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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문양호평신도 때부터 제자훈련과 평신도 신학,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와 책이라면 모든지 모으는 편이었고 독서 취향도 잡식성이라 기독교 서적만이 아니라 소설, 사회, 정치, 미술, 영화, 대중문화(이전에 SBS드라마 [모래시계] 감상문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죠) 만화까지 책이라면 읽는 편이다.
    지금도 어떤 부분에 관심이 생기면 그에 관련된 책을 여러 권씩 읽는 중독성을 가진 총신대학원을 졸업한 목사.

『목사가 본 얼치기 영화읽기:멜 깁슨의 핵소고지』-신념과 현실의 충돌

문양호 | 2017.05.31 15:03

목사가 본 얼치기 영화읽기:멜 깁슨의 핵소고지-신념과 현실의 충돌

 

멜 깁슨의 핵소고지가 극장에서 내린지 이미 오래되었긴 하지만 이 영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멜 깁슨은 교회쪽에서는 나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그의 과거 영화이력에도 불구하고 주목하는 감독일 듯 싶다. 이번영화도 종교적 이미지가 강하게 깔려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그 기본소재가 집총거부이고 주인공이 안식교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선입견이 있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게다가 멜 깁슨의 몇 년전 스캔들은 영화를 순수하게 보기 힘들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주목할 만한 점들이 많다. 이차대전 당시 실화이고 총을 들지 않았음에도 75명이라는 부상자를 구출한 놀랄만한 사건은 주목할만하다. 하지만 그런 영웅적 사건을 넘어 이 영화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싶다. 특히나 그런 영웅적 행위의 기저가 되는 주인공의 내면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각자의 신앙분석과 연관시켜보아도 좋을 듯 싶다

 

1. 지식의 신앙을 삶의 신앙으로 전화시킴

도스의 집총거부는 기본적으로는 안식교라는 종교적 바탕에 기초하지만 도스의 폭력거부는 그에게 있었던 두 가지 사건으로 견고하게 됨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 첫 번째는 어릴 적 그의 형제와 싸움도중 형에게 벽돌을 휘두르다가 죽게할 뻔한 사건이다. 그 사건에서 도스는 집안 벽에 붙어있던 심판에 대한 그림과 십계명중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통해 아버지의 가정폭력 속에서 폭력에 쉽게 노출되고 은연중에 습득했던 그의 어린 시절의 삶이 그의 신앙과 동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신앙은 기본적으로 학습에 의해 배워 나가지만 그의 삶의 인식과 태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지식과 삶이 연결되는 충돌이 있을 때 그 지식이 삶에 체화되어진다.

도스는 이후 말씀에 기초해 살아가는 신앙인의 길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그런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한계성을 보여준다. 도스에게 있었던 두 번째 사건은 또다른 동기를 준다.

그의 아버지가 1차대전 이후의 전쟁후유증으로 인해 가정폭력이 상습화 되어져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총까지 들었을 때 도스는 그의 아버지 총을 빼앗아 아버지를 제압하던 중 그의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고 쏠 뻔 하는 순간까지 직면하게 된다. 자신은 신앙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성숙되었다 생각했지만 자기 아버지마저 죽일수 있다는 악함과 폭력성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이 장면을 두 번씩이나 보여주는 데 결국 그러한 사건은 그가 왜 집총거부를 넘어 결벽증처럼 총기만지는 것까지 강하게 거부하는 지를 설명하는 단초가 된다.

결국 이러한 두 사건은 그가 단순히 그가 속한 안식교의 문자적인 교리 차원을 넘어 그의 삶에서 강하게 작용하였는지를 말해준다고 할수 있다.

2. 신념과 삶의 충돌

그런데 이렇게 자기 삶의 체계를 갖추었다고 해서 그것을 붙들고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수 있다.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우리가 그 삶의 지표를 붙들고 살아가도록 그냥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도스가 살던 시대는 이차대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그의 마을도 징병 및 군수공장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형도 자진입대를 하므로써 전쟁에 뛰어든다. 도스도 당장 입대는 하지 않지만 군수공장에 임함으로써 전쟁을 지원하는 행동을 한다.

결국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전쟁이나 총을 거부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세상은 아니었다. 도스도 집총은 거부하면서 전쟁을 돕고자 의무병으로 자원한다. 집총을 피할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군대에 입대하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 한 부대에서 동료들과 같이 훈련받으며 집총을 거부하는 애시당초 말이 되지 않는 듯 싶다. 결국 그러한 그의 강한 태도는 상하관계와 명령이 지배하는 군대문화와 충동할 수밖에 없었다. 도스의 그러한 태도는 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부대원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형식적인 집총마저도 거부하는 그의 태도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가 전쟁자체는 거부하지 않으면서 집총을 거부하는 것은 그대신 누구간 대신 적을 살상하는 것은 용인하는 것이고 다른 이에게 그 살인을 떠 넘기는 행위와 같다. 영화는 그에 대해 답변하지 않는다. 도스가 부상한 동료를 구했다는 영웅적 행위로 그의 집총거부와 갈등을 봉합하려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중반의 계속되는 그 충돌은 영화속에서 도스에 대한 왕따와 군대내에서의 퇴출요구로 나타난다. 그러한 군대나 동료들의 압력이 영화 말미에 그에 대한 감사로 나타나지만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이라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이길수 없는 전쟁의 특수성을 배제할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도스가 누군가를 죽이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지만 쫓기는 와중에 일본군의 지하기지를 발견한 것은 이후 핵소고지의 전투가 누구로 인해 승리하게 되었는지 암시한다고 할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일본군을 섬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고 결국 그가 거부했던 폭력을 간접적으로 돕는 것과 같다.

하지만 도스는 그런 속에서도 상관이 가족과 친지가 죽어가는 속에서 폭력의 정당성을 이야기할 때 비록 그의 신념과 국가적 상황에서의 조율과 그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자신의 집총거부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가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희생도 감당하고자 한다. 그 신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을 지키고자 그에게 일어나는 집단 린치와 압력도 감수하고자 하는 그의 헌신과 희생은 존경할만 한다. 주의 제자도 그러한 마음과 태도가 없다면 결국 그것은 그가 믿고 있는 데로 살지 않는 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우리는 말로서 내 신념을 피력하고 SNS등을 통해서 교회를 비판하거나 헌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제자도는 말이 아니다. 달달 외운 신앙고백도 아니다. 내가 믿거나 말하고 있는 것을 실천할수 있어야 한다. 도스는 그점에서 그 신념의 대가를 치르고자 했던 이였다. 비록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의 혼란이 올때도 있지만 그속에서 믿는 자로서의 가치를 중히 여기며 그 믿음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 방황할 때가 있어도 믿음의 경주를 할줄 아는 것이 제자의 모습일게다.

 

3. 하나님의 뜻과 개인의 자각

앞서 보았듯 도스도 단순히 개인적으로 믿음의 신념을 지키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군대와 같은 패쇄적 집단과 시스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갈등을 겪는다. 특히 군사법정을 직면한 상황에서 자신의 연인마저 그가 개인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과 그 기준을 혹시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는 것도 그 갈등의 한축이 될수 있었다.

특히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도스가 상당수의 동료가 전멸하다시피하고 포탄으로 불바다가 된 전장에서 무력감으로 자신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하나님께 한탄하는 장면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조차 어떤 때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갈 수 있는지 분명하게 알수 없는 상황이 있음을 보여준다. 도스는 그를 정신의상으로 제대시키려는 군의관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느냐하는 질문에 자신도 들은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환상과 음성을 들은 이들도 분명하게 들은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그러한 이상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그런 전장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대신 아군의 살려달라는 외침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인도하는 또다른 것이었고 하나님의 음성이라 할수 있었다. 그 외침에 반응해 그는 제발 한 명만 더라는 간절한 외침의 기도를 반복하여 드리며 75명을 구출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과 뜻은 듣지 못했어도 그에게 들려오는 도움의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과 인도로 받아들이고 순종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한 가지 예를 보여준다. 우리는 자주 분명하고 명약관화한 하나님의 뜻을 찾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오기 보다는 내 옆에서 강도맞은 유대인이나 성문 앞의 앉은 뱅이, 내 옷을 만지는 혈루증 앓는 여인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싸인들과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을 외면하고 조직과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회건물을 통해서만 주의 일을 할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지 모른다.

 

4. 구원자

감독인 멜 깁스은 도스를 통해 고난받으면서도 그리스도를 좇는 영웅을 그려내고자 하는 듯하다. ‘제발 한명만 더라는 주인공의 외침과 손바닥이 쓸려서 피투성이가 됨에도 부상병을 내려보내고 심지어는 그 부상병중에 일본군까지 치료하는 도스를 통해 피아를 넘는 구원자를 그리고 있고 그를 비난했던 전우들의 존경어린 눈빛과 그의 상관이었던 글러버가 자신이 도스에게 사람을 잘못 보았었다고 사과하는 것은 도스를 영웅화하고 성인처럼 만들어간다. 특히 도스가 부상을 입고 아래로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장면은 줄로 내려감에도 마치 하늘로 부양하는 듯한 촬영각도와 시점 그리고 마치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듯한 도스의 몸은 그를 구원자로서 묘사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전투의 승리도 총한번 쏘지 않은 도스가 지하터널을 발견한 것이 그 요인인 것처럼 다룬 것도 그렇다. 이 영화는 감독의 목적과 의도가 너무 노골적윽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영화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지만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측면에서는 그 목적을 이루었다.

 

https://youtu.be/zl0HDDAGikY

 

보론. 1. 기독교라는 가치라는 이름에 숨겨진 폭력성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폭력성과 사실주의는 19세이상으로 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다. 멜 깁슨의 이전 작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그리 스도의 수난을 좇아가는 모습을 갖추었지만 그 폭력과 그 잔혹성은 상당히 강렬하다. 이번 핵소 고지는 그의 이전 작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더욱 강하고 잔혹하다. 영화는 비폭력과 집초마저 거부한 한 전쟁영웅을 그리지만 영화속에서 나타난 영상은 하드고어 좀비영화나 슬래셔영화와 비교해도 덜하다고 말할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내장이 쏟아지고 다리가 찢겨져 너덜너덜하거나 총알이 사람을 관통하는 장면, 머리가 잘려나가는 것등은 과연 미성년자가 보아도 될까 싶을 정도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고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이름으로 살점이 찢기고 얼굴과 몸이 망신창이가 되는 것을 과도하게 적나라할 정도로 보여주었었다. 어떤 점에서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화되어서인지 잔혹성인지 헷갈리는 이들도 있을 듯 싶을 정도다. 물론 그 영화가 가치있고 신앙인으로 보아야 할 의미가 있지만 그 폭력성이 과연 그 정도까지 묘사하여야만 했을 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핵소고지도 마찬가지다. 감독인 멜깁슨이 이 폭력성과 잔혹성을 고결이라는 이름의 이면에 폭력의 선정성을 의도한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그 도를 넘은 듯하다. 과연 이 정도 잔혹성과 사실주의가 하드고어 공포영화에서도 쉽게 발견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또 영화의 리얼리티라고 우리에게 보여지는 영상은 실제와 얼마나 흡사할까라는 의구심도 든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의 상륙작전의 격렬한 전쟁신의 참혹성도 영화를 보면서 실제 전투장면도 그러했을까 하는 못된 의구심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나 핵소고지의 리얼리티는 영화가 주는 충격과 별도로 얼마나 사실과 근접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영화는 종종 폭력성과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선정성을 사용해 영화에 대한 일차적 관심욕구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영화감독들은 조금은 자기자신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보론. 2. 기독교 영화란?

멜 깁슨은 매드 맥스나 리셜 웨폰이란 액션 영화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그의 자리를 견고히 했음에도 감독하는 영화는 기독교 영화로 분류될수 있는 대작들을 연출하곤 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앞서 지적했던 부분외에도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제목에서 이미 한정 되어 있긴 하지만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리스도가 받은 고난에만 집중하고 그 고난의 강도에만 초점을 맞춘 측면이 있고 핵소 고지는 영웅적 희생에도 불구하고 병역거부나 집총거부가 과연 전쟁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냥 남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이 안식교도였다는 것은 그 논의에서 일단 제외하자-

종종 기독교 영화라 했을 때 알렉스 켄드릭의 워룸이나 파이어 프루프’, ‘믿음의 승부또는 기독교 방송에서의 성서 영화같이 그 목적성과 방향이 분명한 영화는 아쉽고 미진한 부분이 있어도 여기서 논의 할 주제는 아닐 듯 싶다. 그 목적성과 관람대상을 위해 그 영화들은 분명하게 자기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수 있다.

그에 반해 조금은 불량하거나 그냥보기에는 겉으로만 기독교 소재를 다루었거나 나름의 기독교를 소재로 한 영화 몇편을 생각해보고 싶다.

그중 리들리 스코트의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은 기존의 십계보다는 불량하고 성경에 충실하지는 않지만 리들리 스코트의 출애굽과 모세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보여주는 블록버스터였다. 많은 논쟁과 문제는 있을지 언정 그리스 신화나 판타지에만 경도되어 있는 속에서 나름의 신앙적 고민을 담아내고 생각게 하고 있고 기독교적 영화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목회자나 보수적 신앙인들이 보면 불경스러울지는 모르지만 애굽에 내려진 재앙과 모세의 소명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생각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데이비드 핀처가 감독했던 에일리언 3나 동 감독의 세븐도 기독교적 가치와 고민을 담아낸다는 측면에서 주류적인 기독교 영화라고 볼수 는 없어도 기독교가 소재와 주제로 다루어진 주변부 영화라 할수 있지 않을까? 에일리언에서 나오는 원시 기독공동체와 그 갈등, 그리고 마지막 리플리의 죽음은 십자가 죽음을 분명히 상징한다. 세븐도 죄에 대한 고민을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기회닿으면 이런 영화들을 한꺼번에 영화적 관점이 아니라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부하면 좋을 듯 싶다. 그것이 유사기독교나 사이비 기독교 또는 그저 기독교를 소재로만 다룬 영화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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