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신성욱계명대 영문학, 총신신대원,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구약 Th.M 수학), Calvin Theological Seminary(신약 Th.M), University of Pretoria(설교학 Ph.D),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두란노, 2014), 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설교학 교수
당신의 삶으로 복음을 꽃 피우라!
강화의 주문도라는 나귀 턱뼈 모양의 작고 아름다운 섬에서 흘러나온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섬에 복음이 최초로 들어온 때는 1893년이다. 만선의 기쁨 속에 흥청망청하던 파시(波市) 한복판에서 윤정일 전도사란 사람이 “회개하시오, 천국이 가까웠습니다!”라고 처음 외쳤는데, 당시 뱃일하던 김근영이란 사람이 전도를 받고 처음 예수를 믿었다. 옛날 섬에는 해상 방어진이 있어 진촌(鎭村)이라고 불렀다.
진촌의 유력 양반 집안인 박씨 문중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박두병 박순병 형제의 빚 탕감 이야기가 전도의 촉매제가 된다. 용서에 관한 마태복음 18장 속 예수님의 비유, 1만 달란트 빚진 종과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의 이야기가 거꾸로 재현된 것이다. 주문도의 박두병 박순병 형제는 1917년 음력 정월 초에 강화도 홍의교회 출신 종순일 목사와 함께 부친의 엄청난 빚을 물려받은 이를 만난다.
당시 돈으로 2,000여 원, 오늘날 가치로 1억 원에 해당하는 빚을 진 이 아들은 ‘부친의 빚을 갚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8년간 16원밖에 모으지 못했다’며 ‘이대로는 평생 갚아도 어려우니 어쩌면 좋으냐’고 눈물을 흘렸다. 20년 전, 강화도 본도에서 자기에게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모아 ‘빚 문서’를 불태우고 복음을 전한 종 목사는 그 자리에서 박씨 형제에게 마태복음 18장 21절 이하 말씀을 들려준다.
당시 상황을 전한 ‘기독신보’ 1917년 5월 12일자 ‘박씨의 신앙과 애휼심’ 기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박(두병)씨가 마암으로 쾌히 허락하야 이천여원을 밧지 아니하겠다 하매 이 아오 순병씨도 밧을 것 잇는 육십여원을 탕감하며 내 형님은 수천원도 탕감하엿거던 하물며 몃 푼 아니되는 내 것을 받겟느냐 하고 밧지 아니하기를 성언하매 채무자의 깃버함은 물론이어니와 좌중의 여러 교우들의 깃버하며 찬성함은 과연 한 입으로 다 말하기 어려웠더라.”
이해하기 쉽게 현대어로 고쳐 쓰면 다음과 같다. “박두병 씨가 마음으로 쾌히 허락하여 ‘이 천여 원을 받지 아니하겠다’ 하매 이 아우 순병 씨도 받을 것 있는 육 십여 원을 탕감하며 ‘내 형님은 수천 원도 탕감하였거든 하물며 몇 푼 아니 되는 내 것을 받겠느냐’ 하고 받지 아니하기를 선언하매 채무자의 기뻐함은 물론이거니와 좌중의 여러 교우들의 기뻐하며 칭찬함은 과연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더라.”
주문도에서 복음의 핵심에 관한 ‘용서’ 이야기가 말씀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재현되자 주민 대부분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난다.
1910년대 자료를 보면 주문도 전체 가구 181호 가운데 136호가 교회에 등록했다. 주민 75%가 교인인 이 비율은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대로다. 섬의 중심에 교회가 있고 복음이 있다. 술집과 다방과 노래방은 없고 100년을 지켜온 한옥예배당이 있다(아래 사진).
감동적인 실화이다. 그렇다. 복음은 말로만은 효력이 없다. 우리 주님처럼 자기 비하와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타인을 이롭게 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없이 전하는 복음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를 낮추고 손해를 무릅쓰면서 전하는 메시지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기 마련이다.
마 18:21-35절 말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임금에게 1만 데나리온 빚을 진 자가 갚을 능력이 없으므로 임금이 그를 긍휼히 여겨 1만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빚을 탕감받은 자가 자기에게 100 데나리온 빚을 진 자가 갚을 능력이 없어 못 갚자 화를 내면서 옥에 집어넣은 것을 보고 임금이 대노하여 옥에 집어넣으라고 명령한 사건이다. ‘그렇게 큰 자비와 은혜를 입었다면 그와는 비교가 안 되는 자비와 은혜를 왜 남에게 베풀지 못하느냐?’
이것이 본 비유의 핵심 교훈이다. 그런데 과거 진촌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은 본 비유의 내용의 모범적 대안으로 소개된다. 종순일 목사는 채권자 박씨 형제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에 먼저 자기에게 빚진 채무자들을 다 불러 빚 문서를 불사르고는 빚을 탕감해버린다. 그리고 나서 마 18:21-35절의 말씀을 전해준다. 자신의 모든 빚을 탕감해준 종 목사의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한 박씨 형제는 감동을 받고 마음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구체적인 행동이 시작된다. 형 박두병 씨가 먼저 자신이 받을 빛 2,000여 원(1억여 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동생 박순병 씨도 받을 돈 60여 원(300여만 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마 18:21-35절의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엎은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사건이다. 그렇다.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걸 전하는 ‘메신저’의 인격과 성품과 구체적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실화이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이 새해만큼은 지금껏 살아온 어떤 해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삶의 구체적인 변화와 헌신과 섬김으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새소망과 새생명을 부여하는 살아있는 메신저가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새해를 맞은 모든 페친들에게도 주문도에서 일어난 종순일 목사의 긍휼 베풂을 통해 일어난 위대한 탕감의 역사가 풍성하게 체험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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