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동수1999-2002년 서울 방배동 기독신학교에서 M.Div.를 수학하고, 2002-2004년 미국 칼빈신학대학원에서 Th.M.으로 조직신학(칼빈연구)을 전공, 2004-2010년까지 미국 휘튼대학원 성경.신학부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할 때까지 개혁신학과 칼빈신학에 대한 연구를 하였습니다. 시카고 지역에서 한인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와 담임목회 및 도시선교 등을 섬겨왔으며, 학교와 목회, 그리고 이민생활 현장에서 고민하며 묵상한 에세이와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은 의미있는 개혁파 신학/신앙 관련 서평 등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의 다양성에 눈을 떠야...
개혁파(Reformed)를 자처하며 개혁신학을 운운하는 이들이 많지만 의외로 개혁신학의 다양성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만연함이 안타깝다.
개혁신학의 역사적 근원과 전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잘못된 이해에 근거해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분이, ‘개혁신학’은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나타난 변증신학 혹은 조직신학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장로교회 계통인 구프린스턴(Old Princeton) 신학이 표방했던 ‘개혁주의 조직신학’ 혹은 ‘개혁주의 변증학’의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에서는 합동이나 고신, 혹은 보수적 장로교회의 학자들과 목사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구프린스턴 대학의 핫지나 워필드, 밴틸 등의 조직신학자들의 영향인 듯하다.
하지만, ‘개혁신학’을 미국장로교회(PCUSA나 PCA) 계열의 구프린스턴, 커버넌트, 리폼드 신학 중심의 변증학, 혹은 조직신학 정도로 환원하는 것은 개혁파 교회들의 다양성과 풍성함을 스스로 제한함에 지나지 않는다.
루터가 시작한 16세기 종교개혁은 ‘루터파’, ‘개혁파’, ‘재세례파’ 등 각각 다른 형태의 신앙운동으로 나아갔고, 아예, 한 나라 가톨릭교회 전체가 개신교에 가담하여 생긴 ‘영국 성공회’라는 독특한 개신교―신학은 개혁신학 예식은 상당히 여전히 카톨릭―이 생겨났고, 18세기에 이르러 이 성공회로부터 ‘감리교’, ‘성결교’, ‘오순절’ 교회들이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탄생했다.
개신교 전체에서 신학적으로 개혁신학(칼빈주의)의 영향력이 상당히 높은 것(성공회나 침례교에서 칼빈주의자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개혁파 교회(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교세는 상당히 미세한 편이다. 이런 점에서 개혁신학과 개혁파 교회는 다른 개신교 종파들 사이에서는 장점과 단점이 두드러지는 개신교의 한 지류(one branch)일 뿐이다.
특히, 개혁파에 관심이 있다면, 개혁파 교회들(Reformed Churches)과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파 신학(Reformed Theology) 은 역사적으로 개혁파 교회들에서 시작되었다. 개혁파 교회는 16세기 스위스로 부터 시작하여, 프랑스, 네델란드, 독일, 영국을 거쳐 18세기 북미와 19세기 아시아로 퍼져나갔다.
개혁파 신학의 원조는 스위스 종교 개혁자 쯔빙글리와 외클람파디오스 그리고 불린저 등이었고, 이어 프랑스 출신 칼빈이 2세대 개혁파로서 제네바를 중심으로 개혁파 신학을 확립하고, 네델란드와 영국 등에 개혁신학―칼빈을 따르기에 칼빈주의(Calvinism)라고도 함―을 확장시켰다.
그런데, 영국과 북미로 전파된 개혁신학은 유럽의 개혁교회(Reformed)가 아닌 장로교회(Presbyterian), 퓨리턴 중심의 회중교회(Congregationalist), 그리고 개혁신학을 받아들이지만 개혁파 교회체제를 따르지 않는 개혁파 침례교회(Reformed Baptist) 등으로 나뉘었다.
한국 보수 장로교회의 뿌리인 북미 구프린스턴 장로교 칼빈주의 개혁신학은, 개혁신학 전체의 풍성함과 방대함에 비하면, 한 지류 정도일 뿐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가장 저명한 개혁파 신학자들인 칼 바르트, 에밀 부르너, 오스카 쿨만 등은 모두 스위스 개혁파 교회 출신들이었다. 이들의 개혁신학은 칼빈을 포함한 원조 개혁파 신학자들인―쯔빙글리와 불린저, 외콜람파디우스의 신학에 기반한 분들이었다.
물론, 칼빈주의 전통에서는 네델란드 개혁파 교회의 아브라함 카이퍼나 헤르만 바빙크가 신칼빈주의(Neo-Calvinism) 운동을 주도하면서 칼빈 연구의 부흥이 일어났고, 여기에, 북미의 개혁파 칼빈신학교의 루이 벌콥, 안토니 후크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합류한 게할두스 보스와 코닐리우스 반틸, 그리고 리차드 개핀 등등이 구프린스턴 출신 북미 장로교 개혁파 신학을 구축한 인물들이다.
현대에는 남침례교 출신의 알버트 몰러나 일반침례교 존 파이퍼, 성경강해로 이름을 날린 존 맥아더 등등이 강력한 개혁파 칼빈주의 우군들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개혁신학을 논하려면, 개혁교회-장로교회-회중교회-침례교회와 함께 심지어 칼빈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국성공회까지 포함시켜 다양한 신학자들과 그들의 신학의 주제들과 뉘앙스들을 주의 깊게 고려하고 접해야만 그 풍성한 맛과 향을 진정으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장로교회 목사들은 역사적으로 개혁파이다. 개혁파 신학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장로교 목사가 있다면 부끄러워 할 일이다. 또한, 개혁파 신학을 너무 협소하게 이해하여 내 개혁신학만 최고라며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아무데나 비난의 총질을 하는 소위 개혁파 목사들도 부끄러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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