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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나상엽스무 살 어린 시절 만나 20여년 넘게 함께 하고 있는 한 아내의 남편, 10대에 접어드는 예쁘면서도 드센 두 아들의 아빠로, 지금 경기도 안성의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머리 굵어가고 얼굴 두꺼워지는 중학생 아이들과 성경과 문학, 아름다운 우리 주님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자라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베풀어주시는 은혜로 인해, 이제껏 기독교 문서사역과 중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기대하며 따르기 소원합니다.
수풀 속 대장장이
오래 전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기독교 출판계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한동안 기독교계는 야베스의 기도가 대세였습니다. 동명의 제목으로 여러 노래들이 고운 곡조를 빌어 만들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 멜로디와 가사에 감동했습니다. 아류작으로 “아굴의 기도”, “히스기야의 기도” 등등의 책도 나왔습니다. 기실, 다분히 현세적 축복을 구하는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는 내용이(대상 4:9,10), 한국 기독교인들의 기복적 신앙에 대한 일종의 성경적 근거와 지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처럼 큰 호응을 받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야베스의 기도가 실려있는 역대상 4장에는 사실 야베스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다윗 왕가 가족 친척들의 이름들이지요. 그중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게 퍽 근사해보입니다. 그러나 야베스 외의 수많은 사람의 이름들도 거기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야베스만큼 존귀하지는 않았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낸 이들입니다. 들풀 같은 이들입니다. 역대상 기자는, 하나님의 성령은 그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마치 깊고 깊은 숲속에서 마음씨 착한 일곱 난장이를 만난 것처럼 신선하고 반가운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은 옹기장이가 되어 수풀과 산울 가운데 거하는 자로서 거기서 왕과 함께 거하여 왕의 일을 하였더라." 대상 4:23
"이 모든 사람"은 21절부터 언급되고 있는 유다의 아들 셀라의 자손인 것 같습니다. 그들에 대한 묘사를 하나 하나 짚어보면서 저들을 그려봅니다.
1. 그들은 "옹기장이"가 되었다.
옹기장이로서 그들에게 고된 육체노동은 필수였습니다. 그 노동을 위해 그들이 입었을 옷은 깨끗한 정장이나 파티복은 절대로 아니었을 것입니다.
2. 그들은 "수풀과 산울 가운데" 거했다.
‘수풀’과 산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그대로 지명으로 옮겨져 ‘느다임’과 ‘게데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이 구절에서는 한글 개역성경 그대로 ‘수풀’과 ‘산울’도 분위기에 더욱 어울립니다. 수풀과 산울은 어떤 곳인가요?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하나님은 시골을 만드신다는 말도 있는데, 회색 빛 매연을 뿜어대는 공장지대가 아니었습니다. 나무가 푸른 숨을 내쉬고, 파릇한 풀들이 눈부신 햇살에 반짝이는 곳, 창조주 하나님께서 가까이에서 거니실 것만 같은 곳입니다. 때로는 외롭고 침묵하고 단조로운 곳이었겠지만, 그래서 더욱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는 곳이지요.
3. 그들은 "거기서 왕과 함께" 거했다.
그들은 왕궁이 아닌 바로 거기-수풀과 산울 가운데-서, 옹기장이로서 왕과 함께 거했습니다. 그 산골에 왕궁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땅이 왕의 소유지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들이 심정적으로 왕의 편에 서서 왕을 항상 공경하고 받들어 섬겼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왕의 임재가 어떤 형태로 그들에게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성경은 그저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그들은 거기서 왕과 함께 거했다고, 왕께서 거기에 계셨다고!
4. 그들은 "왕의 일"을 하였다.
왕궁이 아닌 수풀과 산울 가운데였지만, 옹기를 구워대는 일이었지만, 어쩌면 왕의 산림 정원을 관리하는 정원사의 고된 일도 했을지 모르지만, 왕궁의 화려한 옷과 보석은 아니었지만, 그 손에 고운 깃털로 만든 펜은 없었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분명 “왕의 일”이었습니다.
머리카락 곳곳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진흙이 엉겨있고, 손톱 아래에는 늘 거무튀튀하게 때가 끼어 있고, 저들이 씽긋 웃을 때면 오래도록 닦지 않은 누런 이가 드러났을 것입니다. 두꺼비같은 손등의 굵은 주름들이 그들 노동의 고됨을 드러내고,두툼한 약지에 박혀 있는 투박한 구리반지는 그들 결혼의 굳건함을 나타냈겠지요.
그러나 그들의 얼굴만큼은 얼마나 흥겨웠을까요? 서로 마주보며 지어대는 그들의 웃음살은 얼마나 환했을까요? 그들의 노동은 얼마나 빛났을까요?
하나님 이야기에는 야베스만 있지 않습니다. 존귀한 야베스도 있고, 공장(工匠, 대상 4:14)도, 세마포 짜는 집 사람들(대상 4:21)도, 옹기장이들도 있습니다. 화려한 장미도 있고 소박한 들풀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하나님 이야기가 좋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여러분 모습 그대로, 지금 여러분 하시는 일 그대로, 이 이야기 한가운데로 나아오지 않겠습니까? 존귀해도 되고, 존귀하지 않아도 됩니다. 장미어도 되고, 들풀이어도 됩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이 즐겁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늘도 들려주실 하나님 이야기를 저는 기쁘게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하나님 이야기가, 그리고 이 하나님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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