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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예배의 의미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
데이빗 루이스 지음/ 홍순원 옮김
죠이선교회
초판 발행 2007. 2. 23.
저자 데이빗 루이스와 그의 아내 아니타는 수년 동안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인도하는 사역을 해왔다. <열정의 예배자>의 저자요 예배인도자인 팀 휴즈는 말하기를, 저자의 말은 ‘내가 들어본 그 어떤 말보다도 도전적이고 고무적’이라고 했다. 또한 “이 책에 가득한 성경적이면서도 개인적인 통찰은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찾게 해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하나님 앞에 선 예배자>의 저자 매트 레드맨에 따르면, 데이빗 루이스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바라보라고 격려한다.”
저자는 묻는다? 예배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 하나님이 거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진정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저자는 먼저 ‘하나님을 중심에 둔 예배’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모임이다. 하나님은 의례보다 관계에 중심을 둔 예배를 간절히 바라신다.
저자에 따르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전적으로 그분의 주권에 달려 있다. 예배를 진정으로 표현하는 길은 오직 그분의 주권적인 능력과 한없는 은혜를 신뢰하면서 우리의 모든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다”(17쪽). “진정한 예배의 핵심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이다.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계획을 영원하신 왕 앞에 내려 놓은, 깨어지고 겸손한 자가 되는 것이다”(18쪽).
저자는 묻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그분이 다스리시는 왕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 기꺼이 싸우고 있는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알려고 할 때, 하나님과 그 분의 방법에 대한 지식인 신학은 필수적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영원한 진리와, 침노당하는 그분의 왕국이 이 땅에 끼치는 영향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야 한다. 예배로 나아가는 여정은 일생동안 죽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우리 주변에서 날마다 일하시는 그분을 늘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다”(18-19쪽).
저자는 예배가 상품이 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배는 ‘다양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험하게도 아름다움을 찾고 즐거움을 줘야 놀라운 예배를 경험할 수 있다는 식의 문화가 교회에 퍼져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고 예배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측정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라고 여긴다”(19쪽). 예배는 우리의 근본적인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 될 수 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경배음악이 대중화되면서 예배 인도자와 예배 연주자, 작사작곡자와 예배팀의 영향력이 눈에 띌 정도로 증대되었다. “거의 록 스타에 맞먹는 예배 연주자의 인기,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출판 인세로 예배는 기독교 음반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제 경배 음악은 그 자체로 한 장르가 되었다. 이러한 경배 음악의 성장은 한편으로는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돈과 명성,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모든 권력이 깔린 지뢰밭에 아슬아슬하게 길을 내는 일이기도 하다”(20-21쪽).
하나님은 진정한 예배의 중심이시다. 예배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예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그분과 함께 끝난다”(23-24쪽). “더 이상 예배는 공연이나 발표회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신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드리는 예배는 진지하다. 신비스러운 임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진리 안으로 발걸음을 떠어놓는다. 더 이상 예배는 단순히 만지심을 느끼고 소름이 돋는 경험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계시며, 그분의 나라가 임했다”(25쪽).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자신이 세우신 교회에 거하기로 하신 하나님은 예배 안에 자신을 드러내신다. 이것이 성경이 이해하는 예배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찬송 중에 거하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낮추신다(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면 그분도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다(약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하라”).
저자에 따르면, 예배는 하나님이라는 관념을 사색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27쪽).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에 반응하는 것이다. 토저(A.W. Tozer)는 일찍이 예배란 ‘교회가 잃어버린 보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Worship: The Missing Jewel, 1992. <이것이 예배이다> 규장 펴냄). “때때로 교회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심적이고, 가장 중요하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하나님이 갈망하시는 예배를 발견하자”(30쪽).
예배를 여시는 분도, 예배의 유일한 중심도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왕이시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아래 살아간다는 것은 예배자가 되는 것이며, 그 분에게 돌아가 입 맞추는 것이다(37쪽). 예배는 우리를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속죄하셨음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예배의 중심이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로 옮겨지면서 끝내 아름다운 예배를 망치게 된다...... 십자가가 없다면 진정한 예배도 없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바로 이곳,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다”(44쪽). 십자가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가장 진실하게 상징하고, 하나님을 가장 정확하고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참된 상징이 모두 그러하듯, 십자가는 말이 전해줄 수 있는 것보다 심오한 부분까지 전해 준다”(N.T. Wright).
저자에 따르면, 성찬을 준수하는 것은 예배에 초점을 맞추는 열쇠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데 열중하지 않는다면, 예배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게을리 한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이 하는 위험에 빠지고 말 것이다...... 떡을 쪼개고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잔을 마시는 일에는 의례의 차원을 넘어 우리를 채찍질하는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음식들을 손에 들고, 먹고, 마시는 일은 강력한 힘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예부터 내려오는 이 성례에 담긴 신비와 능력, 단일함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예배를 표현하는 핵심이며, 우리가 모이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47-48쪽).
예배의 모든 경험은 성령이 주관하신다. “성령의 능력과 임재 없이 드리는 예배는 신약에서 말하는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성령이 인도하시는 예배다”(60쪽). “어떤 식으로 의례를 행하든, 어떤 노래를 부르든, 어떤 설교를 하고 어떤 사역을 하든, 하나님이 갈망하시는 예배의 열쇠는 성령의 역사다”(63쪽). “교회 예배는 성령의 역사하심이며, 그 예배를 통해 에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에배는 육을 신뢰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초자연적 활동이다...... 예배는 공허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 만나는 사건이다”(64-65쪽).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관계를 맺게 하고 그 아들을 보이시길 즐거워하신다. “그분은 예배 과정에 본질적으로 함께하시며,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찬양에 영감을 주시며, 공동체에 힘을 주신다”(65쪽).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는 우리를 아버지께로 이끈다. “신뢰가 깨지고 더 이상 ‘아바’ 아버지라고 외치지 못할 때, 예배는 메마른다. 성령이 일하셔야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다시 이어질 수 있다”(69쪽).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성령이 역사하시길 간구해야 한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성도의 예배를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다”(121쪽).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님의 영이 자유로워질 때, 그 영이 공동체 모임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본서에서 필자가 확인할 수 있었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예배에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더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양한 감각으로 넘쳐나는 자연계를 창조하셨듯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도 이런 감각과 떨어질 수 없다”(105쪽).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는 다양한 창조성을 발휘하여 열정적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성과 예술성으로 의례를 채우는 것은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찬양의 제사에 어울리는 것이다”(106쪽). 저자는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천상의 예배’를 살펴본 후, “하나님은 여러 가지 감각으로 표현하는 찬양을 즐거워하신다”고 요약한다(114쪽).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예술을 무시하는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한다: “교회는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격려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그들을 이해하거나 지원하는 교회는 거의 없다. 나는 교회 안에 예술가들을 찾아내고 후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창조성과 예술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보좌 앞에서 열정적이고 생명력 있게 창조적으로 표현하길 바라신다”(116쪽). 저자는 피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서구의 예배 방법만을 가장 좋은 방법으로 끊임없이 가르친 것을 반성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이유로 슬퍼하셨을 것이라고 말한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의 광적인 신앙으로 그분에게서 수많은 예배의 창조성과 관용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비극인지!”(127쪽).
우리는 자신의 언어와 리듬, 문화를 사용하면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문화적인 표현을 우상숭배로 성급하게 단정해서도 안된다. 그 자신이 ‘제설혼합주의자(syncretist)’가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하면서, 그는 “특정 문화 그 자체는 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문화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왕국의 문화를 발견하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문화가 다르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대 간, 교파 간 장애물이다.
하나님은 최초의 예술가이시다. 하나님은 그분이 창조물 안에 심어두신 창조성과 열정이 메아리치는 예배를 즐거워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에서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표현을 계발해야 한다(132쪽).
저자는 또한 예배가 이웃 사랑에 뿌리박혀야 한다고 말한다. 즉 교회가 공의를 실현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삶을 살면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사랑으로 입증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한 이해는 예배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자의 예배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본서는 예배의 본질에 대해 성경적 접근을 하고 있다. 또한 예배인도 사역을 통해 저자가 얻은 통찰이 본서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다. 예배의 의미를 알고자 하거나 참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본서를 필독서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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