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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안영혁서울대 철학과와 총신대학교(M.Div., Th.M., Ph.D.)에서 공부했다.
    현재 신림동의 작은교회, 예본교회를 목회하면서, 총신대학원 교수, 지역학교운영협의회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작은교회가 더 교회답다」가 있으며, 「청년 라이놀드 니이버」 등을 번역하였다.

삶이 기도여야 하는 이유

안영혁 | 2003.09.13 08:53
<삶이 기도여야 하는 이유>

요즈음 어느 한 교회에서 새벽기도의 열풍이 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릴 때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그저 놀라운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목사로 살면서는 그 현상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강남지역에 사는 사람들로 웬만큼 사는 사람들입니다.
새벽이 되면 그들이 수천명이나 교회로 모여든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본당이 가득차서 부속 건물에까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들로서는 또 이전에 보지 못한 현상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대견한 모양입니다.
우리교회도 그랬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일단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만한 새벽기도의 준비를 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십일 특별 새벽기도라고 하는데, 사십일에 걸쳐서 좋은 설교를 할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 성경 말씀은 들추면 은혜가 넘치는 책인데,
반드시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성령 체험이 있는 것 같다고들 말하는데,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무척 보고 싶습니다.
우리교회 새벽기도 하루를 희생하고서라도 한 번 가서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여간 살 만한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모여서들 기도한다고 하니,
그들이 무슨 기도를 할까 싶습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그만큼 말씀에 갈급해 있었다고 합니다.
전부터 그들의 교회는 모든 것이 부족한 것 없이 있는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오늘도 몸과 마음이 지쳐 새벽기도가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저 살 만한 사람들은 다시 시간을 내서 새벽기도회를 하고 있는데,
지친 사람들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또 믿음에서조차 뒤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이 생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저 새벽기도에 열심인 사람들보다 믿음이 작은 것은 아닌데,
한 쪽은 기도할 기회를 갖고 한 쪽은 기도할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다니,
이 어찌 기가 막힌 일이 아닙니까?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들어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람에게 변화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변화의 기회를 적게 갖는 것 아니겠습니까?
빈부차는 마침내 영적 차이까지 만드는 것인가?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기도할 시간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닌 것일까요?
그것이 오늘 우리 시대에 주어지는 물음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가난한 자들은 창녀로 야비한 사기꾼으로 전락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자리는 생활의 현장입니다.
삶이 곧 기도라는 말이 무릎꿇는 기도를 회피하기 위해서 이야기되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기회가 오직 그렇게 생활 뿐이라면,
그리고 삶의 여유를 가진 자와 비교해서 절대적으로 기도할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런 사람들은 삶을 기도로 삼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너무 쉽게 그 어려운 사람들 속에 나 자신을 분류해 넣지는 맙시다.
자꾸 시간을 내어서 기도합시다.
생활 가운데 짜투리 시간을 내어서 기도합시다.
깨어서 기도하자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군요.
그렇게 하는데도 기도가 부족함을 느낀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기도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삶이 기도라는 말은 어쩌면 더 깨어있는 우리를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자금 때문에 고민할 때,
내가 윗사람에게 까닭없이 질책을 받았을 때,
혹은 아랫사람의 몰이해로 도무지 내 일을 진척시켜나가기 어려울 때,
며칠 동안 나의 사업의 터가 너무 어려울 때,
숨이 차게 뛰어다녀도 여전히 내 주변에는 내 피를 빠는 사람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혹은 가정이 너무나 부담스럽게 여겨질 때,
그 많은 의미를 두었던 가정이 때로는 설렁한 벌판처럼 느껴질 때,
혹은 수많은 악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은 내 마음을 발견할 때,
정말로 내 마음이 갈곳을 잃은 것 같을 때,
삶이 곧 기도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그런 것을 새길 수 있을 때 우리는 삶이 기도라는 말에 조금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빈부가 기도의 기회를 좌우한다고 할 때,
기도는 오직 무릎꿇은 기도만 아니라 삶도 기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보여준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아주 꼭 같지는 않아도,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의 비교는 이와 견줄 만하지 않을까요?
물론 저는 부자들의 기도가 바리새인들의 기도와 같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도 그 불쌍한 세리처럼 그만큼 불쌍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삶은 기도여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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