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강도헌장로교 합동측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합동측 목사가 되었다. 목회자가 되기까지 약간의 방황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부모님의 기도로 목회자가 되었다. 중형교회와 대형교회의 부교역자 사역을 해 오던 중에 성령의 강권적인 끌림에 제자삼는교회를 개척하였다. 이성(신학)과 체험의 전인적 영성에 관심을 두고 영성과 치유, 성장에 관해 연구 중이다. 저서로는 ‘성도들이 알아야 할 영전전투’ 1권, 2권이 있고, 현재 제자삼는교회 담임,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두 번째 스바냐 묵상 : 정치지도자들에 대하여

강도헌 | 2017.04.06 09:34

스바냐 묵상 2 : 정치적 지도층

 

스바냐 1장 8절에는 ‘방백들(사림)’과 ‘왕자들(브네 하멜렉)’과 같은 정치적 지도자들이 등장 합니다. 이들이 스바냐서에 언급된 것은 여러 성경학자들이 지지하듯이, 이들이(방백들과 왕자들) 사법적인 기능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백성을 함부로 체포하여 투옥하였던 행위들에 기인합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이사야서에서도 유다의 방백들이 뇌물을 좋아하고 부정한 재판을 시행하고(1:23), 가난한 자의 물건을 탈취하였다고(3:14) 고발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에는 방백들의 죄악을 주로 사법적 부정의와 경제적 약탈로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바냐는 1장 8절은 방백들과 왕자들(꼭 혈통적 왕자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악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방백들이나 왕자들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이라는 문구를 통해 그들의 문제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방 민족의 옷을 입은 자들은 주변국의 문화를 답습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아마도 앗수르와 같은 강대국들의 문화를 답습했을 것입니다. 후대 선지자 에스겔23장 12절에서도 유다가 앗수르화 되어 고유한 문화를 상실한 당시의 지도층의 모습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연해하였나니 그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말 타는 자들과 준수한 소년이었느니라” 예레미야는 이들이 단지 문화만 답습한 것이 아니라 이방 국가의 종교에 동화되어 방백들은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였고 유다의 백성들도 이를 모방하였다(44:17,21)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바냐 1장 5절에서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밀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은 바로 지도층의 종교적 타락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의 이방 풍습에 대한 동경은 문턱을 뛰어넘는 자들에 대한 언급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인류학에서 문턱은 이곳도 저곳도 아닌 중간상태를 의미하는 코뮤니타스나 경계적 영역, 애매모호한 상태, 혹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를 밟는 것을 터부하는 경향이 이스라엘에게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구약성경은 문턱을 뛰어 넘는다는 것은 이방 풍습을 추종하는 것을 넘어 이방 풍습과 관련된 종교를 숭배하는 행위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삿16:23, 대상10:10).

 

정치 지도자들의 이방 풍습과 이방 종교를 섬기는 것은 문화나 종교의 변질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의 문화와 종교 안에 담긴 영, 즉 그들의 사상과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결과들을 초래하였습니다. 이방종교와 풍습을 받아들인 유대 지도자들의 모습에 대해 악트마이어는 자신의 주석(나훔-말라기, 현대성서주석)에서 “지도자들 집 안에 있는 사치스런 물건들은 강탈로 얻어진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스바냐 3장 3절은 재판장들을 가리켜 “이튿날 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라고 묘사하였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도 포함)은 엘리트 주의와 소비자본주의 사상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분명 이러한 사상은 철저한 인본주의 사상으로서 오늘날 이 시대에 변형되어 나타나는 ‘바알’과 ‘다곤’에 해당합니다. ‘돈이 없는 것’, ‘권력이 없는 것’ 등, 이러한 결핍이 죄로 용인되는 사회는 분명 이방의 우상숭배적 사회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다름 아닌 “정의”와 “공의”가 지켜지는 나라, ‘소유’ 중심이 아닌 ‘공생(共生)’의 사회였습니다. 분명 ‘소유와 소비’중심의 모든 이론(신학을 포함, 특히 교회성장 신학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장과 소유를 숭배하고 있지 않는지 정직하게 숙고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과 사고 가치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금하신 ‘우상숭배’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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