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스테디셀러
인간에 대한 사실주의 - 사실 그대로의 인간
브라운신부 전집 1, -결백/G. K. 체스터튼/북하우스/[나상엽]
체스터튼은 절망적인 인간의 뇌사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나, 그것을 고발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똑같은 사람임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은 비참하나 사건의 결말은 대체로 따듯하다. 연민과 이해, 동정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 저자 G. K. 체스터튼
1874-1936. 영국의 그리스도교 변증가·언론인·비평가·시인·수필가·소설가·단편작가. 호탕한 성격과 육중한 체구로도 유명하며, '역설의 거장'이라 불린다. 1874년 영국 런던 출생. 명문인 세인트폴을 졸업하고 슬레이드 아트 스쿨에서 미술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하였다. 체스터튼의 작품 속에서 사물에 대한 묘사가 돋보이는 것은, 그의 이 화가로서의 경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훌륭한 추리소설에서 서스펜스의 요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과 분위기 묘사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빛과 하늘을 묘사하는 데 탁월했다.
미술평론가로 글쓰기를 시작한 체스터튼은 이후 수백 편의 시, 다섯 편의 희곡,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비롯하여 약 이백 편의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였다. 체스터튼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브라운 신부 이야기는 잡지에 먼저 게재되었다. 이후 다섯 권의 단행본이 『결백』(1911) 『지혜』(1914) 『의심』(1926) 『비밀』(1927) 『스캔들』(1935) 등의 차례로 출간되었다. 브라운 신부의 실제 모델은 그의 친구인 존 오코너 신부로 알려져 있는데, 브라운 신부의 역설적이고도 기지 넘치는 발언들은 1922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작가 자신의 모습과 종종 겹치기도 한다. 늘 우산을 들고 다니는 브라운 신부의 이미지가 워낙 유명해져서, 우산을 탐정의 상징으로서 사용하던 기존의 출판사들이 모두 이를 바꾸어야 했을 정도로 그 당시 영국 추리소설계에 체스터튼과 브라운 신부가 미친 영향은 컸다.
체스터튼은 그밖에도 저널리스트로서 4000편이 넘는 신문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G. K.'s Weekly』라는 자신의 주간지를 직접 편집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그 당시의 지성인들인 조지 버나드 쇼, H. G. 웰스, 버트란드 러셀 등과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체스터튼이야말로 그 모든 논쟁들의 승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잊고 패자들만을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1900년에 두 권의 시집을 낸 이후로 정치·사회 비평 및 로버트 브라우닝, 찰스 디킨스, 조지 버나드 쇼 등에 대한 문학 비평 분야에서 활동하였고, 1922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정통적인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자유롭기 그지없는 논객으로 다재다능한 활약을 선보였다.
《브라운 신부의 결백 The Innocence of Father Brown》(1911년)으로 시작되는 그의 추리 소설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5권, 약 100편에 이르고 《목요일의 사나이 The Man Who Was Thursday》(1908년) 등의 장편 소설을 비롯해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1906년) 《성 토마스 아퀴나스 St. Thomas Aquinas》(1933년) 등 신학·전기·미술·시 등 다방면에서 100권이 넘는 책을 낸 열정적인 문인이다. 이 밖에도 저널리스트로서 4천 편이 넘는 신문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G. K.'s Weekly》라는 주간지를 직접 편집, 발행하기도 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체스터턴을 두고, "에드거 앨런 포보다 더 훌륭한 추리 소설가"라는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물론, 어니스트 헤밍웨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레이엄 그린, 마셜 맥루언 등 후대의 대표적 문인들이 체스터턴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 서평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단순히 육하원칙 논리에 따른 추리가 아닌,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로 말이암은 인간에 대한 확인이다. 이 작품에서 체스터튼이 만들어내는 추리소설로서의 내러티브는 이미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며 아름답다. 서스펜스의 요소를 만들기 위해, 마치 실제 눈으로 보듯 독자 앞에 선명히 제시해주는 사물에 대한 돋보이는 묘사는 얼마나 수려한가? 인물간의 갈등은 얼마나 기발하며, 그에 따른 사건은 얼마나 기괴한가? 서사 속에서 함께 담아내고 있는 당대 문화와 역사는 얼마나 아련한가? 억지스럽지 않은 설정과 거기서 비롯되는 번뜩이는 추리는 또 얼마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인간에 대한 통찰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두려워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나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만 그 악하고 가련한 인간 영혼에 직면할 수 있을 따름이다.
모든 인간이 직면하여 처절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으나, 그것이 보이지 않는 인간 내부의 사건이라 거의 고려되지 않고, 심지어는 아예 부정되고 있는 “악”의 문제를, 체스터튼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은 지식을 그 유일한 전문성으로 가지고 있는 브라운 신부라는 인물을 빌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범죄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범죄할 수밖에 없는 인간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원죄, 곧 언제라도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 죄인인 인간이 그를 통해 맨살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저 옛날 아담과 이브가 그러했듯이, 범죄한 인간은 또한 얼마나 가련한가? 조그마한 나뭇잎 조각으로 애써보지만, 가릴래야 가릴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깨달은 그들이 그러했듯이, 죄악 중에 잉태되어 죄악 가운데 ‘붉은 몸둥이[赤身]’로 출생한 존재임을 알게된 인간은 얼마나 가련한가?
체스터튼은 절망적인 인간의 뇌사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나, 그것을 고발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똑같은 사람임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은 비참하나 사건의 결말은 대체로 따듯하다. 연민과 이해, 동정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 책 자체가 인간을 치유하지는 않는다. 체스터튼도 그것을 기대한 것 같지는 않다. 추리소설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을 추리했을 따름이며, 그의 인간에 대한 추리는 곧 기적에 대한 새로운 눈뜸인데, 곧 ‘사실 그대로의 인간'이 바로 기적인 것이다. 이는 “터무니없는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볼 수 없는 것이며, 이는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p.484)라는 새로운 인식이며, 따라서 우리는 마음에서부터 "이상하고 사악하며 영웅심이 뒤섞인 인간 자체가 기적"(p.363)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적에 대한 새로운 눈뜸(곧, 죄인으로서의 사실 그대로의 인간)은 이제 우리를 참 기적에 대한 희구와 갈망으로 이끌어주는데, 자신이 죄 또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임을 깨달은 인간은, 문자 그대로 거듭 출생[重生]하는 참 기적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T. S. 엘리엇은 체스터튼을 일컬어 ‘영원토록 후대의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체스터튼은 그러한 사람이었다. 이제 우리 풍부한 학식과 예라한 지성, 따듯한 마음의 그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즐거운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보자.
체스터튼은 절망적인 인간의 뇌사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나, 그것을 고발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똑같은 사람임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은 비참하나 사건의 결말은 대체로 따듯하다. 연민과 이해, 동정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 저자 G. K. 체스터튼
1874-1936. 영국의 그리스도교 변증가·언론인·비평가·시인·수필가·소설가·단편작가. 호탕한 성격과 육중한 체구로도 유명하며, '역설의 거장'이라 불린다. 1874년 영국 런던 출생. 명문인 세인트폴을 졸업하고 슬레이드 아트 스쿨에서 미술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하였다. 체스터튼의 작품 속에서 사물에 대한 묘사가 돋보이는 것은, 그의 이 화가로서의 경력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훌륭한 추리소설에서 서스펜스의 요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과 분위기 묘사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빛과 하늘을 묘사하는 데 탁월했다.
미술평론가로 글쓰기를 시작한 체스터튼은 이후 수백 편의 시, 다섯 편의 희곡,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비롯하여 약 이백 편의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였다. 체스터튼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브라운 신부 이야기는 잡지에 먼저 게재되었다. 이후 다섯 권의 단행본이 『결백』(1911) 『지혜』(1914) 『의심』(1926) 『비밀』(1927) 『스캔들』(1935) 등의 차례로 출간되었다. 브라운 신부의 실제 모델은 그의 친구인 존 오코너 신부로 알려져 있는데, 브라운 신부의 역설적이고도 기지 넘치는 발언들은 1922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작가 자신의 모습과 종종 겹치기도 한다. 늘 우산을 들고 다니는 브라운 신부의 이미지가 워낙 유명해져서, 우산을 탐정의 상징으로서 사용하던 기존의 출판사들이 모두 이를 바꾸어야 했을 정도로 그 당시 영국 추리소설계에 체스터튼과 브라운 신부가 미친 영향은 컸다.
체스터튼은 그밖에도 저널리스트로서 4000편이 넘는 신문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G. K.'s Weekly』라는 자신의 주간지를 직접 편집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그 당시의 지성인들인 조지 버나드 쇼, H. G. 웰스, 버트란드 러셀 등과 논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체스터튼이야말로 그 모든 논쟁들의 승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를 잊고 패자들만을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1900년에 두 권의 시집을 낸 이후로 정치·사회 비평 및 로버트 브라우닝, 찰스 디킨스, 조지 버나드 쇼 등에 대한 문학 비평 분야에서 활동하였고, 1922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정통적인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자유롭기 그지없는 논객으로 다재다능한 활약을 선보였다.
《브라운 신부의 결백 The Innocence of Father Brown》(1911년)으로 시작되는 그의 추리 소설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5권, 약 100편에 이르고 《목요일의 사나이 The Man Who Was Thursday》(1908년) 등의 장편 소설을 비롯해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1906년) 《성 토마스 아퀴나스 St. Thomas Aquinas》(1933년) 등 신학·전기·미술·시 등 다방면에서 100권이 넘는 책을 낸 열정적인 문인이다. 이 밖에도 저널리스트로서 4천 편이 넘는 신문 칼럼을 기고하는 한편, 《G. K.'s Weekly》라는 주간지를 직접 편집, 발행하기도 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체스터턴을 두고, "에드거 앨런 포보다 더 훌륭한 추리 소설가"라는 헌사를 바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애거서 크리스티는 물론, 어니스트 헤밍웨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레이엄 그린, 마셜 맥루언 등 후대의 대표적 문인들이 체스터턴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고 있다.
● 서평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단순히 육하원칙 논리에 따른 추리가 아닌,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로 말이암은 인간에 대한 확인이다. 이 작품에서 체스터튼이 만들어내는 추리소설로서의 내러티브는 이미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며 아름답다. 서스펜스의 요소를 만들기 위해, 마치 실제 눈으로 보듯 독자 앞에 선명히 제시해주는 사물에 대한 돋보이는 묘사는 얼마나 수려한가? 인물간의 갈등은 얼마나 기발하며, 그에 따른 사건은 얼마나 기괴한가? 서사 속에서 함께 담아내고 있는 당대 문화와 역사는 얼마나 아련한가? 억지스럽지 않은 설정과 거기서 비롯되는 번뜩이는 추리는 또 얼마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인간에 대한 통찰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두려워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나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만 그 악하고 가련한 인간 영혼에 직면할 수 있을 따름이다.
모든 인간이 직면하여 처절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으나, 그것이 보이지 않는 인간 내부의 사건이라 거의 고려되지 않고, 심지어는 아예 부정되고 있는 “악”의 문제를, 체스터튼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은 지식을 그 유일한 전문성으로 가지고 있는 브라운 신부라는 인물을 빌어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는 범죄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범죄할 수밖에 없는 인간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원죄, 곧 언제라도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 죄인인 인간이 그를 통해 맨살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저 옛날 아담과 이브가 그러했듯이, 범죄한 인간은 또한 얼마나 가련한가? 조그마한 나뭇잎 조각으로 애써보지만, 가릴래야 가릴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깨달은 그들이 그러했듯이, 죄악 중에 잉태되어 죄악 가운데 ‘붉은 몸둥이[赤身]’로 출생한 존재임을 알게된 인간은 얼마나 가련한가?
체스터튼은 절망적인 인간의 뇌사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나, 그것을 고발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똑같은 사람임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은 비참하나 사건의 결말은 대체로 따듯하다. 연민과 이해, 동정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 책 자체가 인간을 치유하지는 않는다. 체스터튼도 그것을 기대한 것 같지는 않다. 추리소설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을 추리했을 따름이며, 그의 인간에 대한 추리는 곧 기적에 대한 새로운 눈뜸인데, 곧 ‘사실 그대로의 인간'이 바로 기적인 것이다. 이는 “터무니없는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볼 수 없는 것이며, 이는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p.484)라는 새로운 인식이며, 따라서 우리는 마음에서부터 "이상하고 사악하며 영웅심이 뒤섞인 인간 자체가 기적"(p.363)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적에 대한 새로운 눈뜸(곧, 죄인으로서의 사실 그대로의 인간)은 이제 우리를 참 기적에 대한 희구와 갈망으로 이끌어주는데, 자신이 죄 또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임을 깨달은 인간은, 문자 그대로 거듭 출생[重生]하는 참 기적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T. S. 엘리엇은 체스터튼을 일컬어 ‘영원토록 후대의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체스터튼은 그러한 사람이었다. 이제 우리 풍부한 학식과 예라한 지성, 따듯한 마음의 그가 들려주는 신비롭고 즐거운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보자.
- gk_1.jpg (0B) (0)
202개(6/11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