섭게 함으로 그들이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나 아직 무지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설교에 보충하여 교리 문답(청교도들이 매우 즐겨 사용한 교육 방법)을 사용하여 기본적인 복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셋째로 '지식을 갖고 있으나 아직 겸손하지 못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그들을 어떻게 정죄하는가를 들을 필요가 있다. 넷째로 '비굴한 자들'이 있다. 이들은 믿음과 회개 그리고 복음의 위로들에 대한 교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다섯째로 '분명히 믿음을 갖고 있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기초 교육을 필요로 한다. 곧 1)칭의와 성화와 인내를 말하는 복음, 2)'저주가 없는 율법'이다. 이 기초 교육으로 그들은 회개와 어울리는 새로운 순종의 열매들을 맺도록 배우게 된다. 여섯째로 진정한 믿음, 또는 진정한 의로부터 '타락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직접적으로... 입증하고 되풀이하여 가르쳐 주고(또는 사정없이 내리치는) 교리와 함께 회개의 교리와 형제의 애정을 필요로 한다. 일곱째로 '혼합적인 사람들'이 있다. 뒤섞인 사람들이 우리 교회들에 모이는 집회자들이다. 이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설교자는 모든 유형의 적용들을 조화있게 변화시켜야 한다. 각각의 적용들은 어떤 청중들에게 적절한 것이며 적용 자료의 우물은 절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영적 권위는 성경에 대한 양심의 신실성과 합성된 산물이며, 하나님의 실재와 위대성에 대한 생생한 인지이며,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고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확고한 열망이며, 깊은 자기 조사와 철저한 자기 부정이며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를 사모함이며, 인간을 향한 편견없는 동정이며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솔직한 순진성, 곧 솔직성에 있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반면에 지식에 있어서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신적 권위에 복종함으로 권위를 소유하게 된다.

3. 청교도의 양심
청교도라고 칭해졌던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에 실제로 가장 중요한 관심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바르게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고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관심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실제로 양심에 대하여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심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전하시는 지적 기관아리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치 평가에 있어 양심의 조명과 교훈과 정화를 받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인간에게 있어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청교도들에게 있어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들의 양심을 드러내고 복종하기 전에는 진정한 영적 깨달음이나 참된 경건이 있을 수 없었다.
양심에 대한 청교도의 가르침은 그들이 개인 신앙에 대한 견해를 반영했다. 청교도에게 있어 경건은 본질적으로 양심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경건은 알려진 복음 진리에 대한 충심의, 훈련된, 신중한 응답에 존재하는 것이었고 선한 양심을 소유하고 유지함에 중심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중생하지 못했을 때 그의 양심은 악한 상태와 잠든 상태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은혜의 첫 번째 사역은 그의 양심을 때워 그에게 강제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직면하게 하여 그의 범죄, 무력, 패역, 부정, 소외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깨닫게 함으로 그의 양심을 철저하게 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용서와 평안의 지식은 그의 악한 양심을 선하게 한다. 선한 양심은 번연의 순례자와 같이 깨달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선한 양심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고 끊임없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삶을 통해 유지된다.
청교도는 선한 양심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십스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양심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가 아니면 제일 악한 대적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안을 아는 양심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다.
선한 양심은 부드러운 양심이다. 불신자의 양심은 너무 굳어 거의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기대하고 귀를 기울이며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를 구하며 자기 경계와 자기 비판에 민활하게 부단히 활동한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의지가 약한 것을 알고 죄와 사단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믿지 않고 의심한다. 그러므로 그는 정기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엄하게 심문하고 자신의 행동과 동기들을 세밀히 조사하여 자신에게 도덕적 결함과 부정을 발견했을 때에는 냉혹하게 자신을 정되한다. 이것이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성찬식 때에 하도록 권한 자기 판단이다(고전 11:31). 우리의 양심이 우리의 실재하는 죄악들(사단이 우리의 마음을 붙잡는 상상적인 죄악들과는 구별되는)을 간파할 때 보여주는 날카로운 안목의 정도는 우리가 실제로 얼마만큼 하나님을 잘 알고 있으며 실제로 얼마만큼 하나님과 가깝게 행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다른 말로 이야기해서 우리의 신령한 삶의 실재 자질의 지표인 것이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외향적이고 원기가 넘치는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니나 그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며,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며 말씀에 따라 매일 자신의 생활을 검사하고 개혁하는 그리스도인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의 활동이 얼마나 이 노선을 따라 우리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가 스스로 질문해 봄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의 현실 상태를 평가해 볼 수 있다.
청교도의 양심에 대한 가르침은 그들의 설교관에 반영되었다. 청교도의 설교에 대한 이상에 있어 가장 독특한 특징은 듣는 사람들의 양심에 진리를 적용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강한 강조였다. 청교도가 평가할 때 '신령하고 유능한' 설교자의 한 가지 표준은 사람들의 양심을 찢어 열어 하나님께서 보시는 대로 스스로를 직시하게 하는 적용의 정확성과 신실성이었다. 청교도들은 죄인들이 진리가 타인들에게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발견하는 데는 재빠르지만 자신에게 진리를 적용하는 데는 우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복음 진리를 적용함이 없이 일반적으로 진술하는 것은 크게 유익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세부에 걸친 적용들을 하는 것을 자신의 직무에 필수 부분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청교도들은 말한다. 곧 자신의 설교를 듣는 자들의 마음을 한걸음 한걸음 실친적 삼단논법의 길로 인도하여 말씀을 그들의 심령의 바른 거처에 다다르게 하여 말씀의 심판하고 상처를 내고 치유하고 위로하고 지도하는 사역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보통 신중하고 통찰력있는 적용들로 타인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가장 큰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이 하나님의 진리에 의해 가장 깊은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청교도는 말한다.
청교도들은 죄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내몰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라고 가르치기 위해 강단에서 양심을 찢어 드러내고 골방에서의 자개 재판을 강권했다. 그들은 단지 복음을 위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는 생활을 위한 길로 나아가기 위해 부지런히 율법을 행한 것이다. 자신에게서 시선을 전혀 돌릴 수 없는 인간의 병적 상태, 내관적 성질, 음울한 자기 전념은 잘못된 청교도 주의이다.

4. 청교도와 주님의 날
청교도들은 그들 시대의 특별한 상황들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교회적 등등의 상황들에 성경의 영원한 진리를 적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청교도는 영국 기독교 주일(the English Christian Sunday), 즉 주간의 첫째 날에 대한 개념을 창조하였다. 그들은 장사와 계획적인 오락을 중지하고 시간 전체를 예배와 교제와 선행에 아낌없이 바치는 날로 주일을 정했다.
키더민스터에서의 박스터의 활동 결과로 과거에 요란하고 술취하고 비신앙적이었던 사회가 변화되어 "주일날 거리에서 전혀 무질서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거리를 지날 때 수많은 가정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되풀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청교도들이 사역한 다른 여러 곳에서도 유사한 개혁들이 일어났다. 장기 의회와 그 후계자들은 청교도 신념에 자극을 받아 주일에 오락과 장사와 여행을 금하는 일련의 법령을 통과시켰고, 결국 청교도에게 힘과 인기가 없던 1677년에 격렬하게 청교도에 반대하던 의회가 주일 준수 법령을 통과시켰다. 이 법령은 이 문제에 대한 국가의 법령을 반복하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법령은 모든 사람들이 장사와 여행 '세상적인 노동, 사무, 또는 자신들의 정규적인 직업 업무'로 주일을 보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5. 청교도의 설교
청교도는 성경을 개인의 삶에 대한 지속적인 적용을 수반하여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설교했고 성경을 믿는 사람들로서 그리고 그들의 태도에 의해 자신들의 내용을 믿을 수 있고 설득력있고 죄를 깨닫게 하고 회심시키는 것이 되도록 애쓰는 사람들로 설교했다. 청교도의 강단의 열정은 파악하고 파악되어야 하는 은혜와 경건, 생명과 죽음, 천국과 지옥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의 회중을 위한 명확한 구현이 되고자 하는 열망의 소산이었다. 설교에는 영혼들의 교제와 우리와 그들간의 어떤 의사전달이 있다.
청교도의 설교 전통은 캠브리지 대학의 첫 번째 대복음 운동의 지도자들-윌리암 퍼킨스, 폴 베인스, 리챠드 십스, 존 코튼, 존 프렌스턴, 토마스 구드윈-에 의해 16세기와 17세기의 전환점에 창조되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청교도 주의는 교회 개혁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사실상 이 점에 있어 그들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퍼킨스와 베인스는 카트라이트와 함께 체제를 장로교화하는 꿈을 꾸었고 코튼과 구드윈은 조합교회파가 되었고 프레스턴은 비국교도였고 십스는 온건한 국교도로 남았다.

이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왜 청교도들이 필요한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청교도들은 성경에 의해 지배받고자 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은 청교도 연구에로의 충분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0개(4/5페이지)
독자요약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0 기질학습과 영적성숙 이종수 2004.05.20 14:47
29 초대 언더우드선교사의 생애, 연세출판부,1991 강석천 2004.04.16 17:53
28 복음의 진수로 나아가라 김재윤 2004.04.11 22:32
27 회심을 위한 불같은 외침 김재윤 2004.04.01 17:29
26 내게는 영원한 의가 있다 김재윤 2004.03.12 10:13
25 천지 창조의 목적 김재윤 2004.02.26 17:24
24 회심, 하나님께로 돌아서다 김재윤 2004.02.13 09:36
23 마틴 로이드 죤스의 크리스마스 메세지 김재윤 2003.12.29 09:13
22 조나단 에드워즈 생애와 사상 김재윤 2003.12.18 17:13
21 부흥사상가 조나단 에드워즈/채천석 지음/한국강해설교학교 출판부 강석천 2003.12.17 15:27
20 칼빈의 여성관 김재윤 2003.12.15 20:17
19 리챠드 백스터의 회심 김재윤 2003.12.05 13:37
18 죠나단 에드워즈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김재윤 2003.11.28 11:38
17 존 오웬의 죄와 유혹 김재윤 2003.11.20 18:05
16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토마스두리틀/기독교문사 김재윤 2003.11.14 11:06
15 토마스 왓슨의 경건을 열망하라 김재윤 2003.11.06 21:28
14 시험당하신 그리스도 김재윤 2003.10.30 16:19
>> 청교도 사상 김재윤 2003.10.30 16:12
12 진돗개전도왕/박병선/생명의말씀사 황성구 2003.10.29 22:00
11 기독교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김광훈 2003.09.24 12:4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