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은자의 황혼 - 근대 유럽 교육 사조의 나침반이 된 고전

송광택 | 2017.10.06 20:27



은자의 황혼

페스탈로치/ 김정환 옮김/ 서문당

 

근대 유럽 교육 사조의 나침반이 된 고전

 

<은자의 황혼>은 페스탈로치가 1780년에 출판한 책이다. 페스탈로치에 의하면 자연본성의 요구가 건강하게 충족되는 생활 가운데서 비로소 인간은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정서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인간의 도덕심이나 종교심도 침식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정치는 군주가 올바른 신앙을 상실했기 때문에 관료도 부패했으며 국민의 가정은 빈곤 속에 잠겨 있다. 도저히 자연본성의 요구가 충족될 수 없다. 가난한 사람은 그러한 생활 속에서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하고 회의를 품게 된다.

그러나 페스탈로치에 의하면 그러한 회의를 국민이 품는 것은 그들에게 건전한 종교감각·도덕감각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며, 거기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군주가 한시라도 빨리 올바른 종교심을 되찾도록 호소했던 것이다.

페스탈로치에 따르면 우리가 유년기의 습관 형성에 대하여 생각할 때, 두 가지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로 최대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건강이며, 둘째는 그 성격이다. 우리는 아이가 남에게 호감을 사고 생존 경쟁에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인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다행히 건강과 성격은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 한쪽에 이로운 것은 동시에 다른 쪽에도 이로운 것이 된다. 페스탈로치가 이 책에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성격이지만, 건강에 대해서도 이에 못지 않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페스탈로치에 의하면. 자연의 길은 교육의 원천이며, 인간의 본성을 흡족히 채워 주는 밑바탕이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을 겉으로 눈부시게 성장시키려고 서둘지는 않는다. 인간이 이러한 자연의 순서의 과정을 너무 서둘러 지나가면, 인간은 자기 안에 깃든 힘을 스스로 파괴하게 되고, 마음속 깊은 곳에 깃든 본성의 평안과 조화를 잃게 된다.(11)

자연은 너그럽게 기다리며, 결코 서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성장을 기다리지 않고 억지로 말의 순서를 밀어 넣는 인위적인 학교 교육은 어린이를 겉으로만 반짝이게 할 따름이다. 이것은 어린이의 속에 깃들어야 할 자연력의 결핍을 안 보이게 덮어 버림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경박한 시대의 사람들만을 만족시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12)

페스탈로치는 말하기를 자라나는 어린이의 힘을 딱딱하고 일면적인 학교 교육 방식대로 맡기는 것, 또 말만 오고가는 유행적인 수천 가지 교육방법의 기술에 맡기는 것이 인간 교육의 기반이 될 때, 모든 것이 자연의 길에서 일탈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자연은 인류의 모든 힘을 연습을 통해서 계발시킨다. 인간 교육에 있어서 자연의 질서는 지식·재능·소질을 응용과 연습을 통해서 길러 준다. 그러므로 단순하고 순박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인식한 것을 참되고 순박하게 응용하며, 또 자기의 힘과 소질을 조용하고 착실하게 사용하는 등, 자연을 통해서 인간의 지혜를 도야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고, 또 자기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순종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은 진리가 주는 성스러운 복을 즐길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페스탈로치는 부모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인간을 이렇게 단순하고 순박하고 순순한 감각을 갖추도록 교육시켜라. 자녀의 어버이 된 자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류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분이시다. “온유하고 착하고 다감하게 길러진 그대의 본성은 하나님 없이는 이 세상의 폭력과 무덤과 사망의 고통을 이겨낼 힘이 되지는 못한다.” “하나님은 그대 의 가정의 아버지이시며 성스러운 복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은 그대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그대는 편안과 힘과 지혜를 얻게 되고세상의 어떠한 폭력과 무덤에도 뒤흔들리지 않는다.”

페스탈로치에 의하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본성의 가장 높은 관계에서의 인간 감정의 터전이며, 하나님의 어버이 마음에 신뢰하는 자녀 마음의 발로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인생주는 힘의 근원이며, 우리 안에 깃든 능력을 응용하는 질서는 우리를 성장시키며 도야해서 지혜로 이끄는 근원이며, 지혜는 인류의 만복의 근원이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모든 지혜와 모든 성스러운 복의 근원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은 인류의 본성 안에 깃들어 있다.

이 신앙심은 이 세상에서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깊숙이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인간에게 힘을 주며, 낮은 곳에 있는 인간에게도 더 없는 용기를 준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은 슬기로운 교육이 안겨다 주는 결과나 산물이 아니다. 신앙심은 순수하고 순박한 마음 그 자체이다. ,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다라는 자연의 소리에 순진하게 귀를 기울이는 데서 나온다.

자녀 마음과 순종심은 완성된 교육에서 나오는 결과도 아니고 그 뒤에 따라 나오는 산물도 아니다. 아니 신앙심 자체가 인간 교육의 아주 이른 시기의, 그리고 첫째가는 기반이어야 한다고 페스탈로치는 강조한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자녀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인다. 온유하고 다감하고 순수한 사랑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느나님을 알게 될 것이며, 또 모든 사람이 똑같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와 속세의 자녀로 갈라진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총을 믿는 것은 영생을 믿는 것이다. 페스탈로치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이시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것이 신앙의 순수한 원리라고 그는 역설한다.

페스탈로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군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군주여, 그대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류의 형제됨을 부인할진대. 그대의 이런 무신앙은 백성들이 자기네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신앙심을 앙칼지게 파괴하는 힘의 원천이 되리라. 그리하여 백성들은 포악한 사람들이 되고, 파괴하는 데에만 힘을 쓰는 사람들이 된다. 군주여, 그대는 하나님의 위엄을 위에 계시는 아버지의 위엄으로 받들어라. 이때 비로소 백성들은 그대들에게 순종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자기네의 의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대들은 이를 다짐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의 순종 안에 자신의 권리와 의무의 근거를 찾지 않는 군주는 그의 권력에만 아첨하는 밑빠진 모래 위에 왕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 이것이 군주와 백성을 맺어 주는 유대이며, 인류를 서로 복스러운 관계로 통일시켜 주는 유대이다.(36-37)

그러므로 백성이 하나님에 대하여 신앙심을 갖는 것이 모든 순수한 국민 도덕의 원천이 되며, 모든 민복(民福)과 민력(民力)의 원천이 된다.

한편 죄는 무신앙을 낳게 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무신앙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죄란 우리의 본성이 의와 불의에 대하여 마음속으로부터 판단하는 기준에 거슬리는 행동이다. 죄는 우리의 으뜸된 기본 개념을 혼란시키며 순수한 자연 감정을 혼란시킨다. 죄는 인간 자신의 본성에 대한 신앙의 상실이다. 그리고 또한 죄는 인간의 마음속의 감각에 대한 신앙의 상실이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상실이며 하나님에 대한 자녀 마음의 상실이라고 페스탈로치는 말한다.

페스탈로치는 이론과 실천을 통하여 위에서의 교육 및 겉치레의 교육에서 아래에서의 교육 초가의 그늘에 누워 있으나 본성으로 본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것이 그의 교육 철학의 핵심이다. 그에 의하면 모든 어린이에게 하나님이 주신 성스러운 인간성의 힘이 깃들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성의 선천적인 힘과 소질을 자연스러운 교육을 통하여 조화롭게 개발하자는 것이 그의 교육방법의 핵심이다.

<은자의 황혼>은 교육자로서의 페스탈로치의 지위를 규정할 만큼 큰 의의를 갖고 있는 고전이다. 루소의 영향을 받아, 페스탈로치는 고아교육. 아동교육에 생애를 바쳤다. 자연에 입각한 인간형성을 교육원리로 하고, 지능. 신체. 도덕의 조화적 발달을 교육의 목표로, 개인의 독립에 의한 개혁을 기도하여 근대 유럽 교육 사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54개(1/8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54 [송광택 칼럼] 코칭의 기술_ 좋은 코칭을 위한 지혜로운 조언 송광택 2022.11.25 11:50
153 [송광택 칼럼] 정보 과잉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송광택 2022.10.23 14:32
152 [송광택 칼럼] 식물학 박사가 풀어낸 먹거리의 이모저모 송광택 2022.10.23 14:29
151 [송광택 칼럼] 부모와 함께하는 하나님 알아가기 송광택 2022.10.23 14:27
150 [송광택 칼럼] 성경, 어떻게 읽어야하나요? 송광택 2021.12.27 12:03
149 [송광택 칼럼] 주님을 닮고 싶어요(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 송광택 2021.12.27 12:00
148 [송광택 칼럼] 성경, 어떻게 읽어야하나요? 송광택 2021.11.12 12:42
147 [송광택 칼럼]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싶어요 송광택 2021.11.12 12:40
146 [송광택 칼럼] 그리스도인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송광택 2021.09.18 23:04
145 [송광택 칼럼] 자녀의 기질이 서로 다릅니다 송광택 2021.09.18 22:26
144 [송광택 칼럼] 예수님의 제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송광택 2021.07.08 08:30
143 [송광택 칼럼] 고전에서 교회갱신의 길을 찾다 송광택 2021.07.08 08:29
142 [송광택 칼럼] 가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요? 송광택 2021.07.08 08:27
141 [송광택 칼럼] 예술이란 무엇인가 송광택 2021.03.23 18:34
140 [송광택 칼럼] 신앙생활을 어떻게 시작하나요 송광택 2021.03.20 10:23
139 [송광택 칼럼] 기도를 어떻게 배울 수 있나요? 송광택 2021.02.28 23:59
138 [송광택 칼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의 의가 되시나요? 송광택 2021.02.24 22:33
137 [송광택 칼럼] 하나님을 알고 싶어요 송광택 2021.02.17 22:15
136 [송광택 칼럼] 어떻게 경건하게 살 수 있나요? 송광택 2021.02.17 22:13
135 [송광택 칼럼] 친밀한 인간관계는 가능한가요? 송광택 2021.02.11 12:0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