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채천석서강대 영어영문학과(B. 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였다. 국제선교대학원(I. G. S. T., Th. M.)에서 수학한 이후, 총신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신학 석사(Th. M.)와 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Ph. D. Cand.). 총신대학원 교회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한마음교회와 언약교회에서 협동목사로 봉사했으며, 평양신학교와 개혁신학연구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많은 기독교 서적을 번역하였으며,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사상』, 『17인의 회심사건』(상중하), 『원자료 중심의 교회사』시리즈(심창섭 교수와 공저), 『성경의 바다』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현재 크리스찬북뉴스 발행인 겸 대표로서 출판독서문화 활동과 선교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강한 용사 이그나티우스 로욜라(1491-1556)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에스파냐 북서부 기푸스코아의 바스크 지방에 위치한 가정에서 여덟 아들 중에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연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대체로 그 연도를 1491년으로 보고 있다. 그는 청년시절까지 이니고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1537년부터는 이그나티우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14세 때에 아버지를 여읜 뒤, 왕 페르디난트의 궁정에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로욜라는 1521년에 나바라에 대한 에스파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을 때, 팜플로나 요새에서 대포 파편에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군인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후 건강을 회복하는 동안에 루돌프의 『그리스도의 생애』(Life of Christ)라는 책을 우연히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 결과 내적인 결심을 하고 자신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는 곧 만레사 수도원에 들어가서 금욕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의 주요부분을 저술하였다. 그 책에서 그는 금욕훈련의 전체적인 개요를 서술하였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주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직접 이 고난의 체험을 하기 위해서 1523년에 걸어서 예루살렘까지 순례했다. 그는 순례하면서 로마와 베네치아를 통과했고 1년이 지나서야 다시 바로셀로나로 돌아왔다. 이 시기에 로욜라는 하나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 자신이 일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확신을 했던 것 같다.
당시에 그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일을 진척시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33세의 나이에 바로셀로나에서 학생들과 더불어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 이후 알카라와 살라망카 대학교에서 수학했는데, 교수보다 그의 영향이 학생들에게 더 컸다. 그는 주변에 몰려드는 제자들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재판소까지 가는 의심을 받았다. 1528년에는 파리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생트 바브르 대학에서 성직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그곳에서 캘빈을 만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방학 기간 중에는 구걸을 하면서 금욕했다. 마침내 파리에서 자신의 이상을 공감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하였다. 그 동료들 가운데는 드보바댜, 파베르, 라이네츠, 르드리구에츠, 살메론, 자빙르 등이 있는데 그들은 1534년에 성마리 성당에서 가난과 정절의 삶을 서약했다. 그와 동료들은 여러 병원과 많은 이탈리아의 소도시에서 봉사했다. 마침내 그들은 교황 파울루스 3세에게 호소하여 복종의 생활을 하는 종교단체(훗날의 예수회)를 조직하였다.
로욜라는 기록된 문자보다는 내적인 정신에 보다 큰 비중을 두었다. 조직을 영속화시키기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기록된 규칙을 갖는 것을 몹시 꺼려했다. 1537년에는 조직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붙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예수회’라 불렀다. 그 이후 1540년 9월 27일에 칙서를 통해 공식적인 종교단체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1548년에 만장일치로 수도회의 ‘총장’에 선출되었고 그 이후 봉사와 선교라는 모토아래 많은 지역에 선교사를 보내어 사람들을 교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쓴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은 구도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그 책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올바른 기독교 인생관을 갖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적극 협력하게 하는 것이다. 그 책은 머리말, 본론, 여러 가지 부칙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머리말은 영신수련의 지도자와 수행자들로 하여금 영혼의 더 큰 수확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고, 본론은 대략 네 주간으로 나눠서 행하기로 되어 있는 묵상자료를 매일의 순서에 따라 논술하고 있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명석한 판단력과 불굴의 의지를 소유했다고 평할 수 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두려움을 모르는 정직한 인물이었다. 그는 1556년에 죽었고 1622년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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