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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강도헌장로교 합동측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합동측 목사가 되었다. 목회자가 되기까지 약간의 방황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기도로 목회자가 되었다. 중형교회와 대형교회의 부교역자 사역을 해 오던 중에 성령의 강권적인 끌림에 제자삼는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성(신학)과 체험의 전인적 영성에 관심을 두고 영성과 치유, 성장에 관해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성도들이 알아야 할 영전전투’ 1권, 2권이 있고, 현재 제자삼는교회 담임,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5계명)

강도헌 | 2017.06.12 10:09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

출20:12(6)

 

일반적으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의 첫 번째 석판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4계명이 적혀 있고(루터는 다르다), 두 번째 석판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인 여섯 계명이 적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계명은 내용과 함께 그 순서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석판의 첫 번째 계명이 부모 공경에 관한 이유에 대해 대부분의 학자들은 여섯 계명 중 당시 사회에서 부모 공경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프랑크 크뤼제만은 《자유의 보존》에서 여섯 번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보다 ‘부모 공경’의 계명이 앞서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부모 공경의 계명이 가장 앞에 놓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로써 두 개의 긍정적 계명들이 함께 중심부에 나란히 놓여지게 된 것이다(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다른 계명들이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는 부정문인 반면, 이 두 계명은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 계명이 가장 앞에 놓은 것은 이 구약의 윤리적 지침들 중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고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에도 상응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사실 구약에서는 부모공경과 부모공양에 대한 내용들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율법 책들(출애굽기21:15-17, 신명기27:16, 레위기19:3, 20:9), 지혜의 잠언들(잠언1:8, 19:26, 20:20, 23:22, 28:24, 30:11,17), 예언서들(에스겔22:7, 미가7:6, 말라기1:6)에서 부모에 대한 자세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러한 이유에 대해 알베르츠는 ‘당시에 가정 밖에서는 어떠한 노후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으며, 노인들, 병자들, 약자들은 오로지 젊은 자녀들의 봉양에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공경하다’가 정신적,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구체적인 물질적 봉양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고대 근동의 문헌을 통해 밝히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에서 영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부분에서 또한 공경의 개념이 포함되고 있다고 정리하였습니다.

 

칼뱅

칼뱅은 신명기 5장 16절의 설교에서 제5계명이 단순히 부모에 대한 공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연관되어 있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을 포함한 모든 공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공경을 목표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공경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고 칼뱅은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어떤 공경을 요구하시는 것은 그에게 그럴 만한 필요가 있어서거나 혹은 그것이 그분께 무슨 유익이 되어서가 아니고, 오히려 우리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벤자민 팔리, 《칼빈의 십계명 설교》, 성광문화사, 1991)

 

여기서 말하는 ‘유익’에 대해 칼뱅은 부모공경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권위에 대한 복종과 겸손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칼뱅은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스스로를 높이려’하는 ‘자만’에 대하여 부모 공경의 계명을 지키면서 극복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5계명에 위치 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자만’이란 단순히 상대방에게 거만하게 군다는 의미의 ‘교만’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 같이’자기를 높이려는 욕망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같이 되려고 자기를 높이는 마음’으로서 라틴어 ‘수페르비아(자만)’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본성과 은총》이라는 책에서 “모든 죄의 시작은 자만이다. 그리고 자만의 시작은 사람이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라고 언급하면서 자만이 죄의 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자만’에 대하여 라인홀더 니버는 ‘자존심’이라 불렀고, 폴 틸리히는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라는 의미로 ‘휘브리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사실 자녀에게 부모는 물리적으로 자신을 존재하게 한 창조주와 같은 존재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부모의 몸을 통하여 창조하셨기에 부모를 무시하거나 경홀히 여기는 것은 ‘자만’에 해당합니다. 특히 나이 들어 늙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는 우리를 존재케 한 분이시지만, 참 신은 아니기에 나이들어 병들고, 분별력도 떨어지면서 자녀들이 늙은 부모를 부담스러운 짐처럼 여기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공경은 성경에서 말하는 큰 사상 두 가지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나를 존재(창조)케 한 분에 대한 공경입니다. 둘째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책임 입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 받는 사회를 천국의 기본 모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성경적 근거가 궁금하다면, 대표적으로 신명기, 레위기,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미가, 에스겔 등을 읽어 보십시오.

 

교만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중심적 사람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자들을 절대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겸손을 가장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절대 겸손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높이려고 ‘자만’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겉으로 볼 때 겸손한 것처럼 행동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절대 그 사람에게 겸손히 행동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자기 이미지를 관리할 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해타산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자만은 교만보다 훨씬 근본적인 죄로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자신의 쪽으로 돌리려는 것으로서 ‘자신을 높여 신과 같이 되려는 것’,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것’, 즉, 죄의 시작이자 뿌리로 정의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신처럼 되려고 한다는 것에 대해 잘 모릅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과 같은 몇 몇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처럼 되려고 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변호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스스로를 높이려는’ 모든 마음의 태도와 행위는 다름 아닌 ‘자기 마음(뜻)대로’ 살려는 태도로서 이미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높이려는 자만은 다름 아닌 ‘존재를 상실하게 하는 것’, ‘존재를 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중심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존재들을 자기중심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서, 자만은 모든 죄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죄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구원은 자만(자기중심성)을 없애고 겸손(자기십자가를 지는 회개)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겸손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도 서로 연괸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부모공경

더 나아가 부모공경 또한 현재 왜곡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부모의 유산이나 부모가 소유하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하여 자기가 획득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비위를 맞추는 행위입니다. 이 행위 또한 진정한 공경심이 아니라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부모의 마음을 속이는 것으로서 이중적 마음, 즉 위선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고, 하나님과 부모와 모든 존재들을 자기중심으로 만들려는 ‘자만’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까지 위선된 마음의 소유자는 결국 진정한 모든 존재들의 부모이신 하나님까지도 자신을 위한 이용의 대상이 되어버리며, 하나님을 신앙하는 태도 또한 자신을 높이기(목적달성) 위한 도구가 되면서 스스로 하나님(모든 것의 주인)처럼 행동하려고 합니다.

 

부모공경은 당시의 사회와 문화적으로 볼 때 늙은 부모의 노후를 책임져야하는 상황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부모 공경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부모를 공양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에서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보다 앞서 가장 먼저 부모공경의 계명이 주어진 것은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자신 안에 있는 자만(자기가 세상의 중심처럼 행동하려는 태도, 스스로를 높이려는 태도)을 제어하고 극복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천동설에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히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여 지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구는 절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닌 것처럼, 하나님과 세상과 자연의 모든 것이 자기위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바라보고,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하고픈 욕망이 바로 자만이라는 어리석은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처럼, 부모 없이 존재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공경의 대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대상이 아니라 공경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과 부모님께 더 받아 내기 위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것을 제공하신 하나님과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바른 마음입니다. 즉, 나에게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부모님께서 베푸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마음과 태도가 바로 ‘죄’의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존재케 하신 부모님을 공경하며, 또한 그 부모님을 존재케 하신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즉,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부모님을 공경하는 삶을 추구한다면, 사실 ‘살인’할 이유도 ‘도덕질’할 이유도 없습니다.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살인’하지도, ‘남의 것을 도적질’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바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높이려고 하는 ‘자만’을 꺾을 수 있는 마음은 바로 ‘공경’의 마음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위해 존재하기를 바라는 자기중심적 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절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날마다 되세겨야 합니다.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로 지금 나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과 부모님에 대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즉, 공경하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모든 것이 불평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자신이 불효자이고, 죄인 됨에도 변함없이 은혜를 베푸신 부모님과 하나님께 겸손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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