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불가해성

김성욱 | 2023.05.25 23:19
< 하나님의 불가해성 >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신명기 29:29)".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로마서 11:33)"



우리는 인생을 살며 여러 선택과 그로 말미암은 결과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때때로 내가 원치 않는 여러 고난들을 맞닥뜨릴 때, 드러난 결과에만 집중하는 경우를 쉽게 보곤 한다.



그런 일을 당면할 때, 결과에 집중하기 보다 배후에서 주권적인 섭리의 손길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특별히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들을 묵상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전능자 앞에 기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 중, 불가해성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는데,

어떤 부분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부분들이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고, 믿음으로 받는 부분들이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신적 속성들에 관한 부분들이 그렇다.

우리의 경건한 신앙 선배님들은 이 부분에 관하여 성경 앞에 매우 진지하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불가해한 영역까지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악한 사상과 가르침들이 교회 내에 가만히 들어오게 되어, 19세기 이후로 증폭되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과학적 입장을 내세우든, 아니면 신비의 영역을 타락한 이성을 사용해 억지로 끼워 맞춰 교리를 왜곡하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지적했듯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

즉,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 초월적인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종이컵으로 바다를 담을 수 있는가?

풍선 한 개로 지구의 공기를 담을 수 있는가?

인간의 이성이란 그 작은 종이컵에 겨우 한 컵 물을 담는 수준일 뿐이다.



그 수준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과 삶에 필요한 부분들을 성경을 통해 계시해 주신 것에 감사하자.



메튜 헨리 목사님께서 지적하듯 "하나님께서 많은 부분을 비밀에 부치셨지만, 그래도 우리를 만족시키고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족할 만큼 나타내 주셨다."고 고백하자.



그리고 성경 앞에 진지하고 겸손해지자.



기독 교회사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무려 2천 년의 역사다.



그 2천 년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섭리의 다스림으로 교리를 완성시키셨다.



그러므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주장할 필요가 없고, 도리어 자신의 주장이 정통적 교리인지 옛적 길로 돌아가서 점검하라.

그리고 그것이 정통 교리와 맞지 않는다면 돌이키라.



인간의 이성이란 것은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 것도 진실되게 깨달을 수 없는 불완전을 전제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겸손하자.



하나님의 불가해한 영역을 가벼이 여기고 인간의 보잘것 없는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범하는 것은, 다시 교만한 죄를 가지고 바벨탑을 쌓는 악한 행위인 것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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