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김성욱개혁신학을 사랑하여 관련 서적과 교회사를 통해 신앙선배님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에 관심이 많고, 조국 교회에 참된 말씀으로 인한 부흥이 일어나길 소망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삼송제일교회에 출석하며, 중고등부 부장을 맡아서 봉사하고 있다.

<비판, 비난 그리고 형제우애>

김성욱 | 2019.02.07 10:49
< 비판, 비난 그리고 형제우애 >



*비판 :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



*비난 :

1.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2. 터무니 없이 사실과 전혀 맞지 않게 헐뜯음.



작금의 시대에 기독교 신앙 안에서 보기 힘든것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에 마땅히 순종해야 함을 인식하지 않고(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부주의 함)아무 준비없이 듣는것 과 형제 사랑의 실제적 열매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은 사랑과 아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비난의 출발은 언제나 미움과 증오입니다.



문자적인 그 경계는 명확하지만, 현실에서는 곧 잘 이 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자신은 비판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내 비난의 경계를 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늘 주의해야 할 것은 비판하는 대상은 언제나 상대가 주장하는 내용이나 행동이어야하지 그 사람 자체를 인신공격 하거나 비하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내용 뿐아니라 대상을 비난하고 조소함으로 인격을 비하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온라인 상에서도 한 대상자를 두고 댓글로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일종의 조리돌림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당사자가 그러한 글을 보고 당하게 될 아픔을 생각해 본다면 그렇게 자신의 분을 발산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면 안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형제 사랑하기를 나 자신을 사랑하듯 하고, 형제의 잘못을 490번 용서하라 하셨고,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정신인데,



이러한 것들이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비판할 때, 즉각적으로 분을 내며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비판한 자)를 찾아 자신의 분이 풀릴때까지 마음에 품거나 보복을 감행하는 것은 자신의 자아가 전혀 부정되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 꿈틀 댄다는 반증 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을 고백하면서 지체된 형제들을 용서치 않고, 때때로 발견되는 결점을 가지고 비난을 한다면 오른팔로 왼팔을 치고, 왼발로 오른발을 걷어차는 비정상적인 다툼을 통해 주님의 몸인 교회를 허무는 일을 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엄히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소자를 대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고, 소홀히 대하는 것이 곧 주님을 소홀히 대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경히 여기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형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비판과 권면. 그리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기반으로 한 비판과 인내하는 가운데 형제를 품는 사랑과 관용의 자세.



주님께서 형제로 허락하신 같은 신앙고백 안에 있는 분이라면, 한두 가지의 결점이나 실수를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아량.



마지막으로 자신이 결코 의롭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통해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라는 깊은 인식을 가지고, 언제나 자신을 먼저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겸손하고 애통하는 상한 심령으로 서고 그러기를 늘 갈망하는 마음.



그 결과로 누가 자신을 비판해도 요동하지 않고 인내하는 겸손한 모습이 있길 사모합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04개(1/6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04 모바일 [김성욱 칼럼] 신학 무용론을 반대하며 김성욱 2024.04.15 23:05
103 모바일 [김성욱 칼럼] 체계적인 직분자 교육의 중요성과 그 적실성 김성욱 2024.03.12 19:48
102 모바일 [김성욱 칼럼] 죄를 죄로 선포하지 않는다면. 김성욱 2024.03.12 16:53
101 모바일 [김성욱 칼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대적 김성욱 2023.08.08 00:10
100 모바일 [김성욱 칼럼] 왜 동성애를 경계 하는가? 김성욱 2023.07.14 09:29
99 모바일 [김성욱 칼럼] 조리돌림 김성욱 2023.06.19 23:55
98 모바일 [김성욱 칼럼] 하나님의 불가해성 김성욱 2023.05.25 23:19
97 모바일 [김성욱 칼럼] 누구를 높일 것인가? 김성욱 2023.04.25 07:56
96 모바일 [김성욱 칼럼] 올바른 교리적 기준의 회복이 꼭 필요하다! 김성욱 2023.03.30 19:32
95 모바일 [김성욱 칼럼] 목회자의 이중직 김성욱 2023.03.07 20:21
94 [김성욱 칼럼] 십자가와 사랑 김성욱 2023.03.03 10:03
93 모바일 [김성욱 칼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김성욱 2023.02.07 07:54
92 모바일 [김성욱 칼럼] 목회로 부르심을 받은 이름 모를 형제님께 김성욱 2023.01.31 00:11
91 모바일 [김성욱 칼럼] 용서의 빛 김성욱 2023.01.27 19:54
90 모바일 [김성욱 칼럼] 교리, 천국의 열쇠 김성욱 2023.01.25 08:53
89 모바일 [김성욱 칼럼] 다윗의 자손 예수여! 김성욱 2023.01.17 07:53
88 모바일 [김성욱 칼럼] 정도, 가야할 길 김성욱 2023.01.05 09:28
87 모바일 [김성욱 칼럼] 진리는 언제나 보편적이다. 김성욱 2022.06.15 12:18
86 모바일 [김성욱 칼럼] 영혼의 의사 김성욱 2022.01.16 10:10
85 모바일 [김성욱 칼럼] 섭리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 김성욱 2022.01.05 22:26
위로