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안영혁서울대 철학과와 총신대학교(M.Div., Th.M., Ph.D.)에서 공부했다.
    현재 신림동의 작은교회, 예본교회를 목회하면서, 총신대학원 교수, 지역학교운영협의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작은교회가 더 교회답다」가 있으며, 「청년 라이놀드 니이버」 등을 번역하였다.

우리시대 그리스도인의 책 읽기

안영혁 | 2013.07.09 22:09

<새로운 발행인으로서 글 하나 싣고 싶었습니다. 다른 일만 없다면 책에 빠지는 날도 있을 것 같은데,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책 읽기가 세상의 변화와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썼습니다. 겸손하게 일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책 읽기 


근래에 『구글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나왔다. 그럴 듯한 시대적 말장난이라 여기며 빙긋이 미소를 지을 만한 책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무슨 가벼운 농담을 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 시대 최첨단 물리학자들의 강의집이었다. 카이스트 교수들의. 필자는 직업 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보았는데, 시사점이 매우 큰 책이었다. 미리 그 의미부터 말하고 본다면, 구글이라는 검색 엔진은 포스트모던 시대 귀납의 종결자라는 내용이었다. 


  이 책이 기념비적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가히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인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귀납법 주창으로 인하여 중세를 떨어두고 근세로 건너왔다. 그 이래로 모든 학문은 자기 학문의 귀납적 방법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면 학문으로 성립할 수 없었다. 칸트니 후설이니 하이데거니 하는 철학자들도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흐름을 전혀 떠날 수는 없었다. 그 후 수백년이 흐르고, 철학의 조류는 피할 길 없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모든 특별한 이론보다 더 특별한 것은 대중에 대한 것이어야 했다. 대표적으로 오늘은 대중문화론이 모든 문화론의 상위에 있다. 또 근래 들어 부쩍 상담과 관련된 활동이 늘어났다. 상담학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그야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이 학문의 대상이요, 새로운 이론의 발생지가 된다는 것이다. 


  구글이 야후를 앞선 것은 바로 이런 귀납의 의미를 읽어낸 데 있다. 구글의 경영자들이 지금 필자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시대를 돌아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틀림없이 이런 관점을 작동시켰던 것이다. 『구글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그런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야후는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티에다 흘러간 시대의 모던한 검색 방법을 적용시킨 셈이었다. 우리 시대는 이미 과거의 논리적 체계를 따라서 사고하지 않고, 그래서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논리적 체계를 따라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대세를 따라 검색하고 생각하고 방법도 만들어 낸다. 야후는 수많은 사람들이 검색하게 될 인터넷의 세계를 논리적 체계의 망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것이 야휴의 패착이었다. 이것은 엄청난 힘을 쏟게 할 뿐 아니라, 결국은 불가능하게 되고야 만다. 어떤 초능력자가 있어서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쏠려 들어오는 인터넷의 세계를 논리망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더욱이나 수많은 정보가 넘쳐흐르는 세상에서 말이다. 


  구글의 검색방식은 달랐다. 더 많은 사람이 검색하면 상위로 올라가도록 했다. 그 검색 단계가 논리적으로 보이는 경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논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그 검색 관리의 주된 방법은 검색횟수였다. 많은 검색을 하면 그냥 그 검색어가 상위에 올라가면 된다. 그리고 구글로서는 많이 검색된 것이 위로 올라 가도록만 솔루션을 해두면 검색어는 절로 정리가 된다. 정리는 절로 되고, 사람들의 더 많은 관심사부터 차곡 차곡 나오니 사람들은 이 검색 엔진이 어떻게 내 마음을 이다지 잘 안다는 것인가 하면서 이 검색 엔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늘 구글이 귀납의 종결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로 경악할 일이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꿈이 완벽 실현되는 자리였다. 필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귀납이라는 것이 현대 사회의 아주 중요한 생활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귀납은 함부로 결론 내리지 않고 모든 자료들에 다시 한 번 눈길을 주는 정신이다. 존재가 있는데, 거기다 함부로 법칙을 가져다 대지 않는 정신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에 그 존재만큼의 관심을 주는 것이 귀납의 진정한 의미이다. 저 옛날 기독교교육의 아버지 코메니우스는 이것이 자연의 방식이라고 그의 유명한 책 『대교수학』제16장에서 이야기하였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책은 그렇게 귀납적으로 읽어야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내 나름의 법칙을 산출해 내는 것이다. 함부로 법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자료들 앞에서 어떤 법칙이 나의 지성을 노크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기독교인들이 신앙은 좋은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하여 사회의 걱정거리가 되거나 때로는 지탄을 받는다. 필자는 모든 것을 접어두고 기독교인들이 귀납의 진정한 의미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귀납은 끈기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제 말을 하려면 그런 끈기를 통과한 말만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와 세상의 모든 존재에 나아가는 방법으로서 맞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거기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탐구를 끝내려 하지 말고, 남들이 뭐라고 하는지 물어야 한다. 아마도 구글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출발점으로 좋을 것이다. 그렇게 가면서 요소요소들에 놓인 공부해야 할 일들, 탐구해야 할 일들에 우리는 책으로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우리가 늘 하고 있는 일을 인터넷 검색의 의미를 중심으로 다시 이야기한 것뿐이다. 구글신은 진짜 신은 아니고 오늘 전 세계 인간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놓은 지식의 합체이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까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인도하셨다고 믿으면서, 이 세계를 모르거나 모른 척 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이 귀납적 규칙을 따라 독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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